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Hanbum

Writing

라이트 인더스트리

OKULO 005: 시네마 이후, 우리 눈에 비치는 세계 - 네 개의 대화(2017년 7월 31일 발행)에 수록.

 

1990년대 이후 미국 전역에 걸쳐 마이크로시네마(소규모 상영공간)가 눈에 띄게 생겨나기 시작했다. 종래의 상영 및 배급 시스템 바깥에서 한두 명 혹은 소수의 집단이 직접 만들어 운영하는 이 공간은 다른 곳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작품을 상영하거나 모험적인 프로그램을 꾸린다. 또한 작고 친밀한 환경을 통해 공동체의 감각을 공유한다. 마이크로시네마라는 용어는 1994년 영화감독인 레베카 바튼과 데이빗 셔먼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그들이 샌프란시스코의 한 아파트에서 운영했던 TMH(Total Mobile Home microCINEMA)에서 유래했다. 그들은 30명이 못 들어갈 정도로 작은 이 공간에서 과거와 현재의 실험적인 영화와 비디오를 보여주었다. 1960년대 뉴욕의 레퍼토리 극장의 역사를 추적한 벤 데이비스는 이와 같은 마이크로시네마의 등장을 이제는 사라진, 좀 더 위험을 감수하는 대안적 필름 프로그램의 귀환으로 간주한다.1 한때는 급진적이고 실험적이었던 아방가르드 영화들은 이제 고전이 되었고, 그것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기금을 통해서만 유지되는 비상업적 영역의 특수한 전문분야가 되었다. 관객의 연령대는 작품의 시간이 쌓여가는 것에 보조를 맞추고 프로그램은 더 이상 모험을 감수하지 않는다. 오래된 실험적 영화는 문화 상품들과 함께 진열되거나 미술계로 자리를 옮긴다.

라이트인더스트리(lightindustry.org)는 2008년 에드 할터와 토머스 비어드가 “필름과 일렉트로닉 아트를 위한 장소”로, “영화를 제시하는 새로운 방식을 탐구하기 위해” 만들었다. 브루클린에 위치한 인더스트리시티의 사용하지 않는 공장과 같은 값싸고 임대기간이 짧은 장소를 전전하다가, 2011년 그린포인트의 프리먼 스트리트 155번지에 안착해 현재까지 운영 중이다. 할터와 비어드는 라이트인더스트리를 만들기 이전부터 이미 실험적인 필름 프로그래밍으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었다. 할터는 1990년대 초반 샌프란시스코에 살면서 국제적인 LGBTQ 필름페스티벌인 프레임라인에서 일했으며, 1995년부터 2005년까지 뉴욕언더그라운드 필름페스티벌을 운영했다. 비어드는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까지 텍사스주 오스틴에 위치한 시네마텍사스에서 일했고 대학원에 진학해 뉴욕으로 온 이후로는 오큘라리스에서 프로그램을 꾸렸다. 할터는 프레임라인에서 제니 올슨과 마크 핀치와 함께 일하며 필름 프로그래밍이라는 것 자체가 얼마나 창조적인 실천인지에 대해서 눈을 떴다고 회고한다. 비어드는 “영화와 비디오를 위한 전 세계에서 가장 대담무쌍한 장소 중 하나”였던 시네마텍사스에서 일했던 첫 해, 쿠바 감독 산티아고 알바레즈의 회고전과 데이빗 개튼, 세스 프라이스, 왈리드 라드와 데보라 스트래트먼의 작업을 보았고 이를 통해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보여지는가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경험했던 동시대 뉴욕의 장소들, 예컨대 1960년대 조나스 메카스가 만들어 운영한 필름메이커즈 시네마테크에서 이어진 앤솔로지필름아카이브를 비롯해 로버트 벡 메모리얼시네마(Robert Beck Memorial Cinema), 오큘라리스 등은 그 자체로 영화를 가르쳐준 곳이었다고 한다. 이렇듯 할터와 비어드는 스스로를 특정한 연대기 위에 위치시키고, 그러한 전통이 현재의 자신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고민하며 영화가 지금 어떻게 기능하는지, 그 한계는 무엇인지, 무엇을 위하고 무엇에 반하는지에 대해 질문한다.2 이 연대기를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20년대의 작은 시네클럽들, 아모스 포겔이 그의 부인 마르시아와 함께 만들어 1947년부터 1963년까지 운영한 시네마 16(Cinema 16),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운영된 콜렉티브 포 리빙 시네마(Collective for Living Cinema)까지 연결된다. 할터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모든 장소가 공유하는 것은 사회적 공간, 사회적 경험으로서의 영화관이라는 비전이었고, 이것이 라이트인더스트리의 핵심이다.”3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미디어/퍼포먼스 아트 부서의 수석 큐레이터 스튜어트 코머는 “2009년 최고의 영화와 무빙 이미지”를 꼽는 글에서 라이트인더스트리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다. “에드 할터와 토머스 비어드의 라이트인더스트리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 영화적 발명의 모든 것들, 예를 들어 클라우스 비보르니의 영화와 이스라엘에 관한 수전 손택의 영화 약속의 땅들(1974)부터, 해리 닷지(시각예술가), 데이빗 조슬릿(미술사학자), 제임스 리처드(시각예술가)가 기획한 프로그램까지를 세심히 다루면서 말이다.”4 라이트인더스트리는1주일 1회, 매주 화요일 저녁에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방식을 고수해왔다. 공간은 많아야 70명 정도가 들어가는 작은 크기이며, 그곳에는 접이식 의자와 프로젝터가 놓이는 나무로 만들어진 좌대밖에 없다. 심지어 스크린도 없이 흰 벽에 화면을 영사하는데, 이는 영화의 물질적 요소들을 최대한 제거한 뒤 남는 영화에 대한 경험, “오브제가 아니라 이벤트로서의 영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그들의 태도 때문이다. (그들은 이렇게 공간을 비워내고 원뿔을 그리는 선(1973)의 맥락에 있는 앤서니 맥콜의 신작을 섭외하여 데이빗 그럽스의 사운드 퍼포먼스와 함께 선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기획과 공간은 개별 작가와 프로그램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올해에는 피터 왓킨스의 여행(1987), 슬라탄 두도프의 쿨레 밤페(1932), 아다치 마사오의 여학생 게릴라(1969)를 비롯해 리처드 P. 로저스의 작품 네 편을 모아 상영하기도 했다. 그들은 과거의 영화를 호출하지만 그것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라는 요청에 대한 응답”이지 그에 대한 숭배가 아니다. 비어드는 개별 작품만큼이나 그것이 놓이는 맥락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예컨대 지난해 11월 미국 대선이 끝난 직후 그들은 파시스트 정권에 의해 통치되는 미래의 뉴욕에 관한 로버트 크레이머의 얼음(1970)을 프로그램에 편성하기도 했다.5

