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Hanbum

Talking

허구를 도입하기: 진실을 추측하고 재생산하기 위하여

한국예술종합학고 미술원 조형예술과 2021년 1학기 창작워크숍 특강.

 

syllabus

한스 바이힝거가 ‘만약…’의 철학(Die Philosophie des Als-Ob)에서 고찰했듯, 인간 사고 과정의 특징 중 하나는 허구를 도입함으로써 현실을 인지하고, 이해하고, 설명하며, 행위 하기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수학적 사고를 위해 0을 도입하고 날씨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 신을 도입하는 것처럼 말이다. 유령들린 집을 배경으로 삼는 장르물에서 유령은 끼익- 거리는 경첩 소리나 으스스한 바람 소리를 통해 드러난다. 허구의 도입은 인간이 세계에 참여하고, 관여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허구의 도입을 통한 세계에의 참여가 보여주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허구의 도입을 통해 인식 불가능하지만 존재하는 것,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할 것과의 관여를 시도한다는 점일 테다. 허구의 도입은 현실에의 몰입을 방해하고 가시성 너머와의 대화를 시도하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예술 창작과 허구의 도입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진실을 추측하고 재생산하기 위한 예술 실천에서 허구의 도입은 어떤 필연성을 가질까? 물론 도입될 허구 자체로서의 예술 작품 까지를 포함해서 말이다. 이 질문을 통해 우리는 사물을 알아채는 일부터 현실을 변형하거나 넘어서는 윤리 구축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비판적 예술에 대한 폭넓은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하간 그것은 무의식에 스며든 질서와 언어, 현실에 대한 인지와 현실의 자명한 규칙을 약화하는 전술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라는 주체의 경험적 현실이 무엇이고 그 현실에는 어떠한 허구를 도입하는 일이 필요할지 숙고하는 일이다. 이에 선행하는 것은 몸과 망각된 언어에 대한 기억을 회복하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합성법으로서의 허구의 도입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