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Hanbum

Talking

Show and Tell 1

상영중(인사미술공간, 2017) 라운드테이블

영상예술을 전시할 때 고려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 한다. 영상예술은 제시하는 그 성격과 방식에 따라 상영관과 전시장으로 분리되어 보여지곤 한다. 이 둘의 서로 다른 환경과 그에 맞는 작품 제작 방식, 기획, 설치, 관람성에 대해 논의해 본다. 나아가 1990년대 논의되기 시작한 영상예술의 공간성에 대한 담론이 20년이 흐른 지금에는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는지 점검해 본다

주제 전시 이전의 영상예술 기획, 설치, 관객성
패널 이한범 (오큘로 편집자) 김신재(리서처)
일시 2017년 6월 10일 (토) 오후 5시
진행 송지현 (상영중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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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현: 안녕하세요? 오늘은 상영중 쇼앤텔에 첫 번째시간입니다. 쇼앤텔은 이번 전시 라운드 테이블을 이야기하며, 이 프로그램은 총 두 번으로 나누어 진행되며, 영상예술과 관련해서 글을 쓰기도 하고 몇몇 프로젝트를 진행, 기획하고 계신 이한범, 김신재씨와 함께 합니다. 오늘은 영상 예술 제시 방법에 대해서 얘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이한범: 처음 송지현 기획자님에게 연락을 받았던 게 “영상예술을 다루는 대표적인 공간인 전시장과 영화관, 두 공간의 장소성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라고 제안을 주셨어요. 여러 번의 미팅을 통해 저희가 공통적으로 의견이 모아진 지점은 전시장과 영화관을 구분한다는 것이 어떤 지점에서 정확하게 의미가 발생하고, 어떤 지점에서 문제가 되는지에 대해서 모호하다는 입장을 가졌어요. 이론적인 측면에서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만 봐도 굉장히 모호한 지점이거든요. 이론적인 차원에서 봐도 ‘전시장이 분산된 경험을 제공 한다’ 혹은 ‘영화관은 몰입되는 장소다’로 구분을 하는 것 자체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거 같다고 얘기를 했었거든요. 저희는 연구가보다는 활동가에 가깝기 때문에 너무 이론적이거나 담론적인 차원으로 이 주제를 다루지 말고, 최근에 우리가 겪고, 경험했던 영상 작업과 전시를 기준으로 ‘영상작업이 제시 공간에서 어떻게 구현, 조성되고 있고, 우리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등에 관한 현실적인 차원의 얘기를 하기로 합의를 봤습니다. 그래서 저 같은 사람은 미술 베이스로 영상을 바라보는 입장이고, 신재씨 같은 경우는 영화에 관심이 많으시니 각각의 입장과 관점으로 이야기를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일단 이 프로그램이 상영중이라는 전시의 연계 프로그램이니 일단 기획자 분께서 전체 전시를 기획하시고 구조화한 문제의식 등에 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송지현: 이번 전시가 영상예술과 관련된 전시고요. 작년에 제가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에서 연구한 내용이 이어지는 전시입니다. 영상 예술의 담론은 아무래도 외국의 영화사와 미술사에 많이 기대어져 있어요, 특히 영상예술 전시성에 대한 논의는 1990년대 즈음 서구에서 활발하게 논의가 되었었죠. 대학원에서 이 부분에 대해 공부하면서 저 스스로 ‘지금 국내 예술에서 영상예술은 어떻게 흘러가고 어떤 흐름과 어떻게 연결 지어 이야기 할 수 있을까’하는 질문이 들었어요. 생각보다 국내는 미술영상과 실험영화 장르의 벽이 두껍다고 느껴졌거든요. 저는 장르 구분하지 않고 국내 영상예술 작가들의 작품과 큐레토리얼 실천을 소개하고 싶었어요, 이 부분이 전시 기획의 첫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전시에서는 다른 사회, 문화적 이슈를 드러내는 것 보다 영상예술이라는 매체를 고민하는 작품들을 선정해서 보여주는 것이 좋을거라 생각했어요. 주로 제 관심사이기도 하구요,

