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Hanbum

Talking

Show and Tell 2

상영중(인사미술공간, 2017) 라운드테이블

영상예술을 둘러싼 시각 예술 시스템에 관해 이야기 한다. 국내 영상예술의 아카이빙, 컬렉션, 배급등의 상황을 논의한다.

주제 전시 이후의 영상예술 아카이브, 유통
패널 이한범 (오큘로 편집자) 김신재(리서처)
일시 2017년 6월 17일 (토) 오후 5시
진행송지현 (상영중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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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현: 오늘 라운드 테이블 Show and Tell 두 번째 시간에서는 영상예술의 아카이브와 유통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지난 주 Show and Tell 첫 번째 시간에도 함께 했던 이한범 씨, 김신재 씨와 함께 하는데요. 오늘은 한범 씨가 아카이브와 관련된 이야기를 먼저 해주시고, 그 후에 신재씨가 배급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주실 것 같아요.

이한범: 저번 주에 신재씨와 제가 전시장과 영화관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했죠, 오늘은 아카이브와 유통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사실 저는 아카이브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아카이브에 대한 전문적인 이야기를 하진 않을 것 같아요. 영상이라는 장르와 함께 이야기 되는 아카이브에 관한 접근 요소들, 미술이나 영화에서 아카이브 실천들이 어떤 방식으로 있었는지, 더불어 아카이브라는 개념과 배급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유사하게 겹쳐지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결론적으로는 영상 작품이나 예술이라는게 계속해서 순환이 되고 돌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건데요, 이런 방식을 제가 경험했던 것과 알고 있는 선 안에서 어떻게 구조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될 것 같아요.

2007년 이주요 작가가 김현진 큐레이터와 함께 십 년만 부탁합니다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이주요 작가는 설치를 주로 하는 작가인데, 이 프로젝트에서 자신이 했던 드로잉이나 만들었던 오브제, 설치물을 전시하고 이것을 참여한 관객들에게 나누어 주었어요. 단, 관객들에게 10년만 보관해 달라는 조건이 있었어요. 이제 2017년 10월이면 10년이 되는데, 이것들을 모아 공연을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제가 다른걸 다 떠나서 이 작업에서 느꼈던 것은, ‘작품을 보관하는 것’이 얼마나 지난하고 어려운 일일까라는 생각이었어요. 설치 미술가는 만들어 내는 작품이 있잖아요. 이주요라는 중견 작가에게 얼마나 많은 작업이 쌓였을지, 얼마나 많은 물질적인 것들을 그 사람을 압박하고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오죽 했으면 보관이 어려워서 이걸 사람들에게 나눠주면서 그들의 힘을 빌렸을까 싶었어요. 예술 작업에서 비물질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고 전제했을 때, 작품의 보관이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요. 이주요 작가는 보관이라는 것을 해결하는 다른 방식의 작업을 만드는 방법론으로 썼던 거죠. 이렇듯 보존이라는 문제는 작가들에게 중요한 화두인 것 같아요. 설치나 회화와 같은 작업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당연히 문제가 되겠죠, 영상 예술에서도 보존이라는 문제는 굉장히 크다고 생각해요. 필름을 어떻게 영구적으로 보존할 것인가라는 문제. 