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내가 『볼』을 처음 보게 된 건 2014년 쯤, 학교 도서관 정기간행물실에서였다. 당시 나는 한국 현당대 미술사 수업에서 1990년대 초반 소위 ‘신세대 미술’이라고 불리던 소그룹 문화를 주제로 발표를 준비 중이었고, 내가 겪지 않고 참여하지 않았던 시대를 재구성해 보기 위해 오래된 월간지들을 뒤적거리던 시기였다. 정리된 메타 데이터가 없었기 때문에, 이 작업은 무작정 서가에 꽂힌 잡지들을 연도별로 꺼내 한 장 한 장 넘겨보며 필요한 자료를 찾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서가 한쪽에 꽂혀 있는 『볼』과 마주칠 수 있었다. 잡지라고 하기엔 너무 두꺼웠고 디자인이 소박했으며 단 10권만이 나란히 있던 그 모습은 다른 간행물과는 전혀 다른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 몇 권을 꺼내 자리에 앉아 읽어 나갔다. 정확히 어떤 내용을 봤는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읽기 경험에 무척 놀라워했던 것은 선명하다. 그 책에는 내가 잡지를 뒤적거리며 찾던 당대의 미술 활동에 대한 기록이라 할 것이 없었다. 독자로서 내게 남은 것은 정보가 아니라 미적 경험이었다. 예술 작품이나 그것이 놓인 공간에 참여할 때 발생하는 종류의 그런 감각. 이후 오랫동안 『볼』에 대해서 무언가 말해보고 싶었지만,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지난 2018년 인미공에서 1990년대 이후 한국의 예술 출판에 관한 아카이브 프로젝트 《픽션-툴: 아티스트 퍼블리싱과 능동적 아카이브》를 기획했을 때, 나는 목록에 『볼』을 포함했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전시장에 전권을 비치해 두었다. 이 프로젝트는 1990년대부터 나타난 현상인, 미술가가 출판을 통해 생산한 픽션의 강도(intensity)를 측정해 보고자 한 시도였고, 『볼』의 픽션에 대해서는 명확히 파악하지 못했지만 그것의 픽션이 강렬하다고는 말할 수 있었다. 이듬해 아르코미술관 전시 연계 행사에서 『볼』에 관한 생각을 나누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그때에도 여전히 나에게는 이 출판물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든 설명할 수 있는 말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였기에 참여할 수 없었다. 2024년 겨울, 아르코미술관 전시팀이 인미공 종료 전시 《그런 공간》 준비의 일환으로 『볼』의 편집 위원이었던 강유미, 길예경, 안경화 선생님과 진행한 줌 인터뷰에 참관하게 되었는데, 이들의 대화를 듣고 난 후 나는 다음과 같이 메모를 남겼다.
“… 『볼』이 회자하는 이유는, 그것이 미술을 다루는 그릇이라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시각예술 이어서가 아닐까? 편집 행위를 통한 큐레토리얼 실천이자 큐레토리얼 공간. 그것이 독자들에게 작업의 감각을 주었던 것 아닐까? 출판물은 보통 작품이나 전시에 대해서라면 열등한 것으로 위치지어지는데, 그것이 그 자체로 원본이기 때문에 생긴 매혹? 바꾸어 말해보면, 이 작업은 현대 미술이라는 것을 스스로 정의해 보는 작업 그 자체. 그렇다면 중요한 질문. 그 작업은 당대 한국의 예술 문화에서 어떤 공간을 순간적으로 열어놓은 것일까? 그 공간은 그때 잠시 열렸다 닫혔을까? 여전히 열려 있을까? 열려 있다면 누가 그것을 열어두고 있을까? 그 유산은 누가 받아들였을까? 혹은 감쪽같이 흩어졌을까? 그 공간이 열릴 수 있었던 가능성의 조건은 무엇이었을까?”
이 글은 이 메모의 질문들을 스스로 검토해 보는 작업이다. 또한 오랜 시간 동안 미지의 것으로 남아 있던 사물에 대해 비로소 추측하는 작업이다.
새로운 미술과 새로운 장소
『볼』은 2005년 12월 30일 첫 호 “공황”이 발간되었고 2008년 열 번째 호 “팔공공팔”로 끝난다.1 2005년에 한 호, 2006년에 세 호, 2007년에 두 호, 2008년에 네 호가 발행되었고, 각 제호의 제목을 순서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공황”, “중동과 ‘우리’”, “역사의 호출”, “정의”, “헐벗은 삶”, “공명”, “베트남과 우리”, “귀신”, “동두천”, “팔공공팔”. 이 출판물의 판권면 정보를 살펴보자면, 1호의 편집위원은 김성원, 박찬경, 백지숙, 정성철, 황세준이었으며 2호부터 길예경이 합류한다. 작가, 큐레이터, 편집자가 함께 만든 책인 것이다. 이후 7호부터 남인영, 민영순, 조인수가 합류한다. 비엣 레(7호), 김희진(8호), 박소현(10호)가 객원 편집 위원 혹은 편집장으로 일회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1호부터 6호까지는 안경화가, 7호부터 10호까지는 강유미가 편집자를 담당했으며, 전 호를 정보환이 디자인했다. 분량이 가장 적은 호는 7호로 272면이며, 가장 많은 10호는 380면이다. 평균 310면으로 약 300면 내외로 책이 기획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널치고 두꺼운 이 분량은 『볼』이 항상 국영문 병기를 기본으로 편집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매 호 상당한 번역 인력이 참여하는데, 예컨대 8호에는 총 17명의 번역 및 감수자가 참여하였다. 이는 출판의 설계자들이 『볼』의 독자를 국제적인 감수성 위에서 상정했으며, 책이 놓이고 유통되는 지정학을 재구성하려 했던 노력으로 읽힌다. 책의 앞표지는 저널의 이름과 제호의 제목 등의 국영문을 이용한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으로 간단하게 완결되었으며, 뒤표지는 제호와 관련된 사진 이미지 하나가 전면에 채워진 형식으로 전 호가 통일되어 있다.