이한범: 요새 저는 ‘과연 영상에서의 이미지란 뭘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는데요. 예를 들어 지하철에서 핸드폰으로 넷-플릭스(Netflix)를 보다가 집에 돌아와서 다시 컴퓨터를 켜면 제가 봤던 지점에서부터 바로 알아서 재생할 수 있거든요. 그게 순간 이상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내 손안의 모바일 디바이스에서 이미지와 컴퓨터화면으로 보는 이미지가 물적 토대는 완전히 다른데 같은 이미지라고 느껴지는. 과연 이 이미지는 물성을 지닌 어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회화, 텍스트 등과 다른 차원의 것이 아닌가? 유령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미지가 실체가 없고 물적 토대를 옮겨 다니는 어떤 형태, 가상의 상태 같다는 고민이 들었어요. 그렇게 본다면 ‘영상 이미지가 기존의 이미지 방식과 달라져야하지 않나’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역사적으로 몇 가지의 작업들이 떠올랐는데요. 1964년 백남준의 필름을 위한 선 을 보면 필름이 무슨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필름 그 자체를 필름 프로젝터에 넣고 돌리면서, 그 안에 있는 스크래치와 먼지 등이 보이는 작업이거든요. 다시 얘기하면, 가상의 상태의 이미지를 많이 제거했을 때 드러나는 영화 같은 요소들이라고 생각을 했었어요. 그러니까 콘텐츠를 지웠을 때 영화적 조건이라는 거죠. 그래서 이 작업이 역으로 드러내주는 것은 콘텐츠가 사라졌을 때 영화적 조건이라고 생각이 들었죠. 이것은 몇 년 전 전시에서 본 히로시 스기모토(Hiroshi Sugimot)의 사진인데요. 이 사진은 극장에 들어와서 영화가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노출을 줘서 찍은 사진이에요. 영화의 러닝 타임에 맞춰 사진을 찍었을 때 스크린에 남는 것은 빛 밖에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거죠. 이 작품처럼 영화를 구성하는 조건 중에 스크린에서 보이는 어떤 이미지를 지워버렸을 때 남는 것은 극장, 스크린과 의자, 공간과 같은 물적인 조건들이 남는 것이죠. 그렇게 생각을 하다보니 결국은 영상 이미지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회화를 바라볼 때의 이미지의 태도와는 다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상에서의 이미지가 유령 같은 존재라면, 그것을 구현하는 방식이 오히려 더 영상이미지에 비평적인 측면이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런 관점에서 굉장히 많은 영상 구현의 태도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전시장과 영화관을 구분을 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을 했던 것은 공간의 특성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 그 이미지를 어떤 식으로 구현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태도의 문제이고, 다르게 얘기하자면 내가 구현하려는 가상의 이미지가 어떤 특성을 가져서 그 특성을 어떤 식으로 가시화 시키는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영상에서 하위 장르들이 굉장히 많이 존재하잖아요. 예를 들어 다큐멘터리도 전시장에서 잘 불러주지 않는 이유는 다큐멘터리라는 영상 이미지가 구현되는 적절한 방식을 조금 환영적으로 만들어야한다는 생각이 들 수 있는 거죠. 극장에서 그 영상이미지가 다시 내러티브를 직접적으로, 진짜 믿을 수 있게 제시를 해줘야 다큐멘터리라는 예술적인 장르가 내러티브로 관객들에게 설득을 준다고 생각을 했어요. 최근 굵직한 영상 전시들이 많은데요. 그 중에서 백남준아트센터에서 하고 있는 상상적 아시아(Imaginary Asia)(2017)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어요. 전시에서 보여준 개별 작업에 대한 얘기보다는 전시가 어떤 지점에서 좋았는지를 언급하는게 좋을 것 같은데요. 전시가 굉장히 물질적으로 구성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상을 프로젝션하는 프로젝터와 그것이 보여지는 스크린, 그리고 이 사이를 배회하게끔 만드는 동선들과 같은 조건들을 강하게 가시화시켜 오히려 이미지가 평준화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굉장히 관성적인 미술관의 방식이라 생각하는데요. 미술사에서 1960년대에 나온 미니멀리즘 사조가 결국은 계속 떠도는 것 같다고 생각됩니다. 미니멀리즘 작가들이 전시에서 경험을 구조화하는 것이 작품이 아니라 ‘연극성’, 그러니까 작품 사이에 오가는 경험 자체를 구조화 했다는 것인데요. 미니멀리즘이 그 당시의 상황에서는 급진적이었다고 해도, 제가 최근에 본 이 두 전시에서 본 상황들은 좀 다르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가 1990년대에 쓴 후기 자본주의와 미술관의 논리라는 글에서도 동시대의 후기 자본주의 미술관은 미니멀리즘을 적극적으로 사용을 하는데, 그것은 통시적 역사가 아니라 공시적인 순간의 경험에 관객을 몰입시키는 것이죠. 기본적으로 현대미술의 모든 전시에서 관람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마어마하게 크죠. 결국 현대 미술사에 중요한 맥락은 관객의 참여와 경험이라는 것을 강조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우리가 관람하게 되는 영상 이미지의 방식도 그런 식으로 구조화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옳다/그르다의 문제 보다는 개별적인 영상 작업이 이렇게 보여져야 되는지에 대한 타당한 질문자체가 부재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들어요.