디지털의 파일, 디지털로 존재하는 것을 어떻게 영구적으로 가지고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 많은 실험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오늘은 영상 매체에서 보존의 형식이나 보존이 조건들이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적용될 수 있는게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일본에 Moving Image Archive of Contemporary Art(MICA)라는 기관을 먼저 이야기해볼게요. 홈페이지에서 이 기관의 미션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는데요, ‘보존’, ‘유통’, ‘교육’ 세 가지입니다. 무빙 이미지를 아카이빙 할 때, 아카이브라는 것에 포함되는 것을 이 세 가지로 정의하는 거에요. 저는 이 세 축이 아카이브라는 실질적인 제도를 운용할 때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고 생각을 합니다.그래서 이 세 가지 축의 꼭지점이 계속 변형해가면서 어떤 형태의 아카이브를 만드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아카이브는 어떤 정형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보존에 힘을 쓰느냐, 유통에 힘을 쓰느냐, 이것에 따라서 아카이브의 그 모형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런 측면에서 저는 아카이브의 지형이라고나 할까요. 개별적인 아카이브가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을 때 카탈로그 아카이브 (catalogue archive), 매스 아카이브(mass archive), 콘트롤드 아카이브(controlled archive), 언룰리 아카이브(unruly archive)로 범주를 나눠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카탈로그 아카이브’라는 것은 미술관이나 공공기관에서 쓰는 목록화된 아카이브죠. 어떤 대상을 저장해서 목록으로 제시 하는 것이에요. ‘매스 아카이브’라는 것은 작가 세스 프라이스(Seth Price)가 사용한 용어인데, 말하자면 일종의 인터넷 같은거에요. 목록화된 아카이브에 속하는 것들이 권위를 가진 제도에서 셀렉한 것이라면, 매스 아카이브 같은 경우에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완전히 오픈된 아카이브인거죠. 데이터 베이스와 같은 상태를 이야기하죠. 이걸 양 축으로 놓고 봤을 때, 얼마나 이 아카이브의 컨텐츠들이 유동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아요. 제도에서 목록화된 아카이브를 제시했을 때에는, 다시는 작품 자체가 유통되지는 않거나 제한된 방식으로 유통이 되죠. 뷰잉 카피(viewing copy) 같은 것은 보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보이스 그로이스(Boris Groys)라는 사람이 썼던 말인데, 영상 작업의 미리 보기나 비메오 링크같은 것을 보내는 거에요. 기관들에 미리 보내고, 작품은 아니지만, 인터넷 유통을 통해서 작품을 퍼트려주는거죠. 대부분 영상에는 비밀번호가 걸려있고, 그 이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뷰잉 카피라고 하는데, 사실은 인터넷이라는 매스 아카이브의 성질을 이용하지만, 제한적으로 다뤄지고 있죠. 미술사학자 클레어 비숍(Clair Bishop)이 쓴 래디컬 뮤지엄(Radical Museology)(2013)이라는 책에서 뮤지엄이라는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들만의 컬렉션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거든요. 목록화된 아카이브이긴 하지만, 그것을 끊임없이 재사용하며 재 맥락화 된다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우리가 아카이브를 생각할 때, 작품을 선별하고 그것을 어떻게 영구적으로 보존해야할 것인가라는 것도 있지만, 개별 아카이브가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고, 어떤 태도로 무엇을 취하고자 하는가가 더 중요한 것 같고, 그래서 아카이브 안에 모든 것을 다 쑤셔 넣지 않았으면 해요.

