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Hanb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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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우연 그리고 영화적인 것 : 백남준의 <영화를 위한 선>과 아방가르드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심포지엄 백남준의 선물 14: 우정을 연주하다: 요나스 메카스와 백남준

일시 2022. 7. 29.(금) 11:00-17:00
장소 백남준아트센터 1층 랜덤 액세스 홀
참여자 비타우타스 란즈베르기스, 이나라, 김은희, 이네사 브라지스케, 이한범, 그레이코드, 지인
기획 김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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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저는 오늘 “유령, 우연, 그리고 영화적인 것: 백남준의 영화를 위한 선과 아방가르드”라는 제목으로 백남준과 요나스 메카스가 맺은 우정의 형태에 관해 발표하고자 합니다. 여기서 제가 말한 우정의 형태는, 그들의 사적인 교우관계나 영향관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 속에서 그 시대와 간격을 만들고자 했던 일종의 동시대인들 사이의 네트워크입니다. 이러한 네트워크는 보통, 당사자들은 잘 알아채지 못하고 시간을 되돌아보는 특권을 지닌 이들에 의해 발견되곤 합니다. 이 특권을 일종의 소명으로 여긴다면 우리는 그것을 역사를 구성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주제는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는 다양한 장소를 동시에 다루어야만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저는, 백남준의 영화를 위한 선이 그러한 일, 즉 여러 다양한 장소를 연결하고 장소들을 가로지르는 기능을 하는 작품이라고 주장하려 합니다. 이 작품은 시간을 변형하고 관계의 새로운 형태를 발명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과 매체 연구에 몰두했던 백남준의 예술 실천을 가로지르는 것은 물론, 예술이라는 것의 새로운 존재론과 인식론을 위해 모든 관습과 제도적 구축물들을 급진적으로 허물고자 했던 전후 미국 아방가르드의 실험들을 가로지릅니다. 물론 이 작품이 가로지르는 장소는 백남준 개인에 국한되지도, 1960년대라는 특정 시기에 국한되지 않고, 지금 여기 우리의 현재 까지를 포함한다는 것 또한 말하고 싶습니다. 영화를 위한 선을 다시금 살펴 그 의미를 알아채야 하는 그런 작품인 이유는, 이것이 과거의 기념비가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의 우리에게도 문제가 되는, 혹은 문제를 제기하는 어떤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제가 비평가로서, 다른 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영화를 위한 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저는 이 작품을 다루기 위해, 질문의 방식을 조금 바꾸어 이 작품은 어떤 장소인가? 라고 묻고자 합니다. 이러한 질문의 방식은, 백남준이 그토록 관심 가졌던 사이버네틱스와 인터페이스의 기능에 대한 관심을 본받는 것이기도 합니다. 지난 2016년 발행된 “NJP 리더”의 여섯 번째 시리즈에서 백남준과 그의 작업을 인터페이스라는 주제로 이해해보는 중요한 기획이 이루어지기도 했는데요, 저 또한 백남준 예술 실천의 핵심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것의 핵심을 저는 여러 장소를 동시에 가능하게 하기, 교통 시키기, 뒤섞어 놓기, 그러한 장소를 만들기라고 이해합니다. 그의 관심은 새로운 장소를 가능하게 할 기술의 가능성이었지 기계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그의 그러한 관심을 이제 그의 작품 자체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도입해야 합니다. 끊임없는 생성적인 변화 안에서 무엇도 자신의 자리를 확정하지 못하게 만드는 상태를 상상한 것이 백남준의 예술이었고 영화를 위한 선이 그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핵심적인 작업이었다면, 우리 또한 그 작업을 열린 회로 안에서, 끊임없이 임의접속 함으로써 이해해야 합니다. 1