전시 상상적 아시아에서 송동(Song Dong)이라는 작가의 시작 끝(2017) 이라는 작업은 물결처럼 일렁이는 잉크에 영화사들의 로고 같은 것들을 반사시켜 만든 영상작품인데요. 설치는 사람 크기만 한 스크린 두 개를 양쪽으로 설치해놓고, 그 사이를 오가게 해놓았어요. 표면에 있는 이미지 자체를 소비하도록 만들었다는 데에서 그 설치는 타당했다고 생각했어요. 이 전시를 보고 온 후 저희끼리 얘기했던 지점은 ‘그렇다면 결국은 개별적인 영상 작업들과 이미지에 대한 판단이 더 중요해지는 것이 아닌가?’, ‘전시장이나 영화관의 어떤 특성에 대해서 고민을 하는 것 보다 지금으로서는 그게 더 유의미한 것이 아닌가?’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송지현: 저는 스크린 안에 집중되는 이미지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전시장에서는 이미지 밖, 외부의 물적 조건들이 상황에 따라 중요하게 되는 작품들도 있다고 생각해요. 외부 조건들 자체가 작품일 때도 있고, 어떤 장치를 쓰는지에 따라 작품이 보여지는 감각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 둘 사이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설치 방식이 작품 제작 방법론과 맞아야 된다고 생각하구요. 보았던 작품일지라도 다시 어디서, 어떤 제시 장치들로 인해 관람은 매우 달라질테니까요. 그들이 동시에 구성하는 이미지의 경험은 또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가 말하는 ‘연극성’을 유도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김신재: 사실 상영중 같은 경우는 연극성이 많이 들어가는 전시인 것 같아요. 지금도 빛과 그림자가 뒤에서 움직이고 있지만, 전시를 보고 가서 인상적인 것 중 하나가 보통의 전시 설치에서 테크니컬한 스펙이라든지, 장비라든지 하는 것들을 많이 따져서 정확하게 스크린에 좋은 화질을 넣어서 좋은 화질의 영상을 보여주는 것에 집중하는 반면, 이 전시는 영상이지만, 집 안에 창밖으로 들어온 빛처럼 설치가 되는 것이 저에게는 인상적이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 전시는 ‘경험’으로 많이 받아들이긴 했던 것 같아요. 개별적인 작품 자체의 논리보다는, 일단 빛이 가장 기억에 오래남고, 각자가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한범씨는 이 전시에 대해서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해요.

이한범: 뭔가 이미지를, 영상을 보여줄 때 그것을 생산해내는 전반적인 요소들을 짚어준다는 것은 프레임 밖의 상황들을 모두 드러내는 것을 이야기하는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지점에서 역사적으로 시네마라는 영역에서 실천했던 많은 실험들이 결국 그 요소들을 하나하나 따져보는 것들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사실 전시장에서의 프레젠테이션이 새롭다거나 그렇게 느껴지지는 않아요. 되게 긴 영상매체의 실험의 역사 속에서 하나하나 꼼꼼히 따져보는 것 같았어요. 제가 보기에는 그것들이 물신하는 형태로 지금 전시가 반사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이 들어요.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필립 가렐(Philippe Garrel)의 전시를 했을 때 엄청 높은 단상 위에 프로젝터를 설치해놓고 접근 불가능하게 쌓았었어요. 저는 ‘왜 우리가 저것을 우상처럼 숭배하고 있지’하는 고민이 들기도 했었는데요. 외화면이 시네마의 영역에서 굉장히 급진적이고 실험적인 개념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게 특별한 것인가?’라는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저는 전시장 경험이 사실은 기본적으로 외화면의 영역 안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얼마 전에는 코리아나미술관 스페이스씨에서 더 보이스(THE VOICE)(2017)라는 전시를 보았는데요. 거기서 봤던 작업 중 하나가 주디스 배리(Judith Barry)의 1999년 작 보이스 오프(Voice Off)라는 작업이었어요. 어떤 영화관 같이 된 공간으로 들어가면 한 남자가 뭔가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스크린이 굉장히 이상하게 되어있어요. 가까이 가서 보면 스크린의 한쪽이 갈라져있고, 사람이 그 곳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어있어요. 스크린을 뚫고 반대편으로 들어가면, 영상 이미지에서 남자가 벽을 뚫거든요. 관객이 똑같이 벽을 뚫고 반대편 방에 가게 되면, 반대편에서는 또 여성이 있고… 그러니까 전시장 영상이 비평적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이미지를 제작하는 시점에서부터 외화면 공간을 중요한 요소로 포함을 시키고, 그것들을 공간 자체로 영상 이미지 차원으로 구조화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전통적인 차원에서 단채널 영상으로 보면 절대로 구조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 형태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죠. 외화면 자체를 작품의 요소로 포함시키고 그 안에서 어떤 관객이 움직이게끔 하는 요소로써 포함 시킨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송지현: 작가가 작품을 만들 때부터 작품 안에서 스크린 밖을 드러내느냐, 아니면 스크린 안에서 종결되는 작품을 전시장 디스플레이를 통해 만들어내느냐의 차이인거 같아요. 전시장에서는 스크린 외부의 공간을 활용하는 작품들을 잘 보여줄 수 있겠지요?

김신재: 최근에 하는 영상 관련 전시 작업들이 상대적으로 납작해보였던 것들이 그런 부분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우선, 상영관을 상정하고 만들어졌던 작업들이 상상적 아시아에서 전시되었는데요. 각각의 작업들은 긴 러닝 타임만큼의 시간을 관객도 함께 소비해야 그 맥락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작업이고 그런 구조를 만들 수 있는 작업이기 때문에 상영관이 더 잘 어울렸을 법해요. 전시장에 전시된 작품들을 다 본다고 가정했을 때, 전체 러닝 타임이 8시간 40분 정도니까 전시장 안에서 소요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이 작품들이 과연 전시 방식이 맞느냐는 생각이 들었고. 전시 공간에서 어떤 영상 작업이 프레젠테이션 될 때는 물질적 요소가 가장 직접적으로 관객들과 만나는 요소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데요. 지현씨는 이 전시를 만드실 때는 이 부분이 어떠셨나요?

