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Hanbum

Engineering

스테레오 비전

잠실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들과 금천예술공장, 신당창작아케이드, 서울무용센터 등 서울문화재단 산하 레지던시의 전/현 입주작가들 간 공동창작워크숍 과정을 기록한 책.

edition notice

주최 주관 서울문화재단
총괄 남미진(창작기반본부장), 이승주(잠실창작스튜디오 매니저)
운영 최영한, 김수현
협력 금천예술공장, 서울무용센터, 신당창작아케이드

워크숍

참여 작가 김은설, 김하경, 김환, 박찬별, 손명희, 윤지영, 이민경, 전보경, 정지혜, 조영주, 최일준, 한승민
기획 송고은
자문 정경희
문자 통역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 전주연
영상 함정식

전시

기획 송고은
기획 보조 오다인
공간 조성 아워레이보
디자인 일상의실천
사진 타별
일시 2020년 10월 16일 ~ 2020년 11월 4일
장소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출판

발행 서울문화재단
발행인 김종휘
발행일 2020년 11월
글쓴이 라이스 브루잉 시스터즈 클럽(손혜민, 신현진, 유소윤), 송고은, 오다인, 이한범
편집 이한범
번역 서울리딩룸
디자인 일상의실천
인쇄 퍼스트경일
ISBN 979-11-86489-33-8

contents

스테레오 비전 송고은
해석과 기록, 협업과 합성 이한범

소소하고 세세한 이야기 라이스 브루잉 시스터즈 클럽

이민경, 조영주, 한승민

변신과 변화 손혜민
작품 소개
작가 노트

김은설, 전보경, 정지혜

기가 귀가 되고, 귀가 눈이 될 때 유소윤
작품 소개
작가 노트

박찬별, 손명희, 윤지영

느린 편지 이한범
작품 소개
작가 노트

김하경, 김환, 최일준

발화점_대화, 관계 그리고 교감의 장치 신현진
작품 소개
작가 노트

기획 전시
기획 후기 송고은, 오다인
타임라인
작가 소개
에필로그

editorial

해석과 기록, 협업과 합성

과정을 해석함으로써 의미를 도출하는 모든 영역에서 그 과정을 기록하는 일은 필수적이다. 기록은 관계의 지도를 그리고 인과의 서사를 쓰는 방법이라는 측면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능동적인 도구가 되는데, 이때 문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무엇을 기록하고 어떻게 기록할지를 구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 스테레오 비전에 참여한 예술가들의 공동 창작 과정을 기록하기에 앞서 보다 분명히 해야 했던 것 또한 이와 같은 질문이다. 이 워크숍에서 무엇이 가장 핵심적인가? 무엇을 문제시 할 것인가?

이번 출판물은 스테레오 비전에 대한 기록에 있어서 ‘공동’에 방점을 두었다. 창작이라는 목적 아래 수행한 참여 예술가들의 ‘함께 하기’를 기록의 대상으로 삼았다. ‘하기’라는 동사에서 알 수 있듯 그것은 계속해서 운동하는 동적 체계다. 그리하여 협업이 만들어 낸 결과물, 성과 보다는 끊임없이 긴장을 유지하며 타인과의 거리를 이해하는 과정에 더 주목하고자 했다. 서로 다른 입장과 한계를 가진 예술가들이 관계의 방식을 조정하고 협의해 나감으로써 작품에 이르게 되는 다양한 양상을 드러내 보고자 했다. 물론 결과물은 그 과정을 되돌아 추측해볼 수 있게 해주는 통로가 되어준다는 점에서 또한 중요한 것이다. 나는 협업의 모델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모자이크 모델로, 수행 과업을 분업하고 다시 한데 모으는 역할 분담이 이에 해당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합성(synthesis) 모델이다. 합성은 요소들의 상호 침투와 화학 작용을 통해 전혀 다른 성분구조를 가지게 되는 과정을 이른다. 모자이크 모델은 각 부분을 대체할 수 있고 필요에 따라 뺄 수도 있지만, 합성 모델은 대체 불가능성에서 시작한다. 모자이크 모델에서 부분들은 하나의 전체적인 형상으로 통합되는 데 소요되고 전체 안에서 부분은 여전히 자기 영토를 가지지만 합성의 과정에서 부분들의 경계는 사라진다. 합성은 상실과 소멸을 전제한 생성의 과정이다. 스테레오 비전은 기획 단계에서 모자이크 모델보다는 합성 모델의 협업을 상상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스테레오 비전의 기록은 합성의 복잡한 양상을 대상으로 삼았다. 이는 한편으로는 ‘함께 하기’가 유토피아적인 공동체주의의 이미지가 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 이미지는 협업의 시간을 성급하게 봉합할 때 우리 눈 앞에 튀어 오른다. 하지만 합성적 협업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배우고 인식해야 하는 것은 분명 생각보다 어렵고 치열한 관계의 역동들이다.

