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Hanbum

Writing

아티스트 북: 픽션으로의 항해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시각예술 분야 결과자료집 2017 아르코 큐레이터스 리포트에 수록.

 

I. 들어가며

오늘날 미술의 이름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떠올려 보면, 시각 예술가들이 글을 쓰고 지면(혹은 화면)과 책을 만드는 일이 어엿하게 한 장면을 그려내고 있다. 역사적인 용어인 ‘아티스트 북’으로 이를 통칭할 수도 있겠지만, 이 말은 특정 현상을 드러낼 수는 있어도 텍스트-프린트-북으로 연쇄되는 매체의 예술적인 효과에 대해서는 아무런 부연도 해주지 못한다. 이에 본 연구가 집중적으로 다뤄보고자 하는 것은 바로 책이라는 매체가 수행 가능한 예술적 효과에 관한 것이며, 이를 당대에 중요하게 요청된다고 생각하는 ‘픽션’이라는 관점을 중심으로 읽어볼 것이다.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픽션’이란 것은 무엇인가? 오사와 마사치는 저서 불가능성의 시대: 현실로의 도피에서 현대사회에서 발견되는‘현실로의 도피’라는 독특한 현상을 얘기한다. 그에 따르면 현대인은 현재적인 감각만을 맹렬히 추구하고 소비하며, “폭력적이거나 격렬한 현재”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그러나 강렬한 공시성의 경험들로 삶의 주체를 점철시키는 이러한 방식은 일종의 회피 혹은 도피의 전략으로, 현재 우리가 당면한 세계의 ‘에피스테메’에 대한 파악을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다. 우리에겐 거리(distance)가 필요하다. 이와 대척하는 것으로서의 ‘픽션’은 현실의 범주 외부의 무한한 가능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퀑탱 메이야수가 말하는 “법칙에서 벗어나고, 권리상(en droit) 예측 불가능하고 모델화할 수 없는 궤적”이 잠재되어 있는 ‘바깥의 세계’와도 공명한다. 현실의 범주에서 벗어났을 때, 어떤 법칙도 주어지지 않을 때, 우리는 자유로운 내기에 도박을 걸어보는 것이 가능해진다. 어느 역사적 시기이건 픽션은 여러 형태(특히 종교와 예술)로 존재했었는데, 그 이유는 현실에서 요청되는 초월론(transcendental)적인 윤리를 실험할 수 있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픽션은 우리가 감각의 동물로 함몰되지 않게 해주는, 혹은 자본이라는 비가시적인 조류에 휩쓸려 조난당하지 않도록 해주는 길잡이다. 때문에 현재가 우리를 강하게 압박하는 만큼 예술은 더욱 견고하게 픽션의 영역에서 실험을 지속해야 한다. 하나의 작품은 무수한 유무형의 조건의 집합이며 이 조건이 작동함으로써 특정한 픽션의 상태가 창출된다고 보았을 때, 우리는 거기에 내재해 있는 조건의 배치를 살펴야 하고,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어떤 효과를 통해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책이라는 매체는 이와 같은 픽션을 어떻게 변주할까? 혹은 픽션을 위한 매체로 책은 어떠한 필연성을 가지는가? 언뜻, 책과 관련하여 픽션이 만들어지는 방법으로 소설을 떠올릴 수 있겠다. 그러나 소설은 오로지 문자의 조합으로 형성되는 내러티브로만 존재할 뿐이다. 시각 예술로서의 책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유연한 태도가 필요하다. 울리시스 카리온에게 있어서 책은 페이지의 순차, 즉 공간의 연속으로 이해되었으며, 텍스트는 이와는 독립적인 것이었다. 그에게 책은 읽기의 대상이 아니라 지각하고 경험하는 시공간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책이라는 개념의 외연을 확장시켜볼 수 있겠다. 즉 책이라는 예술적 매체는 지면(화면)의 순차로 만들어지는 고유한 시공간이며, 그 안에서 사건을 발생시키는 일시적인 상태를 만들어 낸다.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가? 내러티브에 대한 언어적인 이해와는 다른 방식으로 발생하는 이 사건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어떠한 체계와도 겹쳐지지 않는다. 다만 모종의 틈을 열어 새로운 움직임을 교통시킬 뿐이다. 특정한 사건을 일으키기 위해 개별적인 작업은 자신의 형식을 어떻게 구축하는가? 자신의 시공간을 어떠한 리듬으로 조율하는가? 바로 이것이 내가 아티스트 북이라는 이름의 바다에서 건져 올리고자 하는 몇몇의 예술적 실천이다.

II. 연구의 배경

본 연구의 배경으로는 크게 두 가지를 제안할 수 있다. 하나는 시각예술에서의 ‘책’이라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재고해보는 것이다. 책은 동시대의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제작품이 되었고, 매일매일 수도 없이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책은 아주 오래 전부터 확산과 보급에 있어서 강점을 지녔다는 점에서 중요한 매체였다. 동시대 시각예술의 영역에서 책이라는 것이 중요한 실천 도구로서 자리잡게 된 것은 분명 1960년대 이후 서구의 개념미술가들과 플럭서스 등 다양한 매체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일군의 작가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움직임의 가장 큰 원동력은 작품과 작품이 전시되는 미술관이 너무나도 신성시되고 그것의 공공적 성격이 극도로 제한받는다는 점 때문이었고, 예술을 위한 대안적 매체로서 책은 주목을 받게 된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미술의 영역에서 만들어지는 책은 작품 그 자체만큼이나 물신화되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서 단토가 예술의 종말에서 말하는 것처럼 현대 예술은 이제 담론적인 집합체로서만 존재할 뿐이기에, 책이라는 매체가 수행하는 기록과 보존, 그리고 텍스트를 이용한 의미화의 기능이 착취되고 있다는 점이 커 보인다. 이러한 상황의 문제점은 책의 진정한 예술적 효과와는 무관하다는 것인데, 즉 책 그 자체로서의 예술적 가능성보다는 작품의 복제된 정류장으로서만 책은 다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책의 예술적 효용과 효과라는 측면에서 무수히 많은 책을 구분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시각예술에서의 책이라는 것의 의미에 대해 재고해보기 위해 생각해보아야 할 다른 지점은 바로 온라인 웹의 페이지라는 새로운 가상의 공간이다. 퍼스널 컴퓨터를 비롯한 핸드폰, 태블릿, 프로젝션 등 무수히 많은 스크린 기반의 매체가 등장했고, 이러한 하드웨어적인 발전과 더불어 인터넷이라는 인터페이스는 물리적인 제약을 넘어 무한에 가까운 공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방금 전 언급한 유통, 보급과 확산이라는 측면에서 책보다 훨씬 강점을 지닌 매체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항간에서는 당연하게도 책의 종말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리며, 새로운 가능성으로서의 스크린 디바이스와 인터넷이 각광받는다. 이러한 변화된 매체적 환경에서 책에 대한 인식은 좀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단지 낱장의 재단된 종이의 제본 묶음이라는 물성으로 책을 인식하기보다는, ‘책’이라고 이를 수 있는 것의 기능적인 속성을 공유하는 전반적인 매체의 집합을 아울러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을 때, 동시대의 다양한 예술적 매체로서의 책을 새로이 정의 내려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책 그 자체보다는 책의 기능과 그 효과, 그리고 책을 이용하는 욕망이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범주를 그려봐야 한다.

본 연구의 목적 중 두 번째는, 앞선 논의에 따라 예술 실천의 매체로서의 책의 성격을 새롭게 규정해 보았을 때, 그렇다면 과연 그것을 중심에 둔 미술사를 쓰는 것이 가능한지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즉 엄연히 존재하지만 그것을 다룰 마땅한 관점이나 논점이 없었기에 담론이나 역사적 서술에서 배제된 책-작품으로 새로운 내러티브를 쓰기 위한 노력이다. 그리고 이 역사는 한국의 90년대 이후 미술을 향한다. 90년대 이후의 한국미술을 간략하게 형언한다면, 무수히 많은 파편적인 미학적 움직임들이 분출하고 다양한 태도와 형식이 발현된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와중에 몇몇의 작가들이 책을 만들기 시작했고, 짧은 시간 만에 책은 한국 미술의 풍경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물이 되었다. 책은 언제나 펼쳐지는 그 순간에만 존재한다는 경험되고 존재함을 확인하게 된다는 점에서 현재적이다. 즉 책은 현재적 시간만을 제공하는데, 그 대신 그것은 새로운 공간을 내어준다. 시간성이 소멸되고 현재적 시간만을 남긴 뒤 공간성을 강화시키는 것은 설치와 영상, 퍼포먼스와 같이 동시대 미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 뚜렷한 성격 중 하나일 것이다.