백남준이 종종 인용하는 존 케이지의 말이 있습니다. “자연은 아름답게 변하기 때문이 아니라, 변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라는 말이죠. 그리고 이 변화 자체를 중심에 두는 실천은 언제나 미래를 강조합니다. 백남준은 “예술가의 역할은 미래를 사유하는 것이다.”라고 단호히 말했죠. 이는 백남준의 미학이 필연적으로 (무엇도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서의) 미래를 조건으로 삼는다는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백남준 자체가 세계의 문제를 역사적으로 통찰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고고학자는 필연적으로 미래를 살아가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보았을 때 백남준이 한 일은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었습니다. 시나리오를 쓰거나 공상적 이미지를 그려 그것을 좇는 것이 아니라, 미지의 무언가가, 도저히 예측 불가능한, 로버트 위너의 정보 이론에 따라 매우 정보 값이 높은 상태, 즉 화이트 노이즈로서의 실재를 등장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토대와 활동의 반경을 가진 백남준과 요나스 메카스가 종종 마주칠 수 밖에 없던 것은 그들이 바로 그러한 공동체, 즉 기존의 집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짓기 위해 전투를 벌이던 보이지 않는 연대를 형성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 공동체가 잠시나마 등장했던 1960년대를 현재와의 관련 속에서 다루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가 ‘zen for film’ 이라는 작품 제목을,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쓰는 공식 명칭은 ‘필름을 위한 선’임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영화를 위한 선’이라 쓴 이유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비어 있는 필름’이라는 물질적 지지체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 작품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 중 하나이죠.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순간은, 그 비어 있는 필름이 어떤 시간과 공간 안에서 구현됨으로써 등장하는 장소입니다. 무한히 많은 구멍이 뚫려 가늠할 수 없이 많은 것들에 열려 있는 장소, 저는 그것은 필름보다는 영화적인 것이라고 불렀을 때 더 타당하고 또 그렇다면 영화적인 것은 무엇인가라고 묻는 질문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 1960년대 당시 뜨거웠던 미국 아방가르드 영화 운동의 흐름 속에서 이 작품이 등장하고 인식될 수 있었다는 것을 주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작업이 추동하는 이러한 연관들은 진정으로 인터페이스적입니다. 서로 만날 일 없어보이는 것들을 만나게 해 주는 장소가 되었으니까요. 제가 번역에 대해서 굳이 말하는 이유는 그것이 작품에 대한 해석과 관련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영화를 위한 선을 살펴보며 이 작품을 어딘가의 좌표에 놓아 보려 합니다. 무수히 많은 장소가 가능하겠지만, 저는 오늘 이 작품을 백남준의 예술 실천 전반을 가로지르는 미학과 정치를 세로축으로 삼고, 요나스 메카스와 그를 전후한 1960년대 미국 아방가르드 영화 실천의 내적 동력에 관한 이야기를 가로축으로 삼아, 이 둘이 만나 직물이 짜이는 지점에 이 작품을 둬 보려 합니다. 그것이 아마도 백남준과 메카스가 가지는 관계를 무엇보다도 잘 설명해 주리라 생각합니다.

우선 영화를 위한 선이라는 작품 자체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 보겠습니다. 저는 지난 2017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운영하는 KMDb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에 유운성 영화평론가님, 오준호 서강대학교 영상대학원 교수님과 함께 했던 영토 없는 영화들을 위한 지도: 1950년대 이후 실험영화 35선이라는 기획연재의 일환으로 영화를 위한 선에 대한 대중적인 소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유운성 평론가께서는 기획의 글에서 “오늘날의 실험영화, 보다 폭넓게는 영화계에만 국한되지 않고 미술과 공연 등 여러 예술영역들을 가로지르며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오디오비주얼 실천들과 깊숙이 관련되어 있다 할 수 있는 역사적 작업들에 주목”하는 것임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제게 이것은 오늘날의 영상 예술을 둘러싼 문제를 다루기 위한 우회로처럼 보였고 그렇기에 매우 동시대적인 작업으로 여겨졌습니다. 영화를 위한 선은 이러한 맥락에서 가시화될 수 있는 적절한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주로 영화를 위한 선은 무엇인가, 즉 그것의 존재론적인 측면에 집중하였습니다.