무엇을 기록할지가 선명해진 이후 문제시되었던 것은 누가 기록할 것인지였다. 기록은 관찰을 요구하고, 관찰은 필연적으로 권력구조를 만든다. 이 위계를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것을 끌어 안으며 문제를 넘어설 방법이 필요했다. 그것은 아마도 기록의 글쓰기 자체가 공동의 창작, 그러니까 합성의 과정 전체에 스스로 포함되면서 동시에 그 바깥으로 빠져 나올 때 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비평 행위다. 따라서 기록자는 이 워크숍의 핵심인 ‘함께 하기’와 ‘창작’ 모두에 대해 균형 잡힌 이해를 가지고 비평적 쓰기를 수행하는 주체이어야만 했다. 이런 맥락에서 라이스 브루잉 시스터즈 클럽에게 기록을 요청했다. 이 예술가 그룹은 사회와 문화의 정치가 구축한 관습과 위계를 철폐하고 공동의 삶이 가능한 대안적 사회 모델을 미생물과 발효라는 현상을 빌어 상상한다. 발효는 무엇보다 흥미로운 합성의 과정이고, 라이스 브루잉 시스터즈 클럽은 그들 자신을 스스로 발효 과정의 실험대에 올리며 다양한 방식의 쓰기를 수행해 왔다. 지난 시간 동안 라이스 브루잉 시스터즈 클럽은 하나의 팀으로서 작업을 진행해 왔지만 스테레오 비전에서는 구성원 각각이 개별 팀으로 떨어져 독립적으로 작업했는데, 이는 그들에게 있어서도 또 다른 방식의 협업에 대한 시도였을 것이다.

기록과 비평적 개입이 일견 모순되는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기록은 객관적이고 건조해야 하며, 판단이 부여되지 않아야 한다고 여겨지지만 이에 반해 비평은 해석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스테레오 비전의 공동 창작 과정에 대한 기록은 다른 무엇보다 이 해석적 기록이 요구된다. 기록이 1차적으로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가시적인 것들뿐이다. 관찰자는 참여자들의 대화, 몸짓, 그들이 만들어낸 이미지나 물건 등을 살펴본다. 하지만 이 워크숍에서 진정으로 다루어야 할 것은 가시적인 것들을 가능하게 한 어떤 이유들이다. 눈 앞에서 일어난 일들 ‘사이’에서 일어난 것들을 이해하고 가시적인 것들과의 연관성을 찾아야 한다. 온도의 흐름을 느끼며 변화와 결정들에 대한 추측이 필요하다. 이러한 추측에 근거할 때 ‘함께 하기’와 ‘창작’은 요술주머니에서 툭 튀어나온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진정으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실천적인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 의미로, 서사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함께 하기의 방식을 검토하고 조정함으로써 우리에게 진실로 필요한 함께 하기의 방식을 협상하게 할 것이다.

editorial note

• 연초에 송고은 큐레이터가 잠실창작스튜디오 공동 창작 워크숍 출판물을 만들자는 연락을 했다. 프로젝트 기획 단계부터 출판 기획이 함께 진행된 아주아주 드문 경우였다. 거의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일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난 뒤 혹은 진행 중에 출판물을 준비한다. 사실 그러면 편집자로서 할 수 있는게 별로 없다. 그저 현장을 찍은 사진들과 소개글, 리뷰 등등의 텍스트를 잘 정리할 뿐이다. 그러면 책은 글쎄, 뭐라 할 말 없는 관습적인 형식으로 만들어진 기록물이 된다. 예술 프로젝트는 일종의 과정적 실험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어떤 문제를 다루고 해결해나가는 과정으로 작가와 기획자들은 프로젝트를 만든다. 여기서 출판물은 그 프로젝트의 ‘과정’안에서는 하지 못했던 것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유용하고 중요한 장소다. 출판물은 프로젝트에 있어서 일종의 ‘외부’ 인데, 이 외부를 (당연한 일인데도) 프로젝트의 일부로서 유연하게 다루는 이가 많이 없다. 외부가 중요한 이유는 프로젝트가 다루는 문제와 문제 해결의 실험 과정을 적절히 평가하고, 수행과 실패를 적절히 파악하고, 그 실험의 과정에서 제기된 무수히 많은 작은 질문들과 경험을 포함하며 다음의 문제와 실험을 이어나갈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외부로서의 예술 프로젝트 출판물은 프로젝트를 봉합하고 언어적으로 의미화하는 곳이 아니라 프로젝트가 발생시킨 변화의 결과를 추적하는 기능적인 것이다. 외부를 염두에 두지 않는 자족적 프로젝트에 나도 그렇고 아마 많은 이들이 신물을 느껴 할 것이다. 프로젝트를 잘 정리한다는 것은 이 자족적 제스처에 방점을 찍는 것이 아니라 외부를 도입하여 그 시간을 적절히 평가하고 이해한다는 것이다. ‘과정’에서는 할 수 없었던 보다 복잡한 네트워크 속으로 프로젝트를 위치시키켜 필요한 긴장을 일으키는 일이다. 출판을 그러한 방식으로 예술 프로젝트와 관련시키는 사례가 많아질수록 예술 프로젝트는 좀 더 엄격하게 그리고 의미있게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될 가능성이 생길 것이다.