책이라는 매체가 중심이 되는 역사를 서술했을 때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 매체와 관련된 욕망과 더불어 그 매체를 통해 발생시키고자 한 예술적 효과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한국 동시대 미술의 포착하기 힘들 정도로 다종다양한 움직임을 묶어내 보고자 한다. 아티스트 북을 이미 중요한 예술적 매체로서 인식해 온 서구의 미술사에는 책의 역사를 서술한 다양한 깊이의 연구들이 존재하지만, 이러한 관점이나 방법론에 대한 한국에서의 접근은 전무하다. 이와 같은 역사 서술의 전반적인 특징은 주로 그들의 활동과 태도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룬다는 것이고, 작품 혹은 전시 위주로 판단되는 미적 가치에는 포섭되지 않는 움직임을 드러낸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동시대 미술을 책이라는 관점을 중심으로 서술했을 때 미처 논의되지 못했던 비평적 지점을, 고유의 미적 가치를 발견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III. 아티스트 북과 픽션

III-1. 아티스트 북의 개념과 역사

아티스트 북은 사실상 책이라는 더 상위의 개념에 종속된다는 점에서 책의 매체론에 영향을 받을 것이며, 이 용어가 포괄하는 범위가 상당히 모호면서도 광범위하다는 점에서 어쩌면 추상적이고 자의적인 개념에 가깝다. 그렇기에 먼저 서구에서 정립된 보편적으로 이해되는 아티스트 북이라는 용어를 둘러싼 개념과 그 역사에 대해서 살펴보자. 딕 히긴스는 인터미디어(intermedia)라는 용어로 퍼포먼스, 조각, 회화 등 거의 모든 예술적 매체를 아우르는 존재로 책을 규정하기도 했다. 프린티드 매터를 중심으로 활동한 예술가 루시 리파드는 아티스트북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대량 생산, 상대적으로 싼 값, 더 광범위한 대중으로의 접근. 모든 미술. 해설과 서문이 없을 것. 작가든 비평가든 작업의 일부가 아니었던 것은 없을 것.”1아티스트 북은 의심의 여지없이 20세기에 발전된 예술의 형식 중 하나다. 아티스트 북은 아방가르드와 실험적이고 독립적인 예술 활동에서는 여지없이 그 모습을 드러내 왔다. 이와 같은 예술 영역은 분명 전후 서구 미술의 작가, 이론과, 실천가, 비평가등을 통해 발전해 왔다.2 모든 다종다양한 관점들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으로 아티스트 북을 규정짓는 생각은, 요한나 드러커가 말하는 것처럼 “이미 존재하는 작품의 재생산이 아니라 예술 작품의 원본으로서 만들어진 것”이다. 즉 아티스트 북은 거의 언제나 형식으로서의 책이 지닌 의미와 구조에 대해서 자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3 그 자체로 주제적이고 미학적인 논점을 형식적인 것으로 통합시키는 것으로서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책에는 단행본뿐만 아니라 잡지, 인쇄물, 팜플릿, 포스터, 전단지 등의 광범위한 모든 책의 종류를 아우른다.

베른하트 셀라, 레오 핀다이젠, 아그네스 블라하는 ISBN이 없고, 종이로 인쇄되었으며, 최근에 만들어진 국제적인 유통망에서 구할 수 있는 1,800여권의 출판물을 모아 NO-ISBN: on self-publishing이라는 책을 펴낸다. 그들이 서문에서 밝히기를, 이렇게 모아진 책들은 다섯 가지 정도로 분류해볼 수 있다. 첫째, 개념미술의 유산으로서의 인쇄된 지면, 둘째, 물질적 특성에 매료됨, 셋째, 포스트-디지털 출판, 넷째, 정치적 매체로서의 No-ISBN, 그리고 책의 형태 그대로의 생존 등이다.4 이 다섯 가지의 분류는 그 자체로 예술적 실천으로서의 출판이 지니는 미학적 영역을 드러내 보여준다. 즉 대안적 공간으로서의 책, 고유한 물질적 경험으로서의 책, 동시대적 미디어 환경으로서의 책, 정치적 수행도구로서의 책, 콘텐츠 확산과 유통으로서의 책 등이다.

III-1-1 아티스트 북의 선구자들

개념적으로, 담론적으로 또 기술적으로 아티스트 북이 통용된 것은 20세기 후반이지만, 사실상 아티스트북의 실천은 20세기 초반의 아방가르드 운동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기욤 아폴리네르와 피에르 알베르 비로는 큐비즘의 맥락에서 책을 만들기도 했고, 초현실주의자들은 적극적으로 잡지를 출판하고 사진집을 제작했다. 특히 마리네티의 미래주의 선언을 비롯해 벨리미르 흘레브니코프, 나탈리아 곤차로바, 프란세스코 데페로 등 이탈리아 미래주의자들은 그들의 작업에 있어서 책을 비중 있게 다루었다. 일리아 다네비치의 Ledentu as Beacon(1923), 엘 리시츠키와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시의 For the Voice(1923)와 같은 러시아 아방가르드 또한 책을 통해 새로운 미학적 감수성을 위한 조형의 혁신성을 실험했다. 이 외에도 다다와 초현실주의 작가들은 특히 사진집이나 잡지를 통해 아티스트북의 진화에 크게 기여했다. 모홀리나지의 선구적인 책 Painting, Photography, Film』 이후 독일의 신사실주의 사진이 책으로 출판되기 시작했으며, 알베르트 렝거-파취의 Die Welt ist Schon은 단지 사진 작품의 모음집이 아니라 수록된 사진의 시퀀스를 중요하게 여긴 대표적인 예이다. 이 시기 역사적 아방가르드는 시각, 언어, 그래픽, 사진의 새로운 기준을 책이라는 결과물에 합성함으로써 책과 예술작품 제작의 관습을 파괴했다.4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 초반에는 책을 심도 있게 탐구한 작가들이 등장한다. 여기에는 덴마크, 벨기에, 네덜란드의 CoBra 그룹, 이시도르 이쥬 등 프랑스의 문자주의자들, 아롤도 드 캄포스와 아우구스토 등 브라질의 구체시인들 까지를 폭넓게 망라한다. 1950년대 후반에는 실험 음악, 퍼포먼스, 그리고 플럭서스의 작가들이 이 대열에 합류한다. 그리하여 1960년대 이후 현재 우리가 현대미술사라고 이해하는 문자주의, 플럭서스, 팝아트, 개념미술, 미니멀리즘, 여성예술운동, 포스트모더니즘 등의 사조는 대부분 책을 다루는 활동과 떼어놓을 수 없다. 세스 시겔롭은 1968년 그 자체로 일종의 전시라고 할 수 있는 제록스 북을 펴냄으로써 예술적 매체로서 책을 위치시키는 역사의 시작을 알렸다. 이후 그는 로렌스 바이너, 로버트 배리, 더그 휴블러, 조셉 코수스, 잔 디베츠 등등의 사람들과 아티스트북을 출판했다.

III-1-2 책의 물성을 이용하기

마이클 스노우의 Cover to Cover(1975)는 흑백의 사진이 수록된 책이다. 이 책은 마치 필름의 프레임이 이어져있듯 엄격하게 페이지의 시퀀스를 따른다. 스노우의 이 책은 책이라는 매체의 구조를 이용해 이미지를 탐구한 것이다. 레이몽 크노의 Cent mille milliards de poemes(1961)은 시집인데, 모든 페이지에 적힌 글이 한 줄마다 잘려져 있다. 그리하여 모든 문장은 독립적으로 읽히게 되고, 무수히 많은 문장의 조합이 가능한 시집이 된다. 이 외에도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책의 형태를 이용하여 이미지와 언어의 가능성에 탐구한 실천들이 있다. 단정한 네모의 형태로 책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여러 판형의 종이와 제본, 인쇄 기술이 적용된다.

III-1-3 유통을 통해 장소를 확장시키기

1963년, 에드 루샤는 Twentysix Gasoline Stations라는 작은 책을 만든다. 여기에는 로스앤젤레스와 오클라호마 사이의 주유소 사진 26개가 인쇄되어 있었다. 65년 아트포럼에 실린 인터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사용한 사진은 전혀 예술적이지 않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진은 미술만큼이나 죽어있다. 그것의 장소는 오직 상업적인 세계이며, 기술적이고 정보적인 목적만이 있다.” 이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책이라는 매체가 가진 특성이 예술의 맥락에서 어떻게 이용되는지 이다. 즉 책은 미술관이나 박물관과 같은 너무나도 예술적인 영역과 거리를 두며, 오히려 더 가까운 것은 그것이 유통되는 시장이고 상업적인 영역이라는 것이다. 세스 프라이스는 그의 에세이 확산에서 “마치 ~인 척”하는 예술에 대해서 얘기한다. 뒤샹의 레디메이드를 역사적 참조점으로 삼으며, 자연스럽게 경계를 넘고 구획을 비틀어 시스템을 교란시키는 실천에 대해서 말이다.5 그웬 앨런의 연구서 Artists’ Magazines을 보면 알 수 있듯이, 1960년대의 개념미술 작가들이 정기간행물을 예술 작품이 선보이는 새로운 장소로 여긴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이다.6 즉 작품이 유통되는 경로를 (순결한 화이트큐브가 아닌) 감염되어 있고 보다 대중적으로 파급되며 유통의 과정에서 변이가 쉽게 일어날 수 있는 문화적 형식을 예술적 전략으로 차용하는 것이다. 책이라는 매체는 시각적 조형이나 의미의 콘텐츠를 담을 수 있는 공간이면서도 대량생산 가능하고 쉽게 유통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예술 실천의 매체로 사용되어 왔다.

