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Hanbum

Talking

서울시립미술관과 젊은 미술가들

SeMA 전시 아카이브 1988-2016(서울시립미술관, 2017) 연계 프로그램

curatorial

서울시립미술관은 2000년대 중반부터 젊은 미술가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십여 년에 걸친 그 역사는 미술 제도가 젊은 미술가들을 바라보는 관점과 척도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보여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서울시립미술관과 젊은 미술가들은 양쪽 모두 행정 제도와 미술 제도 사이에서 조각되는 행위 주체들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서울시립미술관은 서울시 산하 기관이자 미술관 네트워크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젊은 미술가들은 행정적으로 관리되는 서울 (또는 경기도) 주민이자 제도화된 미술 교육의 대상으로서, 제각기 미술을 수행하는 위치에 선다.

지난 수 년간 젊은 미술가들이 자율적 활동 영역을 구성하려는 시도는 자율성의 막연한 환상이 아니라 이 같은 구체적인 다중적 배치 속에서 이루어졌다. 제도와의 단절, 대안적 시스템 구성의 시도, 제도와의 교섭, 그로부터의 호명과 포섭, 그리고 다시 탈출 또는 퇴출이 반복될 때, 이 모든 것은 개개인의 역량과 특성이 발현된 것이 아니라 차라리 제도적 조건이 직접적으로 표현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미술은 어떻게 주어진 상황을 드러내 보이는 것을 넘어 그 상황을 뚫고 나갈 수 있을까, 그리고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술을 양성할 수 있는 제도는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까. 이 토크는 우리가 아직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이야기 해보는 자리다.
(윤원화)

패널 박현정(반지하/스튜디오 파이 공동운영자), 이한범(오큘로 편집자)
일시 2017년 2월 10일 금요일 오후 4시
장소 서소문본관 3층 프로젝트 갤러리

 

script

‘서울시립미술관과 젊은 미술가들’ 이라는 주제는 말 그대로 이 두 주체간의 역학관계에 대해 생각해보는 일인 것 같습니다. 이를 파악하기 위한 여러 길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윤원화 선생님께서는 상급조직인 서울시의 행정정책에 종속된 것으로서의 시립미술관, 그리고 2000년대 이후 젊은 미술가들로 일컬어졌던 어떤 연속된 씬이 속한 ‘한국 미술계’라는 범주가 교차되고 갈등을 일으키는 지점에 대해 말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읽기에는 ‘서울시립미술관(의 바깥)과 젊은 미술가들(의 바깥)’에 대한 이야기로 들립니다. 이는 논리적으로도 맞는 것이고, 두 주체의 관계에서 당연히 고려해야 할 조건들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방식이 드러내 주는 풍경이 있겠습니다만, 역으로 드러내주지 못하는 어떤 구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행정 정책과는 독립적인 서울시립미술관의 구체적인 미션의 성격, 그리고 우리가 상상적으로 구획하는 ‘미술계’와 ‘젊은 미술가’들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미술 같은 것들이죠. 제도의 세력과 (젊은)미술의 세력 구도로 접근을 하게 되면 미술 현장은 언제나 종속과 패배의 널뛰기 위에 있는 듯 보입니다. 혹은 자리 지키기와 저항하기, 대립과 갈등의 역사이거나, 인큐베이팅의 심사자와 양육자가 될 뿐이죠. 저는 이 두 주체가 마주치는 자리보다 서로 만나지 않는 지점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오히려 이들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미술관과 미술가 그리고 작품 세 주체는 서로가 서로를 최종의 목적에 두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는 순간 소요되는 것이 아닌 소비되기 위한 무언가가 되겠죠. 저는 제도와 현장은 어긋나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일심동체가 되어서 발맞춰 가는게 진정 좋은 일일까요? 저는 그건 일종의 가짜 평화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어긋남이 첨예한 대립관계라는 건 절대 아닙니다. 독립적이라는 말이죠. 서로 다른 욕망이 휘휘 나아가는 와중에 교차되는 어느 순간이 생길 수는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 둘의 문제가 심각하게 다루어져야 한다거나 서로가 모종의 역할을 도모해야 한다는 논의 자체는 사실 각자가 홀로 우뚝 서서 제 기능을 수행하기에는 자생력이 낮다는 사실을 방증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술 현장에서 이 자생성의 문제는 너무도 중요한 것이었죠. 대안공간부터 시작해서 실질적인 생존의 문제와 예술노동의 대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고, 신생공간이라는 자기조직체들을 만드는 일련의 힘이 있었습니다. 이 자생성에는 무수히 많은 욕망이 뒤섞여 있을 겁니다. 작업 자체에 대한 욕망, 반제도적 욕망, 미술시장을 향한 욕망, 문화 권력을 향한 욕망, 미술가 정체성에의 욕망, 유희의 욕망, 생존에의 욕망…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을 겁니다. 저는 이 욕망들이 뒤섞여 있는 상태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더 들끓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이 욕망이 특정한 방식으로 구현됨으로써 물리적인 체계와 독립적인 사건이 발생하는 거니까요. 그리고 목적지는 제도가 아니라 갈 데까지 가보고 스스로 소멸하는 것입니다. 어떤 정치적 올바름의 의미를 획득하는 게 아니라요. 저는 그런 것이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이걸 수평적인 에너지라고 해둡시다.

