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토리얼과 공간
curatorial
큐레토리얼과 공간
어떠한 말과 이미지, 사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떻게 존재하고 행위하는지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자리하고 또 유동하는 구체적인 공간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공간을 구성하는 질서뿐만 아니라 공간의 외부와의 관계 속에서도 그것들은 다루어져야 한다. 이와 같은 총체적 공간으로 뛰어 들어 말, 이미지, 사물의 새로운 연결을 추동하며 다른 앎을 생성하는 것, 다른 앎을 이루는 사물들을 위한 공간에 참여하며 말해지지 않고 보여지지 않던 다른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실천 혹은 방법을 우리는 큐레토리얼이라고 이를 수 있다. 이번 강독은 큐레토리얼과 공간이라는 주제 아래 도서관 환상들과 분더카머 두 책을 다룬다. 말과 이미지, 사물이 끊임없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이 움직임의 시간을 돌보는 공간을 살펴보며 지금 우리의 지식과 문화가 어떻게 형성되어 왔으며 또한 우리가 어떤 지식과 문화를 구성해 나가야 할지를 고민해보고자 한다.
program
도서관 환상들
아나소피 스프링어, 에티엔 튀르팽 엮음, 김이재 옮김, 만일, 2021
이 책은 도서관을 질서 있고 통제된 지식을 욕망함과 동시에 그것의 불가능성을 품고 있는 공간으로 여긴다. 그리고 이 공간을 이루는 주인공인 책 또한 마찬가지로 통제됨과 통제 불가능성을 동시에 품은 사물이다. 도서관 환상들은 책과 도서관이 가진그 불안과 긴장의 상태, 닫혀 있지만 무한히 열려 있는 특성에 주목하며 이를 큐레토리얼의 공간으로 규정한다. 혹은, 책과 도서관을 큐레토리얼의 공간으로 해석함으로써, 바로 거기서 새로운 앎과 새로운 연결을 생성하는 몸짓을 우리가 수행해야 함을 제안한다.
주제 강독자 김이재
서강대·파리 3대학에서 불어불문학을 공부했다. 영어와 프랑스어를 한국어로 옮긴다. 도서관 환상들(2021)을 번역했다.
대담자 박상우
서울대학교 미학과 교수.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 언어학부에서 예술과 문학 전공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롤랑 바르트, 밝은 방(2018), 박상우의 포톨로지: 베르티옹에서 마레까지 19세기 과학사진사(2019)등의 책을 썼으며 폐기된 사진의 귀환: FSA 펀치 사진(2016)을 기획했다.
일시 2021년 10월 22일 15:00-17:00
장소 책과 생활
분더카머
윤경희 지음, 문학과지성사, 2021
이 책은 사적인 기억을 세심히 들여다보며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과 그것이 의미를 생성하게 되는 과정을 사유한다. 혹은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과 그것이 의미를 생성하게 되는 과정을 사유하기 위해 어떠한 특권적 사물과 사건이 자리하던 경험을 이야기를 통해 공간화하는 것이기도 할 테다. 분더카머는 우리가 즉각적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또 모순된다고 여겨왔던, 혹은 이미지화하지 못하고 설명하지 못했던 사물을 위한 신비로운 방이다. 여기서 우리는 비로소 어떤 사물들은 우리가 익숙지 않은 다른 방식으로 보고 듣고 썼을 때, 다른 연결과 관계 속에만 불투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주제 강독자 윤경희
파리 8대학 비교문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로 일하며 문학과 예술 관련 글을 쓴다. 분더카머(2021)를 썼다.
대담자 이소의
미술 작가. 개인전 Off Sight(2019)를 비롯해 We’re all sick and in love(2021), 멀고도
먼(2021), 아마도애뉴얼날레 목하진행중(2020) 등의 전시에 참여했다. 남겨진 이미지와 사물을 통해 그것이 말해주지는 않는 바깥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담자 백종관
일상의 이미지와 사운드를 수집하고 활용하여 그것들의 사회적 맥락에 대해 고민한다. 동시에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 사유하며 작업한다. 영화의 확장, 그리고 몸의 확장에 대해 관심이 많으며 리서치를 기반으로 한 실험적 영상을 제작한다. 파리대왕독본(2019), DownTime(2018), SUPERLIMINAL: In Search of Lost Frame(2016) 등의 개인전을 비롯해 다수의 전시와 영화제, 스크리닝에 참여했다.