III-1-4 정치적 구호의 전달자

1960년대와 70년대의 아티스트 북은 당시의 정치 사회적 액티비즘의 분위기와 크게 관련된다. 저렴하고, 폐기할 수 있는 물성은 예술 작품의 비물질화와 과정에 대한 강조를 선언하는 것이었다. 독립출판은 하나의 대안의 형식이 되었고, 아티스트 북은 실험적인 형식의 맹아였다. 독립출판은 기존의 출판사나 상업적 매개자, 혹은 후원을 받아 제작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자기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생산해낸 것을 말한다. 여기서 독립은 주로 상업적인 이해관계나 상업적 속박으로부터의 독립을 암시하는데, 이 때문에 독립출판은 액티비스트 예술가의 활동과 연관되어 있다.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동기로 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에게 싼 인쇄물을 제작하여 보다 광범위한 독자들에게 작업을 접촉시키는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Paper Politics: Socially Engaged Printmaking Today는 스탠실 포스터부터 길거리 예술에 이르기까지 직접 손으로 제작한 프린트에 관한 전시이자 책이다. 공산품처럼 쉽게 제작되는 이미지가 도처에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인쇄물은 시대착오적인 것이지만, 바로 이러한 물성이 오늘날의 시각적 환경 속에서 유별나게 감지될 수 있다. 때문에 인쇄물은 여전히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효력을 지니는 전술을 고안할 수 있다.7

III-1-5 용어와 제도

아티스트 북이라는 용어는 1973년 3월 23일부터 4월 20일까지 필라델피아 무어예술대학교에서 다이안 반더립이 기획한 전시에서 제목(“Artists Book”)으로 등장한 이후 일반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전시에는 에드 루샤, 존 케이지, 스티브 라이히, 머스 커닝햄, 데이비드 호크니 등 수많은 작가들의 작업 250여점이 포함되었다. 이 용어의 철자는 다양했다. 무어예술대학교에서의 전시에서처럼 어포스트로피가 생략되기도 한다. 국회도서관은 1980년 이를 하나의 용어로 인정했으며, 이듬해 미국연방예술기금은 아티스트북을 만드는 것에 대한 기금을 처음으로 마련한다. 1970년대에는 아티스트 북을 위한 여러 기관들이 설립되었는데, Visual Studies Workshop, Nexus Press, the New York Center for the Book Arts, Pacific Center for the Book Arts, Printed matter, the Graphic Arts Press in the Woman’s Building, The Writers Center 등이 그것이다. 또한 예술대학이나 미술관, 도서관 등에서도 아티스트 북에 관한 장소가 속속 생겨났다. 바야흐로 1970년대는 아티스트 북이 번창한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8

이상에서 살펴보았듯, 역사적으로든 그 용법으로든 아티스트 북이라는 용어에는 단 하나의 결로 수렴되지 못하는 다양한 실천의 방식들이 존재한다. 책이라는 매체가 지닌 물성, 그 안에 담을 수 있는 콘텐츠, 그리고 유통의 방식이 각각 어떤 비율로 강조되어있느냐에 따라 개별적인 작품의 면면이 달라진다. 말하자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아티스트 북의 수만큼 그것을 정의하는 방식 또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런던의 첼시예술대학교에서 사서를 하고 1977년 뉴욕 모마의 도서관 디렉터로 부임한 클라이브 필봇은 1982년 아트포럼에 기고한 글 8Books, Bookworks, Book Objects, Artist’ Book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술의 맥락에 놓여있는 것 중 책을 닮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아티스트 북이라고 일컬어지는 혼란스러운 상황이다.”9 나는 이러한 혼란스러운 상황에 대해 비판적이기보다는 오히려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언어가 못다 포착하는 다양한 분화된 실천이 가능하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용어상의 문제를 정리하는 것보다 더 생산적인 것은 아마도 과연 왜 그러한 책이 그 시간과 장소에서 만들어졌느냐를 따져 묻는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앞서 말한 것처럼 책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차원의 문제에 대응하려는 의지의 산물로서 드러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아티스트 북은 분명 시대의 요청에 의해 발생하는 사물 중 하나이다.

때문에 아티스트 북 이라는 용어를 구체적인 하나의 대상을 지칭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책과 같은’ 것을 이용하는 욕망이나 그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미학적인 경험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관점에 있어서 요한나 드러커의 말은 곱씹을 만하다. 그는 그가 접했던 아티스트 북을 정의하려는 대부분의 시도는 너무 막연하거나(“예술가에 의해 만들어진 책”), 너무 구체적(“책은 한정판이 될 수 없다”)인 등 모두 오류가 있었다고 말하며, 아티스트 북은 모든 가능한 형식과 모든 가능한 책 만들기의 관습과 연관 있으며, 미술과 문학의 “~주의”와도 연관되며, 쉽게 폐기되든 영구히 아카이브 되든 상관없이 모든 제작품이 그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아티스트 북을 규정하는 구체적인 기준은 없으나 아티스트 북이 아닌, 혹은 그것이 아티스트 북으로 구별되는 기준은 무수히 많다고 말한다. 즉 아티스트 북은 광범위한 예술적 행위의 층위를 모두 포괄하는 것이다. 아티스트 북은 매우 드문 장르이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은 그 매체나 형식을 규정하고 제한하는 경계가 거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아티스트 북을 예술적 실천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책’이라는 물성의 형상을 지워야 하며, 책을 둘러싼 욕망, 기능, 경험의 전반적인 특이성으로 이목을 집중시켜야 한다.

III-2. 확장된 영역에서의 책, 포스트-디지털 프린트

먼저 책이라는 것의 동시대적 범주를 짚고 넘어가자. 그리고 책을 그 물성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 왜 필연적으로 이해되어야 할 일인지를 생각해보자. 디지털 환경이 세계의 거의 모든 측면에 틈입해있고, 가상이 실제를 압도하고 있는 시대에서 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크레에그 모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책이 무엇이고, 그것이 어떻게 생산되는지에 대해 완전히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책이 그것이 되는 제작의 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접근을 재고해야 한다. 제작, 소비, 그리고 그것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들을 말이다.”10 우리는 서점에 가서 단행본을 사 보는 대신 전자책을 보고, 신문이 아닌 스마트폰의 액정으로 뉴스를 접한다. 자연스럽게 인쇄, 종이의 죽음에 대한 선언이 나온지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책적인 것’의 경험을 실제 물리적인 제본된 책을 통해서보다 스크린을 통해서 더 많이 겪고 있다. 분명 책을 논의함에 있어서 이와 같은 디지털 기반의 웹의 공간을 제외시킨다면 그것을 오래된 미디어에 대한 향수 혹은 페티시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점이 있다. 앞선 이 말이 책의 장소가 종이에서 스크린으로, 잉크활자에서 디지털 포맷으로 바뀌었다는 말은 아니다. 혹은 책의 자리가 종이에서 스크린으로 확장되었다는 말도 아니다. 오히려 디지털의 등장은 디지털과 책 모두에게 상호적인 변화 작용을 촉진한다. 즉 디지털은 책의 속성을 물려 받고, 책은 점점 더 디지털적인 속성을 차용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혼종적인 인쇄의 시대를 알레산드로 루도비코는 “포스트-디지털 프린트”의 시대라고 명명한다. 루도비코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가는 일방통행로는 없다. 쌍방향의 이행이 있을 뿐이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11 책과 인쇄물에 대한 정의와 그 범주는 끊임없이 변화할 수밖에 없다. 특히 그 기능에 대해서 얘기할 때는 더더욱 그러하다.

