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Hanbum

Talking

미술관과 어린이: 배움의 장소

모음(이슬비, 조은비, 윤주희)의 돌보는 시간: 미술관과 어린이를 위한 새로운 관계 맺기 연구의 일환으로 진행된 라운드 테이블. 결과보고서 돌보는 시간, 미술관과 어린이를 위한 새로운 관계 맺기 연구에 정리된 내용이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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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21년 10월 18일 월요리 13-15시
참여 최성희, 이한범
장소 와글와글도서관

 

어린이미술관에 관한 연구는 그동안 미술관교육 연구자의 관심 분야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청해 들을 수밖에 없었다. 국내에는 어린이 경험을 다룬 미술관교육 연구자가 많지 않다. 최성희 교수는 미술관교육 연구자일 뿐만이 아니라 2015년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코끼리 주름 펼치다, 끼리끼리 코끼리 공동 큐레이팅을 비롯해 다수의 교육 전시를 기획한 바 있다. 미술평론가 이한범은 ‘다른 앎’을 위한 출판사 나선프레스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그는 ‘동료 시민’으로서 어린이 독자를 상정하며 출판물과 워크숍을 만들어 왔다.

어린이라는 주체, 대안적인 지식 모델 탐색을 위해

한 사회에는 사회 구성원들이 배울 수 있는 다양한 지식 모델과 가치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미술관이라는 제도는 편향된 지식을 생산하는데 몰두하는 것은 아닌가? 미술평론가 이한범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토대로 대안적인 지식 모델을 탐색하면서 또 다른 배움의 주체로 어린이를 주목한다. 그리고 다른 지식의 생산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작업, 전시, 출판 등 예술 제도 안에서 어린이라는 주체를 연동시켜 고민하고 있다. 이처럼 대안적인 지식 모델과 어린이를 연결하는 관점은 새로운 담론을 모색하기 위한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이에 덧붙여 최성희 교수는 우리는 알게 모르게 어린이를 신비화하고, 관념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아이들을 직접 관찰하면서 그들의 발달 단계를 고려한 소통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린이는 미술관에서 시민의 일원으로서 어떤 배움이 가능할까? 사실 이것은 어린이뿐 아니라 시민 모두에게 해당하는 질문이다.

‘관계망’이 형성되는 장소로서의 미술관

“미술관에서 나를 돌보고 남을 돌보고 서로 돌볼 수 있다면 너무나 완벽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의 도식을 떠올려 보자. 먼저 작품이 있고, 작품이 있는 전시가 있고, 전시를 보는 사람이 있고, 미술관이라는 공간의 층위가 있을 때 학습 도모와 창의성 추구 말고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작품, 전시, 사람, 공간 사이에 다양한 관계의 결을 만드는 것이다. 작품과 전시, 작품과 사람, 사람과 전시, 사람과 공간 등 결국은 관계 맺음인데, 지금과 다른 관계 맺음을 대안적으로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최성희

일반적으로 공공성을 이야기할 때 나(주체)는 사라지고, 소외된 타자를 부각하는 오류를 반복해오지는 않았을까. 최성희 교수는 배움과 돌봄을 둘러싼 문제에서 ‘나’라는 주체의 인식을 강조했다. 이는 나를 돌볼 수 있어야 타자를 돌볼 수 있다는 돌봄의 상호의존성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미술평론가 이한범은 미술관은 작품을 소장하고 전시를 만들어 서비스하는 기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술관의 모든 사물, 미술관에서 일하는 다양한 주체, “미술관에 아직 오지 않거나 올 수 없는 관람자(최성희”를 포함한 관람객 등 모든 주체의 관계가 긴밀하게 형성되는 장소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에 덧붙여 미술관은 다양한 주체와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 지속해서 제안하고 실험하는 중요한 제도라고 말했다.