일시 2021년 10월 29일 15:00-17:00
장소 책과 생활
curatorial note
여느 사물이 그렇지 않겠냐 만은, 책이라는 물건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비록 그것은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변함없는 형태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을 둘러싼 풍경이 끊임없이 요동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풍경이란 무엇보다도 현재의 문명을 구성하는 강력한 힘인 인쇄문화, 즉 기술복제 생태계의 대표적인 이미지라는 점에서 다른 여타의 물건들보다 나의 관심을 끈다. 유튜브가 책의 영원한 적처럼 보일지라도 사실 그것은 책과 그리 멀지 않은 이웃이다. 우리를 이끌고 나가고 우리에게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 기술복제는 세계를 대리하고 재생산하는 여전히 지배적인 장치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무언가를 알게 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도구다. ACC 창제작 담론 열한 번의 주문 강독프로그램을 기획하며 가장 오래 숙고한 문제는 ‘강독’ 즉 읽기라는 행위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읽기, 혹은 앎의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고 무엇을 하고 있지 않을까?
열한 번의 주문은 이미 등장한 담론에 관한 전문적인 논의의 장소가 아니라, 지금 여기 창작 문화 안에서 무엇이 정말로 문제시되는지를 파악하고자 실재를 검토하는 과정이었고, 이를 위해 현장의 다양한 창작자들을 초대하는 것이 기획의 핵심이었다고 이해한다. 그러한 방향성에 동의하며 나 또한 읽기를 둘러싼 문화적 풍경을 차분히 되짚어 나가보았다. 강독은 대개 책에 적힌 글을 한줄한줄 꼼꼼히 읽어 나가며 텍스트를 탐구하는 독서법이다. 강독하였을 때 즐거움이 일어나는 책들이 있긴 하지만, 이번 프로그램에서 제안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나는 나를 둘러싼 문화가 경도된 엄숙주의와 뒤틀린 합리성을 은연중에 강제하며 경직된 몸짓을 재생산한다고 느꼈기에, 보다 적극적으로 살펴야 할 것은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읽기를 통해 지성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앎의 모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책을 통독하지 않으면 그 책을 읽었다고 말하기를 주저하고, 영화를 보다 졸면 비난 받기 일쑤다. 설거지를 하며 음악을 들으면 그건 음악감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는 표면적으로는 작품 감상법의 다양함에 대한 요구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근원적인 것은 주관적인 발견과 해석, 그리고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것들 사이의 관계를 유추하고 연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얼마나 허용하는가에 대한 문제다. 말하자면 창작자의 의도와 의식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것을 충실히 설명하기를 요구하는 것이 경직된 문화의 논리라면, 그것을 벗어나서도 가능한 앎의 영역이 충분히 확보되는 것, 그것이 생각보다 시급한 읽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서만 드러나는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여전히 다다르지 않은 현실이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주어진 현실 너머를 상상하고 표현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 문제에 있어서 창작자나 관객/독자의 구분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
미술의 영역에서 이와 같은 앎의 문제를 다루는 담론이 바로 큐레토리얼일 것이다. 큐레토리얼은 현재의 앎의 관습과 그것을 구성하는 힘의 체계를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새로운 앎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방법론이다. 오늘날의 몇몇 큐레이터들이 이를 수행하고, 그것이 주로 미술의 장에서 이루어지긴 하지만, 큐레토리얼은 그와 같은 특수성만으로 환원되지 않고 또 그래서는 안된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나는 오랫동안 큐레토리얼의 실천적 가능성과 중요성을 생각해 왔지만, 다른 한편 미술계에서 이 용어는 너무도 가볍게 담화로만 소비되며 상징자본화 되는 과정을 목격해왔기에 그 사용에 대해서는 조심해왔다. 그럴수록 큐레토리얼을 표명하지 않지만 큐레토리얼적 실천을 수행하는 다양한 작품, 작가, 기획자, 제도가 중요해져 갔다.
5월과 7월, 약간의 시차를 두고 발행된 두 책 도서관 환상들과 분더카머를 읽게 된 계기는 서로 달랐지만, 두 책은 적극적으로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능동적인 앎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행위로 읽혔다. 이 두 책을 나란히 두면, 그간 우려했던 문제들을 피해 큐레토리얼이라는 말의 실천적 가능성을 회복하며 그것의 기능적인 측면을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두 책이 우연히 엇비슷한 시기에 세상에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이 두 책은 각각 ‘도서관’ 과 ‘경이의 방’이라는 구체적인 공간을 일종의 알레고리로서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는 내가 기획 단계에서 생각지 못했던 하나의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계기이기도 했는데, 그것은 앎의 생산과 재생산, 큐레토리얼의 문제는 반드시 어떤 구체적인 공간을 조건으로서 고려해야만 성립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두 책이 각각 도서관과 경이의 방이라는 공간을 어떻게 관찰하고 해석하며 거기서 무엇을 발견하는지를 통해서, 나아가 저자가 그 발견을 적극적으로 자신의 앎의 방법으로 수용하는 과정을 통해서 독자들이 각자의 공간을 조건 삼아 각자의 앎의 가능성을 가늠하기를 바랐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각자의 현실에 대한 숙고와 비판적 인식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도 하다.