예를 들면 아카이브가 제도가 아닌, 대안공간이나 1960년대나 70년대 생겨났던 공간, 아티스트 런 스페이스 같은 집단들에서 그 시기에 많이 생겨났죠. 그 시절의 욕망이 분명히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시절의 인터뷰나 자료를 보면 알 수 있죠. 너무 경직되어 있는 미술관에서 그 당시에 발생했던 새로운 형식의 예술, 태도를 수용하지 못한 다는 문제의식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그것을 프로모션 하기 위해서 공간을 만들었어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갤러리도 많이 만들기도 했지만, 이들이 집중적으로 만들었던 것들이 유통, 배급사에요. 그리고 아카이브를 이때 많이 강조해요. 대표적으로는 뉴욕의 프랭클린 퍼니스(Franklin Furnace)나 프린티드 매터(Printed Matter)가 있죠 특히 프린티드 매터는 서점이긴 하지만 책들을 유통시켰죠. 아카이브와 라이브러리라는 서점의 형태를 지지했고, 피렌체에 있던 조나 아카이브나 헝가리에 있는 아트풀(ARTPOOL) 같은 조직들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예술을 프로모션 한다는 말을 하면서 아카이브를 만들어요.

‘액티브 아카이브’는 1979년에 만들어진 조직이에요. 이때의 헝가리는 사회주의 정권이 지배하고, 문화의 모든 요소를 통제하면서 국가주도의 예술형식을 강요했어요. 이에 대한 반발도 되게 심했어요. 죄르지 갈란타이(György Galántai)가 앞서 언급했던 아트풀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독선적인 미술의 형식들에 대해서 반발하는 것이었어요. 헝가리에서 분명히 발생하고 있는 수많은 형식의 새로운 예술을 프로모션 하기 위해 아카이브를 만든 거죠. 당시 일반적으로 생각했던 아카이브라는 것이 단순히 외부의 것을 가지고 와서 저장하는 것이었는데 조지 갈란타이는 그런 아카이브의 개념과 자신이 말하는 아카이브 개념은 다르다고 이야기를 해요. 본인들이 지지하고 유통시키고자 하는 것을 선별하고, 그것들을 내세우는 거죠. 그래서 이 아카이브는 다른 아카이브의 재료가 되는 것으로서 능동적으로 수행하는 아카이브라고 이야기해요. 아카이브를 만들 때는 여러가지 태도가 중요하지만 결국은 프로모션, 유통과 굉장히 밀접하게 맞붙어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저는 그 당시에 만들어진 예술의 형식과 굉장히 연관이 많이 있다고 봐요. 예를 들면 20세기 초중반의 조각들이나 회화와 같은 고전적인 예술의 형식들이 장소를 선점하는 것과 함께 이루어진 것이라면, 20세기 후반에 만들어졌던 비디오, CD, 책, TV나 라디오를 통해서 만들어진 작품 등 전방위적인 매체를 이용하면서 만들어진 예술의 형식에서는 아카이브라는 것이 많이 부각되었죠. 그런 예술 형식을 아카이빙하려고 했기 때문에 능동적인 아카이브라는 개념이 가능했던 것 같아요. 전 여기에 좀 재미있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영상 예술을 아카이브와 접합시킨다고 했을 때, 하나의 원본을 가지는 것으로서의 아카이브가 아니라, 아카이브라는 개념을 이런 능동적인 것으로서 전환해서 생각해본다면, 조금 더 다른 방식의 아카이브가 가능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봐요. 그렇다면 배급과 유통의 개념으로 가는 것이죠, 실제로 이 사람들이 그런 에너지에 관해서 주목 했던 것 같아요. 신재씨가 이야기하시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영상 예술이라는 것의 아카이브의 개념이 여러모로 예술 유통에 관한 방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카이브라는 것이 어쨌든 저장을 하고, 그것을 프로모션 하기 위해서 규격화된 포맷을 필요로 하죠. 또, 어떤 시스템 안으로 포함시킨다고 했을 때, 이게 자연스럽게 배급으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거죠. 결국 아카이브나 배급이나 당파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많이 연결이 되는 것 같아요.

김신재: 한범씨가 말씀하셨듯, 배급사가 작품을 프로모션하고 더 많이 선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 중에 하나는 카탈로그를 만드는 일 같아요. 자신들이 선택한 작품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영화제 카탈로그나 작품 시놉시스 같은 포맷으로 정리해주는 일이요. 저는 이런 기관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실무를 하는 한 사람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배급사마다 역할이 다르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 프로모션을 하거나, 카탈로그를 만들거나, 아카이브, 유통될 수 있는 활로를 만들어주는 부분이에요.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곳은 영국예술위원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럭스라는 배급사에요.럭스는 영화 베이스 쪽 분들께서 설립을 하신 거라서, 전시 베이스의 작품들보다는 상영 베이스의 작품을 많이 취급하는 곳이죠.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로 이루어진 자신들의 컬렉션을 온라인으로 소개를 하고 있어요. 럭스의 특징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영화제 작품을 배급하기도 하지만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서 작품을 많이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럭스 플레이어라는 플랫폼이 있어서 웬만한 작품은 온라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온라인 플랫폼을 운영할 때는 비메오(Vimeo)라는 것을 활용하기 때문에, 작가들과 배급 비율을 나눌 때도 작가들에게 배당이 많이 되도록 운영하고 있어요. 럭스의 인상적인 점 중에 하나는 기본적으로 작가에게 가장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는 서포팅 아티스트(supporting artist)를 표방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전시를 베이스로 하는 다채널 설치 작업의 경우에는 럭스와 함께 일하기가 힘든 것 같아요. 그리고 BFI 필름 페스티벌(BFI Film Festival)과 같이 작품을 소개하는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고요, 그와 동시에 온라인에서 큐레토리얼 프랙틱스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채널을 통해서, 작품을 실제로 볼 수도 있고, 그에 대한 아티클을 볼 수 있는데요, 되게 직관적이고 편리하고 재미있는 플랫폼이예요.