이는 영화를 위한 선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집요하게 살피는 큐레이터이자 연구자 한나 횔링의 선행 연구에 대부분 기반했습니다. 횔링의 문제의식은, 빈 릴 필름을 영사할 뿐인 이 매우 단순한 작업이 사실은 매우 복잡한 존재라는 것이었습니다. 영화를 위한 선이라는 작품이 지시하는 것은 원본 필름인가? 아니면 아무것도 없는 비어 있는 이미지인가? 이 경우라면, 비어 있는 필름이라면 아무 필름이나 써도 되고 심지어 필름 없이 디지털 프로젝션도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아니면 이 작품은 프로젝션이 이루어지는 장소의 현상학적 경험이 그 요체일까? 이는 우리가 ‘작품’이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구체적인 물건, 물질을 지칭하는 관습적인 제도적 지식에 혼란을 일으키는 일입니다. 횔링은, 이 작품은 바로 그러한 문제 자체를 제기하는 존재로, 여러 상태를 동시에 가지는(multivalent)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그것은 하나의 범주에만 국한되지 않는 매우 유동적인 상태의 작품이라는 것이죠. 이 사실은 오늘날의 예술 제도와 지식에서 가장 문제가 됩니다. 만약 미술관이 이 작품을 소장하고자 한다면, 소장의 대상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작품이 우리가 매우 관습적으로 익숙한 제도 속으로 들어갔을 때, 그것은 제도 자체를 혼란스럽게 하고 당황스럽게 합니다. 그리고 무언가 대책을 세우게 만들죠.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뒤샹적인 맥락에서, 사물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시스템을 환기하고 공격하는 일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퍼포먼스적입니다. 바로 이러한 점이 1960년대적인 아방가르드의 면모라고 할 수 있습니다.

라우센버그의 흰색 회화(1951), 존 케이지의 4분 33초(1952), 그리고 백남준의 영화를 위한 선의 연관성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라우센버그는 “캔버스는 절대로 비어있지 않다”라고 믿었고, 케이지는 “소리는 언제나 존재한다”라고 말하며 이에 응답했습니다. 이미지 없는 영화는 이에 대한 백남준 식의 응답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작업들은 모두, 회화, 음악, 영화라는 제도적 관습과 지식을 회화, 음악, 영화 자체로서 드러내고 비판한다는 측면에서 대표적인 모더니즘 작업이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제도의 임의성을 여실히 폭로하고, 관객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품에 참여하도록 요구합니다. 스크린과 영사기 사이에 백남준 자신이 모습을 드러내어 서성이는 모습은, 아마도 이 작품에 대한 가장 적절한 관람 방식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영화를 위한 선이 영화에 관한 가장 근원적인 비판을 수행한 작품이라 하더라도, 백남준 자신이 스스로 이를 매우 영화적인 관심 안에서 수행했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습니다. 그보다는 1960년대 초까지 그가 지속해왔던 작업의 맥락에서 살피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그것은 바로 시간에 대한 관심입니다.2 그리고 그것은 1963년 부퍼탈의 파르나스 갤러리에서의 개인전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의 가장 핵심적인 화두이기도 했습니다.

백남준은 이 전시에서, ‘음악’을 ‘전시’하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선형적이고 반복되는 음악이라는 제도가 확립한 시간성을, 전시라는 형식이 가진 가장 핵심적인 조건인 방향 없는 공간을 통해 재구성하는 것이었습니다. 백남준은 1958년 다름슈타트에서 존 케이지의 공연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이 바로 ‘소리의 콜라주’였음을 한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는데, 그가 이 전시에서 수행한 것도 바로 그와 같은 몽타주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후에 교향곡 2번으로 이름 붙은,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1961)는 소리의 콜라주, 비선형적 시간 속에서의 음악을 구현해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얼마 전 백남준아트센터에서 끝난 전시에서 한국의 작가들이 참여하여 재연되기도 했었죠. 이 작품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관객을 능동적 청취자로 초대한 것에 있습니다. 수동적 감상자가 아닌 능동적으로 소리를 콜라주해 자신만의 시간 구조 안에서 소리의 조합을 청취하게 하는 그런 음악적 구조를 설계한 것이지요.3 이 전시는 분명, 일방향적인 선형적 시간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려는 시도였습니다. 4