도서관 환상들의 번역자 김이재는 강독 프로그램에서의 대화 형식 자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되기를 제안했다. 도서관 환상들이 첫 페이지에서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선형적으로 읽기를 요구하지 않는 것처럼, 대화 또한 ‘길을 잃고 헤매는’ 것으로 구성되어 책과 가깝고도 먼 거리를 만들어보기를 시도한 것이다. 번역자로서 이 책을 마주하는 것은 결국 독서의 경험이기도 했음을 밝히며, 김이재 번역자는 도서관 환상들에 대한 “울퉁불퉁한 독서 경로”에 대해 말해주었다. 특히 그가 이 책에서 흥미를 느끼고 종종 샛길로 빠졌다고 하는 장소는 사진이다.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왜 이렇게 사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을까 질문했다. 이에 대해 대담자로 참여한 박상우 교수가 사진의 등장이 지식 생산에 있어서 어떠한 역할을 했고 변화를 초래했는지를 설명했다. 흥미로운 것은 사진이라는 새로운 재현 체계가 사실은 선험적인 지식과 편견을 강화하는데 쓰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지식 생산의 도구로서도 쓰였다는 이중성을 내포한다는 말이었는데, 이는 정확히 도서관 환상들에서 저자가 말하는 도서관이 가진 다양한 동시적 ‘환상들’ 즉 세계를 분류하고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과 그것을 초과하는 지식에의 상상이라는 주장과 공명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 논의는 기술복제 문화가 가진 인식론적 한계 뿐만 아니라 그 새로운 사용법의 가능성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새로운 가능성의 사례들이 대체로 예술적 영역에서 실험되고 있음을 살폈다. 샛길에서 빠져 나와, 김이재 번역가가 이 책을 통해 끊임없이 환기시킨 것은 독자의 능동성이었다. 정전의 권위를 의심하고, 가시적인 것들이 가시적이게 된 이유 즉 무언가가 배제되었음을 비판적으로 인지하고, 실패를 무릅쓰며 나름대로 무언가를 선택하고 연결해보기를 시도해보라고 권유한다. 도서관은 그 가능성을 내재한 공간이며, 바로 그것이 우리가 지금 여기서 도서관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새로운 몸짓일 것이다.
분더카머에 관한 대화의 준비 과정은 조금 달랐다. 나는 윤경희 저자의 대담자로 미술작가 이소의, 영화감독 백종관을 섭외했는데, 외견상 서로 연관 없어 보이는 작업을 하는 이들이 사실은 내밀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광학적 장치를 통해 아무리 확대하거나 살펴보아도 결코 드러나지 않는 어떤 대상, 상황, 현실에 대해 인식하고 그것을 탐색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작가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광학적 장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 그 매체 자체를 다시 숙고하면서 말이다. 이는 내가 분더카머에 단번에 매혹된 이유와 엇비슷한데, 이 책 또한 끊임없이 세계 속의 희미한 존재감 혹은 우연적 순간들을 통해 세계로 다시 나아가는 일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윤경희 저자는 대화의 시작에 올레 보름의 경이의 방 한구석에 자리한 잡동사니(VARIA) 상자를 가리키며 분류 불가능하고 묘사하기 어렵고 인지할 수 없는 사물에 대한 관심을 얘기했는데, 결국 이 세 창작자들을 관통하는 것은 그러한 이름 붙이기 어려운 존재들과 우정의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며 이 과정을 통해 진실의 조각을 발견할 수 있다는 소박한 믿음일 것이다. 이들은 사전적 정의로서의 분더카머가 아닌, 각자 자신들만의 분더카머를 구축하는 이들이었으며 이 대화는 서로의 방에 방문해 거기 놓인 정체를 알 수 없는 (심지어 방의 주인조차 여전히 잘 모르는) 사물과 이미지와 소리를 함께 관찰하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대화의 준비 과정은 서로가 서로의 작업을 살피며 감상을 얘기하고 질문하는 것으로 채워졌고, 그렇게 오간 이야기를 속에서 사물에 관해, 이미지에 관해,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관해 마주하는 각각의 방식들, 서로 다른 방식들을 이해해 보았다.
백종관 감독은 분더카머의 한 챕터 “오역과 사랑”에 나오는 구절 “주의 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 선물을 받는다.”를 언급했다. 돌이켜보면 이 한 문장이 강독프로그램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의 전부였던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가 좀 더 천천해지면 좋겠고, 주의깊어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시라는 앎의 파편을 건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