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Hanbum

Engineering

eek

Minha Park x Ryu Hankil

기획 박민하
사운드 류한길
마스터링 김창희
만화 박민하
디자인 강문식
제작 이한범

발행 나선프레스
발행일 2021년 3월 27일
후원 서울문화재단

에디션 200
가격 35,000원


concept Minha Park
sonification Ryu Hankil
mastering Changhee Kim
cartoon Minha Park
design Moonsick Gang
production Lee Hanbum

publication Rasun Press
date 27, Mar 2021
support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edition 200
price $ 35

about

1977년 보이저 호에 실린 골든 레코드(Voyager Golden Record)는 지구를 떠나 태양계 밖을 항해 중이다. eek는 골든 레코드라는 인류학적 기획을 뒤집고 인간 이외의 것들과 불가능한 대화를 시도한다. 이것은 인간이 인간 언어를 가지지 않은 존재와 교신할 소리-진동을 상상해보는 음향적 사고실험이다. 박민하와 류한길은 각자의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 나간다.

류한길은 55개 언어의 인사말이 나열된 골든 레코드의 한 파트 Greetings에서 인간의 언어로 인지될 수 있는 주된 주파수 성분을 제거하여 음향-인사를 만든다. 박민하의 TomOSynCaNana는 바이러스들의 염기서열을 스코어로 작동시켜 이들이 생성하는 리듬, 진동을 들려준다.

The Golden Record affixed to the Voyager spacecraft left Earth in 1977 and is now traveling outside of our solar system. The eek reverses the anthropological project of the Golden Record, and attempts an impossible dialogue with everything other than human being. This is a sonic ‘thought experiment’ imagining sound-vibrations that communicate with beings do not have human language. The artists, Minha Park and Ryu Hankil, each devise their own methods for addressing this conundrum.

Ryu Hankil creates sound-greetings by excluding the main sinusoid indicated as human language from the Golden Record’s Greetings from 55 languages. Minha Park’s TomOSynCaNana plays out the nucleic sequence of viruses as a sonic score, allowing us to hear its rhythms and vibrations.

contents

pp. 1-2 Greetings by 류한길 Ryu Hankil 16’20”
pp. 3-4 TomOSynCaNana by 박민하 Minha Park 19’21”

editorial note

보이저 금제 음반(Voyager Golden Record)에는 지구의 소리(The Sounds of Earth), 엄선된 동서양의 음악을 비롯해 55개 언어로 “안녕”을 말하는 소리가 기록되어 있다. 자연의 소리, 민속/대중 음악, 인사말이라는 구성은 어린 아이라도 들으면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만하다는 점에서 이 소리 기획은 보편주의에 기반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소리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야만 들리는 소리’이기도 하다. ‘안녕’이라는 말을 모르는, 그러니까 명시적 언어를 학습하지 못한 유아를 이 음반은 지구의 구성원으로 초대하고 있지 않다. 물론 초대받지 못한 것의 목록은 끝없이 쓸 수 있을 것이다. 인감됨과 지성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 담화에의 참여를 자격으로 요구하는 구조 위에 설계된 개념이다. “안녕”이 아무리 쉽고 단순한 음성 언어라 하더라도, 여기에는 이미 수많은 코드가 스며 있으며 말 없는 것과는 아득한 거리를 두고 단절되어 있다. 그렇다면 말이 없는 것조차 여유로이 품는 보편주의는 어떻게 가능할까? 조르주 아감벤의 유아기와 역사, 대니얼 헬러-로즌의 에코랄리아스가 언어에 관하여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있다면, 언어는 우리가 진실을 인지하고 나누는 방법을 망각했다는 증거이며 인간이란 이미 이를 한계로 가지고 태어난 존재라는 것이다.

류한길이 보이저 금제 음반에 실린 55개 언어의 인사말에서 ‘안녕’을 의미하게 하는 음향 성분을 지우고 만든 Greetings는 소리를 통해 보편주의의 모델을 구상하는 과정으로 이해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언어에 뒤따르는 수많은 코드가 지워진 소리에는 말 외의 풍부한 진동과 그 체험이 남는다. 말에 강하게 얽혀 있던 청취가 다른 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소리는 출처가 이미 말이었기 때문인지 말은 아니지만 말이기도 한 웅얼거림으로 들린다. Greetings는 청취자를 여기까지, 말이 나오기 직전까지로 데려간다. 그런데 이 말 없는 장소는 아주 광활한 곳이어서, 청취자들은 아마 저마다의 어딘가에서 하차 했을 것이다. Greetings는 청취자들이 같은 곳에서 올라 탄다 하더라도 모두가 다른 곳에서 내리게 되는, 대답을 요구하지 않는 폭넓은 환대의 인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리는 인사가 될 수도 있고 인사가 아니게 될 수도 있고 무엇이라도 될 수 있다. 인사말로만 기능하지 않아도 되는 소리는 허구가 드나드는 숨구멍을 열어주고 수많은 이야기가 가능한 웅얼거림으로 돌아간다. 물론… 청취가 끝나면 순식간에 현실 세계의 규칙으로 되돌아오겠지만 말이다. 여러 현실을, 심지어 서로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것일지라도 동시에 품을 수 있는 말 아닌 소리를 찾는 일이 더 멀리 나아가고 오랫동안 이어져야만, 이 되돌아옴을 조금이라도 지연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함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