저는 영화제 프로그램 팀에서 일하기도 했고, 다큐멘터리 영화, 박경근의 철의 꿈(2016)이나 임흥순의 위로공단(2014)을 배급하는 회사에서 일을 하기도 했고, 전시 어시스턴트를 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배급의 경험을 양쪽으로 직간접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요, 제가 경험을 하면서 실제로 느꼈던 것은 작품마다 배급의 경로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에요. 사실 여기 설치되어 있는 작품 경우에는 ‘설치’가 중요한 작품이어서 특정한 배급사와 같이 일 하는 게 좋지 않을 수도 있어요. 어떤 공간에 작품이 설치되고 작동하는지가 중요한데, 이런 것은 작가가 컨트롤 할 수 있는 부분이지 배급사나 다른 곳에서 조율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잖아요. 예를 들어 필름 기관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제 보다 좀 더 마이너한 영화제가 많아요. 여전히 전통적인 아날로그 필름을 지지하거나 당파적인 입장을 지닌 영화제들도 있죠.어떤 작품이 유통되는 경로가 달라서 이걸 규격화해서 말씀드리기 힘든 부분도 있어요. 럭스와 비슷한 실천을 하는 곳으로 비디오 데이터 뱅크(Video Data Bank)라는 곳도 있어요. 시카고 예술대학에서 공동으로 같이 운영하고 있고요, 배급뿐만 아니라 온라인 유통에 많은 부분을 치중하고 있습니다. 일정 기간을 두고 서로 다른 특정 큐레이터가 온라인에서 작품을 소개하고 안내하는 활동을 지속하고 있어요. 우리가 어떤 아카이브가 있다는 것을 알아도 계속 그것을 활용하기가 어렵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배급사에서 이런 서비스 또는 활동을 같이 진행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전통적인 필름과 달리 웹 환경이 작품을 소개하고 정리하기에 굉장히 적절하기도 하고, 이전에 텔레비전이나 라디오가 했던 브로드 캐스팅도 요즘에는 온라인에서 많이 소화하고 있기 때문에, 온라인은 작품을 볼 수 있는 좋은 채널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라이트 콘(LIGHT CONE)같은 경우에는 럭스가 온라인 플랫폼을 강화하고, 비디오 데이터 뱅크가 전시 베이스 작가를 많이 소개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면, 라이트 콘의 경우에는 포스트-프로덕션 레지던시를 운영한다는 점을 특징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영화감독 같은 경우에는 포스트 프로덕션이 굉장히 중요해요. 작품 제작의 일부죠. 아직 시각예술 베이스의 작가들에게는 그런 지원이 주어지는 경우가 드물어요. 포스트-프로덕션이 작업에 영향을 끼치고 어떤 스타일을 만들기도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라이트콘 같은 경우에는 그런 경우를 보완하기 위해서 포스트 프로덕션 레지던시를 운영하고 있어요. 사실 브이-테잎(V tape)이라는 배급사도 영화를 제작하는 아티스트들과 기획자들, 프로듀셔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필요에 의해서 기획된 사업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브이-테잎 같은 경우에는 VHS 작업을 보존하고 보관하는 데에도 치중을 하고 있어요. 그 부분이 굉장히 특화된 곳이에요. 실험영화 비디오 쪽에선 굉장히 잘 알려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리는 국제 페스티벌(Toronto International Film Festival)과 연동이 되어 있기도 해요. 리서치를 하면서도 느낀 거지만, 이러한 공간들은 독자적으로 커뮤니티의 필요에 의해서 자생적으로 이루어진 적이 많아요. 국내에도 연결해서 볼 수 있는 실천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아서, 국내사례도 좀 이야기할까 합니다. 상영중에서 전시되어 있는 작가분 중에 서울 국제 실험영화 페스티벌(Experimental Film and Video Festival In Seoul)에서 상영을 하셨던 분들도 굉장히 많은데요, 서울 국제 실험영화페스티벌은 10년 정도 된 것 같아요. 페스티벌이라는 플랫폼을 작품의 배급과 유통에 여전히 가장 유효한 공간, 작품을 선보이고 소개하고, 담론을 만드는 역할 등을 굉장히 많이 소화하고 있어요. 이행준 작가이자 감독, 프로그래머. 이 분이 정말 복수의 역할을 혼자 감당하시면서 사이트 운영도 하시고, 작품들도 소개하시고, 작품들이 해외 소개될 수 있도록 큐레토리얼 프랙티스도 하시고 있어요,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작품들에 대한 소개글이라든지 실험 영화 혹은 아티스트 무빙이미지에 대한 고민들이 담겨 있는 글들이 있습니다.

