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Hanbum

Writing

소용돌이에 관한 몇 가지 전설

칼립소(두산갤러리, 2022) 전시장에 놓인 글.

 

전설은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설명하려고 한다. 전설은 진실의 땅에서 생겨나기 때문에 다시금 설명하지 못함 가운데에서 끝나야 한다.
프란츠 카프카, 프로메테우스 중에서

 

카리브디스는 바다의 남신 포세이돈과 땅의 여신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넘치는 식탐으로 인해 제우스가 그를 바다에 빠뜨렸고 카리브디스는 배가 고플 때마다 어마어마한 양의 물을 삼키고 뱉어 내는데, 이 때 바다에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생겨난다고 한다. 항해사들은 새로운 바닷길에 나설 때 멀리서 휘몰아치는 소용돌이를 목격하고 두려움에 몸을 떨곤 했다. 하지만 카리브디스를 보았다고 하는 이는 아직 아무도 없다. 카리브디스의 반대편에는 스킬라의 바다가 있었다. 스킬라는 원래 아름다운 님페였으나, 그를 향한 글라우코스의 사랑을 질투한 키르케의 저주로 허리 아래가 여섯 마리의 사나운 개로 변했고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들을 잡아먹었다. 사람들은 카리브디스보다 스킬라를 덜 무서워했는데, 오디세우스 또한 스킬라의 바다로 항해하기를 택했고 여섯 명의 선원을 제물삼아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스킬라는 후에 바위로 변한다.

이것이 소용돌이에 관한 첫 번째 전설이다.

사람들은 대가를 치르기만 한다면 항해를 계속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뒤로는 스킬라의 바위로 뱃머리를 두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었고 아무도 카리브디스의 바다를 찾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소용돌이를 잊게 되었지만 더 멀리 항해를 할 수 있게 되면서 더 많은 것을 얻고 알게 되었다고 착각하게 되었다.

이것이 소용돌이에 관한 두 번째 전설이다.

소용돌이는 잊혔고, 바위가 원래 무엇이었는지도 잊게 되면서, 사람들에게 남은 것은 그저 소용돌이에 대한 공포와 바위에 대한 분노뿐이었다. 아무도 무엇 때문에 무서움이 일어났는지, 왜 분노했는지 알지 못했으나 무서워하고 분노했다. 소용돌이를 닮은 것은 피했고 바위를 닮은 것은 파괴했다.

이것이 소용돌이에 관한 세 번째 전설이다.

많은 것을 얻고 많은 것을 파괴한 사람들은 어느덧 소용돌이를 하찮게 여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고작 하나의 단어가 되었고 이미지가 되었다. 누구나 소용돌이를 쉽게 말하고 그릴 수 있었지만 정작 소용돌이에 가까이 가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종종 오디세우스의 탐험에 의심을 품은 이들, 이제는 그 이야기를 지루해 하는 이들이 소용돌이의 바다로 떠났지만 돌아오는 이들은 없었다. 거기에는 아무도 생각지 못한 무언가가 있다고들 하지만, 적어도 그렇게 추측하는 이들은 이 사실을 말하는 순간 거짓을 말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고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이것이 소용돌이에 관한 네 번째 전설이다.

 

전설에 따르면, 태초에 신화와 전설은 구분되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이 시간을 정의하기 시작하면서 전설은 신화로부터 갈라져 나왔다.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을 가늠하기 시작하면서 신화는 신화가 되고 전설은 전설이 되었다. 많은 이들은 변하는 것을 쉽게 알아채지 못하였고 신화적 삶을 전승했다. 종종 몇몇 이들이 전설을 듣기 위해 이름 없는 땅을 배회했다. 신화를 좇는 이들은 집을 지었고 전설을 좇는 이들은 마을과 도시의 풍경을 보았다. 신화적 인간은 닮음을 좇았고 전설적 인간은 늘 어딘가 이상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