할터와 비어드는 영화에 대한 경험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지에 대해 온통 관심이 쏠려있는 듯하다. 물론 이것은 감각적 경험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라는 것을 어디에 어떻게 위치시킬 것인지에 대한 문제다. ‘상업 영화와 아방가르드 영화, 정전과 그것의 바깥에 있는 영화들의 구분을 부수고자 했던’ 아네트 마이클슨을 우상으로 여기는 그들의 프로그램은 크게 두 종류의 나뉜다. 첫 번째는 다양한 영역의 무빙이미지를 통합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할터는 “뉴욕에는 예술 형식으로서의 무빙이미지에 대한 수많은 생각과 방식을 지닌 풍성한 공동체가 있지만, 이들은 겹쳐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겹쳐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6 라이트인더스트리는 바로 이러한 공동체들을 위한 교차점이 되고자 했고, 실험영화와 장편 극영화, 비디오, 시각 예술, 다큐멘터리, 뉴미디어를 하나의 달력 위에 배치한다.7 포스트-개념미술작가라고 할 수 있는 코리 아칸젤의 퍼포먼스를 장-마리 스트라우브와 다니엘 위예의 영화와 같은 장소에 겹쳐놓는다는 것은 서로 다른 영역의 관객을 한 자리에 모은다는 것을 의미한다.8 이는 할터와 비어드가 무척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고 그들은 실제로 그것을 해낸다. 이러한 측면에서 눈에 띄는 것은 그들이 필름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기획했던 2012년의 휘트니비엔날레다. 그들의 목표는 필름을 전시의 다른 시각예술 작업들과 함께 대화의 장에 놓고, 현재의 영화의 범위를 반영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었다. 프레데릭 와이즈만의 다큐멘터리, 조지 쿠차의 저화질 비디오, 켈리 리처드의 수정주의 서부극, 매튜 포터필드의 극영화 같은 것들을 포함시키면서 말이다. 이러한 영화들은 대부분 동시대 미술의 영역에서는 잘 다루어지지 않지만, 이들이 보기에는 비디오와 필름을 이용해 작업하는 수많은 작가들이 영화의 코드와 관습, 시각적 문법과 내러티브의 역사를 끌어오기에 이와 같은 영화적 실천의 결과를 그와 나란히 두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9 비어드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상대적으로 무빙이미지에 대한 경험이 매우 좁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고 말한다.10 이는 다양성의 부재라기보다는 영상이라는 범주 안에서 결정된 여러 형식에 대한 미학적 이해와 작품이 보여지는 이상적인 맥락을 제공하려는 노력이 부재하다는 얘기로 읽힌다.

