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Hanbum

Engineering

다른 가치를 위한 장소 만들기

서울문화재단 지역문화팀의 사업에 관한 리뷰 콘텐츠 기획. 로컬 투 서울 아카이브 웹사이트에 게시되었다.

주관 서울문화재단
기획 나선프레스
편집 신예슬, 이한범, 정소영

editorial

다른 가치를 위한 장소 만들기

종종 하나의 특수한 장르처럼 여겨지고 다뤄지지만, 규범적인 구분에서 벗어나 그것이 형성하는 관계의 형식에 관해 숙고해야만 하는 예술들이 있다. 여기서 관계의 형식을 강조하여 말하는 이유는, 그 예술을 각각의 장소로서 이해하자는 제안이다. 장애인 예술, 전통 예술, 어린이 예술 등이 그러한 것이고 지역 예술 또한 마찬가지다. 대개 중심을 형성하는 힘에 의해 밀려나버리는 것들이다. 그곳에는 그곳의 주민들이 있고, 리듬이 있으며, 또한 다른 장소와 맺는 관계 속에서 구심점을 가진다. 우리는 차이가 불러일으키는 정치를 제거하지 않으면서 서로의 장소를 방문하고 다른 장소들과 함께하는 모습을 상상할 필요가 있다.

이 주장의 이면에는 끊임없는 장소 상실에 대한 감각이 있다. 정보는 넘쳐나고 시간을 소비해야 하는 이미지는 어디에나 있지만, 다양한 몸짓을 위한 자리는 더욱 좁아져만 간다. 우리는 큰 중심을 형성하는 소용돌이 안에 있고, 그 역학에 대한 막연한 문제의식은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것 아닌 바깥은 어떻게 상상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숙하다. 혹은 무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중심을 강화하는 움직임과 장소 상실의 위급함을 인지하는 이들의 움직임이 뒤엉킨 긴장과 어수선함은 우리가 늘 목격하는 풍경이다. 바깥을 바라보는 편에 서기 위해서, 여기로부터 한 발 물러나 어떻게 하면 다양한 장소와 장소들의 관계를 다시 가능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서울문화재단 지역문화팀의 사업은 이러한 풍경 한가운데 있다. 이 제도는 경쟁적이고 성과 중심적인 활동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 재생산의 관성에서 비껴나, 여러 장소를 상상하고 다양한 장소가 가능하기를 바라며 예술가와 지역을 지원한다. 하지만 이 비전은 현실적으로 수많은 제약 안에서 수행될 수밖에 없고, 때로는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산출하는 모순이 생기기도 한다. 장소를 구성하고 만들어 나가는 일에는 끊임없이 수많은 이질적인 행위자들 – 새로운 방향으로 곧바로 나아가는 이들과 가던 길을 벗어나 되돌아오는 이들, 혹은 가던 길을 그대로 가는 것에 몰두하는 이들 – 이 개입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과정적 어려움일 것이다. 관건은 아마도, 이 제도 또한 스스로 다양한 이념들의 장소가 되어가는 일일 테다.

지역문화팀 사업을 되돌아보는 이번 기획은, 장소를 만들기 위한 비전 아래 이루어진 것은 무엇이었고 그것의 절차는 어떠했는지, 가시적인 변화와 착오는 또한 무엇이었는지를 바라봄으로써 이 제도적 수행에 관한 생산적인 비판으로 기능하고자 마련되었다. 기획은 크게 두 방향으로 이루어졌는데, 하나는 2021년 지역문화팀에서 기획·운영한 도시문화랩 IN트랙과 OUT트랙 사업에 대한 리뷰다. 자치구 문화재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도시문화랩 IN트랙 사업에는 강북구, 관악구, 광진구, 동대문구, 동작구, 성북구, 양천구, 영등포구, 은평구, 중구가 참여했고, 이전에 같은 형태의 사업에 참여했던 예술가들이 이번에는 관찰자가 되어 현장을 방문하고 글을 썼다. 2021년에 신설된 OUT트랙 사업은 “학교 밖에서”라는 기조를 가진 일종의 교육 프로그램이다. 도시문화랩 OUT트랙 사업은 자치구 문화재단이 아닌, 저마다의 가치와 활동 방식을 추구하는 다섯 개의 예술 단체 아트브릿지, 위누, 여성을 위한 열린 기술랩, 피스트레인,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이 각각의 기획을 마련했다. 공교육과 기존 예술 제도가 돌보지 못하는 틈에서 이들이 어떤 장소를 만들고자 했는지를 프로그램에 대한 리뷰에서 살펴볼 수 있다.

다른 한편, ‘지역문화’라는 것의 현재의 지형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지역’이라는 말에 뒤따르는 복잡한 문제들과 관련 사업의 의미를 살펴보는 열편의 글을 마련했다. 먼저 문화사회학 연구자 성연주, 지역문화팀장 김진환, 플러스마이너스 일도씨의 유다원, 문화예술정책 연구자 장석류가 서울문화재단 지역문화팀의 사업 설계와 방향, 그리고 그 사업의 구체적인 면면들을 집중해서 살핀다. 성연주는 지역문화팀 사업에서의 ‘지역’의 개념이 어떻게 여타의 ‘지역’ 개념과 다른지 세심히 구분하고, 이를 사업 과정에 대한 미시적인 관찰과 분석을 통해 논의하며 어떤 변화를 추동하는 움직임인지를 말한다.
김진환은 복잡하게 굴곡진 자치구 협력사업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풀어내고, 유다원은 양천구 목2동에서 그 장소와 연결된 여러 프로젝트를 해온 경험을 반추한다. 장석류는 서울시에 분포한 공공 문화 공간에 대해 소개한다.