제가 지난 시간에, 화이트큐브, 혹은 블랙박스, 전시나 상영을 굳이 구분하는 것이 유효한건 아닌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는데요, 하지만 배급의 문제로 들어가면, 작품을 규격화하지 않으면 이걸 배급하는 것은 좀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상영 환경에서는 사운드나 스크린이라는 기술적인 조건들이 제한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거기서 작품을 선보이다 보면 지켜야할 것들도 있고, 어떤 식의 퀄리티를 요청 받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규격화가 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영화제’라는 일종의 제도가 규격에 맞는 작품을 요청하죠. 전시환경에서 스스로 작품을 컨트롤 하고 싶어 하는 작가 같은 경우에는 실질적으로 배급을 혼자 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고, 배급사와 일하는 자체를 꺼려하시는 분들도 많은 것 같아요. 저의 영화제 경험과 해외 배급사 경험을 비추어 보았을 때, 작품을 선택할 때도 어떤 기준 같은 것을 설정하게 되고, 배급을 실제로 하게 될 때도 전략에 따라서 배급을 하기 때문에 그중 특정한 것들은 배급 기준에 맞지 않아서 많이 소외가 되었어요. 사실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을 선배 세대들도 똑같이 했다고 봐요. 그래서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커뮤니티, 플랫폼 자체로 보완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미술 씬에서 굿즈(GOODS)퍼폼(Perform)이라든지 더 스크랩(The Scrap)이라든지 그런 행사들이 만들어지고 있잖아요, 그 행사들 같은 경우에도 자신들의 작품이 제시될 수 있는 적절한 공간이 없고, 플랫폼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보완하고 커뮤니티, 네트워크를 만들어가는 거잖아요. 이전에도 그동안 똑같은 일들이 벌어졌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저희와 같은 고민들을 사실 선배 세대들이 더 많이 해 왔고, 그에 대한 것들이 실질적으로 각 기관이나 혹은 소규모 활동에 녹아들어 있다고 보셔도 될 것 같아요. 이 질문은 분명히 10년, 20년 전부터 같이 해온 고민인데, 여전히 하고 계시긴 해요. 아티스트 무빙 이미지 프로덕션의 문제, 펀딩, 아카이브의 문제, 배급과 판매의 문제, 정책적인 문제 같은 거죠. 정책이나 기관차원에서 해결하려고 하면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인사미술공간에서도 IAS미디어라고, 럭스를 모델로 하는, 작품을 배급하고 유통할 수 있도록 에이전시 모델을 만들려고 했죠. 지금은 아카이브라기보다는 라이브러리의 형태로 작동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실천들을 기관차원에서 소화하려고 했을 때,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을까 고민해봤는데요, 기본적으로 배급에 대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 미술의 영역에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아요. 역할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미술 기관에서 계약직 문제 등 인력의 문제도 분명히 있을 것 같고요. 결국은 이 역할을 소화하고 해나가는 부분은 한 사람, 그 사람의 아카이브에 축적된 경험들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필요한 역할이라 기관 주도적으로는 이게 잘 유지되기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인미공에서도 야심찬 시도를 많이 해주신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비디오 캐스트라고해서, 일종의 브로드 캐스팅, 온라인 팟캐스트를 통해서 하는 등 여러가지 시도들이 있었죠. 하지만 이 시도들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간접적인 펀딩도 있어야하고, 공간도 있어야하고, 기술적인 지원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진행되지 않아서 유지되지 못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이한범: 신재 씨, 아카이브와 라이브러리를 다른 용도로 인식하며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이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해주세요.

