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Hanbum

Writing

시간을 감내하기

제 17회 하정웅청년작가초대전 빛 2017(2017, 광주시립미술관) 도록에 수록.

 

강성은 작가의 작업에서 발생하는 미학이 어디서 유래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의 작업들을 경유하는 나선형의 운동을 시도해야 한다. 시작점을 찾고, 그가 이어온 작업을 하나하나 연결하여 성좌를 그리고, 그것에서 드러나는 맥락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를 통해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나 사유의 표현, 정신적인 상태를 구현하고자 하는 노력이 아니라, 선택한 풍경을 평면 위에 이미지로 만들어 내기 위해 매체를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하는 실험적인 태도이다.

강성은은 자신의 삶과 생활의 반경 안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을 예민하게 관찰한다. 그가 풍경을 살피는 방식은 근대도시를 활보하던 산책자(flâneur)의 모습과도 유사한데, 본인은 이를 ‘해찰’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즉 ‘본래의 목적지를 두고 다른 것에 눈을 돌리거나 쓸데없이 뒤적거리는’ 분산적인 지각의 방식을 통해 세계를 살피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산책자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단순히 세계를 관찰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성은이 학창시절 그의 친구와 뚝딱뚝딱 척!척(2003~2005)이라는 제목으로 진행했던 위트 넘치는 프로젝트는 서울 곳곳의 오래된 주거지역에 흩어져 있는 사적인 삶의 양식들, 일종의 버네큘러를 발견하여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이었고, 그 장면의 특성을 강조하기 위한 개입을 수행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구체적인 대상 혹은 상황에 대해 오랜 시간동안 천착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 천착의 시간이란 대상을 매만지는 사유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선택한 매체를 통해 재현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과정, 손 혹은 몸이 사유의 주체가 되어 특정 수준에 도달하기까지 이리저리 다뤄보는 시간에 가깝다. 바로 그 천착의 시간을 어떻게 물질화하는지가 작가에게 있어 중요한 미학적 조건이 되는 것이다. 손이 관념화된 형상을 구현하는 종속된 수단으로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수행의 주체가 될 때, 바로 그 재현물은 구체적인 의미의 체계로 가 닿는 것이 아니라 고유한 질감을 통해 감각을 발생시키면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변호한다.

2011년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가장 힘주어 작업하고 있는 ‘펜슬 클래식’이라는 이름의 연필 드로잉 연작은 그 중에서도 바로 ‘손의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이 작업을 설명하는 일은 그리 복잡하지 않은데, 말 그대로 종이 위에 연필을 이용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징적인 것이 있다면, 이 연작에서 연필을 다루는 방식은 통상적인 드로잉에서의 사용과 다르다. 윤곽선을 그려 대상을 변별시키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손의 노동(시간)에 따라 연필의 선을 수도 없이 반복하고 중첩시켜 대상의 부피를 만들어낸다. 중첩되는 선의 양의 차이에 의해 화면의 음영이 드러나고, 그리하여 대상이 시각적으로 인지된다. 그런데 이러한 연필의 사용법은 기교라기보다는 일종의 필연성에 따른 선택으로 보인다. 연작의 대표적인 시리즈인 Night Fin of Mountain을 보자. 이는 밤에 보이는 산을 그린 무척이나 매혹적인 작업이다. 고속도로에서 차를 타고 가며, 혹은 기차 안에서 바라보는 밤중의 산은 기묘한 속도감 위에 놓여 있고, 그러한 특정한 조건에서의 산은 형용하기 힘든 상태로 인지된다. 이 형용하기 힘들다는 것은 언어의 역부족이라기보다는 어둠이라는 장치로 인해 대상이 지시 가능한 고정성을 획득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상태에 가까울 것이다.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크기도 모양도 없는 깊고 커다란 어둠을, 그 말도 안 되게 정적이며 긴장되는 순간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상상해본다.”(2011)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단순하지만 아주 근본적인 상태에 대한 탐구를 요청한다. 선의 중첩을 통해 사물이 부피로 인지된다는 것은 대상의 명료한 경계라는 가상성을 제거했다는 말과도 같으며, 화면의 질감은 밤의 운동성을 재현한다. 여기서 운동성이란 ‘크기도 모양도 없는 깊고 커다란 어둠’이 지시 불가능한 상태로 자신의 고유한 형상을 드러내는 방식을 이른다. 이를 우회하는 한 사례를 보자. Night Fin of Mountain 시리즈에서 비교적 크기가 큰 작업들은 그 앞에 선 관람자로 하여금 ‘몸으로’ 감상하기를 요구한다. 이 이미지는 가까이에서 볼 때와 멀리서 볼 때 드러나는 형상이 다르고,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어둠의 질감이 전달되는 감각이 변화한다. 매 순간 인지되는 밤의 산이 시시각각 변하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밤의 산을 재현하기 위해 연필이라는 도구로 선을 중첩시킬 수밖에 없었던 필연성을 읽을 수 있다. 이 이미지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시간을 상상할 수 있는 것과는 별개로, 이미지는 또한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시간을 요구한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흥미롭게 떠오르는 질문은, 왜 한순간의 인상적인 장면을 재현하기 위해 강성은은 그토록 지난한 시간이 소모되는 방식을 선택했을까 하는 것이다. 순간을 포착하고 그것을 정확히 재현하는 광학적 매체는 너무나도 보편화되어있지 않은가. 나는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형상을 정확히 구현하는 것도 아니고, (인상주의자들처럼)시각적으로 인지되는 세계의 불연속성을 법칙화하는 것도 아니며, 정확하게는 동일한 것 안에서 발견되는 차이의 풍경을 드러내는 것에 있다고 말이다. 이러한 그의 작가적 시선은 매체와 재현의 도구가 다변화됨에도 변하지 않는 일관적인 태도다. 앞서 언급했던 뚝딱뚝딱 척!척!이 그 하나의 예라면, 2007년부터 이어온 남의 집 시리즈 또한 그러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오직 주거라는 실용적인 목적으로만 지어진 것처럼 보이는 몰개성한 서울의 다세대주택들의 정면(facade)을 세밀화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섬세하게 묘사한 이 작업은, 실제로 보면 거기서 거기인 것 같은 건물에 대한 체험을 시각적으로 바꿔 놓으며 사소한 곳곳에 분포한 차이를 확연히 보여준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순수한 형태상의 차이일 뿐, 그 어떤 낭만적인 서사도 틈입해있지 않다.

그러나 과연 차이를 모두 발견하는 것이 가능할까?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그의 모든 연작들이 끝나지 않고 계속 현재 진행 중 이유는 아마도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세계에 대한 인식의 속도는 즉각적인 반면, 그것이 타당한 정도로 재현되는 것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작가는 차이를 마주하며 그 차이의 간극을 본인만의 시간을 경유해 새롭게 펼쳐놓는다, 그리고 그 시간은 대상을 재현하는 작업의 속도로 수렴되는데, 이 속도는 그가 매 번 선택하게 되는 매체와 그 매체의 사용 방식에 의해 결정된다. 눈을 통해 관찰된 세계는 손을 통해 새로운 형상을 획득할 뿐만 아니라, 시차적으로 존재하게 되는 고유함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그렇게 재현된 이미지는 우리에게 또 다른 시간을 제안한다. 때문에 그의 작업에서 시간이라는 요소는 모든 관계항을 연결시키는 중요한 매개변수일 것이다.


 

강성은, Plastic waves 01, Oil on canvas, 97 x 130.3 cm, 2017
강성은, Night Fin of Mountain 5, 2011, Pencil on paper, 54 x 138 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