아마존의 최고 경영자 제프 베조스는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초창기 웹의 시작과 함께 짧은 형식의 독서가 디지털화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시간 독서는 그렇지 않죠. 만약 당신이 이것을 하려고 한다면 당신은 여러 측면에서 책만큼 훌륭해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아마존이 만든 전자책 리더기 킨들은 사실상 “책다움의 아우라를 투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 장치에 가깝다.12 전자책은 책의 단점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공간적인 문제를 해결하면서 좀 더 진보된 매체임을 상기시키지만, 실상은 종이책이 가진 인터페이스의 역능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많은 수의 출판 행위가 블로그와 같은 웹페이지에서의 활동으로 대체되고 있다. 즉 디지털 기반의 웹 페이지와 인쇄물은 서로의 인터페이스를 참조하고 흡수하며 혼성적인 존재로 변화해 간다. 루도비코에 따르면, 디지털은 양적인 정보와 콘텐츠, 아날로그는 가용성과 인터페이스를 위한 패러다임이다. 인쇄물을 얘기할 때, 이 매체적 성격의 변화를 얘기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명백하다. 그것은 콘텐츠의 경험이 매체 그 자체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영상과 음악의 예를 생각해보면 비교적 이 의미가 명확하다. 비디오 테이프나 DVD 등은 영상을 담는 용기일 뿐인데, 콘텐츠는 궁극적으로 언제나 화면 위에서만 드러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LP나 CD 또한 단지 매개를 위한 용기일 뿐이며 청음은 스피커 혹은 이어폰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그러나 인쇄 매체는 무언가를 담는 용기이자 보이는 것 자체이다. 때문에 인쇄 매체의 변화는 결과적으로 모든 물리적인 습관, 의식 그리고 관련 문화를 포함한 사람들의 경험을 변화시킨다.13 때문에 인쇄 매체에 접근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기능하느냐에 대한 질문이며, 그 기능에 대한 잠재적 소비자, 새로운 습관과 관습을 수용하는 사회적 맥락이 포함되어야 한다.

III-3. 울리세스 카리온의 ‘북웍스’

책에 관한 고유하고 독특한 경험을 강조함으로써, 책이 예술적인 매체로서 어떠한 가능성 혹은 특이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사유한 작가로는 대표적으로 울리세스 카리온을 꼽을 수 있다. 그는 1941년 멕시코 산안드레아스 툭스툴라에서 태어나 멕시코국립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한 후 파리, 런던 등지에서 학업을 이어나간 후 1972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정착한다. 그 해 카리온은 암스테르담 최초의 아티스트 스페이스 ‘인아웃 센터(In-Out Center)를 설립하여 퍼포먼스와 비디오아트, 오디오 아트, 시각시, 개념미술, 아티스트 북 등 당시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한 예술 운동과 개념을 소개했다. 그는 잡지 이퍼메라의 편집자이기도 했으며 특히 1975년부터 1978년까지는 예술가들이 만든 책과 다양한 형식의 문서를 전시하고 판매하는 서점이자 갤러리 ’아더 북스 앤 소(Other Books and So)’를 운영하기도 하는데, 이 서점은 1980년에 아더 북스 앤 소 아카이브로 바뀐다. 그의 여러활동과 더불어, 본 연구의 주제와 관련해 눈여겨 볼 수 있는 것은 책을 만드는 새로운 예술(1975)과 북웍스 리비지티즈(1979)이다. 우리는 책에 관한 울리시스 카리온의 깊은 통찰을 함께 살펴 볼 필요가 있다.

III-3-1. 책을 만드는 새로운 예술14

책이란 무엇인가
책은 공간들의 순차이다.
이 각각의 공간들은 서로 다른 순간에 인식되므로, 책은 순간의 순차이기도 하다.
책은 단어의 그릇도, 단어의 가방도, 단어의 전달자도 아니다.
쓰여진 언어는 공간으로 확장되는 기호의 순차이다. 이것을 읽는 것은 시간 안에서 발생한다.
책은 시공간의 순차이다.

 

카리온이 책을 만드는 새로운 예술의 가장 처음부터 강조하는 것은, 책이란 것은 공간의 연속이라는 점이다. 그 안에 적혀 있는 단어의 매개체로서의 책이라는 통상적인 관념과는 확연히 다른 지점이다. 이 맥락에서 카리온은 ‘저자’ 와 ‘책을 만드는 사람’을 오래된 예술과 새로운 예술로 구분하고, 전자는 텍스트를 쓰는 사람으로, 후자는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지점에서 분화되는지를 명확히 구분한다.

 

책은 아마도 우연히 텍스트의 그릇이 되었을 것이다. 텍스트의 구조는 책과 상관이 없다. 여기서 말하는 책은 서점과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말한다.
그리고 책은 자율적이고 자기-충족적인 형식으로도 존재할 수 있는데, 형식을 강조하는 텍스트나 그 형식의 유기체적 부분인 텍스트를 포함하면서 말이다. 여기서 책을 만드는 새로운 예술이 시작된다.

 

여기서 책의 ‘자율적이고 자기-충족적인 형식’이라는 말은 가장 의미심장해보인다. 결국 책이 자율성을 획득하는 자기-충족적인 형식이란 공간의 순차가 가져오는 시공간적 감각 경험임을 알 수 있는데, 여기서 텍스트의 문제는 별개로 치부된다. 다만 ‘형식을 강조하는 텍스트나 책의 유기체적 부분으로서의 텍스트’정도는 포함할 수 있는데, 이는 텍스트가 책의 시공간적 경험에 긴밀히 연동될 때만 가능하다는 전제 조건을 뜻한다.

 

책을 만드는 것은 언어학적이거나 혹은 다른 어떤 것인 기호들의 평행한 순차를 창조함으로써 이상적인 시공간의 순차를 실현하는 것이다.

 

특히 책의 공간에 관한 사유에서는 그 공간이 지닌 기능적인 측면에 대한 통찰이 담겨있다.

책은 공간에 있는 부피이다.
그것은 단어의 지금 여기를 통해 발생하는 의사소통의 진정한 토대이다.
공간은 외재적 주체성에 존재한다.
만약 두 개의 주체가 공간 안에서 의사소통 한다면, 공간은 이 의사소통의 기본적인 요소가 된다. 공간은 이 의사소통을 변형시킨다. 공간은 이러한 의사소통에 자신만의 법칙들을 부과한다.
새로운 예술은 책이 외적 현실에 물체로 존재한다는 것을, 지각, 실존, 교환, 소비, 사용 등의 구체적인 조건에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외적 현실에 물체로 존재하며 구체적인 조건에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바는, 앞장에서 루도비코가 언급했듯 “인쇄매체의 변화는 모든 물리적인 습관, 의식 그리고 관련 문화를 포함한 사람들의 경험을 변화시킨다”라는 사실과 연관되는데, 즉 책의 경험을 형성하나는 조건은 비가시적인 경험의 체계를 직조하고, 그것의 독자 혹은 사용자는 그 체계 안에서 시공간의 경험을 성사시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통찰은 단연 전시장에서 미술 작품을 관람하는 것과 깊게 연관된다. 즉 공간적 경험으로서의 책은 단어의 현재적 경험을 조직함으로써 의사소통을 매개하는 기능적인 것으로 전환된다는 것이며, 그러한 기능적 효과를 노리는 것이 ‘새로운 예술’의 진정한 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의 미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여기서 상정하는 책의 독자는 텍스트라는 환영을 읽고 이해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책을 경험하고 감각하는 주체로 인정된다. 그렇기에 카리온은 책이 지닌 시공간의 순차적 경험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텍스트의 내러티브인 소설을 오래된 예술의 전형으로 꼽는 것이다. 중요한 차이는 그것이 하나의 방식으로 독해되느냐, 모든 개별적인 외재적 주체에게 다른 독해를 요구하느냐이다. 그리하여 카리온은 새로운 예술로서의 책을 이해하기 위해 ‘구조’를 강조한다.

 

**어느 누구 혹은 그 어떤 것도 혼자 존재할 수 없다. 모든 것은 구조의 요소이다.
모든 구조는 차례로 다른 구조의 요소가 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의 구조이다.
어떤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부분이 어떤 것의 구조인지, 그리고/혹은 어떤 것을 구성하는 구조의 요소인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책은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마 그 중의 하나가 텍스트일 것이다.
텍스트는 책의 부분인데 책에서 가장 필수적이거나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오래된 예술을 읽기 위해서는 알파벳을 아는 것으로 충분하다.
새로운 예술을 읽기 위해서는 책을 구조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 요소들과 그들의 기능을 이해해야 한다.