그리고 이후, 백남준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행위 음악에 차츰 흥미를 잃어가고… 전자와 물리 외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1960년대 초 백남준은 TV와 비디오 연구에 몰두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이 시간의 재구성에 대한 그의 근본적인 관심이 바뀌었다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디오는, 시간에 대한 문제를 더욱 첨예하고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이었습니다. 5영화를 위한 선의 빈 화면은, 백남준이 1960년대 이후 비디오 예술가들이 발견했다고 하는 “아무 내용이 없는 시간”에 대한 이미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백남준의 임의접속 개념을 좀 더 유념하여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임의접속의 원형은,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에서처럼, 이미 구축된 선형적 시간에 끌려 가는 것에서 벗어나 한 집합적 정보 안에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매우 데이터베이스적인 생각이고, 그것이 시간에 관여하는 예술이 성취해야 할 일이라고 백남준은 생각했습니다. 6 영화를 위한 선에서 스크린과 프로젝터 사이를 오가는 바로 그 관람 방식은, 영화라는 제도가 구축해 놓은 연속된 이미지를 보는 일에서 벗어나 영화 자체를 임의접속의 장소로 변형시키기 위한 실험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인공위성 작업으로까지 이어지는, ‘우연’ 이라는 생성적 미학의 기능을 담보하는 것이기도 합니다.7 영화를 위한 선은 음악을 통해 고민했던 시간의 해체와 재구성, 그리고 TV와 비디오에 관한 그의 초기 관심들의 연장선에서 발생한 작업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영화의 관습적 장치들을 통해 구현되고 영화의 기억을 갱신하기 위한 장소에서 선보이게 되었던 것은 플럭서스를 이끌었던 조지 마키우나스와의 만남을 통한 합성적 작용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백남준이 뉴욕에서 처음으로 영화를 위한 선을 선보였던 것은 1964년 마키우나스가 초대해서 참여하게 된 플럭스홀(Fluxhall)에서의 6주간의 플럭서스 페스티벌(Fully Guaranteed 12 Fluxus Concerts)이었습니다. 백남준은 4월 25일 다섯 번째 콘서트(Concert No. 5)에서 피아노를 위한 플럭서스 콘서트 Fluxus Concert for Piano라는 제목의 작업과 함께 영화를 위한 선을 선보였고, 5월 8일 여덟 번째 콘서트(Concert No. 8)에서는 영화를 위한 선을 단독으로 상영했습니다. 그리고 1965년 11월 2일, 요나스 메카스가 필름메이커스 시네마테크에서 만든 행사 ‘뉴 시네마 페스티벌’에서 영화를 위한 선을 선보였습니다.

필름메이커스 시네마테크는 요나스 메카스가 1964년 세운 극장입니다. 메카스는 이미 1955년 필름컬처를 창간하며 1950년대 미국 아방가르드 영화의 유산 속에서 새로운 영화의 형식, 장소, 문화를 추구했습니다. 1960년에는 자신을 포함하여 23명의 영화 작가를 소집해 뉴 아메리칸 시네마 그룹의 첫 번째 모임을 소집했는데, 매 월 회의를 가지며 독립적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것에 관한 다양한 논의를 했다고 합니다. 이후 1962년, 영화제작자협동조합 Film Makers Cooperative를 설립하여 실험적인 당대의 미국 아방가르드 영화를 배급하는 것에 힘을 쏟았습니다. 필름메이커스 시네마테크는 바로 이처럼 새로운 경향의 작품의 배급과 유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즉 새로운 영화를 위한 장소로서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메카스는 1963년 5월 2일, 그가 글을 기고하던 빌리지 보이스 “무비 저널” 코너에 보들레르적 영화에 관하여on the Baudelairean cinema라는 글에서 론 라이스, 잭 스미스, 켄 제이콥스, 밥 플레쉬너의 영화를 꼽으며 “언더그라운드로부터 온 미국 독립 영화의 중요한 전환”이라고 평가합니다. 그것은, 그가 끊임없이 제도적이고 문화적인 차원에서 새롭고, 자유롭고, 다양한 것들이 교차되고 교통되는 인터미디어적인 장소를 구현하려고 한 노력처럼, 파괴와 더럽힘을 통한 해방과 자유의 정신에 대한 일종의 헌사이기도 했습니다. 영화사학자 아담 시트니는 그의 저서 시각영화에서 요나스 메카스의 영향이 “이 보들레르적인 영화의 탄생을 선언한 1963년에 절정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시트니는 이 책에서 메카스가 미국 아방가르드 영화에 대해 가지는 역사적 관점을 살피면서, 메카스가 가진 퍼포먼스에 대한 관심을 흥미롭게 언급합니다. 시트니에 따르면 “퍼포먼스에 대한 이론적 관심과 그의 시학이 교차하며” 그의 비평과 영화 제작이 형성되어 갑니다. 여기서 특히 언급되는 것은 바로 배우의 연기 그 중에서도 즉흥연기에 관한 것입니다. 즉흥 연기에 대한 메카스의 찬양은 제도나 관습, 지시에 따르지 않고 근원적으로 해방적인 삶에 대한 추구와도 맞닿아 있습니다.8 그에게 ‘파괴’는 ‘자유’로 곧장 이어지는 미학이었습니다. 같은 글에서, 메카스는 “오랜 예술은 부도덕하다-그것은 인간 정신을 ‘문화’라는 틀에 속박시킨다. 근대 예술가의 바로 그 파괴성, 그의 무정부상태, 해프닝에서처럼, 또는 심지어, 액션페인팅은 결국 삶과 자유의 확인이다.”라고 말합니다.

