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Hanbum

Engineering

tales on nameless places (part 1)

Pure Land: 바람이 머무는 땅(코사이어티 빌리지, 2021, 김그린 차정욱 기획)에 참여한 필드 레코딩 기반 소리 설치 작업

about

제주도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오름과 동굴이 있고, 그와 엇비슷하게 많은 설화가 전해진다. 설화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만들어진 그 땅의 신비를 설명하기 위한 이야기이다. 이야기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그곳에 흐르는 소리를 들었다. 소리의 흐름에는 이야기의 조각도 있었고 이야기를 잊게 하는 그 땅에 대한 다른 단서도 있었다. tales on nameless place는 땅의 신비를 말하기 위해 소리로 써 보는 또 다른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낮과 어둠의, 물과 숲의, 돌과 바다의 경계이다. 그리고 불쑥불쑥 등장하는, 여기에 다다른 머나먼 외부가 주인공이다.

composition and installation

전시실

upside down, 4.1 채널 서라운드 사운드, 28분 2초, 반복 재생
particle of vortex, 모노 사운드, 3분 24초, 반복 재생
beyond the land 954, 스테레오 사운드, 초지향성 스피커, 5분 31초, 반복 재생

로비

waves from outside, 스테레오 사운드, 14분 9초, 반복 재생

복도

cloud is coming, 스테레오 사운드, 32분 20초, 반복 재생
shallow hole, 모노 사운드, 1분 10초, 반복 재생
beyond the land 855, 스테레오 사운드, 초지향성 스피커, 3분 22초, 반복 재생

spatial synthesis

concept and method

Sonic as Myth

설화(신화, 전설, 민담)는 말로 전해지고(口傳), 말은 공기를 통해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설화는 풍문(風聞)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이야기는 바람을 따라서만 흐른다. 그런데 ‘風聞’을 곧이 번역하면 “바람을 듣다” 혹은 “바람을 들어 이해하다”가 된다. 이 음향적 인식에 대한 간명한 서술을 의미심장하게 여겨보면, 설화란 ‘언어로 구조화된 서사물’을 이르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재생산되는 총체적 과정 속 음향 작용과 앎의 한 양식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즉 설화는 특정 장소를 구성하는 원리의 표현형(phenotype)이고, 그 믿음의 체계를 구성하는 과정에는 반드시 음향 작용이 포함되어 있다. 바람(소리)을 듣는 것만으로도 변화가, 사건이 일어난다.

풍문(風紋)은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그 바람의 흔적을 뜻한다. 우리는 이미 사라진 바람에 대해서라곤 남은 흔적만을 살필 수 있을 뿐이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흔적을 통해 다시 바람을 추측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장소의 오래된 비밀 그러나 여전한 비밀에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서는 소리에 조금 더 귀 기울여야 한다.

Field Recording as Sonic Archaeology

녹음기를 켜고 소리를 들으면 청취자는 단숨에 익숙하던 세계의 외부자가 된다.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고, 들리던 소리가 어색해진다. 필드 레코디스트는 외부자인 내부자, 내부자인 외부자로서 그 세계와 특수한 거리를 두고 소리를 탐색하려는 사람이다. 현재에 발견되지만 현재와는 다른 체계에서 생산된 사물을 고고학적 대상이라 일컬을 수 있다면, 필드 레코디스트가 듣는 소리는 (그가 세계와 맺는 특수한 거리 때문에) 고고학적 대상이 되곤 한다. 녹음은 소리를 물질화(발굴)하는 일이다. 다른 현재를 여기 현재로 데려오는 필드 레코디스트의 작업은 음향 고고학적 탐사다.

Sonic Fiction Agent

설화로서의 소리, 그 소리를 발굴하는 음향 고고학으로서의 필드 레코딩이라는 기획은 현재를 구성하는 힘의 작용을 추적하고 동시에 다른 현재라는 허구를 현실에 도입할 수 있는 음향적 방법론이다. 사람들은 ‘다른 현재’를 흔히 ‘미래’라고 부른다. 필드 레코딩은 미래에 대한 강한 기대에서 비롯한다. 음향을 통해 허구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여러 행위자가 필요하다. 필드 레코디스트가 그 중 하나라면, 음향이 다른 하나이고, 합성적 청취자가 또 다른 행위자이다. 전시라는 형식은 이 행위자들을 한데 모아 음향적 허구 생산에 공모하도록 한다.

interview

Q Tales on Nameless Place 작업에 대한 설명을 부탁합니다.

A 필드레코딩 사운드를 이용한 설치 작업입니다. 설치를 통해 공간적으로 합성된 소리는 제주에 관한 일종의 이야기 입니다. 전시장을 거니는 청취의 경험을 통해 제 이야기를 듣는 것이죠. 저는 이 작업을 위해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며 제주를 돌아다녔고, 들었던 소리에서 비롯하여 제주를 이해해보려 했습니다.

Q 제주의 낮과 어둠, 물과 숲, 돌과 바다의 경계에서 소리를 채집하기 위해 어떤 장소를 방문하였고, 그곳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나요?

A 대부분의 시간을 길 위에서 보냈고 많은 장소를 방문했지만, 이번 필드 트립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수망리의 물영아리오름 이었습니다. 30분 남짓 걸어 가파른 숲을 오르면 꼭대기에 습지가 있는 독특한 오름이었어요. 같은 장소라 하더라도 소리는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저는 몇 번을 반복해서 그곳을 방문했습니다. 녹음기를 켜놓고,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존재감을 최대한 작게 만들고 그곳의 풍경을 보고 들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소리가 이끄는 대로 가다 보니 그곳에 얼마나 복잡하고 풍부한 움직임들이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고 또 아직 이해하지 못할 신비로움이 여전하다는 것을 느끼곤 했습니다.

Q ‘제주 땅 곳곳에 남겨진 신들의 고향에 대한 단서’가 되는 작품의 서사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들려주세요.

A 제주에 가기 전 제주의 민담을 엮은 책에서 오돌또기라는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오늘날의 오키나와와 베트남까지 이르는 해양 국가들을 배경으로 한 김복수라는 인물과 그의 가족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주가 드넓은 바다 너머의 외부와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져 왔음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차를 타고 제주를 다니던 중 실수로 AM 라디오를 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노이즈와 맥놀이가 뒤섞인 소리 너머로 낯선 언어의 말소리가 들렸습니다. 가만히 집중해서 들어보니 일본 말이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제주의 대기 속에서 진동하고 있는 외부의 소리들이었던 것이죠. 주파수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여러 머나먼 외부의 소리들을 듣고 녹음했습니다. 이 소리들 중 두 개를 선택해 전시장에 beyond the land 954, beyond the lands 855라는 제목으로 설치했습니다. 둘 모두 초지향성 스피커를 사용했고 전시장 양 끝에서 놓아 두고 소리가 안쪽으로 향하도록 했습니다. 전시장을 가득 채운 제주도의 여러 소리들 사이로 이 외부의 소리들이 은밀히 그러나 의미심장하게 들리기를 바랐습니다.

행복이 가득한 집 9월호, 편집 전 원고.

tales on nameless palce, 2021
사진: 손미현(@ref.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