송지현: 기획 단계에서 충분히 많이 봤다고 생각했던 작업들 전시장에 들어오니 벽의 질감과 같이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요소들로 작품 분위기가 엄청나게 많이 바뀌긴 하더라고요. 저는 운이 좋아 이번 설치할 수 있는 기간이 길게 주어져서 설치에 몰입할 시간이 있었는데요. 사실 대부분 열리는 전시들의 설치기간이 좀 짧잖아요. 그래서 빠르게 문제없이, 영상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방식으로 설치를 해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김신재: 같은 맥락인 것 같은데요, 최근에 봤던 ‘아티스트 무빙 이미지’ 혹은 ‘무빙 이미지’ 라는 단어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전시들이 되게 많아졌지만, 보고나서 만족스럽거나 그 질문에 적절한 전시들이 별로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봤어요. 전시 자체를 제시할 때 작품들에 맥락이나 작품 자체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들을 섬세하게 기획 단계부터 작품 자체와 전시 자체를 제대로 동기화 시킨 전시를 보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디지털 시대에 비물질적인 작품들은 만들 때와 이걸 제시할 때는 계속 동기화가 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막상 현실적으로 그 지점이 시연, 구현되기 어려운 것도 있고, 기획자들이 가진 경험치의 문제도 있고, 제대로 구현이 잘 되기 드문 것 같아요. 전시설치에 좋은 케이스는 뭐가 있었는지 얘기를 나눠봤을 때 한범씨는 좋았던 전시가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이한범: 재작년에 광주 아시아문화전당 개관 전시 중 큐레이터 안젤름 프랑케(Anselm Franke)가 기획한 신화와 근대, 비껴서다(Interrupted Survey : Fractured Modern Mythologies)라는 전시예요. 제 생각에 개별 작업을 보여주는 방식 자체가 되게 달랐어요. 예를 들어 트린 티 민하(Trinh Minh-ha)의 베트남 잊기(Forgetting Vietnam)라는 작업은 1시간이 넘는 영상이었는데, 전시장 한 켠에 극장처럼 구조물을 만들어 놓고, 상영 시간을 적어 놓아 프로젝션을 하는 방식이었어요. 베트남 역사를 다루는 영상을 1시간 이상 앉아서 볼 수 있게 했었죠. 그리고 호 추 니엔(Ho Tzu Nyen)의 두세 마리 호랑이들이란 작업은 압도적으로 큰 공간을 어둡게 만들어서 마주보는 투 채널로 프로젝션 했었고요. 그리고 제임스 티 홍의 <아편 전쟁에 대한 세 가지 추론>은 홍콩과 영국의 역사에 관한 내용을 투 채널로 프로젝션 한 작업이었어요. 작은 스크린을 마주보게 세워놓고 홍콩과 영국 각각의 역사를 교차되며 내러티브가 진행되는 방식으로 프로젝션 했어요. 작업 자체가 전시의 주제나 메시지를 구조화하는 데 있어서 작업을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결국은 작업에 대한 경험이 짜 맞추어졌을 때 그 전시가 제시하는 프레임과 문제의식이 설득력이 있다는 생각을 했죠. 토탈미술관에서 열렸던 비디오 포트레이트(Video Portrait)(2017) 같은 경우는 되게 다른 작업들인데 같은 프레임의 구조물을 만들어서 프로젝션 했어요. 저는 그 지점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런 작업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다른 차원의 문제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김신재: 해외에서 공간 구성을 잘 사용한 예를 하나 찾아보자면, 2016년 베를린에서 선보였던 오머 패스트(Omer Fast)의 작품 같은 경우 시노그래퍼와 협업해 물리적 공간을 디자인했어요. 공항이나 출입국관리소 같은 특정한 공간 세트를 고스란히 조성해 관객들이 마치 그 장소에서 모니터를 올려다 보는듯한, 일종의 몰입적인 체험을 가져와서 작품을 보도록 했어요. 사실 영화 세트장이라는 게 영화 안에 존재하는 공간이잖아요. 그런데 그것을 바깥으로 가져오는, 전복된 배치를 했을 때 만들어지는 효과를 실험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송지현: 준비하면서 전시와 상영의 차이점에 대해 ‘상영은 관객들이 공동의 시간을 함께 한다’, ‘전시는 단독의 개인의 경험’이라는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를 나눠봤는데요, 그래서 상영은 어쩌면 몰입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커뮤니티를 만드는 매개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국내에서 이런 사례로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비디오 릴레이 탄산(VIDEO RELAY TAANSAN)이나 블라블라블라인드(BlaBlaBlind)가 있잖아요. 이 두 프로그램에 대해서 얘기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김신재: 아마 비디오 릴레이 탄산은 실제로 보신 분들이 계실 것 같은데요. 강정석 작가가 공간을 옮겨 다니면서 그 공간에서 하루, 이틀, 몇 주에 걸쳐서 상영을 기획하는 형태였어요. ‘비디오 릴레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본인이 먼저 작가를 섭외하고, 그 작가들이 또 다른 젊은 작가들―전시의 형태나, 전시 혹은 영화제에서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는 작가들―의 작업을 소개하는 형태였어요. 2016년, 작년을 마지막으로 끝을 내기는 했는데요. 그 상영 프로그램 자체가 한 젊은 작가의 전작을 보여준 후 작가의 레퍼런스를 튼 다음 Q&A를 함께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어요. 보통은 작가에 대한 스터디를 할 때 역사적으로나 동시대에서 중요한 작가들 리서치를 하게 되는데요. 이 프로그램은 일종의 작가 스터디 플랫폼 자체를 제시했던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작가들의 작업을 보면서 다른 큐레이터들이 참고를 할 수 있었고요.