그렇다면 미술관의 자생성은 무엇일까요? 미술가의 자생성이 시급하게 요청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 생각에는 미술관의 자생성이 더 중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건 뭐 너무도 많은 견해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미술관이 미술을 다루는 제도화된 문화주체, 지식생산주체라는 점에서 분명 고유한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미술과 대중의 영역을 구분하고 예술만의 상아탑을 세우라는 말이 아닙니다. 미술관이 미술관만의 픽션을 가져야한다는 말입니다. 제가 존중하는 모델은 최근 번역되어 나오기도 했던 클레어비숍의 래디컬 뮤지엄에 소개된 반 아베 미술관입니다. 찰스 에셔 휘하 반아베의 중점적인 장기 프로젝트는 주제적이고 담론적인 기획전시가 아니라 소장품의 연구와 실험, 그리고 그것의 매개를 통해 미술관 자체를 역사서술자로 위치시키는 것입니다. 역사의 재배치가 전시로 만들어지고, 교육의 내용이 되고, 향유 가능한 문화가 되는 모델이죠. 전시, 교육, 문화가 도달해야 할 목적이 되는게 아니라 자기 픽션을 구현하는 수단이 되는 겁니다. 이것은 수직적인 힘을 수평적으로 재배치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수직적인 힘을 수평적으로 재배치하는 것을 일종의 번역의 방법론이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굳이 소장품에 한정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미술의 현장, 즉 아까 말했던 수평적 힘 또한 번역의 대상이 됩니다. 여기서 두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번역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거죠. 필요성을 느끼느냐 안 느끼느냐의 문제입니다.(무조건 해야된다는 강박 또한 비정상인거 같아요) 번역이라는 것이 필연적으로 무언가를 상실시킨다 하더라도, 만약 자기 픽션이 있을 때, 즉 어떤 가치의 관점이 있을 때에는 번역의 행위는 상실을 무릅쓰고라도 다른 결을 냅니다. 자기 픽션이 없을 때는, 번역의 행위는 그저 자리 이동이 됩니다.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쓰이는 연료일 뿐이겠죠. 서울바벨과 지금 현재의 90년대 전시가 그러한 전형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단지 단일 전시의 기획이 부진하기 때문 만이라고 얘기할 수 없을 겁니다. 구조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전시의 측면에서, 미술의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가장 손쉬운 방식이 저는 주제, 담론 중심의 기획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그물과도 같은 것이어서, 던지면 무언가는 반드시 걸려 올라오니까요. 그리고 최선이 아니더라도 차선의 것들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필연적으로 얽힌 듯 보이지만 필연적인 관계가 아닌 거죠. 그리고 이 주제중심, 담론중심의 기획 중에서도 가장 말도 안되는 게 나이에 따른 프레이밍입니다. 문제의식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사회보장제도처럼 이미 계층을 구분해 놓고 전시의 기회를 준다는 게 이상합니다. 이 기획이 성공하려면 그것이 말이 되게끔 하는 어마어마한 근거가 덧붙여져야 합니다. 그건 연구의 영역이고, 미술관이 당연히 수행해야 할 역할이기도 하죠. 그러나 한국의 여건에서 이를 수행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행정구조상의 문제나 예산, 인력 등의 문제가 클 것이기 때문에 미술관을 비난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서울시립미술관의 미션 자체가 “큐레토리얼”을 지향하는 한, 그것은 결국 힘의 번역이 아니라 모종의 힘의 이동을 추구한다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모든 전시가 그랬다는 것은 아닙니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지난 몇 년간 가장 동시대적이고 잘 운영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분명 이만한 곳이 있었나 싶기도 하지만, 저의 관점에서는 그리 만족스럽지 않은 이유입니다. 미술관의 기획이 어떤 에너지의 파생으로 나아갔는지는 잘 가늠하기 힘듭니다. ‘그 전시 좋았어’ 라는 평가는 사실 페티쉬이죠. 시립미술관 2층 도서관에 가면 거의 모든 전시의 도록이 두껍게 제작되어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왜 박제된 기념비처럼 보일까요. 여러 전시를 통해 작가들의 근육을 키워주긴 했는데, 작업 근육이 아니라 진짜 몸의 근육을 키워줬을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서울 바벨전을 보고 하나 느꼈던 것은, 잘했다 잘못했다 좋았다 나빴다 하는 판단 이전에 관습적인 미술관이 현장의 미술 앞에서 너무 무력해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부분이 어찌 보면 윤원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컨템포러리의 무력함과도 맞닿겠군요) 그럼에도 또 놀랐던 것은, 이젠 너무도 그 힘의 이동을 능숙하고 재빠르게 수행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특정하게 언어화 한 것도 아니에요. 어떤 토픽도 던지지 않아놓고는 제도화만 해버렸죠. 결과적으로 그 시공간의 에너지가 둥둥 떠다녀버리게 되었습니다. 힘의 번역이 매우 요구되는 사안이었는데 아쉬운 일이었습니다. 윤원화 선생님께서 미술제도란 미술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총체적 배치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이 지점에서 이제 미술제도가 미술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총체적 배치의 능력을 거의 상실했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 일반적인 현상이죠. 아마도예술공간에서 했던 비 사이키델릭 전이나 국제갤러리에서의 유명한 무명 등등의 세대론 기반의 전시들은 시대적 감수성 이외에 그 어떤 미술의 가시성도 확보해주지 못했습니다. 제가 오큘로라는 비평잡지를 동료들과 함께 하게 된 것은 아주 단순한 의문에서였습니다. 분명히 좋다고 보여주는 것 같은데 왜 좋은지 혹은 이게 뭔지에 대해서 제대로 말해주지 않는 겁니다. 알아먹지 못할 수사들만 가득하고, 설득도 안되었죠. 그런데도 미술계의 시스템은 짱짱하게 잘 돌아가더군요. 모두가 입만 뻥긋거리면서 대화는 하지 않는 것 같았는데도요.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돌아가는 시스템의 경계 언저리에, 분명 좋다고 느껴지는데 비가시적인 작업들이 보였습니다. 시스템이 소화하지 못하는 꺼슬꺼슬한게 있다고 느꼈죠. 이런 종류의 것들이 앞서 말한, 제도와 현장이 아무리 잘 맞아떨어지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잔여로 남을 수 밖에 없는 영역입니다. 점점 그런 게 많아지고 있어요. 그렇다면 아주 단순하게, 왜 좋은지 이게 뭔지에 대해서 직접 열심히 말해보자고 해서 만든 게 오큘로라는 잡지이고 그런 불만이라거나 욕구 같은 것들이 보편적으로 잠재되어 있었는지 계속해서 새로운 잡지들이 발행되고 있습니다.