메카스에게 있어서 영화를 위한 선은, 그가 끊임없이 추구했던 그와 같은 파괴를 통한 자유에의 선언과도 같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분명 이전까지 그가 보아 왔던 아방가르드의 경향과는 다른 무언가 였습니다. 이를 통해 메카스는 자신이 경유하고 있는 그 시간 속에서 아방가르드 예술의 변화에 대해서 숙고하게 됩니다. 메카스는 뉴 시네마 페스티벌 1에서 백남준의 작품을 본 후 1965년 11월 11일, 빌리지 보이스에 다음과 같이 씁니다. “백남준의 (시네마테크에서의) 저녁을 보았을 때, 나는 깨달았다. 라 몬테 영, 스탠 브래키지, 그리고리 마르코폴로스, 잭 스미스, 혹은 (의심의 여지 없이) 앤디 워홀의 예술처럼, 그의 예술은 천 년 동안 이어진 미학적 법칙에 의해 지배되고, 다른 고전적인 예술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분석되고 경험된다.”9 이는 백남준의 작업이, 그가 생각하는 아방가르드의 유산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판단한 그의 생각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것의 가능성과 그것이 열어 젖힐 어떤 무언가를 지지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가 백남준의 작업과 관련하여 언급한 작가들을 간단히라도 짧게나마 한번 짚고 넘어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지 마르코폴로스가 1967년 이탈리아에서 제작한 가멜리온은 촬영된 푸티지는 오직 7분에 지나지 않지만 페이드 인과 페이드 아웃의 사용을 통해 영화의 시간을 1시간 가까이까지 늘인 작업입니다. 영화를 위한 선처럼 극단적으로 이미지를 비워낸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봉합되고 연결되어야 한다고 여겨졌던 이미지 사이의 공간을 드라마틱하게 벌려 놓음으로써 말 그대로 이 영화는 매우 구멍이 많이 뚫린 장소가 되었습니다.

아담 시트니는 마르코폴로스의 영화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마르코풀로스는 항상 그의 영화에서 시간을 재구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었으며, 심지어 단일 프레임으로 작업하면서 화면합성이 필요한 경우에도, 영화적 공간의 제약성을 수용하는 경향을 보였다. 단일프레임의 기능에 대한 그의 이론적 탐구는, 그것이 심리적 복잡성과 미묘함을 나타낸다는 것에 대한 조사에서 출발하지만, 곧 더 확대된다. 이후의 에세이에서 그는 이를 움직임 자체를 표현하는 영화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매우 중대한 사항이라고 지적한다.”

