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Hanb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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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포먼스 퍼포먼스

지은이 다이애나 테일러
번역 용선미
편집 이한범
디자인 강문식
펴낸곳 나선프레스
발행일 2021년 12월 23일
크기 170 x 240 mm
면수 360
ISBN 979-11-965400-9-8 03680
가격 20,000원

about

뉴욕대학교 퍼포먼스 연구학과 교수 다이애나 테일러의 퍼포먼스 이론서이다. 이 책은 퍼포먼스를 단지 하나의 예술 형식이나 장르로 여기지 않고, 인간 문명을 형성해 온 운동성이자 특정 사회와 문화를 구성하는 총체적 행위로 다룬다. 저자는 아직은 우리에게 생소한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역사적 사건과 퍼포먼스 작업을 중심으로, 전공자 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 또한 이해하기 쉬운 말로 이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이 책의 핵심적인 질문은 “퍼포먼스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퍼포먼스는 무엇을 하는가?”이다. 퍼포먼스 퍼포먼스는 이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따라 가다 보면, 그렇다면 나를 구성하고 나의 주변에서 작용하는 퍼포먼스는 무엇인지를 묻게 될 것이다.

contents

1장 퍼포먼스를 [프레이밍] 하기 11
2장 퍼포먼스의 역사 85
3장 보는 행위자들 127
4장 퍼포먼스의 새로운 사용법 153
5장 퍼포머티브와 퍼포머티비티 201
6장 퍼포먼스를 통해 알아가기: 시나리오와 시뮬레이션 227
7장 예술행동가: 무엇을 해야 할까? 249
8장 퍼포먼스의 미래(들) 301
9장 퍼포먼스 연구 329

책 속에서

길레르모 고메즈-페냐는 퍼포먼스라는 담론과 형식 안에 줄곧 머물렀다. “나에게 퍼포먼스 예술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날씨와 국경선처럼 추상적인 ‘구역’을 의미한다. 모순, 애매모호함, 역설이 용인되며 심지어 권장되는 장소이다. 우리의 ‘퍼포먼스 나라’는 노마드와 이주자, 잡종과 추방자들에게 온갖 국경을 개방한다.” 그는 퍼포먼스를 단순히 연기나 행위로 여기지 않는다. 실존의 조건이다. 존재론. 그에 따르면 퍼포먼스 예술가와 광인(狂人)의 차이점은 하나뿐이다. 퍼포먼스 예술가에게는 관객이 있고 광인에게는 관객이 없다”

  • 1장 퍼포먼스를 [프레이밍] 하기, 20쪽

하지만 우리는 더 흥미롭고도 강력한 방식으로 이 매체가 작동하는 것을 살펴보고자 한다. 한 장면에서 발생한 특정 행위는 우리의 눈앞에서 사라졌을 뿐이다. 우리는 퍼포먼스를 반복적으로 재연되고 재작동하는, 현재 진행형의 몸짓과 행동의 레퍼토리라고 여길 수 있다. 그 몸짓과 행동을 쉽게 알아차리기 어렵지만 말이다. 수행되고 체현된 실천을 통해 우리가 배우고 대화할 수 있는 이유는 행위 그 자체가 반복을 거듭하기 때문이다. 움직임과 리듬이 바뀌어도 우리는 춤을 춤으로 인식한다. 퍼포먼스는 과거, 현재, 미래에 관한 것이다.

  • 1장 퍼포먼스를 [프레이밍] 하기, 31쪽

퍼포먼스는 하나의 실천이자 인식론이다. 창조적인 행위이자 방법론이다. 기억과 정체성을 전달하는 방식이자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 1장 퍼포먼스를 [프레이밍] 하기, 81쪽

퍼포먼스에 참여하는 방법은 아주 다양하다. 의례에는 입회자가 필요하다. 정치에는 지지자가 필요하다. 재판에는 증인이 필요하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부르주아 연극이 관객에게 각자의 비평적 능력을 (모자, 코트와 함께) 물품 보관소에 두고 오도록 요구한다고 보았다. 군사 독재는 잔혹한 행위와 공포를 통해 우리의 귀를 막고 눈을 멀게 하여 멍청이로 만들어 버린다. 그들은 유약한 개인을 생산하는 것에 독재의 목표를 둔다. 나는 이러한 과정을 퍼셉티사이드라 부른다. 보지 않는 것이 낫다. 침묵하는 것이 낫다. 아우구스토 보알과 같은 이론가들이 주장하였듯이, 서구의 연극은 우리가 수동적으로 관람하게끔 단련시켰다. 미구엘 드 세르반테스는 베드로 주인의 인형극에서 돈키호테가 나무로 만들어진 악당을 공격하는, 삶과 예술을 구분하지 못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통해 웃음을 이끌어낸다. 영국의 시인 사무엘 타일러 콜리지는 예술이 ‘불신을 유예하려는 의지’에 의존한다고 주장한다. 연극에서 관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흉내임을 일시적으로 믿을 때에 비로소 즐거움을 얻게 된다.