오래된 예술의 책을 이해하고 즐기기 위해서는 그것을 통독해야 한다.
새로운 예술에서 당신은 책 전체를 읽을 필요가 없다.
당신이 전체 책의 구조를 이해하는 바로 그 순간 읽기를 멈출 수도 있다.**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통찰은, ‘전체 책의 구조를 이해하는 바로 그 순간 읽기를 멈출 수도 있다’라고 단언한 지점이다. 책을 구조로 이해한다는 점이나, 그 구조를 이해하는 순간 전체적인 미학적 경험의 한 순간으로 올라선다는 점은 책을 ‘건축적인 것’으로 생각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의 건축은 그것이 어떻게 설계되었고 구축되었는지의 의미라기보다는 그것의 경험적 측면에 대한 사유라고 봐야 한다. 이에 관해서는 정신분산과 몰입이라는 주제를 논하며 건축이라는 예술 형식의 수용 방식에 대해 얘기하는 벤야민의 말을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건축물의 수용은 두 가지 측면, 즉 사용과 지각, 더 정확히 말하면 촉각과 시각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이러한 수용방식은 우리가 이를테면 관광객들이 어떤 유명한 건물 앞에서 주의력을 집중하여 그 건물을 수용하는 식으로 상상하면 전혀 파악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시각적인 면이 갖는 관조에 해당하는 것이 촉각적인 면에는 없기 때문이다. 촉각적인 수용은 주의력의 집중을 통해서라기보다는 습관(Gewohnheit)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건축에서는 심지어 습관이 시각적 수용을 규정하기도 한다. 시각적 수용 역시 긴장된 관찰 속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무심코 주목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처럼 건축물을 통해 형성되는 수용방법은 특정한 상황에서는 규범적 가치를 갖게 되는데, 그 이유는 역사의 전환기에 인간의 지각기관에 부여된 과제는 단순히 시각, 다시 말해 관조를 통해서는 전혀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과제는 촉각적 수용의 주도하에, 즉 습관을 통해 점차적으로 극복된다.15

결국 책을 만드는 새로운 예술에서 카리온이 주장하는 것은, ‘책적인 것’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능이란, ‘시공간의 순차’를 통해 환기되는 감각적 지각의 상태이다.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감각하고 지각할 수 있을 것 인가는 책이 어떻게 구조화되어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결국은 카리온이 말하는 책의 진정한 예술적 효과는, 공간의 순차를 창조함으로써만 발생되는 새로운 의사소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것은 매우 평등하고 이상주의적인 지식생산의 모델이다. 그는 이 글의 마지막을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맺는다.

 

새로운 예술은 모든 사람들에게 기호의 시스템과 기호를 이해하고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를 호소한다.

III-3-2. 북웍스 리비지티드

1979년에 쓴 에세이 북웍스 리비지티드는 로체스터에서 열렸던 비주얼 스터디즈 워크숍(Visual Studies Workshop)의 아티스트 북 컨퍼런스에서 처음 발표되었고, 그의 두 번째 생각들(Second Thoughts)에 포함되어 있다. 이 글은 앞서 살펴보았던 책을 만드는 새로운 예술의 맥락에서, 책의 고유한 예술적 기능이었던 공간의 순차라는 것이 무엇이며 다른 여타의 매체들과 어떻게 구분되는지를 정교하게 분석한 글이다. 1번부터 29번까지의 번호로 이어지는 이 글은, 한편으로는 아티스트 북이라고 통칭되는 불분명한 영역과 예술적 효과를 지닌 책을 명확히 구분하는 데 기여한다. 그리고 카리온은 그것을 ‘북웍스’라고 명명한다. 달리 말하면, 책이 작품이 될 수 있다면, 그 조건은 무엇인지에 대해 사유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카리온은 이 글에서 먼저 ‘책이 일관된 연속적 페이지’라는 사실에서부터 시작하겠다라고 밝힌다. 그에 따르면 “(2)16시각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책의 페이지는 상호교환 가능하다. 페이지들은 모두 엇비슷하게 보인다. 직사각형 모양의 빈 프레임을 가졌으며 중간에 문단으로 단어들이 정렬되어 있는 구조이다.” 이에 비하면 신의 페이지는 상당히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데, “(3)너저분하며 좀 더 움직임이 크고 활기가 있다. 당신은 페이지의 여러 지점에서 읽기를 시작할 수 있다. 모든 칼럼들은 서로 다른 사람들에 의해 쓰여질 수 있다. 텍스트들은 다양한 타입으로 인쇄될 수 있으며, 그림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여기서 카리온은 책의 페이지가 전 입체파 회화와, 신문의 페이지가 입체파 회화와 같은 방식의 읽기를 요구한다는 흥미로운 견해를 제시한다.

다음으로 카리온은 만약 페이지가 연속된다면 어떠한지 질문한다. 페이지의 순차로 드러나는 것이 책이며(6), 책이 언어적인 것이라고 했을 때 시각적인 것의 페이지의 순차는 필름과 비디오임을 이른다(7). 순차적이라는 사실은 곧 이러한 매체가 시간을 요구함을 뜻한다(8). 한편 언어적인 것의 편에는 사전과 음성 언어가 위치할 수 있는데, 이에 상응하는 시각적인 것은 각각 퍼포머스와 사진이다. 사진은 공간적이고, 퍼포먼스는 “(12)시간과 공간적 조건들 안에서 벌어지는 순차적인 사건이다.” 이처럼 이 글의 전반부는 책의 페이지라는 단순한 관찰에서 시작하여 다양한 예술의 형식들을 언어적/시각적, 공간적/공간-시간적 기준으로 재배열한다. 달리 말하면 이러한 분석은 책이 기존에 통용되는 예술적 매체의 위상을 획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16) 책이 미학적인 가장이나 함의를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소통을 위해 이런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이것이 왜 이런 첫 번째 책들이 의도적으로 일반 책처럼 보이도록 했는지에 대한 이유이다. 예술적인 목적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는 책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카리온은 자신이 ‘아티스트 북’이라는 용어 대신 ‘북웍스’라는 용어를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서 밝히는데, 그것은 “(19)예술가들의 전유로부터 책을 자유롭게 하고 동시에 형식이나 자율적인 작품으로 강조하는 것이다. 같은 이유에서 ”아티스트 북“이라는 용어를 예술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모든 책을 일컫는 데 사용한다. 도록이나 자서전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그리고 북웍스의 중요한 측면 중 하나가 바로 메시지와 시각적 외형의 지각에서 발생하는 “(22)리듬”임을 주장한다. “(24)북웍스는 페이지의 순차적인 일치인 책의 형식이 작품의 고유함인 읽기의 조건을 결정짓는 책이다.” 이를 통해 도출할 수 있는 카리온의 통찰은, 책이라는 것이 발생시킬 수 있는 고유한 경험을 조건화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북웍스의 척도라는 것이다. 우리가 카리온의 사유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결국 책의 예술적 기능에 관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III-4. 아티스트 텍스트

카리온은 책의 진정한 예술적인 측면은 책이라는 것 자체의 경험이며 그 안에 담긴 텍스트와는 관련이 없음을 역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수많은 시각 예술가들이 글을 썼다. 그것은 일기일 수도 있고, 작업에 대한 에세이일 수도 있으며, 선언문일 수도 있다. social medium: artists writing, 2000-2015를 보면 알 수 있듯 예술가들이 쓰는 글의 종류는 다양하게 나뉘어질 수 있다.17 그 중에서도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의 마지막 챕터이기도 한 ‘예술로서의 글쓰기’이다. 즉 예술적인 작업 그 자체로서의 글쓰기 혹은 텍스트에 관한 것이다. 카리온의 지적처럼, 텍스트는 그 자체로 책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앞서 살펴본 포스트-디지털 프린트의 관점에서라면, 바로 그러한 유령적인 텍스트가 책의 경험을 역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말하자면 텍스트가 책의 조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책의 ‘예술로서의 글쓰기’ 챕터에는 안드레아 프레이저, 버나디트 코포레이션, 장영혜중공업, 칼리 스푸너, 카트린 팔머 등을 비롯해 총 12편의 글이 발췌, 수록되어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들 작가들의 대부분이 대부분 영상이나 퍼포먼스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장영혜중공업의 경우 그들의 텍스트는 영상으로, 그것도 웹에서 감상하게끔 설정되어 있다. 텍스트의 유령성은, 카리온이 활동했던 시절과는 달리 보다 다양한 미디어의 사용에 친연성을 지닌 동시대의 환경에서 더욱 분화되고 창발하는 것이다.

보여주기 방식 뿐 아니라, 한편으로 또한 흥미로운 것은 시각 예술가들이 쓰는 소설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는 내러티브 픽션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전통적으로 내러티브 픽션을 쓰는 이들은 문학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소설가들이라는 점을 떠올려보면 시각예술가들이 쓰는 소설이라는 것의 특이점이 어디서 발생하는지 사뭇 궁금해진다. 문학과 시각예술의 관계에 대해서는 연구가 많이 되었지만, 소설 그 자체에 대해서는 논의되지 못했던 바가 크다. 데이비드 마로토는 그가 편집을 담당한 책 Artist Novels에서, 시각예술의 매체로서의 소설에 대해서 논의하는데, 그에 따르면 이는 상당히 동시대적인 현상이다.