앞의 네 편의 글이 지역문화팀 사업에 집중했다면, 이 밖의 여섯 편의 글은 ‘지역’이라는 키워드를 경유하는 다른 제도, 혹은 제도 바깥의 이야기를 전한다. 재미공작소의 이세미와 콘템포로컬의 윤주희는 공간의 운영자이자 작가로서 지역이 되어가는 과정, 지역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대한 경험을 공유한다. 연출가 김기일은 2019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지역극장 지원사업의 역할과 의의를 논의하며, 구로어린이영화제 기획팀장 황혜연은 자치구에서 어린이라는 주체를 중심에 둔 영화제를 만들어 나가는 기조와 비전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인천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오석근은 언제나 중심을 차지했던 서울에서 지역 개념을 도입하는 것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지역’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관성적인 예술 실천과 지원 제도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게 한다. 음악비평가 성혜인은 제도화된 음악의 바깥이라는 장소에 대해 사유하고, 문화사회학 연구자 박유준은 사업 언어로 쓰인 ‘문화매개’ 개념에 대한 비판과 반성을 촉구한다. 여섯 필자는 ‘지역’과 ‘예술’에 참여하는 방식과 입장은 서로 너무나도 다르지만, ‘지역’이라고 하는 장소를 통해 다양한 가치가 만들어지기 어려운 사회문화적 상황과 조건 속에서 어떻게 다른 가치를 탐색하고 실현할 수 있을지를 묻는다.

이 글들을 기획하며 편집팀이 집중한 주제, 혹은 바라보며 나아가고자 했던 방향은 ‘다른 가치를 위한 장소 만들기’였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장소를 만드는 일은 과정적인 것이고,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다양한 장소는 끊임없는 조정과 협상 그리고 구체적인 노력과 행위를 통해 천천히 가능해질 것이다. 이번 기획은 지역문화팀 사업을 되돌아보기 위해 시작했지만, 이를 위해 반드시 그 바깥의 현장 또한 돌아봐야만 했다. 이는 서로 다른 강도와 결을 가진 실천을 ‘다른 가치를 위한 장소 만들기’라는 프로토콜 안에서 입체적으로 배치하기 위한 것이자, 관련 없어 보이는 여러 움직임을 느슨히 교차시키고 이 교차를 통해 상호적인 배움을 통해 스스로를 점검해보기를 요청하는 일이기도 하다. ‘다른 가치를 위한 장소 만들기’라는 비전은 비단 서울문화재단 지역문화팀만의 숙제나 과업은 아닐 것이다. 다양한 가치와 다양한 장소를 위한 노력이 어떻게 지속될 수 있고 의미 있게 구현될 수 있을지를 더 많은 이들과 함께 고민하게 되기를 바란다. (신예슬, 이한범, 정소영)

contents

도시문화랩 In트랙 리뷰

강북구 (김재현(알렉스)) 마주, 스치는 울림
관악구 (송유림) 리뷰를 위한 짧은 글
광진구 (한혜민) ‘능동적 코스’ 맛보기
동대문구 (배현정) 문을 열면 보이는 세계 = 도시문화LAB IN: 동대문 업글인간 <문을 [ ]>
동작구 (김주희) 멀리서. 비로소 가까이
성북구 (이수현) 남은 것과 나아가야 할 곳
양천구 (문수진) 한층 더, ‘딴딴하게’ - 도시문화 LAB 양천문화재단 [딴딴한 업글인간 Ver. 2]
영등포구 (박현주) 지금까지와 다른 세상을 마주하게 된다면
은평구 (이소) 나의 타운은
중구 (정우연) 공공과 청년예술인의 느슨한 연대, 소설 ‘접는 도시’에서 <접는 도시>로 본 을지로.
오버뷰 (이시마) 존재가 작품이 될 때

도시문화랩 Out트랙 리뷰

아트브릿지 (이버들) 낡은 도시는 자유롭다 – 창신동에서 만난 청년 예술가들
여성을 위한 열린 기술랩 (물고기, 전유진) ‘저항하는 기술’을 돌아보며 나눈 편지 1, 2
위누 (박예진) 소셜 아트프레너(Social Artpreneur)’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피스트레인 (이선철, 김미소, 설동준) 축제라는 사회를 만드는 사람들 – DMZ피스트레인의 ‘페스티벌 소사이어티’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 (김태윤) 오만원 속 공공 공연 시장에 대한 단상
오버뷰 (강민형) 텅 빈 입체적 공간

다른 가치를 위한 장소 만들기: 통합비평 시리즈 2022

오석근 교란과 착취 : 지역에서 지방으로 밀려나는 또 다른 생태계
유다원 새로운 풍경을 만나기 위한 시간
윤주희 ‘지역’이란 말이 피로하신 여러분께
이세미 우리는 어떤 지역 문화를 말하고 있나요?
장석류 우리에게 어떤 공공의 문화공간이 필요할까
황혜연 지역을 뛰어넘는 주체들의 실천 : 서울구로국제어린이영화제를 중심으로
김기일 중심 밖에서 지속하기
박유준(박세희) ‘문화매개자 양성’을 잠시 멈추고 질문하기
성혜인 음악 바깥의 음악을 상상하는 몇 가지 방법
성연주 제도가 포함하지 않는 다양한 가치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