  • 3장 보는 행위자들, 135쪽

우리는 성공에 대한 각종 본보기와 가르침이 넘쳐나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 마치 퍼포먼스 입문서나 다름없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승리를 거두고, 유혹하고, 명령하는… 이상화된 우리의 몸을 위하여 세상 모든 것이 상징적으로 확장된 것만 같다. 몸(물론 이제는 너무 지루한 것이 된 여성과 남성의 벗은 몸)은 우리에게 온갖 것을 다 팔기 위해 활용된다. 동시에 이 몸은 우리의 몸과는 꽤 거리가 있는 몸과 환상을 사도록 권유한다. 아우디 광고가 보여주듯 기계의 몸 또한 흥분을 주기 위해 디자인된, 성애화된 새로운 인간의 몸이나 다름없다. 아름다움과 인간 능력에 대한 이상은 사이보그를 만들어 내었다. 생체 공학은 오늘날 엄청난 유행을 타고 있다.

  • 4장 퍼포먼스의 새로운 사용법, 180쪽

주디스 버틀러에 따르면, 퍼포머티비티는 “고유한 ‘행위’보다는 반복과 인용의 실천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 실천으로 담론은 효과를 만들어낸다.” 버틀러에게 성 정체성은 옷을 바꿔 입듯 다른 것을 시도해보는 그런 연극적 상연이나 퍼포먼스가 아니다. 오스틴의 퍼포머티브, 즉 “주체가 이름을 통해 존재하게끔 하는 것” 또한 아니다. 그보다는 규범화된 일련의 행동을 통해 남녀로 구분된 주체를 생산하는 통제 시스템 전반과 이에 대한 응답의 가능성 모두를 의미한다. “퍼포머티비티는 어떤 행동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과정, 행동하기 위한 조건과 가능성 모두를 포함한다. 우리는 이 조건들 없이는 퍼포머티비티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가 막 태어난 아기를 보고 “딸이다!” 라고 외칠 때, 그 아기는 타인이 ‘그녀’를 어떻게 볼지, 그녀가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여겨질지, 어떠한 조건이나 구분으로 인해 ‘배제’될지 혹은 ‘비천한 것’으로 ‘부정’될지 등을 구성하는 담론적 관행에 놓인 상태로 태어난다. 이러한 시스템은 심지어 아기가 태어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도 ‘그녀’를 습격하며 ‘그녀’에게 압박을 가한다.

  • 5장 퍼포머티브와 퍼포머티비티, 214쪽

시나리오는 시나리오가 모델화하려는 ‘타자’보다 시나리오를 구상하는 ‘우리’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때문에 시나리오는 사회 자체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시나리오는 유령, 이미지, (우리의 현재에 출몰하고 또 오래된 드라마를 되살려 재활성화하는) 고정관념 같은 이미 여기 있었던 무언가를 가시적이게끔 만든다. 시나리오는 ‘우리’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참여자, 관객, 증인과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을 시나리오라는 그림 안의 주요한 요소로 고려해야만 한다. 즉, 전달 행위의 일부로서 우리는 ‘거기에 존재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시나리오는 특정 종류의 멀어지기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구경꾼을 프레임 안에 위치시킴으로써 ‘우리’를 윤리, 정치와 얽히도록 한다. 나쁜 시나리오는 퍼셉티사이드이다. 즉 우리 스스로 자신의 눈을 멀게 만든다. 좋은 시나리오는 우리의 인식을 고취하고 좋은 방향으로 플롯을 바꾸는 행동을 하게끔 독려한다.

  • 6장 퍼포먼스를 통해 알아가기: 시나리오와 시뮬레이션, 242쪽

퍼포먼스는 사라지는 것일까 아니면 머무는 것일까? 이 의문은 학계와 예술계를 비롯한 많은 영역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2003년 유네스코의 가입국들은 문화적 관습의 중요성과 취약함을 인식하고 안전한 보호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무형 문화유산 보호 협약을 체결하였다. 일부 사람들은 미래 세대가 ‘세계’ 문화유산의 논리를 이해함으로써 이익을 얻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당시 이 과정에 참여하였고 지침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생명을 ‘구하는’ 것의 복잡성과 모순을 감지하였다. 즉, 어떠한 행위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에만 관심을 둔 채, 그 행위가 실제 인지되고 존재한 순간으로부터 분리되어 다른 순간의 다른 관객을 위해 수행된다는 것의 모순 말이다. 이것이 대체 무엇을 구하는 과정일지 나는 의구심을 품었다. 형태? 내용? 의미? 우리는 누구를 위해 이 유산을 구하고 있는 것일까?