마로토가 밝히길, 최근 10여년 사이에 급증한 시각 예술가들의 내러티브 픽션이 특징적인 것은 그것이 단지 지면 안에만 머무르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그들이 쓰는 내러티브는 자기 자신의 전체적인 예술적 실천으로 통합되는 한 부분으로 존재한다. 설치나 조각, 퍼포먼스, 영상을 비롯해 다양한 매체를 가로지르는 와중 텍스트로 적힌 내러티브는 다른 예술적 실천을 보완한다. 예를 들어 듀오로 활동하는 골딩+세네비의 소설 Headless는 스턴버그에서 출판된 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소설은 설치, 퍼포먼스, 비디오와 다른 간학제적 작업이 포함된 광범위한 프로젝트의 가장 주된 작업 중 하나다. 골딩과 세네비는 글쓰기의 과정을 프로젝트를 활성화시키는 것으로 작동시키는데, 매 챕터가 발표될 때마다 그와 관련된 공공 프로그램이 조직된다. 그 행사에서 무엇이 일어났는지가, 다음 챕터에서 허구화되어 쓰여지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참여자는 소설의 등장인물이 된다.18 내러티브 픽션은 복잡한 내용을 접근 가능한 형식으로 전달할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시각 예술가들이 쓰는 소설은 결국 예술 작품과 관객을 매개시키는 방법으로 기능할 수 있다. 물론 책이 전시장보다 훨씬 급진적인 유통이 가능하다는 점에 더해서 말이다.

III-5. 예술적 실천으로서의 출판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주장하고 싶은 것 중 하나는, 이제 예술적 실천으로서 책과 관련된 논의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단지 ‘책’ 오브제 자체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살펴 본 대로 첫째, 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지면, 장소는 온라인과 웹, 그리고 다종다양한 디지털 미디어 환경의 영역으로 흡수되었고 책의 성격 또한 계속해서 변하고 있다는 점, 둘째, 카리온의 통찰처럼 진정한 책적인 것은 연속된 페이지에 대한 경험, 즉 책을 통해 가능한 시공간적 경험이라는 점, 셋째, 동시대 시각예술에서 생산되는 내러티브 픽션이 그러한 것처럼, 책은 전반적인 예술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서 제작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점 때문이다. 때문에, 이제 중요한 것은 ‘책’이라는 용어보다는 이와 같은 전반적인 특징적인 변화의 상태를 아우를 수 있는 ‘출판(publishing)’으로의 접근이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을 잘 드러내 줄 수 있는 것은, 2016년 스턴버그 프레스에서 출판된 Publishing as Artistic Practice이다. 이 책이 제목부터 흥미로운 이유는, 책Book이 아니라 출판Publishing을 예술적 실천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책이라는 매체를 둘러싼 예술 실천을 살피는 데 있어서 그 물질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며, 책을 둘러싼 행위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출판’이라는 용어가 포괄하는 전반적인 매체와 제작의 시스템까지를 아울러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지니는 핵심적인 문제의식이 바로 이것이다. 여전히 책은 많이 만들어지고 있고 오히려 책을 둘러싼 행위주체들은 다양해지고 그 수도 늘어났다.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 예술적 실천으로서의 책에 대한 논의는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아티스트 북에 대한 고민 또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즉 매체의 문제에서 실천의 문제로, 책에서 출판으로의 이행은 동시대의 예술 실천을 이해하는 중요한 관점이다.19 또한 동시대의 예술이 하나의 매체나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 것처럼, 전반적인 연관성을 동시에 드러내 줄 수 있는 접근방법이 필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아주 오래되고 진부한 매체인 책은,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광범위한 영역을 가로지르며 아우를 수 있는 문이 된다.

안토니 르페브르는 예술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출판 기관은 대체적으로 전통적인 예술계의 요구에 대해 거부해 왔기에, 예술가 출판은 대안적 예술 실천으로서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여기서 출판이라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의미를 생성하기 위한 중요한 방식이었고, 또한 스튜디오에서 창조적인 작품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아닌 소통과 공유의 과정에 대한 추구였기 때문이다.20 60년대 이후 생겨난 많은 수의 아티스트-런 스페이가 집중적으로 출판 활동을 지지하고 직접 수행했으며, 나아가 아카이브를 구축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대표적으로는 뉴욕의 아트 메트로폴과 프린티드 매터, 프랭클린 퍼니스, 샌프란시스코의 라마멜/아트콤, 부다페스트의 아트풀, 이탈리아 피렌체의 조나 등을 들 수 있겠다). 출판은 제작과 깊은 관련을 맺는다. 여기서의 제작은 단순히 책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르페브르는 매튜 스태들러의 말을 인용한다. “출판은 공공을 창조하는 일이다.” 이 말은 책을 둘러싼 예술 실천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매개가 되는 감각적 경험과 소통의 미학이라는 것을 뜻한다.

III-6. 픽션을 조직하기

이제까지의 논의를 통해 책이 진정으로 수행하는 중요한 미학적 기능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픽션을 조직하기 위한 시도’라고 제안한다. 역사적으로 시각 예술가들이 책을 제작하는데 열중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대안적 실천을 위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었음을 상기해보자. 이 욕망 혹은 의지는 결국 기존의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구현해내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것이 실제적으로 기능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대체적으로 세 가지 정도의 픽션의 종류가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 책의 특질, 즉 책적인 것의 경험을 통한 감각적 픽션의 생성이다. 즉 카리온의 말처럼, 책의 시공간적인 순차에서 발생하는 리듬이 관객에게 제안하는 지각의 형태로서의 픽션이다. 둘째, 대안적 내러티브 쓰기이다. 소설은 일정한 형식 안에서 자유로운 구성을 통해 그 안에 하나의 세계관을 설정하고 캐릭터를 교통시킬 수 있다. 내러티브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결국은 구체적인 요소들을 배치함으로써 의미를 발생시키기 때문인데, 그 배치의 자율도가 높기 때문에 상당히 복잡한 문제를 드러내는 데 있어서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다. 특히 동시대의 시각예술에서 쓰여지는 소설은 그 ‘일정한 형식’이라는 것의 제약이 어느 정도는 파괴되고 있는데, 즉 설치나 퍼포먼스, 영상, 그리고 관객이 함께하는 프로그램 등을 통해서 내러티브의 역할은 보다 매개적인 것이 된다. 셋째, 공동체를 조직하는 것이다. 책의 중요한 본성 중 하나는 매개를 한다는 것이다. 책은 그 자체로 제작자를 매개하기도 하고, 그것과 읽는 독자를 매개하기도 한다. 책이 유통되는 비가시적인 세계는 그 유통의 경로를 따라 하나의 가상의 공동체가 형성된다. 책이 만드는 허구적인 공동체는, 실제로 거주민들이 모여 생활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일시적이고 개념적인 공동체에 가까우며, 책을 경유하지 않고는 접속 불가능한 공동체다. 그것이 어떤 공동체가 될 것인가는 전적으로 책의 내용과 형식에 따라 달라진다. 서문에서 논의한 것처럼, 현재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사회는 픽션이 없는 사회다. 이는 ‘비현실적인’ 사실들이 끊임없이 보도되는 현실의 모습과는 다소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번 따져보자. 우리는 이제 진정으로 비가시적인 어떤 것을 진지하게 믿을 수 있는가? 신을, 외계인을, 도깨비불은 현대의 문명에서는 구성될 수 없는 허구다. 우리는 우리의 신경을 자극하는 감각적인 경험 이외에는 더 이상 다른 어떠한 저편의 세계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허구는 우리가 사는 세계의 윤리를 가늠해볼 수 있는 지표이다. 허구는 지금 우리에게 강력하게 요청되는 것이고, 책은 그 허구를 조직할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이다.

IV. 한국의 아티스트북, 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예술적 매체/실천으로서의 책/출판을 논의함에 있어서 주로 서구의 역사적 사례와 논의를 빌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결국 출판에 있어서는 그 장소의 문제가 너무나도 중요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책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차원의 문제에 대응하려는 의지의 산물로서 드러나는 경우가 많으며 아티스트 북 또한 그것이 요청된 맥락이 분명하다. 출판의 의지는 결국 그 시간과 장소에서 결핍된, 혹은 새로이 구성되어야 할 픽션을 향한 것이기 때문에, 담론적인 것일 수 없고 개별적인 특수성에서 논의가 촉구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아티스트 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볼 수 있을까? 과연 그것은 무엇을 요청하고 있으며 무엇을 반영하는 것일까?

