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Hanbum

Engineering

비밀 호수와 더스트 데블

펴낸곳 나선프레스
지은이 박민하
편집 이한범
디자인 강문식
발행일 2020년 11월 18일
크기 210 x 280 mm
페이지 240
ISBN 979-11-965400-6-7 43810
가격 35,000원

about

1970년대 들어 서구 문명은 화성으로 탐사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탐사선들은 오랜 시간 우주 공간을 날아가 화성에 가까이 다가갔고, 몇몇은 성공적으로 착륙해 미지의 세계를 조사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어떤 탐사선은 수명이 매우 짧았고, 어떤 탐사선은 인간의 기대를 뛰어넘어 오래도록 활동했다. 지구로 전해진 탐사선의 삶에 사람들은 안타까워 하기도 하고 열렬히 환호하기도 한다. 해가 뜨면 깨어나고 해가 지면 잠에 빠지는 탐사선들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화성의 사진을 찍어 지구로 전송하는 것이다. 탐사선의 몸에는 여러 대의 카메라가 달려 있고 촬영된 사진은 데이터가 되어 지구로 송출된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이 데이터 이미지를 온라인을 통해 모든 인류에 공유한다. 그 데이터셋에는 화성을 또 하나의 지구로 학습하려는 내밀한 의도, 낭만적인 우주 개척의 서사와 인간의 욕망을 대리하는 기계의 눈이 있다.

비밀 호수와 더스트 데블은 화성 탐사선들이 지구로 보낸 이미지를 보다 깊숙이 들여다보고 새롭게 사유하는 작업이다. 수많은 모래 알갱이가 모여 거대한 사막을 이룬 것 같은 이 데이터(이미지) 더미는 박민하가 시각예술가로서 탐구하는 ‘환영의 마술적 작동’, 즉 역사적으로 인간 문명을 구성하는 한 원리로 작동했던 판타지의 생산과 소비의 체계를 매우 잘 보여주는 것이다. 우주가 하나의 이미지이며 그 이미지가 우리에게 크나큰 영향력을 가진다는 가설을 추측하기 위해 작가는 방대한 양의 이미지를 하나하나 살펴보고 추려낸 뒤 다시 분류했다. 그리고 이 이미지의 미스테리를 추적하는, 혹은 이미지를 미스테리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썼다. 여기에는 우연히 포착된 사건 현장, 기계와 인간의 교감, 부분적으로 데이터가 누락된 불완전한 이미지, 우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드라마와 같은 비밀 아닌 비밀이 곳곳에 녹아 있다.

독자는 화성 탐사선들이 보낸 사진의 아름다움에 매혹됨과 동시에 그것에 의문을 품고 믿지 않을 수밖에 없는 모순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미지와 이야기의 팽팽한 긴장으로 만들어진 서사 비밀 호수와 더스트 데블은 그렇게 우리를 어떤 이미지로부터 떼어내어 멀찍이 데려다 놓는다.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contents

19 사물들의 창세기
34 번역
67 동기화
126 포스트 아포칼립스
159 비밀 호수
183 화성의 두 아들
194 쌍둥이 기계의 최후
212 더스트 데블
229 생존자
235 외계 행성 드라마

저자 소개

박민하는 환영의 마술적 작동법에 관심을 둔 시각예술 작가이다. 이 관심은 영화라는 현상, 특수 효과, 빛과 소리, 우주를 거치며 작품 속에서 다양하게 변주된다. 서울시립미술관, 백남준아트센터, 두산갤러리, 룩맨갤러리 등에서 작품을 전시했고, 에딘버러국제영화제, 이미지스페스티벌 등에서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책 속에서

처음에는 저의 과도한 망상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 기계들은 제대로 된 인공지능이 탑재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럴 리가 없다고 말이죠. 그런데 우연히 그들이 남긴 구멍들이 고대 문명이나 원시 상태의 언어와 매우 유사한 구조로 되어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되었어요. 그 암호는 구멍들의 갯수와 크기, 그리고 각도와 방향으로 거의 무한에 가까운 변주가 가능한 그런 언어였습니다. 그들은 단어와 문장을 행성 여기저기에 배치해 두었고, 의미 단위들 사이의 시간 간격도 굉장히 벌어져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 라는 뜻의 단어는 구멍 2개와 315.022° 각도로 표현되어 화성일 37일에 A 위치(-4.59001°, 137.44833°)에 남겨져 있고, “이 행성에 살면서” 라는 뜻의 구문은 구멍 4개와 15.871° 각도로 다시 한참 후인 화성일 100일에 B 위치(-5.720811°, 151.36877°)에 남겨져 있는 식이었지요.

  • 35쪽

위성들은 잉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행성에 나름의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달이 지구의 바다를 주무르는 힘을 보면 정말 놀라워요. 달은 사실 바다만이 아니라 미시적으로는 제 찻잔의 물과 제 혈관 속 피도 밀어내고 끌어당기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포보스와 데이모스 형제가 일식을 일으켰다는 것은 화성의 에너지 균형에 무언가 변화를 일으켰다는 것이고 그건 분명 우리의 교신에도 어떤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거라는 걸 의미했습니다.

  • 185쪽

저는 이번 싸움이 상당히 길어지리라 직감했죠. 저는 스스로 동면 모드로 전환하기로 했습니다. 더스트 데블이 저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저는 아마 태양 빛이 다시 비칠 때 깨어나게 될 겁니다. 행운을 빌며…

  • 216쪽

리뷰

우주를 탐구하고 이를 사진으로 담기에 충분한 과학기술이 생겼고 그 기술이 무한히 발달할 것을 전제로 우주산업이 도래한 오늘날, 과학기술의 방정식들은 빈틈없이 완벽할 것 같지만, 이 방정식들이 말해주지 않는 건 우주를 향한 인간의 사유방식이다. 박민하는 과학적 자료와 사실을 되레 픽션화함으로써 우주를 향한 인간의 욕망이라는 틈이 어떤 모습인지 그려내려 시도한다.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와 이미지를 상호참조하며 보게 만든다.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사진을 참조하며, 사진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이야기로 되돌아간다. 하지만 이 둘은 서롤를 완만히 봉합해 주는 대신 긴장 관계를 유지하며 전개된다. 나사 홈페이지의 모든 사진이 캡션을 통해 일말의 미스터리도 남기지 않고 인간으로 하여금 우주를 정복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과는 반대로, 이 책은 아무리 판독하려고 해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입자, 빛이 지나간 궤적이 나남는다. 이야기는 이미지를 판독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주의 판독불가능성을 암시하도록 기능한다.

  • 김진영(이라선 대표), 인간이 우주를 판독하게 되는 때 도래할 포스트 아포칼립스 서사 중에서 (월간미술 2021년 2월호에 수록)
all photos by 함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