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충지: 소문의 곳
about
소문에 대하여
소문은 중심의 언어가 아니라. 주변의 언어다. 경험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합리적 지식은 소문을 지배할 수 있는 권력을 창출하지만, 소문을 완전히 억압할 수 없다. 소문은 우연성에 기반한 듯 하나, 소문의 자리는 구성원들의 오랫동안 잠재된 무의식적 욕망의 투사 공간이다. 그러므로 소문을 살피는 일은 소문에 직·간접적으로 관여되어 있는 사람들의 욕망체계를 읽어 내는 일이 된다. 뿐만 아니라, 소문 속에서 구성되는 사건이 참 거짓의 이분법을 떠나 개연성의 공간에서 형성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것이 구성해 내는 현실 이면에 놓여 있는 또 다른 현실 공간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이 공간을 통해 오히려 현실 공간에서 억압된 금기체계에 다다를 수 있다.
자신이 수집한 정보, 소문, 기사들을 읽으면서 ‘진실’을 구성한다. 거짓, 소문, 소설들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해석적 실천을 통해서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 소문의 대상을 확정하지 않음으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주체적인 이해를 통해서 ‘소문’이 ‘진실’을 찾을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겠지만, 이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소문’은 오히려 개인을 억압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소문을 통제하고 생산하는 기술을 통해 권력과 자본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 누군가의 행위들을 이야기 한다.
거짓말이 쉽게 ‘진리’로 치환되는 것을 경계하고, 주체가 자기 기반의 취약함을 인정하는 것이 타자와의 공감, 그리고 ‘진실’에 이르는 길일지 모른다. 자신이 놓인 자리의 유한함을 인식하는 주체가 다른 자리로 옮겨감으로써 진실에 다가갈 수 있으며, 진실을 알고자 하는 의지를 멈추지 않음으로 타자에 대한 이해에 가까이 갈 수 있다. (김은주, 거제섬도 대표)
가덕도라는 소문: 유동하는 의미 기능 산업 복합체
육지 사람이 보기에 섬은 만만해 보이는 것 같다. 육지는 커다란 땅덩이를 이루고 있고 땅들은 서로 붙어 있고 확장과 이동도 자유롭지만 섬은 땅덩이도 작고 바다로 고립돼 있으니 얕잡아 보이는 것 같다. 그 바다가 사시사철 얌전하다면 좋으련만 바다는 결코 얌전한 법이 없으니 섬과 육지, 섬과 섬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우주가 되는 것이다. 옛날에 보길도를 갔더니 민박집 아저씨가 육지 사람은 제주도 사람을 가리켜 섬놈이라고 하고 제주도 사람은 보길도 사람을 가리켜 섬놈이라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 보길도 사람은 더 작은 섬인 넙도 사람을 가리켜 섬놈이라고 하겠지. 넙도 사람은 더 작은 당사도 사람을 섬놈이라고 부를 것이고, 넙도 사람은 또 예작도 사람을 가리켜 섬놈이라고 할 것이고…. 결국은 다 상대적인 것이다. 호주도 남극도 세계지도에서 보면 섬으로 보인다.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육지가 되기도 하고 섬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육지와 섬은 땅덩이의 크기가 다르다 보니까 상대성이 무시되고 절대적인 권력관계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육지가 섬을 통제하는 일은 있어도 섬이 육지를 통제하는 일은 없다. 옹진군은 백령도, 대청도, 연평도, 덕적도, 영흥도, 자월도, 승봉도, 선갑도 등 수많은 섬들을 거느리고 있건만 옹진군청은 그 어느 섬에도 속하지 않고 인천시 미추홀구 용현동에 있다. 섬이 육지에게 관할권을 넘긴 모양새라고 해야 할까. 하여간 육지가 보기에 섬은 만만해 보이는 것 같다. 그래서 섬은 개조의 대상으로 취급된다. 남해안의 섬들을 잇는 도로와 다리들이 계속 놓여 전남 신안군의 암태도, 자은도, 임자도, 압해도, 증도 등의 섬들이 다리가 놓여 ‘육지’가 됐다. 진도와 남해도가 육지가 된 것은 더 옛날의 일이다. 육지에서 보길도를 거쳐 제주도를 잇는 해저도로를 건설한다는 얘기가 잠깐 있었으나 쑥 들어간 것 같다. 아마 예산상의 문제였을 것이다. 87킬로미터 쯤 되는 거리를 바다 밑으로 터널을 뚫어서 잇는 것은 아무리 섬이 개조의 대상이라고 해도 도를 넘는 일이었을 것이다.
가덕도도 그런 섬이다. 행정구역상 위치는 부산광역시 강서구이건만 도시라기 보다는 시골에 있는 섬이다. 가덕도동 행정복지센터가 있는 강서동선지구가 좀 도시적인 느낌이 드는 길거리고 나머지는 전형적인 어촌 풍경이다. 그러나 21세기 들어서 가덕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으니, 이제 가덕도는 한낱 어촌섬이 아니다. 2006년에 개장한 부산 신항만 남측 부두가 가덕도의 북쪽 땅에 들어서서 섬의 모양이 왕창 바뀌어 버렸다. 부산 신항이 가덕도의 일부가 아니라 가덕도가 부산 신항을 위해 존재하는 섬처럼 보일 정도로 지형이 바뀌어 버렸다. 땅만 바뀐게 아니라 바다도 바뀌었다. 들망어업이라고 불리던 전통적인 어업방식으로 숭어를 잡던 바다에는 새로운 물길이 생겼다. 부산 신항만이 생기면서 거대한 컨테이너선들이 가덕도 앞바다의 수로를 이용하게 됐으니 그게 가덕수도다. 가덕수도는 부산 신항만 아니라 마산항, 진해해군기지, 삼성중공업, STX조선, 성동조선 등으로 입출항하는 모든 선박이 통과하는 길목이라 무척이나 바쁜 곳이다. 한적한 시골마을 앞에 갑자기 테헤란로 만한 대로가 뚫린 셈이다.