90년대 한국 미술에서의 포스트 모더니즘 담론이 어떻게 굴절되어 수용되었는지에 대해 추적한 문혜진의 연구서 90년대 한국 미술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언급이 나온다. “여기에 소그룹 운동과는 무관하게 개별적으로 자기 세계를 모색한 개인의 부상도 주목할 만 하다. 거대 담론이 무너지면서 갈수록 거세진 개별화의 물결은 스스로의 문제의식에 충실했던 작가들이 각자의 세계를 보다 공고히 하는 데 관심을 돌리게 만들었다.”21 한국미술의 역사에서, 집단적이고 담론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한 개인이 자기 스스로의 미학적 문제에 천착하여 자신만의 방법론을 세우려고 고군분투하는 움직임이 드러난 시기가 바로 90년대라고 볼 수 있다. 90년대 초반의 미술을 논의할 때, 매체라는 용어의 사용이 두드러졌다는 것은 특징적이다. 그러나 소위 신세대 미술로 대표되는 젊은 작가들의 미술이 시대의 미감을 드러낸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매체를 ‘어떠한 미감을 자아내는 질료와 양식’정도로 편협하게 이해하는 것이었으며, 미비연으로 대표되는 현실주의는 변모한 시대상황에서 현실체제에 ‘비판적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매체’라는 프레임에 경도되었다. 즉 여기서의 매체는 medium이라기 보다는 media에 가까웠다. 그러나 진정 의미 있는 매체 중심의 논의는, 전에 없던 방식으로 한 매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거나 그 사용 방법의 문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22 즉 특정한 하나의 매체를 예술적 실천의 수단으로 수렴시켰다는 것은 중요한 시대적 징후의 반영이고 예술적 욕망의 발현 창구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책’이라는 것이 진정한 예술적 매체로 등장하는 시기가 바로 90년대라고 볼 수 있다. 90년대 이후 한국의 미술에서 빈번히 등장하기 시작했음 때문이 아니라, 그 책의 사용 방식에 특이점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즉 “각자의 세계를 보다 공고히” 하기 위한 유효한 매체, 대안적 장소와 미학적 표현 경로로서의 책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IV-1. 변신술, 김범

그 중요한 시작은 김범이 1996년 제작한 변신술이다. 이 책은 일본 도쿄의 시세이도 갤러리에서의 전시 Promenade in Asia를 위해 만든 것으로,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영어로 씌어졌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것은 사무소(SAMUSO)에서 발행된 세 번째 판본이다.23 이 책의 표지는 별다른 디자인이 첨가되어 있지 않고 흰색 두꺼운 모조지로 제작되었으며, 앞면에는 “변신술 The Art of Transforming”이라는 제목과 작가의 이름이 국영문으로 병기되어 있다. 페이지 하단에는 동물의 하악으로 보이는 뼈의 드로잉이 그려져 있고, 표지 뒷면은 동일하게 중국어와 일본어로 제목과 이름이 써져 있다. 뒷면의 드로잉은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발의 뼈이다.

내지는 전체 30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페이지가 적혀 있지는 않다. 이 책의 흥미로운 구성은 4개의 언어를 페이지 안에서 교차하는 방식이다. 왼편에서는 국/영문이 교차하며 시작하고, 오른쪽 편에서부터는 중/일문이 시작한다. 교차의 방식 또한 재밌는데, 국문이 나오고 영문이 나온 다음, 다시 국문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영문이 나온 뒤 국문이 나오는 것이다. 말하자면 국-영-영-국-국-영… 과 같은 식이다. 오른편의 중-일문 또한 마찬가지다. 한 페이지의 뒷 페이지에는 아무것도 쓰이지 않고 건너 뛴 다음,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데, 양면 모두 인쇄된 페이지가 발생하는 이유는 왼편에서 국/영문이, 오른편에서 중/일문이 각각 순차적으로 진행되어 오면서 마주치는 부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페이지는 책의 가운데 부분 총 36페이지 18장에 해당한다. 결국 이 책은 텍스트의 내용이 아니라 언어의 조형이 다르다는 시각적인 구분을 통해서 공간적으로 복잡하게 뒤얽히도록 만들어졌는데, 그 공간성을 강화하는 것은 종이의 재질이다. 보통의 텍스트 책이 펄럭거릴 정도로 얇은 종이로 만들어진 반면, 이 책은 쉽게 구겨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고 두꺼운 종이로 만들어져있다. 제본 또한 이상할 정도로 단단하게 되어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도 않으며, 과도한 힘을 주어 의도적으로 펼쳐 놓지 않는 이상 좌우 페이지가 한 평면으로 열리는 경우는 없다. 그리고 무리하게 책을 펼친다면 이 책의 제본은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상태로 벌어진다. 이처럼 이 책은 1차적으로 책의 페이지와 그 물성을 재치 있게 이용하여 책에 대한 경험을 생경하게 만들고 있다. 김범은 한 인터뷰에서, “적합한 방식이나 재료를 사용하는 작업은 때때로 작품이 이미지라기보다는 현실 속에서 하나의 실물이 되게끔 하려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럿이 얼마나 실재적인 성격을 갖게 되는지는 작품마다 다르겠지만. 이런 이유에서 주로 작업의 내용에 따라 형식이 정해진다.”24

이 책의 내용은 제목이 뜻하는 바대로 각종 변신술에 대한 지침을 담고 있다. “~이 되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총 8가지의 변신술이 적혀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1. 나무가 되는 법, 2. 문이 되는 법, 3. 풀이 되는 법, 4. 바위가 되는 법, 5. 냇물이 되는 법, 6. 사다리가 되는 법, 7. 표범이 되는 법, 8. 에어콘이 되는 법이다. 그 내용이 어떠한지 ‘에어콘이 되는 법’을 통해 알아보자.

에어컨이 들어갈 자리를 찾는다.
마땅한 자리가 없으면 설치된 에어컨을 하나 떼어내어 분해하여 없앤다.
에어컨 자리에 자신의 육신을 설치하는 데에 있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에어컨의 전원선을 콘센트에 꽂고 반대쪽 끝을 몸에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과, 자신이 될 수 있는 것은 결국 고장난 에어컨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에어컨이 사용되지 않는 계절 동안은 그 기능하지 않음이 저절로 은폐되는 것이고, 사용자가 에어콘을 사용하기 위해 전원이 연결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이리저리 작동시키려 노력하는 경우에는 끝내 부동과 침묵으로 일관해야 하는 것이다.
사용자가 새 에어콘을 구비해 올 경우 자신이 그 자리에서 제거되어 버려지는 일도 묵묵히 견디어 내야하는 과정이다.
물론 머지않은 때에 페기된 상태에서 일어나 본래의 위치로 되돌아 올 수도 있지만, 가능한 한 여름철의 그런 고충들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것도 좋다.
따라서 에어컨이 되기에 좋은 때는 초가울부터 이듬해 늦봄까지이다.

‘~이 되는 법’이라는 글쓰기의 관점을 통해, 이 글은 한 사물에 대한 짧은 사색을 보여주는 듯하다. 소설가 정지돈은 변신술에 대한 리뷰에서, 이 책의 특징은 “서술이 환상적이라거나 철학적, 또는 신화적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전개된다는데 있다”고 말하며 “무가치한 흉내의 탐닉적 정교성에 뿌리를 내린다”고 평가한다.25

김범은 변신술 외에도 눈치(2009)와v고향(1998/2005)같은 책을 쓴다. 김범은 눈치가 그 책을 읽는 독자와 책에 등장하는 허구적인 개의 관계에 대해 서술하고 있음을 밝힌다. 그리하여 허구적 존재가 독자의 심리 안에서 실재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에 관한 작업이다.26눈치는 독자의 상상에 허구를 매개시키기 위한 장치로서 기능한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게 만드는 심리적 상황을 조직하기 위해 내러티브는 책의 형태로 구현된다. 고향은 이러한 관점에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마을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통해 가상의 공간이 실재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다. 김범의 아티스트 북은 이미지와 이미지의 소비와 관련된 작가의 전반적인 작업적 관심사와 깊이 연관된다. 특히 그가 책을 통해 구현한 감각적 경험은 바로 그 책만이 가능한 허구적 상태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예술적 문제의식과 공명함과 동시에 책이 하나의 중요한 매체로서 이용된 사례라고 보여진다.