앤디 워홀은 196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구조영화의 선구자로 여겨집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인 은 그저 잠을 자고 있는 한 남자를 매우 5시간이 넘는 동안 보여줍니다. 이것은 백남준이나 마르코폴로스처럼 이미지를 제거하지 않으면서도 영화가 너무 과도하게 모든 것에 열려 있는 상태가 되도록 합니다. 의미값을 거의 가지지 않는 이미지의 연속 속에서 등장하는 것은 지속시간의 감각과 그 스크린을 마주하는 관객의 현존성입니다. 이러한 종류들의 영화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관객의 지각과 경험이 능동적으로 활성화되고 의미와 의식 생산에 참여하게 되는 작품의 방향성을 보여줍니다. 때문에 이들 작가들에게 있어 영화가 어떻게 지속시간을 조직화 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미술사학자 파멜라 리는 그의 연구서 시간공포증: 1960년대 미술에서의 시간에 관하여 에서, ‘시간과 그것의 측정에 대한 강박적 불편함을 갖는 시간공포’가 만연한 1960년대에 관해 분석합니다. 이 공포증은 사물성을 시간에 종속시키는 미니멀리즘 예술의 현존성을 비판하고 순수하고 불변하는 시각적 현전을 주장한 마이클 프리드와 같은 형식주의 비평가들에게서도 드러나지만, 그와 같은 절대적 시간과 단절하고자 하는 작가들에게서조차 시간적 경험에 대한 불안이 감지된다고 말하며 그 대표적인 작가로 로버트 스미스슨과 앤디 워홀을 꼽습니다. 메카스가 백남준의 작업을 보고 남긴 인상은, 표면적으로는 새로운 형식에 대한 인식에 뒤따르는 것이었지만 그러한 작업들이 공통적으로 시간의 재구성이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었음을 감지했다는 것을 추측하게 합니다. 그것은 일종의, 영화를 통한 세계에 대한 숙고이기도 합니다. 1960년대는 그야말로 시간과의 전투가 곳곳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시작된 시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투는 아직 끝나서는 안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저는 오늘, 백남준의 영화를 위한 선을 통해 백남준의 예술적 실천의 핵심을 가로지르는 것에는 시간의 재구성과 생성적 관계에의 상상이 있었음을 말했고, 그것이 어떻게 1960년대 미국 아방가르드 영화의 장 속에서 등장할 수 있었는지 그 내적 동력들을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이는 기존의 세계 질서에 대한 거부가 파괴적인 미학의 형태로 등장했으며, 그것이 바로 이 시기의 예술적 실천을 아방가르드로서 재고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미술사학자 앤드류 예르아스키가 이미 ‘키네틱한 상상계’라는 개념을 통해 수행한 역사적 평가처럼, 1960년대의 “영화적인 것과 조각적인 것, 정지와 지속, 대상과 공연, 그리고 정지 이미지와 무빙 이미지 사이의 경계적 상태와 이행의 지대들에 대한 새로운 탐구는 대상과 재료에 대한 익숙한 모델들에 압력을 가했”습니다.10 이러한 의미에서 <영화를 위한 선>은 넓은 의미에서의 “제도들의 재창안”과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맥락에서, 예르아스키의 논의가 ‘키네틱’이라는 표현을 통해 움직임에 집중하는 것을 넘어 그 움직임이란 것이 전제하는 것은 장소를 파괴하고 재생성하는 것이라고 확장시켜 주장하고 싶습니다. 1960년대란, 말하자면 새로운 장소를 만들어 보기 위한 매우 다양한 노력들이 조우하는 특수한 공간이었음을 이해한다면, 또 지금 우리 또한 새로운 장소를 회복하고 구성하는 것이 매우 위급하게 필요한 문제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이 시기를 역사적으로 살핀다는 것은 매우 동시대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어떤 결론으로 이 발표를 마무리하기보다는 다른 질문으로 끝을 내보고자 합니다. 백남준은 한 글에서, 자신이 사이버네틱스 미학을 탐구하게 된 것은 자신이 아시아인이어서가 아닐까, 하는 질문을 남겼습니다.11 자료를 조사하던 중 저는 이 서술이 매우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리투아니아의 망명자인 요나스 메카스의 그 주체성에 대해서도 더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만남과 우정을 가능하게 한 것은, 우리가 감지하지 못할 더 큰 시대적 어둠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합니다. 이들은 그야말로 어딘가로부터 밀려난 이들이었고, 그 밀려남 속에서 살았습니다. 과연 여기에 작동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이 질문은 아마도, 이들 예술가들이 그토록 헌신했던 예술적 실천들 안에서 다시금 추측되어야 할 것입니다.