“미술관은 굉장히 순도 높은 관계망이 있는 장소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여러 관계가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관계 맺기를 해야 하는지 새롭게 제안하고 스스로 실험하는 굉장한 중요한 제도이다. 그런데 미술관은 자신이 그러한 관계적 장소라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편의를 서비스해야 하고 정량적 성과로 판단되는 경제적 가치만 집중하는 공회전이 일어나는 것 아닌가. 미술관의 규모도 문제가 있다. 다양한 관계를 감당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커 이같은 실험이 불가능해 보이기도 하다.”
이한범

이러한 비판은 동시대 미술관을 둘러싼 근본적인 역할과 방향성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진다. 나아가 어린이미술관이라는 특수화된 형태로 규정하는 문제를 넘어, 어린이 지향적인 미술관을 고민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된다. 미술관은 어린이를 특수화시키면서 공간 내 제도적 구분을 통해 경계를 설정하는 방식이 아닌 사회적 소수자를 포함하는 방식의 사회 문화적 지향성을 더욱 폭넓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고민은 그간 미술관교육이 한국사회의 교육열을 바탕으로 학부모가 원하는 방식으로 제도화되어 왔다는 최성희 교수의 지적과도 연결된다. 어린이 내부의 계급성과 차이를 간과한 채, 미술관은 그동안 특수한 계층의 어린이를 위한 공간으로 기능하지 않았나? 미술관은 이제 어린이의 발달 단계에 대한 섬세한 고찰과 공간적 구성을 토대로 개인 또는 사립기관이 할 수 없는 실험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등 자신의 공적 가치를 더욱 과감하게 상상해야 할 때이다.

비평이라는 교육, 자기 주도성이 키워드

현재 미술 감상과 비평은 고등학교 미술교육 과정으로 다뤄지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주체적인 시각과 독자적인 관점을 형성하는데 현행 교육이 과연 실효성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비평의 본질적인 측면을 왜곡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술평론가 이한범은 ‘비평’은 유용한 앎의 도구라고 밝혔다. 비평은 문제시되는 대상을 나와의 관계 안에서, 그리고 사회, 문화, 역사적인 관계 안에서 능동적으로 사유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비평은 나라는 주체가 중심이 되어 배움을 실행하는 과정이다. 어떤 작품을 이해할 때 우선 나의 느낌과 감상이 중요하며 작품에 관한 객관적인 정보는 그것의 방향성을 확인하고 의미를 확장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에 관해 최성희 교수는 현재 교육과정에서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자기 주도성’이라고 역설했다. 하지만 이것이 현재의 학교 교육과정에서 육성되기는 사실상 어렵고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그는 미술관이 자기 주도성을 키울 수 있는 대안적인 공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동안 정보 습득 위주의 교육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당장 주체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아이들이 자기 주도성을 훈련할 수 있도록 충분한 준비와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젠더화된 공간으로서 미술관

최성희 교수의 소논문3 중에는 ‘젠더화된 공간으로서 미술관’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긴 연구가 있다. 그가 미국에서 박사 논문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자녀와 함께 미술관에 방문했을 때 아이가 계속 나가자 하는 바람에 곤혹스러웠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돌봄이 여성의 역할로 성별화된 사회에서 주양육자인 여성 관람객이 아이와 함께 미술관에 방문할 때, 제대로 배려 받기 힘들다. 따라서 미술관이 성별화되어 있다는 관점은 본 연구가 시작된 우리의 문제의식과도 맞닿은 내용이었다. 아이와 엄마인 관람객을 위해서 아이가 미술관에 흥미를 느끼고 자율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어떤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나아가 어린이를 동반한 관람객들이 아이와 함께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즐길 수 있도록 미술관에서는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미술관, 화이트 큐브에서 벗어나자

최성희 교수는 과거의 미술관이 ‘지식’이라는 절대적인 진실에 집중했다면 최근 미술관의 패러다임은 ‘내러티브’로 전환했다고 설명했다.4 내러티브는 가능성의 세계이다. 그리고 이같은 관점에서 아이들을 ‘가능성의 세계’로 인식할 수 있다. 하지만 미술관은 여전히 절대적인 진실의 체제를 고수했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해 다른 가능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미술관교육은 작품에 관한 정보를 설명하는 것보다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작품을 해석할 수 있도록 ‘새로운 경험’을 만드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최성희 교수는 미술관에서는 전시실 내에 화이트 큐브의 전통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언급했다. 전시 공간에서는 여전히 정적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행위만 요구된다. 작품과 관람자 사이에 다양한 층위가 발생할 수 있도록 전시장에서 다양한 활동을 제안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작품을 직접 보며 퍼즐을 맞추는 방식 등 작품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 작용이 일어날 수 있도록 전시 공간을 새롭게 구조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