저는 원룸이라는 공간에서 상영을 기획을 하고 있는데, 사실 처음에는 비디오 릴레이 탄산에서 자신감을 많이 얻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내가 뭔가를 기획하고 열었을 때, 누군가가 보러온다는 것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은데, 《비디오 릴레이 탄산》같은 경우는 정말 알려지지 않은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왔거든요. 처음에는 자기네 커뮤니티의 작가들, 혹은 작가를 지망하는 미술대학교 학생들이 왔다면 이후에는 점점 더 그 범주가 넓어졌던 것 같아요. 일단은 그 시간을 같이 공유할 수 있고, 그 경험이 이후에 만드는 구조들에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제 기획을 할 때도 관객들의 경험을 조성하는 것에 집중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작품들 자체도 상영에 훨씬 더 어울렸고요. 참여 작가 중 한명은 굉장히 큰 미술관에서 작품을 틀었을 때 모두가 그 작업을 지나치는 경험을 가진 작가여서 그 이후에는 전시 공간에서의 루핑에 대해서 회의적인 작가였어요. 관객들이 특정한 시공간을 함께 하는 경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고, 저는 그런 소규모 상영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있는 것 같아요. 물론 페스티벌 서킷을 계속 돌던 감독들 같은 경우는 그 공간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로운 공간에서 관객들을 만나고 싶다는 욕망이 있을 수 있는데, 기획자의 입장에서 어떤 이야기를 특정한 사람들 사이에 유통되고 대화가 가능하게 하려면, 사실 ‘전시’라는 방식은 굉장히 힘들다고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면 단순히 영상 작업만 모아둔 것이 아니라 그들만이 건드릴 수 있는 이야기를 다룰 때 가능한 큐레이팅 방식들에 대해서 저는 아직 적합한 것을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아요. 한범씨 같은 경우는 블라블라블라인드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영상작품을 상영의 형태로 작품들을 제시하시고 계신데요. 큐레이션 자체가 들어가지는 않은 식으로 진행하고 있으시잖아요. 한범씨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이한범: 저는 블라블라블라인드에서 뭔가를 만들고 진행을 하고 있는데요. 그렇게 거창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나 스스로도 영상에 대한 경험이 빈곤하다고 생각을 했었고, 지금 내가 접할 수 있고, 다가갈 수 있는 가능한 것들 중에서 다채롭다고 생각한 것을 드물었던 것 같아요. 이를테면 우리가 흔히 작품을 보러 가는 전시장이나, 영화관같이 작품이 있는 장소들이 1차적인 큐레이션과 필터링을 지니고 있고, 자연스럽게 그것이 가진 필터링이 생기고, 그 필터링의 필터가 되는 것들이 결국은 지금 동시대의 문화적 조건들이 만들어내는 것 같은데요. 전시를 보러갔을 때 어떤 경험이 아쉽다는 것이 계속해서 축적이 된 것 같아요. 담론적인 얘기가 아니라, 작품을 계속 보고 싶고, 작품에서 내가 뭘 볼 수 있는가 곰곰이 생각을 해보고 싶은데 그것을 제시하는 방식이 타당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좀 많았고, 그래서 작품 자체를 정말로 내가 정면으로 맞이할 수 있는 장소는 없을까를 고민하다가 한번 그걸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처음에는 퍼포먼스나 영상 같은 여러 매체를 다루려고 했었는데, 영상을 상영하는 형식으로 만들었어요. 아까 신재씨가 말씀하신 것처럼 ‘경험을 어떻게 생성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컸던 것 같아요. 그 작품 자체를 봤을 때 어떤 경험을 줄 수 있는지를 염두 한 것이 컸던 것 같아요. 그래서 시스템이나 필터링, 큐레이션을 거치지 않고, 자발적인 신청으로 이루어지게끔 했어요. 링크를 통해서 작품 제목과 러닝타임과 작가이름만 공유해주면 내가 지정한 날짜에 상영을 할 수 있고, 그것을 사람들이 와서 볼 수 있는 포맷을 생각을 했어요. 벌써 다음주 수요일이면 세 번째가 되는데, 저에게도 독특한 경험인 것 같아요. 일단은 날 것의 작업들을 부가적인 정보 없이 볼 수 있었고, 그것들이 어떻게 하나의 지속성 안에서, 예를 들면 첫 번째는 80분은 상영을 했고, 두 번째는 45분 정도 상영을 했는데, 작업들이 순차적으로 이어지면서 관객들이 다 다른 식의 경험을 얘기하더라고요. 그러한 지점들이 흥미롭다고 생각을 했어요.