섬을 둘러싼 물리적인 변화는 가덕도를 유동하는 의미복합체로 만들어놨다. 가덕도는 거가대교가 뚫리면서 거제도와 부산을 잇는 침매터널의 한쪽 이름이 됐고(거가대교의 가가 가덕도의 가다), 부산 엑스포 유치노력과 맞물려 부산 시민들의 소망이 한데 모인 염원의 장소가 됐다. 가덕도가 본격적인 유동적 의미복합체가 된 것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동남권 신공항에 대한 얘기가 정치권에서 나오면서 가덕도는 정치인들의 입장에 따라 이리저리 팔이 이끌려저 마구마구 다른 위치로 편입됐었다. 그러면서 가덕도는 무성한 소문의 장소가 됐다.
2007년 건설교통부가 동남권 신공항이라는 이름을 처음 확정했다. 그때 신공항 후보지로 가덕도와 밀양이 대립하게 됐는데 이는 사실상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들 사이의 대립이었다. 공항의 명칭도 가덕도를 지지하는 측은 동남권 신공항을, 밀양시를 지지하는 측은 이명박 정부 당시에는 영남권 신공항, 박근혜가 대통령 후보이던 시절에는 남부권 신공항으로 불렀다.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는 다시 동남권 신공항 또는 동남권 관문공항이라는 명칭을 주로 썼고 언론의 기사 역시 시기별로 또는 신문사가 위치한 지역별로 명칭이 갈렸으니, 가덕도는 그 와중에 하늘에 둥둥 뜬 구름 마냥 정처 없이 이리로 갔다가 저리로 갔다가 마구 끌려다니는 신세가 됐다.
소문은 논란과 뒤섞이고, 논란은 정치적 입장과 뒤섞여서 신공항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있는 것인지 조차 애매해 졌다. 결국 밀양, 김해, 가덕도 3자가 신공항 후보지로 떠올랐고 각 지역은 안전문제, 접근성문제, 소음문제 등 다 나름의 이유들을 들어 자기 지역에 신공항이 들어서야 한다고 주장하며 팽팽한 대립을 벌여 왔다. 어디서부터 소문이고 어디까지가 실체인지도 불확실해 질 만큼 문제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고 논란도 커져갔다. 엄청난 우여곡절 끝에 2021년 국회 본회의에서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되면서 김해신공항 건설은 백지화되고 가덕도신공항 건설이 결정되었다. 결국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은 2021년 9월 17일부터 시행되게 되어 소문과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간의 논란의 모양새는 영남권에 살지 않는 사람이 봤을 때는 멀리서 펼쳐지는 한편의 희비극을 보는 것 같았다. 동남권 신공항 건설이라는 문제는 행정부가 정책적으로 결정할 사안이었다. 그래서 김해신공항 건설을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고 신공항 사업이 15년 동안이나 표류하자 입법부인 국회가 나서서 특별법을 제정하여 논란에 쐐기를 박게 됐는데 이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굉장히 이례적인 사례라고 한다.
가덕도에 신공항을 짓는 특별법이 제정돼서 논란과 소문이 잠재워 졌는가? 이제는 공항의 건설방식을 두고 제2라운드가 시작됐다. 부산시의 안과 국토교통부의 안이 대립하면서 또 무성한 논란과 소문을 낳고 있다. 부산시는 12.8조원의 예산을 들여 185만㎡의 바다를 매립하여 3500m길이의 활주로 한 개를 짓는 방안을, 국토교통부는 그것으로는 부족하다며 18.6조원을 들여 290만㎡에 3500m의 활주로 두 개를 짓는 안을 제시하고 있다. 심지어 28.6조원을 들여 575만㎡의 바다를 매립하여 군공항까지 유치하는 계획도 마련하고 있다. 거기다 부산엑스포 유치좌절이라는 변수까지 합해지면 도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팩트이고 소문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어쨌든 부산시의 입장에서는 가덕도 신공항은 단순히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활주로와 계류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부산시에게 신공항은 훨씬 더 거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부산시는 가덕도신공항 중심으로 부산의 산업구조를 재편할 큰 그림도 그리고 있다. 2023년 기준 서부산권에는 14개 산단이 집적해 있으나, 성장성이 낮은 산업에 편중돼 새로운 성장에 한계가 있다. 1980년대와 90년대 초 두 번의 산업구조 전환 실패를 겪은 부산이 남부권 클러스터의 중심으로 가덕도신공항을 기대하는 이유다. 부산시는 가덕도신공항이 전후방 산업 파급효과가 큰 경제활동의 거점으로 발전할 것으로 보고, 공항을 기반으로 하는 신성장산업을 육성하고, 지역경제를 견인할 권역별 클러스터를 조성할 계획이다. 그 첫걸음으로 가덕도신공항 개항 시기에 맞춰 배후 지역에 공항복합도시를 조성하고, 개발 지역 전체를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할 계획이다.” 이쯤 되면 가덕도 신공항은 단순히 공항이 아니라 도시발전의 염원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거대한 성황당이나 불상 같은 것이다.
이 모든 소문과 헛바람이 영남권이 아닌 다른 지역에 앉아서 인터넷으로 기사를 검색하기 때문에 생기는 거라고 하고 싶다. 그래서 가덕도에 직접 가서 소문인지 팩트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 말도 들어보고, 물고기들 말도 들어보고, 바람소리도 들어보고, 파도소리도 들어보고 전파의 소리도 들어보면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모두가 다 소문을 말한다면 그게 진실 아닌가? 아마 가덕도 자체가 소문인지도 모른다. 신라 시대 쯤에 가라앉아 버린 섬인데 소문으로 다시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이영준)
composition