김신재: 이를테면 VHS 비디오 배급을 어떤 기관에서 요청했다고 했을 때, 지금은 이것을 디지털 라이징을 하지 않으면 배급할 수가 없잖아요. 아카이브든 배급사든, 어떤 작품을 보존하고 보관하고 유통시키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이를테면, 영상자료원 같은 경우에도 작품을 목록화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들이 지속적으로 보존될 수 있도록 기술적인 환경을 통제해요. 백남준아트센터 같은 경우에는 그런 고민을 충분히 하고 있겠지만, 그런 기능을 실제로 하는 아카이브는 드문 것 같아요. 인미공 아카이브 같은 경우에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작품을 대여하면서 볼 수 있는 형식이기 때문에 라이브러리라는 표현이 좀 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품 보는 경험을 공공의 경험으로 만들기 위해 제시 방법을 고민하는 게 라이브러리라면, 영상 예술 아카이브에서 아카이브라는 표현은 다르게 사용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보았습니다.

관객1: 김신재 선생님께 질문하고 싶습니다. 작가들이 배급사를 원하지 않아서 개인이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셨는데요, 그럼 개인 활동의 경우에는 어떤 식으로 배급이 이루어지는 건가요?

김신재: 배급사는 패키징을 하고 그 작업의 스틸사진, 시놉시스, 트레일러, 머테리얼 리스트를 만들어요. 그 리스트를 각 영화제에 출품하고, 선정되었을 때 그 작품이 잘 틀어질 수 있도록 대행해주는 것이 배급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죠. 미술 쪽에서는 그 역할 자체를 작가들이 컨트롤 하고 싶어 하고, 그래야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컨트롤 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상황이거나, 제작을 한지 2-30년 지나서 본인이 더 이상 관여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에, 럭스같은 공공 기관에서 배급을 하고 있죠. 영화는 영화제 출품이 있기 때문에, 출품하면서 배급을 뚫을 수 있는 다양한 활로가 있는데, 전시는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잖아요. 전시에서의 배급이라고 했을 때, 저도 뭔가가 그려지지는 않는 것 같아요. 여전히 대행의 기능. 국내에서의 배급, 국내에서의 전시 유통 같은 경우에는 작가가 충분히 소화할 수 있지만, 해외로 나가야 하는 경우 배급사가 그런 부분들을 대행해줄 수 있는 것 같아요. 제 경험에서만 비추어 본다면, 요새 작가의 최근작 같은 경우에는, 프로듀서와 어시스턴트와 같이 일하는 경우 배급을 대행해주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프로듀서는 그것이 본인의 작업이기도 하고 애정이 있기 때문에 계속 그 작품이 유통할 수 있도록 프로모션에 참여하는 거죠.

이한범: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미술 작가들이 작업을 텔레비전으로, 공영 채널에서 방송한 적이 있었어요. 텔레비전을 틀면 비디오 작업이 그 시간에 나오는 시절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활동하는 유럽의 세대들은 어느 시절에 그런 아트 워크를 계속 보면서 자랐죠.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 그런 것들이 다 사라지긴 했지만, 그 시절의 경험이 본인들 작업에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 작가들이 꽤 있어요. 특히 영상 작가들의 작업에서 그런데,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의 작업 같은 경우에는 텔레비전 용으로 작업이 제작되었고, 분명히 그 실험의 시간들이 있었어요. 어느 순간 다 사라지긴 했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유통될 수 있는 영상 작품들이 많은 것 같아요. 물론 텔레비전의 역할도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작업 자체를 외부로 작업을 스트리밍 하는 사례가 있었나 보면 없었던 것 같아요. 플랫폼이 없기도 하죠. 사용할 수 있는 매체의 환경이 많은 것 같은데, 경직되어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김신재: 국내에서도 스페이스 셀(SPACE CELL)이나, 거기서 파생된 콜렉티브들, 엘리스온(Alice On) 더 스트림(The Stream), mmm 등의 모임이 있죠. 기본적으로 작가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유통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한 고민과 답답함이 있기도 하지만, 기획자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거든요. 작품을 볼 수 있는, 무빙이미지 작업, 전시들이 굉장히 많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데, 이 상황이 그동안의 상황과 비추어봤을 때, 예외적인 상황인 것 같아요. 그 전에는 무빙 이미지 작업을 보여주는 경우가 드물었고, 아카이브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 이후에 작품을 잘 보여주기가 어려웠던 것 같아요. 목록화가 잘 되어 있던 것도 아니고, 어떤 덩어리에 가까웠기 때문에요. 최근 필요에 의해서 일어나고 있는 활동들을 같이 연결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배급을 한다는 것이 한 사람의 경험치와 시야를 요구하기 때문에, 그것을 사업으로 측정해 놓는다고 해서, 굉장히 우연적으로 잘 이루어질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할 수 있는 유연한 환경체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최근에 저는 많이 고민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지현씨가 이런 리서치를 하고 있다고 해서 반가웠어요.