이것들이 의미하는 바는 제도가 그만큼 덜 유연하다는 겁니다. 현장에서 무슨 일이 있어나고 있고 그런 최신의 것을 캐스팅하는 것 이외에는 대응의 수단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지금의 현장의 것들에 반응할 수 있는 유연한 변형이 필요합니다. 미술관의 방법론이 너무나도 중요해지는 것이죠. 이 말은 전적으로 미술관을 위한 말입니다. 미술관이 유연해지는 건 미술관의 생존과 결부된 문제지 미술적인 활동들의 생존을 위한 게 아니에요. 그것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제가 재작년에 학부를 마치면서 쓴 논문의 주제가 퍼포먼스와 미술관의 관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전통적인 박물관식 미술관 모델에서 퍼포먼스는 제대로 소화될 수 없는 형식인데, 몇몇의 중요한 제도들이 스스로의 경직성에 대해 자각하고 스스로의 체형을 바꾸어 나가는 사례를 꼽았었습니다. 그리하여 오히려 퍼포먼스가 제도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얘기했구요. 만약 미술관이 현장과 끊임없이 동기화되길 바란다면, 이제 그 임무는 자연스럽게 주어지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미술관이 넘어서야 할 어떤 숙명 같은 것이 되었습니다. 그런 움직임을 보이는 제도는 아직 우리나라에 단 한곳도 없어 보입니다.