물결노이즈

Float-red-01, Float-red-02, Float-red-03, Float-red-04

Float-green-01, Float-green-02, Float-green-03, Float-green-04

Float-purple-01, Float-purple-02, Float-purple-03

K-2214
K-2154

가덕도라는 소문


- 혼합매체, 가변크기, 부산현대미술관 커미션.
흔히 실체가 없이 떠도는 말을 소문이라고 한다. 가덕도를 실제로 가보기 전에 많은 소문들을 들었었다. 신공항이 생긴다더라, 어떤 사람은 찬성하고 어떤 사람은 반대 한다더라, 공항을 만들면 활주로 방향은 동쪽으로 한다더라 남쪽으로 한다더라 등 소문이 무성했던 터라 실제로 가보면 소문의 실체를 확인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었다. 실제로 가본 가덕도에는 소문은 없고 세찬 바닷바람 소리만 들렸다.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니 다른 소리들도 들렸다. 굴 까는 아주머니들의 잡담 소리, 어두운 새벽 낚싯배와 바지들이 부딪히며 나는 소리, 가덕수도 앞을 지나는 컨테이너선이 울리는 기적 소리, 어선의 엔진 소리 등 소문보다 훨씬 실체가 있는 다양한 소리들이 들렸다. 그게 가덕도의 현재이자 현존이었다. 소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소문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거지만 소리는 사물들이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분명한 실체가 있다. 결국 그 소리들이 가덕도였다. 다른 섬에 가도 비슷한 소리는 들을 수 있다. 다른 섬에서도 굴 까는 아주머니들은 잡담을 할 것이고 낚싯배는 바지와 부딪힐 것이고 그 앞으로 컨테이너선이 다닐 것이고 어선은 엔진소리를 낼 것이다. 그러나 가덕도의 소리는 가덕도의 인문지리적 지형과 과거에서 미래를 향해 가는 시간의 역사가 한데 얽힌 것이기 때문에 가덕도에서만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가덕도의 소리에는 가덕도만의 파장이 있다. 소리의 종류는 같아도 파장이 다른 것이다. (이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