해외 사례 같은 경우에도, 똑같은 필요에 의해서 조직된 활동, 커뮤니티, 그곳에서 다시 확장되어 나가면서 생긴 또 다른 커뮤니티가 있는데요, 이런 식으로 국내의 활동들도 연결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저희가 지속적으로 이야기 나누었던 것 같아요. 배급의 문제가 비단 유통의 문제와만 연결되는 건 아닌 것 같고, 아티스트 무빙 이미지의 특수한 조건과 제작의 차원에서 먼저 설계를 한 채로 들어가야 하는 건 아닌지. 이 작품의 관객은 누구인가, 어디서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등의 고려가 연동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배급의 문제가, 배급사를 하나를 만들어서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이전 세대들이 생각을 했던 것처럼, 조직을 만들고 물리적인 공간이 있고, 그것을 아카이빙을 하고, 이런 게 아니더라도 가능한 어떤 것이 있을 거라는 짐작은 돼요. 요즘의 영상들이 이전에 비해서 USB나 그런 걸로 전달이 되지 않고, 실제로 상영된 파일을 클라우드나 구글 드라이브로 받기도 하거든요. 이전하고 영상 자체의 존재론적인 조건 자체가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배급사도 이런 클라우드 같은 상태로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하고 있어요.

미술 영역에서 무빙 이미지가 문제가 되는 중에 하나는, 갤러리 소장작이라든가, 커미션을 받았다거나, 미술관 소장작 등은 그동안 제한이 되었거든요.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들이 디지털화가 많이 되면서 그런 제한들은 많이 없어진 것 같아요. 조금 전에 규격화에 대해서 말씀드렸는데, 상영본 같은 경우에도 동시다발적으로 배급이 되기도 하지만, 전시 같은 경우에도 어떤 작가들은 정확한 테크닉 매뉴얼을 만들어요. 어떤 전시 공간을 가도 똑같은 환경에서 구현될 수 있도록 매뉴얼을 만들고 있거든요. 이런 것들이 전시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배급 방법인 것 같아요. 하지만 배급이라고 할 때, 물리적인 공간인 영화제나 전시 공간 외 플랫폼이 부재한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온라인 채널들이 있지만 이러한 채널들이 많이 없기 때문에 럭스를 비롯한 많은 배급사들이 스스로 채널을 운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송지현: 이제 두 번째 토크를 마무리 해야할 시간이 된 것 같은데요. 참여 신청을 받을 때 사전에 관객 분들께 질문을 받았어요. 그 때 받은 질문 중 하나인데요. 제가 이번 전시 이후 앞으로 1인 배급을 실천할 것이라고 썼는데, 이런 실천의 목적에 대해서 질문을 하신 분이 계셨어요. 답변을 드리자면, 제가 배급사를 설립하겠다는 건 아니고요, 이번 전시를 통해 배급사에 관한 해외 사례와 국내 사례를 찾아보면서 든 생각을 정리해서 배급이라는 활동을 실천해 보겠다는 개념이에요. 물리적인 기관이 아니라도 가능할 수 있는 시스템을 생각해 보는거죠. 국내에서는 아직 배급 시스템이 잘 정돈해서 운영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작가들이 많은 활로를 뚫고 싶어 한다고 전제하고 국내 작가들 작품을 프로모션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보겠다는 것인데요. 실질적으로 가능한 범주를 생각하다보니 해외 영상예술 커뮤니티를 찾아보기도 했구요. 추후에 이런 커뮤니티와 접촉을 해보려고 해요. 두 분이 커뮤니티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듯이 이런 일은 혼자서 독자적으로 할 수 없어요. 다른 커뮤니티와 접촉하면서 자생적인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국내에서 대부분 일어나는 활동들은 많은 의미가 있지만, 그 활동을 하시는 몇몇 선생님이 그만두시면 다 없어져 버리는 상황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개인이 아니라, 커뮤니티의 차원에서 이런 것들이 운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것으로 오늘의 토크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함께해주신 신재씨, 한범씨, 그리고 와주신 분 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