• 이 책을 만들며 롤모델로 삼은 기획은 2002년 한국에 번역 출판된 신발과 미터자(다음세대)이다. 문세린 작가가 소개해준 책인데, 이탈리아의 레지오 칠드런(Reggio Children)이 만든 어린이 워크숍 기록 출판 시리즈 중 하나다. 말 그대로 기록이 중요한 기획이다. 신발과 미터자는 어린이들이 책상을 만들기 위해 책상의 치수를 재는 과정을 기록한다. 어른들이 수치를 잴 때 쓰는 손쉬운 도구를 아직 읽고 다룰 줄 모르는 어린이들은 신체를 이용해, 물건을 이용해 책상을 수치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 책의 기획은 이 과정을 관찰하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입장을 견지하는데, 그것은 아이들의 선택과 판단의 과정에서 그들의 ‘의식’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추측하는 것을 기록의 가장 핵심적인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예컨대 치수를 재는 데 신발을 사용하다가 눈금자를 사용하게 된 사이에는 심대한 변화가 있다 가정하고 무엇보다 그 변화가 이 워크숍 안에서 실제로 일어난, 독자들과 공유할만한 중요한 사건이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이 책의 기획자는 관찰과 기록의 임무란 눈에 보이는 사건과 변화를 통해 실제로 이 시간 속에서 가치있게 여길만한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추측하는 일이라 여긴다. 그랬을 때에만 이 출판물이 워크숍에 대한 기록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 시간을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닌다고 말이다. 이러한 기획을 수행하기 위해 편집자는 워크숍의 시작부터 여러 선생님을 관찰자/조력자로 이 과정 안에 끌어들였고 그들은 워크숍과 아이들의 행동, 말을 하나하나 아주 세밀하고 섬세하게 관찰한다.

스테레오 비전의 기록 또한,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기록하기 위해 그 시작 단계부터 적절한 관찰자/조력자를 섭외하고 관찰의 대상을 설정했다. 하지만 이 과제는 당연히 어려운 일이었다. 너무 많은 현실적인 문제들이 과정 중 드러났고 계속해서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선택들을 해 나가야 했다. 관찰자들은 그들이 참여한 과정에서 그 과정의 기록을 위한 개별적인 전술들을 찾아 나가야만 했다. 글쓰기는 그 실재적 경험과 추측을 종합하는 일이었다. 여기서 경험이란 본 것, 들은 것,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 뿐만 아니라 명시적이지 않은 감정들, 감각들, 사변을 포함한다는 뜻이며 이는 엄밀히 말해 쓰기의 주체, 기록의 해석적 주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상기시킨다. 때문에 이 책 스테레오 비전은 프로젝트를 기록하는 책이지만 애초부터 사진적 기록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이 책이 수행하고자 한 기록은 있었음을 증명하는 사진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을 추측하는 글쓰기가 유용한 도구였다.

• 이 책을 만들면서 새벽에 깨어 있을 때의 기분이 종종 기억 나곤 했다. (실제로 새벽에 깨어있어야만 하기도 하지만!) 그리고 편집자는 어쩔 수 없이 이 새벽을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직 아무도 깨지 않은 어슴푸레한 새벽에 하루를 준비하고 모두 잠들고 난 어두컴컴한 새벽에 하루를 정리하는 사람. 어제보다 먼 곳과 내일보다 먼 곳을 동시에 사는 시간이 많다는 걸 외롭지 않게 여긴다면, 그 거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의미있게 여긴다면 편집 일을 하는 건 꽤 만족스러운 일일 것이다.

• 이 책을 만드는 일은 어떤 감각으로 기억되는데, 그건 일종의 오지 탐험 같은 것이다. 주어진 재료를 가지고 책을 만들 때는 책상 위에서의 배치의 감각이 우선적으로 작동하는데, 이 책은 깊은 산 속을 헤매는 기분으로 편집했다. 나무에 긁히든 발목을 접질리든 곤충에 쏘이든 일단 그걸 다 품으며 몸뚱아리를 어디인지 모를 어딘가로 육박해 나가는 그런 감각. 그런 절차의 설계가 재현이 아닌 생성을 가능하게 하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 꼬박 1년에 걸친 작업이었고 그 시간을 마련해준 송고은 큐레이터와 잠실창작스튜디오에, 그 시간을 견뎌준 라이스 브루잉 시스터즈 클럽에 깊은 감사를 전한다. 책을 만드는 일은 진정으로 협업의 과정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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