다른 하나는, 비어드의 표현에 따르면, “길을 잃거나 저평가된 영화를 재탐색하는 일”이다. 그는 영화사와 미술사는 재검토하고 수정할 필요가 있을 만큼 무르익었으며, 그 역사는 세대마다 계속해서 다시 쓰여져야 한다고 말한다. 라이트인더스트리가 페미니스트나 퀴어시네마를 프로그램을 통해 강조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비어드는 2016년 링컨 센터에서 “새로운 방향으로 향하는 초기의 단서: 스톤월 이전의 퀴어시네마(An Early Clue to the New Direction: Queer Cinema Before Stonewall)”라는 시리즈를 기획하기도 했다. 그들은 보여지지 않았던 영화를 발굴하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2012년에는 D.A. 페니베이커의 필모그래피에 등재되지 않았던 엘리자베스와 메리를 찾아내 상영했고 이때 페니베이커가 직접 작업을 소개하고 얘기를 나누었다. 필름 프로그래밍이 정전을 만드는 행위의 일종이라면, 할터와 비어드는 그들이 생각하는 정전을 보여준다. 일종의 카운터-정전으로서 말이다.11

라이트 인더스트리가 매주의 프로그램 이외에도 고려하고 있는 활동은 출판이다. 주로 선집, 모노그래프, 절판된 책을 재출간하는 것에 관심을 두는데, 올해 5월에는 앤솔로지필름아카이브에서 1976년에 출간했던 스탠 브래키지의 『시각에 대한 은유(Metaphors on Vision)』를 재출간했다. 라이트인더스트리가 현재 머물고 있는 건물에는 아티스트 북, 아방가르드 잡지, 대안적 예술 공간을 다루며 출판의 영역을 확장하고자 하는 온라인 잡지『트리플 캐노피(Triple Canopy)』, 커리큘럼이 없는 오픈소스 교육 플랫폼 퍼블릭스쿨뉴욕이 이웃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느슨한 공동체로서 다양한 공공 프로그램을 함께 마련하곤 한다. 라이트인더스트리를 비롯한 이 세 집단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생겼는데,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이동 중인 문화적 형식들”12이 한 장소에 모여 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로우면서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1. Ben Davis, Repertory Movie Theaters of New York City: Havens for Revivals, Indies and the Avant-Garde, 1960-1994, McFarland Publishing, 2017.  

  2. Rachael Rakes and Leo Goldsmith, “Cinema As an Event: An Interview with Light Industry’s Ed Halter”, The Brooklyn Rail, September 5, 2011. link 

  3. Thomas Beard, “Life in Film: Thomas Beard & Ed Halter”, Frieze, September 1, 2010. link 

  4. Stuart Comer and Rajendra Roy, “Film: The best motion pictures and moving images of 2009”, Frieze, January 1, 2010. link  

  5. Sam Patwell, “Light industry Cinema Celebrates Five Years as a brooklyn Bright Spot”, Bedford+Bowery, April 5, 2017. link 

  6. Alex Zafiris, “Rocks and Gravel: Light Industry”, BOMB, April 30, 2012. link 

  7. Tom McCormack, “Questionnaire for Ed Halter”, art21 Magazine, Jun 17, 2011. link 

  8. Cynthia Lugo, “Interview with Thomas Beard”, Joan’s Digest. link 

  9. 위의 글 

  10. Alex Zfiris, 앞의 글 

  11. Nicole Disser, “Greenpoint’s Light Industry, Illuminating the Obscure for Cinephiles and All the Rest of Us”, Brooklyn Magazine, April 1, 2015. link 

  12. Naomi Mishkin, “Interview: Thomas Beard”, Art in America, July 26, 2011.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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