Lee Hanbum

Writing

물방울은 어디로 갔는가?

미술세계 2017년 8월호에 수록.

 

지난 6월 20일 끝난 아트센터나비에서의 리얼 픽션 전은 A/A, 변지훈, 전형산 작가의 작업을 선보였다. 과연 이 전시가 고민하는 리얼-픽션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전시장의 몇몇 작업을 경유해보면 그 위치를 어렴풋이 짐작해보자. 전형산 작가의 선험적 편린들 #3; 레디우스(2014)는 좋은 시작점이 된다. 재봉틀 기계를 연상시키는 탁자 위에는 기묘한 조합의 장치들이 구성되어 있다. 정면에 오래된 타자기가 보이고, 천공테이프 판독장치가 한켠에서 조용히 작동한다. 촘촘히 감겨진 탁자만 한 코일은 저 홀로 돌아가며 좌우를 오간다. 그 뒤로는 병풍처럼 펼쳐진 입식 스피커가 있는데, 이들은 알 수 없는 순서로 빛을 깜빡이며 이해 불가능한 소리를 낸다. 이 거대한 구조를 경유해 들리는 잡음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 작업은 일종의 라디오 전파 송수신기이다. 코일은 주변에서 떠도는 라디오 사운드 주파수를 수신하고, ‘make some noise’라는 글자를 타이핑하는 타자기의 작용을 거쳐 스피커로 보낸다. 여기서 5개의 구멍이 뚫린 천공테이프는 뒤쪽의 스피커 다섯 개와 각각 대응한다. 판독기가 이 구멍에 반응하여 코일에서 모아진 신호를 어느 스피커로 보낼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스피커에 써져있는 88, 91, 95, 102, 105라는 글자는 모두 각각의 스피커에 할당된 주파수를 뜻하는데 이들은 모두 사용되지 않는 영역이다..

말하자면 이 작업은 사용되지 않는 주파수를 모아 사용하지 않는 주파수로 바꾸는 기계 장치이다. 그리하여 선험적 편린들 #3; 레디우스가 만들어내는 소리는 과도하게 복잡하고 인위적인 변환 과정을 거침에도 여전히 사용가치가 없는 무용한 소리다. 이 소리는 우리에게 어떠한 편안함이나 감동, 기쁨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이 기계 장치가 바로 그 “인간에게는 사용가치가 없는 세계, 혹은 인간과 무관한 세계”를 가시적으로 구현하고 인지 가능한 것으로 번역했다는 것이다.

비가시적인 것을 인지 가능한 것으로 드러냈다는 것, 우리에게 ‘쓸모 있는’ 무언가로 여겨지지도 않고 기능하지도 않는 것을 굳이 눈앞으로 호출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표준화된 세계의 규칙은 비가시적인 것을 열등한 것으로 또 무용한 것으로 다룬다. 혹은 엄연히 존재함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치부한다. 이것이 세계를 구조화하는 하나의 패러다임이 될 때, 역사는 억압과 배제의 잔혹한 비극적 사건을 마주하게 되고 실제로 그러해왔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현재는 표준화의 속도와 강도가 그 어느 시대보다 빠르고 강하다. 전지구적 차원에서 유동성의 상태는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자본의 흐름만이 유동성의 자취를 남길 뿐이다. 총체로서의 세계를 유동시키고 중첩시키는 것, 가시화와 비가시화를 왕복하는 운동은 모든 시공간에서 요청되는 것이지만, 점점 더 그에 대한 상상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차원에서 우리가 기대어볼 수 있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 실험의 영역에 있다. 그 실험은 언제나 동시대의 시대 양식을 참조한다고 했을 때, 이번 전시는 담론이나 개념보다는 과학 기술이 직관적으로 제안하는 감각의 상태에 의지한다.

베를린 기반 듀오 A/A의 작업 1:1(2013)은 실제 화약이 담겨 전류만 흐르게 하면 폭발하도록 만든 작업으로, 전시장 안에서 바로 그 폭발의 순간이 현실적으로 도래할 수 있다는 감각을 상상하게 만든다. 2012년 작업 ·도 흥미로운데, 가열된 알루미늄판 위로 떨어진 증류수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물방울의 물성과는 다른 움직임으로 판 위에서 진동하며 오간다. 그리고 점점 크기가 작아지다가,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고 한순간 사라져버린다. 물방울은 어디로 갔는가? 일상과는 다른 아주 사소한 제약조건을 가함으로써 완전히 다른 물질적 상태를 만들고, 그에 대한 기묘한 감각을 제안함으로써 우리는 화들짝 놀라게 된다. 이는 나의 주변에 숨 막힐 정도로 가득 들어차 있는 비가시적인 세계, 인간과는 전혀 무관하게 흘러가고 있는 바로 그 세계가 있음을 불현듯 인지하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허상은 그 어느 때보다 의기양양하지만 세계는 스스로 멸균실이 되고자 한다. 시끄러운 잡음과 불순물을 제거하려는 충동이 이 체제에 깔려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스스로 표준화되기를 자처한다. 그 바깥의 영역을 상상하는 일은 이제 너무나도 무용한 일처럼 보이지만 그 무엇보다도 절실한 일인 것 같다.


 

A/A, ·, 2012, Water, Aluminium, Concrete, Heating Source, 90 x 30 x 30 cm
© 아트센터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