  1. “예술사와 음악학은 너무나 오랫동안 분리할 수 없는 것을 분리함으로써 피해를 보았다. 노동의 기술적 분리, 진화에 관한 다윈적 개념, 스타일에 관한 뵐플린적 집착… 상호간 영향에 관한 현기증 나는 주장들… 서로 얽혀 있는 이 모든 것들은 연구의 대상을 연구하기도 전에 질식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최근 혼합매체의 경향이 보여주듯이, 모든 예술이 어떤 단일성에 근거하고 있다면 다양한 예술 형식에 대한 연구 또한 능력을 갖춘 연구자의 눈에는 통합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백남준, 「노버트 위노와 마셜 매클루언」(1967), 『백남준: 말에서 크리스토까지』 294쪽.  

  2. “어쨌거나 내 작품은 그림도 아니고 조각도 아니라는 점을 명시해야 합니다. 그것은 단지 시간-예술 입니다. 아니 나는 카테고리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백남준, 「롤프 예를링에게 보내는 편지, 부퍼탈」(1963), 『백남준: 말에서 크리스토까지』 393쪽.  

  3. “여기서 관객은 마음대로 방을 옮겨 다니며 적어도 20개의 다른 소리를 선택할 수 있었다. 자유로운 시간은 필연적으로 음악-공간으로 귀착되는데, 그 이유는 자유로운 시간에는 두 개이상의 매체(방향)가 필요하고, 두 매체는 필연적으로 하나의 공간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홀(공간)은 단지 소리의 풍요로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에 필수불가결한 ‘더 나은 절반’이 된다.
    그리고 좀 더 강항 불확정성으로 향하는 다음 단계로서 나는 관객이 자유롭게 행동하고 즐기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곡의 연주를 포기했다. 나는 음악을 전시한다. 나는 방에 각종 악기와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물을 전시해서 관객이 마음껏 가지고 놀 수 있게 한다. 나는 이제 요리사(작곡가)가 아니라 진미를 파는 상인일 뿐이다.” 백남준, 「음악전시회」(1962), 『백남준: 말에서 크리스토까지』 394쪽.  

  4. e) “많은 신비주의자들은 영원을 포착하고자 획일적인 시간, 일방향적인 시간으로부터 단숨에 벗어나기를 원한다.” 백남준, 「실험 TV 전시회의 후주곡 – 1963년 3월, 파르나스 갤러리」(1964), 『백남준: 말에서 크리스토까지』 371쪽.  

  5. “1950년대 이전 예술가들은 추상적인 공간을 발견했다. 1960년대 이후 비디오 예술가들은 추상적인 시간을 발견했다. 아무 내용이 없는 시간을 … 비디오는 시간의 직선성을 빠르게 하거나 늦출 수 있고, 뒤바꾸거나 뒤집을 수 있으며, 변형하고, 변조할 수 있다. 프랑스인들은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시간이 저절로 지나간다’라고 표현한다. 그 ‘저절로’가 무슨 의미인지 궁금하다.” 백남준, 「스탤지어는 피드백의 제곱근이다. (1930년-1960년-1990년)」(1992), 『백남준: 말에서 크리스토까지』 36쪽.  

  6. “임의접속의 개념을 생각해보자. 시간에 매여 있는 정보와 임의접속이 가능한 정보는 횟수에서 차이가 난다. 책은 임의접속이 가능한 정보의 가장 오래된 형태이다. 비디오가 지루하고 TV가 형편없는 단 하나의 이유는 시간에 매여 있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녹화와 정보 횟수 시스템에서 시간에 매여 있는 정보를 잘 다루는 기술을 터득하지 못했다. … 물론, 비디오 마니아들은 테이프의 처음부터 끝까지 다 재생해서 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테이프 전체를 보려고 하지는 않는다. 임의접속과 비디오를 접목하는 작업은 우리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백남준, 「임의접속정보」(1980), 『백남준: 말에서 크리스토까지』 206-207쪽.  