경직성은 현장에도 있습니다. 해외에는 아티스트런 스페이스나, 자기 조직화된 집단, 대안공간 등에 대한 연구가 많습니다. 연구들은 아주 진지하게 그 힘들을 다룹니다. 젊은 미술이나 새로운 미술 이런 수사로 퉁치는게 아니라 아주 섬세하게 어떤 활동을 했고 그게 어떤 지형 안에 있었는지, 그게 어떤 의미였는지에 대해 말합니다. 그런 것들을 보고 있으면, 미술이 가능한 장소가 사실은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작품만이 미술의 결과물이 아니고, 미술관의 전시장만이 미술의 자리가 아니라는거죠. 아카이브를 만들 수도 있고, 도서관이나 서점을 세울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움직임이 있어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다지 진지하게 연구되지도 않고 이해도 협소하기에 자꾸만 미술이 미술관과 엮여 들어가는 관성이 생긴다고 봅니다. 혹은 그 자기 조직화의 서사가 불명확해서 확신이 안서는 것일 수도 있겠구요. 앞서 미술관이 자기 픽션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는데, 사실 이건 모든 주체들에게 해당되는 말일거에요. 미술가들에게 자기 픽션을 가진다는 것은, 결국 작품을 만들고 유통시키는 모든 과정의 자기 자리를 찾고 방법을 고안한다는 말일겁니다. 저의 고민이기도 하고요. 정말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러나 확실한건, 이러한 상상의 방식에 제도가 필수적인건 아니라는거죠.

자신의 자리를 찾음으로써 경쟁적 협력자의 상태가 되는 것이 결국은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 관계입니다. 상보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결국은 서로를 모순에 빠뜨리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질문에 “다른 관계의 유형이 있을까요?” 라고 질문을 하셨는데요, 저는 아주 단순하게 서로가 서로에게 무심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앞 부분에 말씀하신 것처럼, 제도가 유일한 대안이 될 때, 그것이 절실해질 때 관습적인 관계가 고착화되는 것 같습니다. (어느쪽이 그렇게 생각하든)제도가 지원을 해줘야만 작가들이 자리를 잡는다는 태도는 너무 뭐랄까…너무 이상한 구석이 있습니다. 제가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한다고 욕먹을수도 있을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