IV-2. 장영혜중공업

장영혜중공업은 1999년 결성된 장영혜와 마크 보그의 듀오 콜렉티브로, 넷아트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작업은 주로 어도비 플래시로 제작되어 웹에 게시된 일종의 영상이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화면은 매우 단순하다. 모니터에 드러나는 화면에는 드럼베이스의 리듬에 모나코 타입세팅의 문장들이 빠르게 점멸하듯 튀어 오르는데, 그것은 대부분 강한 정치적 발언이 담겨 있다. 이 화면은 멈추거나 되돌릴 수 없다. 이들의 작업은 다양한 언어(26개)로 제작되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하여 대부분은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관객이 감각하게 되는 것은 텍스트와 화면, 그리고 사운드가 조합되어 드러나는 리듬이다. 결국 이 리듬이 장영혜중공업의 작업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이며, 오히려 텍스트는 부차적인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나는 2017년 초에 아트선재센터에서 진행되었던 그들의 개인전 세 개의 쉬운 비디오 자습서로 보는 삶에 대한 리뷰에서, 장여혜중공업의 작업에서 도드라지게 보이는 것은 텍스트의 사용방식임을 밝힌 적이 있다.27 이들의 영상은 단어 단위를 드러내는 방식(속도, 크기, 색, 기울기 등)을 변주하며 그것을 드러내면서, 텍스트의 의미론적 차원보다는 텍스트가 영상매체에서 구현되는 것 자체에 대한 감각을 중요하게 표현한다. 특히 이 전시에서는 텍스트가 세 가지 방식으로 선보여졌는데, 하나는 프로젝션 되는 영상으로, 하나는 종이 인쇄물로, 하나는 미술관 외벽에 설치된 대형 배너를 통해서이다. 이렇게 텍스트를 보여주는 방식의 변주를 통해 그 안에 담긴 정치적 메시지를 이해하게 되는 통로는 개개인의 역량으로 그 방점이 옮겨간다. 장영혜중공업은 그들 스스로가 텍스트를 쓰고, 그것을 보이게 만드는 매체적 상태를 만들 뿐만 아니라, 웹이라는 유통 시스템까지 그들의 장로소 규정한다는 점에서 그들이 수행하는 예술적 실천은 출판의 행위와 거의 유사함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행위의 지향은 정치적 메시지와 연속된 페이지의 감각을 수용하는 관객이다.

나가며: 남겨진 과제들

본 연구에서는, 예술적 매체로서의 책에서 시작하여 그것의 개념과 역사적 사례를 살펴 보고, 이후 동시대적인 관점에서 재평가할 수 있는 방식들을 고안해 보았다. 그리고 책을 둘러싼 예술적 행위가 지향하는 것이 결국은 현대사회에서 결핍된 픽션을 향한 요구라고 판단한다. 따라서 책을 경유한 미학적 실천에 대한 질문은, 과연 그것이 어떤 픽션을 지향하는가에 대한 것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책이라는 것의 발생은 지극히 한정된 조건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조건이란 책을 제작하도록 추동하는 그 시공간의 제약들일 것이다. 즉 책은 보편적인 담론으로 이해될 수 없으며 개별적인 사례로서 판단되어야 하고, 그것은 사회를 향한 귀납의 도구로 기능한다. 본 연구에서 다룬 한국의 아티스트 북으로서의 사례는 김범과 장영혜였다. 그들은 그들의 예술적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책이라는 형태를 선택했다. 김범은 책의 물성과 책이 가능한 내러티브의 전달을 통해 허구를 실재화 하는 기능으로서 책을 다루었고, 장영혜 중공업은 책적인 경험의 확장된 장소로서의 영상과 웹이라는 환경을 적극적으로 개척한 선구적인 사례다. 미처 다루지는 못했지만 이들 뿐만 아니라 양혜규, 김성환, 이주요 등 90년대에 활동을 시작한 많은 수의 작가들이 책을 만들었다. 이들 작가들이 만든 책의 특징이라면, 그것이 하나의 작품(artwork)로서 공들여 제작된, 오리지널리티를 지닌 대상이라는 것이다. 이에 비해 2000년대 이후의 경향은 더 다변화된다. 영상이나 퍼포먼스 등 전체적인 프로젝트 안에서 기능하는 책들, 이를테면 오민의 ABA 1234, 임영주의 괴석력, 김아영의제페트, 공중정원, 고래기름, 쉘, 조현아의 누군가의 목소리가요, 듣고 싶어집니다 등이 있고, 리슨투더시티와 파트타임스위트처럼 출판사를 등록해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출판 활동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이 2000년대 한국의 주요한 경향 중 하나였던 콜렉티브라는 점은 또한 의미심장하다. 그 외에도 강정석의 Game 과 같은 정기간행물이나 이소요의 관상용 선인장 디자인은 좀 더 미시적인 자신의 관심사를 연구하는 매개체로 기능한다. 즉 2000년대 이후의 간행물은 보편적인 미학적 원리에 대한 탐구라기보다는 훨씬 더 개인적인 영역으로 파편화되는 경향이 짙다. 박보마 또한 그의 작업이 출판의 행위와 긴밀히 연동되는데, 그에게 있어서 도달할 수 없는, 간직할 수 없는 상태를 물질화 하고 서사화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행위이며 그것을 대체하는 대체물로서의 인쇄물/스크린은 중요하다. 2000년대 이후 한국 시각예술가들의 출판물은 90년대 작가들의 고민에 대한 유산을 공유하면서도 다른 국면을 보여준다. 허구적인 예술의 힘을 탐구하기보다는 좀 더 실제적인 사실을 배열하고 다루는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것 또한 허구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인가? 앞으로 남겨진 과제는 이 질문에 대한 가치판단을 해야 하는 것일테다.


 


  1. Gabriele Detterer, Maurizio Nannucci(eds), Artist-Run Space(Zurich:jrp ringier, 2012), p. 205. 

  2. Johanna Drucker, The Century of Artists’ Books(NY: Granary Books, 2004), p.1.  

  3. ibid., p.4. 

  4. Johanna Drucker, op cit., p.178. 

  5. 세스 프라이스, 차승은 옮김, 확산, 미디어버스, 2017, 

  6. Gwen Allen, Artists’ Magazines: An Alternative Space for Art(Cambridge, Massachusettes: The MIT Press, 2015). 

  7. Josh MacPhee(ed), Paper Politics: Socially Engaged Printmaking Today(Oakland: PM Press, 2009) 

  8. Johanna Drucker, op cit., p.13 

  9. Clive Phillpot, Booktrek: Selected Essays on Artists’ books(1972-2010)(Zurich:jrp ringier, 2013), p. 83.  

  10. Craig Mod, Hugh Mcguire and Brian O’Leary(ed), “Designing Books in the Digital Age,” in Book: A Futurist’s Manifesto. A Collection of Essays from the Bleeding Edge of Publishing(Boston, MA: O’Reilly Media, 2012), p.90.  

  11. 알레산드로 루도비코, 임경용 역, 포스트 디지털 프린트, 미디어버스, 2017, 199쪽. 

  12. 위의 책, 113쪽. 

  13. 위의 책, 199쪽. 

  14. 해당 챕터의 발췌는 모두 다음 책을 참고했다. 책을 만드는 새로운 예술, 미디어버스, 2017.  

  15. 발터 벤야민, 최성만 옮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제3판), 발터 벤야민 선집 2: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사진의 작은 역사 (외), 도서출판 길, 2007. 

  16. 괄호 안의 숫자는 해당 내용이 포함된 원문의 번호이다.  

  17. 이 책은 크게 다섯 챕터로 나뉘는데, 1. 예술가의 글쓰기에 관한 예술가의 글쓰기, 2. 자기 자신의 예술에 대한 예술가의 글쓰기, 3. 예술계에 관한 예술가의 글쓰기, 4 세계 자체에 대한 예술가의 글쓰기, 5. 예술로서의 글쓰기 이다. Jennifer Liese(ed), social medium: artists writing, 2000-2015(NY: Paper Monument, 2015)  

  18. David Maroto, Joanna Zielinska(eds), Artist Novels(Berlin: Sternberg Press, 2014), p.11.  

  19. Annette Gilbert, Publishing as Artistic Practice(Berlin: Sternberg Press, 2016), pp.7-8. 

  20. ibid., p.59-61. 

  21. 문혜진, 90년대 한국 미술과 포스트모더니즘, 현실문화, 2016, 11쪽.  

  22. 이러한 매체적 관점은 스탠리 카벨의 오토마티즘 개념을 빌어와 매체의 재발명을 주장하는 로절린드 크라우스에 빚진다. 로절린드 크라우스, 김지훈 옮김, 북해에서의 항해: 포스트-매체 조건 시대의 미술, 현실문화A, 2017. 

  23. 두 번째 판본은 샌프란시스코의 에바 부에나 아트센터에서의 전시 Time After Time: Asia and Our Monument를 위해 발행된 것으로, 2003년 제작되었다.  

  24. 김선정 편집, 김범. 사무소, 2010, 180쪽.  

  25. 정지돈, 당신이 보는 것이 당신이 보는 것이 아니다 

  26. 김선정 편집, 앞의 책, 128쪽. 

  27. 이한범, 벼룩과 곡예사의 줄타기를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