한편으로는, 저도 미술 대학을 다니면서 주변의 친구들의 작업들을 비공식적으로 많이 보게 되는데, 때때로 정말 놀랄 때가 많아요. 일반적으로 거장의 작업이라고 하는 것의 방식과는 달리, 인상 깊은 작업들이 많거든요. 사실은 현실적인 작업에서 그것이 전시가 된다거나, 프레젠테이션이 되지 않으면 작품으로 인정이 안 되고, 그것에 관해서 무엇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더라고요. 저도 오큘로라는 매거진을 운영하면서 비평글을 쓰는데, 내가 봤던 되게 좋고 중요하다고 생각한 작업들에 대해 제시를 할 때, 캡션을 넣어야 하잖아요. 그런 요소들이 없는 거죠. 그러니까 비가시적인 작업들에 대해서는 말을 할 수 없는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고, 어떤 우리가 비평의 범위나 큐레이션의 범위를 빌리지 않고, 작업 자체가 유통될 수 있어야만 여러 경험들이 풍부해진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통해서 시작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고, 핵심적인 것은 단발성의 행사보다는 정말 꾸준히 지속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계속해서 뭔가가 유통되는 장소인 것이지 여기서 내가 지식을 습득하거나, 새로운 것을 발견하거나의 문제가 아닌 것이죠. 그러니까 관객들이 와서 뭔가를 보고, 각자의 경험을 축적을 해나가는 것이 지금으로써는 시급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어요.

김신재: 저는 요새 다큐멘터리 봄이라는 행사를 원룸이라는 공간에서 하고 있는데, 오시는 분들이 해주시는 말씀 중에 하나가 영화를 보거나, 영상작업의 작품을 볼 때 철저하게 영상의 정보를 찾아보고 가신다고 해요. 사실은 그게 아니여도 볼 수 있는 작업, 영화, 드라마 등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시놉시스 등을 꼼꼼하게 읽어보고, ‘아 이거다!’라는 영상만 선별해서 보게 된다고 해요. 블라블라블라인드 같은 경우에는 그런 작품들에 대한 단서 등을 전혀 제시를 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한 것으로 알고 있고, 그래서 발생한 재미있는 지점들이 발생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러닝타임 7초인 작품을 상영을 한다든지, 혹은 1분의 작업을 선보인다거나 그런 작업들은 사실 전시 공간에서 제시되기 힘든 면이 있고, 영화제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니까요.

이한범: 영상을 생각해보면 너무 많이 만들어지고, 많이 볼 수 있는데, 그것을 유통시킬 수 있는 곳이 전시장이나 영화관 정도에 한정된다는 구조 자체가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개별적인 실천들이 움직일 수 있는 곳이 계속해서 되게 섬세한 지점들이 많아져야 하는데, 작업에 대한 논의가 장소에 대한 어떤 이론적인 것으로 가두는 것은 많은 것들이 사라지는 것 같고, 그렇기 때문에 섬세한 장소들이 많아져야 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저희가 함께 나눈 이야기들도 전시장이나 영화관의 지각적 경험이나 담론적인 차원의 부분이 아니라, 태도를 어떻게 구현시키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견을 합의 본 것도 의미가 있죠.

송지현: 저는 이 프로그램이 꾸준히 지속 되려면 어떤 내부적인 조건이나 목적이 있을지 궁금했어요.

이한범: 제가 서점에서 일을 하는데, 서점이라는 곳이 스크리닝을 하기에 의미나 맥락적으로 타당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결국은 영상을 이야기할 때 영상이 정말로 원문하나만 존재하는 오브제로서 선보여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감각이 앞섰던 것 같아요. 20세기 아방가르드가 출판, 유통, 미디어의 급진성들을 체험한다고 했을 때, 제가 일하는 서점이 어떤 그런 부분을 지향하기 때문에 영상이라는 매체가 유통되기에 적절한 의미가 생긴다고 이해했어요. 물론 영상이 오브제처럼 고고함이 있어야 할 지점도 있지만, 제가 생각하는 건 뭔가 저변에서 발생하고 있는 실험적인 태도들의 작품들을 생각했어요. 제가 이것을 통해서 뭔가를 해보고 싶은데, 결국은 타인과 공유가 되고 그것이 어떤 실험인지에 대해서 대화를 해야 말이 되는 것인데 그런 대화의 장이 좋았던 것 같아요. 결국은 유통의 문제와 긴밀히 연결이 되는 것 같아요. 전시장이 일시적으로 오브제로서 유통되는 위치라면, 영화관은 전체적인 상업 시스템 안에서 상영이 되고 전반적인 유통시스템이 따로 있고… 하지만 그 여분의 것들이 분명 있기 때문에 각각에 맞는 장소들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그 결들을 이용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은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인 거죠. 작업을 했는데, 사람들과 공유를 하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신청을 아무도 하지 않을 테고, 그러면 상영회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겠죠. 관객은 없어도 되지 않느냐는 생각은 했어요. 상영일마다 편차는 있겠지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계속해서 재고해 나간다면 결국에 남는 것은 그런 요소들이 아닐까싶어요. 보여주고자 하는 사람들과 보고자 하는 사람들만 있다면 그것은 유지될 것이고 다른 형태로 파생될 것은 제가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고요.