  • 8장 퍼포먼스의 미래(들), 311쪽

퍼포먼스 연구는 연극학, 언어학, 커뮤니케이션학, 인류학, 사회학, 시각 예술 연구로부터 발전했다. 이 학문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퍼포먼스 연구는 각각이 지닌 한계들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나는 퍼포먼스 연구가 정의 가능한 영역이 되기를 거부하고 또 학제가 되기를 거부한다는 점에 있어서 탈학제적이라고 생각한다. 퍼포먼스 연구는 (영원한) ‘신생’ 영역이다. 퍼포먼스의 규범이 규범을 부수는 것이라면, 퍼포먼스 연구의 규범은 학제적 경계를 부수는 것이다.

  • 9장 퍼포먼스 연구, 341쪽

저자 소개

다이애나 테일러는 뉴욕대학교 퍼포먼스 연구학과 및 스페인어과의 교수이자 아메리카 지역의 퍼포먼스를 연구하고 기록하는 헤미스퍼릭 인스티튜트의 창립자이다.사라지는 행위들(Disappearing Acts, 1997), 아카이브와 레퍼토리: 아메리카 지역에서의 문화적 기억의 수행(The Archive and the Repertoire: Performing Cultural Memory in the Americas, 2003), 지금!(¡Presente!, 2020) 등의 책을 썼다.

번역자 소개

용선미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시각예술 및 퍼포먼스 독립 기획자이다. 뉴욕대학교 티시예술대학 퍼포먼스 연구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고려대학교 미디어 학부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퍼포먼스를 매개로 국내외 예술가 및 기획자들과 협업한다. 링거링거링(인사미술공간, 2020), 직사각형 둘레에서 글쓰기 혹은 움직이기(공동 기획, 플랫폼엘, 2018), 비록 춤일지라도(공동 기획, 코스모40, 2021) 등을 기획하였다.

출판사 서평

퍼포먼스로 가득한 시대를 위한 안내서

유행하는 ‘무슨무슨 챌린지’를 따라 춘 춤을 영상으로 찍어 SNS에 올림으로써 만들어지는 네트워크가 있는가 하면, 미얀마의 여성들은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며 군인들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여자들이 입는 옷을 빨랫줄에 걸어 두었다.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온갖 퍼포먼스로 가득하고 우리는 그것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왜 퍼포먼스 하고, 퍼포먼스를 통해 무엇을 하는 것일까? 혹은, 퍼포먼스는 우리가 무엇을 하도록 할까? 다이애나 테일러의 퍼포먼스 퍼포먼스는 그 어느 때보다도 퍼포먼스로 가득한,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퍼포먼스가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다른 한편으로는 동시에 퍼포먼스가 완전히 잊히고 있는) 오늘날 우리가 세계의 한 부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도구적 이론서이다. 세계를 퍼포먼스로서 바라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인식론으로서의 퍼포먼스, 퍼포먼스의 존재론

퍼포먼스를 일종의 인식론으로 여기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퍼포먼스가 그저 무대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나 현상이 아니라 그것이 얼마나 우리의 삶과 문화, 사회와 정치 안에 깊숙하게 자리잡은 작용인지를 일깨워준다. 즉, 우리가 어떻게 퍼포먼스를 통해서 무언가를 알게 되는지를 알려준다. 퍼포먼스를 통해 인간 문명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그리고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권력이 어떻게 미시적으로 복잡하게 작동하는지를 광범위하게 통찰하는 이 책을 읽고 나면, 독자는 일상 생활에서 수행하는 사사로운 말과 행동들부터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억압적 정치 체제에 이르기까지 세계를 퍼포먼스로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말과 행위들, 비가시적이지만 엄연한 힘의 작용, 관계의 양태에 대해 비로소 비판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퍼포먼스는 타자에게 영향을 주고 타자와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모든 행위의 총체이며 인식론으로서의 퍼포먼스는 이러한 행위를 발견하고 이해하는 방법이다. 이 인식을 통해 우리는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몸과 몸짓에서 벗어나 다른 몸과 몸짓을 상상하고 수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 수 있을 것이다. 퍼포먼스 이론의 유용함은 자연스럽고 절대적인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관습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이에 개입할 수 있는 틈을 발견하도록 한다는 것에 있다.