  7. “스즈키 다이세쓰에 의하면 젠의 깨달음이란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체득하는 것일 뿐이라는데, 일본에 있었을 때 오노 요코의 전 남편, 토니 콕스 군이 건넨 LSD를 마시고 공간의 동시적 관계 속에서 얼어붙은 것처럼 고정된 시간의 전후 관계를 크리스털처럼 체험했던 일은 놀라웠다. 아마도 인공위성의 최대 효용은, 인류 간에 여태껏 없었던 상호 관계(인연)를 인공적, 가속적으로 만들어내어서 새로운 의식과 의식 사이의 신경적인 네트워크를 창출해 경제와 문화 성장에 기여하는 것이리라…” 백남준, 「아사테라이트-모레의 빛을 위해」(1987), 『백남준: 말에서 크리스토까지』 128-129쪽 

  8. “즉흥연기란, 내가 반복하지만, 상상이 미리 준비된, 설계된 정신 구조들을 빠뜨리기 시작하고 물질의 깊이로 직접 갈 때, 집중의, 깨달음의, 본능적 지식의 최고 형식이다. 이것은 즉흥의 진정한 의미이지, 절대 방법이 아니다. 다소 그것은 어느 영감을 받은 창조에 필요하게 되는 상태이다. 모든 진정한 예술가가 일정하고 평생의 내부 경계에 의해, 그 감각들의 수양-맞아!-에 의해 발전하는 능력이다.” Jonas Mekas, “Notes on the New American Cinema,” Film Culture, 24 (Spring 1962), p.15; 아담 시트니, ⟪시각영화: 20세기 미국 아방가르드⟫(평사리, 2005), 403쪽에서 재인용 

  9. “But now, with five, six, seven years’ perspective, these far-far- out and anti-art works begin to fall into the same thousand-year- old treasury of all art. I realized this suddenly when I watched Nam June Paik’s evening. His art, like the art of La Monte Young, or that of Stan Brakhage, or Gregory Markopoulos, or Jack Smith, or even (no doubt about it) Andy Warhol, is governed by the same thousand-year-old aesthetic laws and can be analyzed and experienced like any other classical work of art.” Jonas Mekas, “On new directions, on anti-art, on the old and the new in the art,” Film Culture, 11 November 1965.  

  10. “나의 판단은 미학적 ‘탈물질화’라는 익숙한 수사가 예술적 오브제의 전통적인 모델 내에서 고체성에 대한 상실을 전면에 드러낸다면, 애니메이션이라는 은유는 우리가 이러한 변동 및 이를 낳은 새로운 조건들의 키네틱하고 시간적인 차원들을 더 깊이 파헤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그러한 내러티브 내에서 보자면, 제 2차 세계대전 후 예술은 단순하게 공연 이벤트의 유동성을 위해 물질적 대상의 고체성을 단순히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 대신 영화적인 것과 조각적인 것, 정지와 지속, 대상과 공연, 그리고 정지 이미지와 무빙 이미지 사이의 경계적 상태와 이행의 지대들에 대한 새로운 탐구는 대상과 재료에 대한 모든 익숙한 모델들에 압력을 가했다. 이 혼종적 대상들은 정확하게는 조각이나 공연, 기계나 도구가 아니었지만, 문자 그대로 가상적 형태의 운동이 제한된 형태로 포함되어 있는 어떤 물질적인 만남을 낳았다.” 앤드류 V. 예르아스키, “기괴한 기계와 철학적 장난감들: 백남준 초기 조각의 애니메이션”, 『NJP 리더 #6 백남준을 다시 움직이기』, 33-34쪽.  

  11. 이 세계에는 두 개의 세상이 있다.
    채색과 무채색의 세계도 아니고
    공산주의와 자유주의의 세계도 아니다… 하지만 ‘개발국’과 ‘미개발국’이다. … 내가 앨런 긴즈버그에게 대답했다. “어쩌면 내가 한국인 혹은 동양인으로서 느끼는 ‘소수민족의 콤플렉스’ 덕분에 아주 복잡한 사이버네틱스 예술작품을 만든 것이 아닐까?”
    백남준, 「1965년 생각들」(1965), 『백남준: 말에서 크리스토까지』 320-3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