송지현: 영상예술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아무래도 영화, 미술, 상영, 전시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게되어요, 그러면서 머리로는 이것들을 제도적으로 구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단어때문인지 전달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사실 미묘하게 저도 모르는 사이 구분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우리가 학습된 방식들이 구조화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일부 실천가들은 저 또는 우리처럼 이런 구분이 관계가 없다고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실천가들은 매체의 존재론, 그 중요성에 대해서 끊임없이 얘기하고 있기도 하는 지점이죠. 한범씨가 미국 뉴욕에 위치한 라이트 인더스트리(Light Industry)가 영화의 맥락에서 어떤 스크리닝의 실천을 이어나가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한범: 라이트 인더스트리는 저도 이번 호 오큘로(Okulo) 5호에 소개하기 위해서 조사를 하고 글을 쓰며 알게 된 곳이에요. 현재 뉴욕에서 운영되고 있는 일명 마이크로 시네마라고 하는 소규모 영화관이에요. 많아봐야 75명 정도 들어간다고 하더라고요. 거기에는 디지털 프로젝터랑 필름 프롬터를 통해 스크린 없이 흰 벽에 작품을 쏘게 되는데, 본질적으로 영화라는 시네마를 구성하기 위해서 무엇이 중요한지 생각했을 때 스크린은 없어도 된다는 것 인거죠. 즉, 프로젝터와 그것을 보는 관객들이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해요. 이 기획자들이 지향하는 것은 소위 말하는 이벤트로서의 ‘시네마’를 이야기하는데요, ‘공동의 경험’인 것이지요. 근데 경험 자체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라이트 인더스트리’는 2000년대 중반에 만들어져서 매주 화요일에 행사를 계속해서 해오고 있어요. 이들이 셀렉션하는 작업을 보면 우리가 알만한 영화사의 굵직한 거장들이 다 포함이 되어있고, 그들의 작품을 매번 스크리닝을 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주로 하려고 하는 것은 영화를 우상시해서 그것의 정전을 보여주고 하는 게 아니라, 말하자면 영상 이미지라는 것을 어떤 식으로 대하느냐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어요. 그들이 추구하려고 하는 것은 전시장에서의 공시적인 경험이 아니라, 하나의 프로그래밍 안에서 무엇을 프로그램으로 짜 넣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하더라고요. 그들이 다루는 범주가 단지 제도가 인준한 고전의 영화들만 트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얘기를 하고, 이미지라는 것의 경험이 그런 식으로 보여 져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지속적인 차원으로 시간을 들여서 꾸준히 실천을 하는 것이죠. 그들의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것은 ‘퀴어 시네마’ 나 ‘페미니즘 시네마’ 등을 주력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영상 이미지라는 경험을 그런 식으로 다양하게 제시되어야 한다고 말을 하더라고요. 저는 그 지점이 인상이 깊었고, 지금 한국에는 없는 문화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들도 계속 얘기를 하는 것은 자기들이 새로운 것이 아니다고 하거든요. 자기들의 연대기가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를 쭉 훑는데, 20세기 초반에 텔레시네마부터 소규모로 운영되었던 작은 상영 공동체들, 실험적인 영화들을 이야기하고 그런 역사들의 정신이 지금의 동시대에서 구현을 한다고 이야기해요. 과연 그랬을 때 우리 주변에는 그런 것들을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을까 의문이 들죠.

김신재: 저에게도 다른 유사적인 케이스 중 하나는 컨템퍼러리 댄스를 얘기할 때 허드슨 교회 얘기를 많이 하는데요. 바실리카에 허드슨이라는 교회 공간에서 마켓으로도 사용하고, 상영이나 필름 퍼포먼스 등이 열릴 수 있게 구성을 했어요. 거기에서 계속 벌어지는 일들, 그러니까 한 곳에서는 마켓이 열리고, 한 곳에서는 상영을 하고, 다른 곳에서는 콘서트가 열리는 방식인 것이죠. 그래서 시네마라는 게 뭔가 다른 것과 단절되어 어둠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커뮤니티 및 활동들과 같은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저에게 흥미로웠어요.