퍼포먼스 퍼포먼스는 또한 퍼포먼스의 독특한 존재론에 대해서도 다룬다. 테일러가 말하는 퍼포먼스는 가시적인 행위나 발화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퍼포먼스는 언제나 상황과 맥락, 테일러의 표현을 빌자면 ‘프레임’에 따라 그 의미와 효과가 변화한다. 때문에 테일러에게 퍼포먼스란 행위를 둘러싼 가시적이고 비가시적인 상황의 총체성을 뜻한다. 은밀하게 수행되고 실현되는 폭력의 과정과 그것이 가능한 조건을 가시화하고 이에 저항하는 과테말라의 퍼포먼스 작가 레지나 호세 갈린도를 이 책의 7장에서 중요하게 논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행위를 둘러싼 상호 작용 시스템의 총체성으로까지 확장하여 퍼포먼스를 사유할 때, 비로소 퍼포먼스라는 존재 방식의 실체가 드러난다. 달리 말하면, 퍼포먼스의 존재론을 이해하는 과정은 비가시적인 움직임과 그 작용 전체를 인지하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한편, 퍼포먼스가 일시적이고 단명한다는, 그러니까 아주 잠깐 동안만 존재하고 사라지는 매체라고 여기는 통념에서 한 발 벗어나 다이애나 테일러는 퍼포먼스가 무한히 반복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삶을 살아간다고 말한다. 아니 오히려 반복의 가능성을 통해서만 퍼포먼스는 퍼포먼스가 된다. ‘반복된 행위’가 바로 퍼포먼스이며, 인류는 이 반복된 퍼포먼스를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 전수하고, 공동체를 구성해 왔다는 것이다. 반복은 다이애나 테일러의 퍼포먼스 이론의 핵심이며, 주체를 형성하고 구성하는 중요한 수행성이다. 반복된 행위를 관찰한다면 우리는 우리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다이애나 테일러는 퍼포먼스의 반복이 어떻게 한 사회의 기억과 문화를 여러 세대에 걸쳐서 전승하는지를 ‘레퍼토리’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재현과 인쇄 문화가 오늘날 우리의 앎을 구축하는 가장 강한 이데올로기 장치라면, 퍼포먼스는 그와는 다른 앎의 생성 체계다. 여기서 테일러가 강조하는 것은 비판적 반복이다. 즉 그저 주어진 것을 다시 반복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다 적극적인 변화의 도구로서 이용하자는 것이다. “퍼포먼스의 퍼포먼스”. 알아채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언제나 어떤 퍼포먼스에 참여하고 있음을 이해하고 새로운 퍼포먼스를 상상할 때에만 기존의 세계는 변한다.

라틴 아메리카의 퍼포먼스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작가들과 퍼포먼스 작업이 아메리카, 특히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다이애나 테일러는 1998년 설립된 헤미스퍼릭 인스티튜의 창립자 중 한 명으로, 이 기관은 아메리카 지역의 퍼포먼스를 연구하고 이에 관해 대화하는 급진적인 장소이다. 테일러는 헤미 인스티튜트 아카이브의 자료와 자신의 학자행동가(activist-academics)로서의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서로 다른 지리적, 문화적, 정치적, 사회적 조건을 가지고 있으며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저자는 퍼포먼스가 근본적으로 얼마나 불안정하고 유동적인지를, 그리고 동시에 경계과 구분을 넘어서는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이론화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이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은 아메리카라는 대상이 아니다. 그보다는 특정 지역의 사회와 문화가 어떻게 그 현실적 조건을 수용하고 또 비판하며 퍼포먼스를 수행하는가 이다. 여기에는 어떤 지역과 장소의 정체성은 퍼포먼스에 의해, 그러니까 끊임없이 움직이고 흐르는 행동들로 구성되고 재구성된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을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우리를 둘러싼 현실적 조건은 무엇이며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수행해야 하고 할 수 있는지를 묻게 한다.

테일러는 이미 연구서 아카이브와 레퍼토리: 아메리카 지역에서의 문화적 기억의 수행(2003)을 통해 아메리카 지역의 문화와 사회를 구성함에 있어서 퍼포먼스가 어떠한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논의한 바 있다. 퍼포먼스 퍼포먼스는 이러한 저자의 평생의 연구와 경험을 간명히 이론화한 정수라고 해도 손색없을 것이다. 세계를 퍼포먼스로서 인지하기를 제안하는 이면에는, 나아가 우리가 보다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움직임을 선택하고 생성해 나가기를 바라는 요청이 있다. 다이애나 테일러에게 퍼포먼스는, 무엇보다도,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editorial no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