송지현: 전시장이나 상영관이 중요하다기 보다는 작가의 작업에 태도에 맞는 공간을 제시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 그게 가장 좋은 이상향이긴 하죠. 하지만, 작업이 완성된 후에 여러 방식의 제시 기회가 생기는 것 같아요. 작가 입장에서는 상영과 전시, 영화제와 미술관이 되게 다를 것 같아요. 이번 참여 작가인 전하영 작가님이 이런 지점을 경험해보았을 때 어떤 다른 실천들이 있으셨는지 얘기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전하영: 지금 얘기하는 논의들은 제가 2014, 2015년쯤에 많이 고민했던 지점들이였고요. 지금은 그다지 저에게 큰 고민은 아닌 것 같아요. 이런 상황들에 적응을 한 것 같거든요. 지금은 작업을 할 때는 보여주는 방식 자체를 바꾼 것 같아요. 프레임 워크 같은 경우도 극장에서 상영하는 것은 애초에 흥미롭게 생각했던 것은 필름 자체를 상영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16mm 필름으로 만들어서 상영을 하면 좋았을텐데…’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사실 그것은 제 관심사가 아니었거든요. 전시를 할 때에는 프로젝터를 가지고 이런 방식으로 쏘긴 하는데요, 별다른 것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념적으로는 큰 지점이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영상을 어떤 방식으로 트느냐의 논의는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던 것이니까요. 그리고 미디어 파사드처럼 틀었던 경우, 아니면 정말 작은 TV로 상영을 하면서 마치 TV안의 오브제처럼 보여지게 한 적도 있어요. 그런 식으로 다양하게 스크린을 만들었어요. 작품 하나가 나오는 방식은 되게 여러 가지가 될 수 있어요. 가끔은 제목을 다르게 붙이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지점이 재미있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읽혀질 때는 혼란스러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송: 이번 전시 작품에는 16mm 필름, 디지털, 비디오로 연결된 작업들도 있는데요. 현 시점에 디지털로 영상 제작이 모두 가능한 상황에서, 예전에 많이 사용된 매체를 작가들이 호출시키는 것이 유효한가라는 질문도 받았어요. 물론 필름 자체를 올드한 매체로 생각하는것도 맞지만, 저는 필름, 디지털 둘을 만지는 방식이 굉장히 다른 감각이라고 생각해요. 이 감각이 보는 사람 감각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작가 분들 중 그런 매체를 만지는 이유나 이 것이 디지털과 어떻게 다른지 얘기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김아영: 저 같은 경우는 제 작품들은 스크린에 베이스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장치 자체에 베이스를 두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개인적인 제 흥미도 거기에 있거든요. 영상물에 맞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 자체를 하나의 빛을 사용하는 장치로 상정하고 사용하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나올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스마트 폰 같은 경우도 스크린 화면이 사진을 보여주는 장치잖아요. 거기에 재생이라는 개념이 들어가고, 장치들이 주는 의외의 작품 감식이 가질 수 있는 맥락이 생기기 때문에 유효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송지현: 매체적 접근을 토대로 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오래된 매체가 풍기는 분위기를 의도하는 작가들도 있어 이런 질문이 나오는 것 같아요. 작품에서 던지는 질문과 관계없이 형식만을 취하게 됐을 때 생기는 문제점이나 우려에서 시작된 질문인 것 같아요.

김신재: 제가 최근에 본 어느 호텔 1층의 디스플레이 영상이 있었는데요. 35mm 영사기와 필름박스 같은 것을 설치해놓고 ‘움직이는 미술관’이라고 해놓았더라고요. 그러니까 사실 전시에 오시는 많은 분들도 영상 자체에 신기해하시는 분들이 많고, 그리고 유럽이나 미국에서 만들어지는 뮤직비디오 중에서 필름만을 노리는 뮤직 비디오들이 있잖아요. 필름을 다루는 작가들은 그 작업들하고 대결할 때 변별점을 만들어 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주연우: 저는 필름을 주 매체로 사용하는 작가는 아니라서 대답을 드리기가 애매하지만, 제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태도나 생각은 지금 디지털의 기술이 굉장히 극단적으로 발달한 상태이고 우리가 이것을 누릴 수 있을 만큼 굉장히 많은 것들이 장치화되어 있기도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이전의 매체들이 같이 섞였을 때 오는 풍경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아요. 저는 다음 구상 중인 작업을 VHS 테이프로 작업 하려고 하거든요. 어떤 이미지를 만들지를 고민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매체가 적합할 것 같아서 이 매체가 선택된 거였어요. 그런데 사실 디지털로 그런 흉내를 충분히 다 낼 수 있거든요. 그런데 어디까지나 그것은 흉내이기 때문에 제가 하고 싶은 것은 그런 것이 아닌 거죠. 그런 식으로 본다면 디지털은 도구로밖에 쓰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작업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굳이 이전의 매체들을 취하게 된다는 것은 저에겐 그런 차이인 것 같아요.

전하영: 한국에서는 필름 자체의 영사가 없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더 두드러지기는 한 것 같아요. 사실 디지털부터 특히 영화 쪽이랑 상관없이 아티스트들은 필름으로 작업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부재로 인한 개념이 더 두드러지게 느껴진다는 생각이 들고요. 특히 레지던시 같은 데서 작업을 하다보면 영상 작가라고 하는 것이 너무 오래거든요. 어차피 개념으로 작업을 하는 것인데 매체의 어떤 역사나 그런 것들을 마치 자의식이 없다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거기서 오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송지현: 기획자나 작가들은 끊임없이 영상의 다양한 매체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셀룰로이드 필름, 영사기라는 매체에 사람들의 눈이 안갈 것 같아요. 지금은 그것들로 눈이 더 가기도 하니까요. 그런 것들이 계속해서 보여줘도 각각 매체에 따라 다른 작업의 특성을 사람들이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러한 경험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그런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고요, 기획자들은 관객에게 작품을 보여줘야 하는 위치라면 다른 것들은 익숙해져서 작품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요.

오늘 영상예술을 전시할 때 고려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 나누려고 한 이야기는 거의 마무리가 된 것 같은데요. 저희가 조금 더 전달하기 쉽도록 지금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천들을 사례로 이야기하려고 노력했는데, 어떠셨는지 모르겠어요. 다음 주에는 ‘영상미술의 유통과 아카이브’에 대한 얘기를 나눠볼까 해요. 다음 주에도 혹시 오실 예정이시라면 와주시고요. 이것으로 오늘의 토크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신재씨, 한범씨 두분과 참여해 주신 분들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