창간호의 「저널 볼 취지문」에서 편집 위원들은 다음과 같이 출판의 기획을 말한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미술 언론의 모습은 다양해 보이나, 미술을 미술계 사건들의 나열로 본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파편화된 개별 사건만 존재하고, 사건들 사이의 연관이나 흐름은 안중에 없게 되었다. 또 예술의 가치를 공평무사한 정보로 취급하거나 다수가 선호하는 미술 작품을 중요한 작업이라고 평가한 결과, 예술에 관한 상투어와 신화가 난무하고 있다. 새 저널 볼은, 미술을 치열한 가치경쟁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보고, 다른 무엇보다도 동시대 미술의 정신적 흐름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자 한다.” 여기서 세 가지 표현을 주의 깊게 살펴볼 만하다. 첫째, “사건들 사이의 연관이나 흐름”, 둘째, “치열한 가치경쟁의 장”, 셋째, “정신적 흐름”. 그리고 다음과 같은 내용이 뒤이어진다. ”볼은 미술을 안팎이 열려 있는 하나의 ‘장소’로 정의한다. 미술과 시각문화는 … 사회 전반의 주제들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장이다. 우리는 미술 밖의 영역을 미술작품을 설명하는 배경지식에 한정하지 않고, 미술의 실질적인 내용으로 격상시키고자 한다.” 취지문은 우선 미술의 의미에 대해서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미술의 행위성과 위상학을 사회라는 공간 체계 속에서 정의한다. 결정적으로는 『볼』이 미술에 대한 것이 아니라 미술 그 자체임을 표명하고, 문제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만드는 일임을 주장한다. 이러한 이념을 『볼』은 “장소’ 개념 속에서 구성한다. 『볼』은 하나의 장소이고, 이 장소는 사회적인 것이 교차하는 열린 상태이며, 열림으로 인한 교차 속에서 가시적인 것들 사이의 흐름을 재구성하고 재연결해 오늘날의 문제를 다루는 작업이 수행된다는 것이다. 이 작업이 바로 『볼』이 생각하는 미술의 형상이다.
미술에 대한 이와 같은 새로운 의식은 1998년, 미술 작가가 중심이 되어 대안공간 풀에서 발행된 『포럼 A』의 창간 준비호에서도 발견된다. 여기에는 작가, 평론가, 큐레이터들이 당대의 미술에 대해서 가진 문제의식을 담은 짧은 에세이를 모은 “작가 발언” 특집이 있는데, 이중 강성원 평론가는 “작가는 꼭 전시를 해야 하는가?”라고 노골적으로 질문한다. 이는 전시라는 형식 자체에 대한 본질적인 비판이라기 보다는, 관행적으로 굳어져 비판 없이 반복하고 재생산하는 미술 행위 전체에 대한 비판에 가깝다. 정서영 작가의 경우 당대 자신의 미술 경험을 이야기하며, 미술에서 작품이 흐려지고 사회적인 텍스트가 틈입한 현상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을 보여준다. 하나는 불편함이고, 다른 하나는 “본래의 모험 정신이 변질되어 나타나는, 그렇게 지속되어 온 안타까운 집착으로부터의 해방감”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관행적인 ‘작품’으로 치환되는 미술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엿볼 수 있다.
같은 호에서 편집위원회(편집인: 전용석, 편집 위원: 강홍구, 박찬경, 백지숙, 전용석, 황세준)는 「한국 미술의 점진적 변혁-‘포럼 A’ 소개」에서 ‘포럼 A는 무엇을 하는가’ 자문한 뒤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그러므로 ‘포럼 A’는 세미나, 포럼, 심포지움, 좌담, 카탈로그 등에서의 말을, 전시회의 ‘부대행사’보다는 훌륭한 독립적 실천으로 간주한다. … 일상화된 비평은 미술문화의 토대이며, 그것만으로도 미술문화의 중요한 일부로 취급되어야 한다.” 『볼』이 추구한 현실을 재구성하는 힘으로서의 비판과 이를 위한 논쟁과 경합이라는 과정의 설계는 이미 서울의 미술 문화 안에서 싹트고 있었고, 이것을 하나의 장소 만들기의 실천으로 개념화 한 것 또한 바로 이 때부터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포럼 A’ 는 다양한 예술실천이 교류하는 말의 원칙적인 의미에서의 사교계이며, 장(場)이고, 특수한 미술이념과 방법을 배태하기 위한 준비일 뿐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포럼 A’ 가 이슈, 논쟁을 생산하는 것은, 그것을 ‘대화’로 흡수하는 ‘자기만족’ 적인 집단을 넘어서 작품과 삶 속에서 체화하고 책임질 새로운 미술운동을 바라기 때문이다.” 『포럼 A』와 『볼』의 편집 위원은 거의 겹치며, 이는 이 두 출판물을 연속적인 연관성 안에서 살펴봐야 함을 뜻한다. 표면적으로는 반제도적인 입장에서 비평과 지식 생산을 강조하며 새로운 미술을 구상하는 문화적 실천이었지만, 보다 내밀하게는 ‘열린 장소’의 구축에 대한 강한 열망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렇다면 장소란 도대체 무엇인가?
1998년 7월 30일 발간된 『포럼 A』 2호의 마지막 지면에는 「공간의 위기와 대안의 모색: 동아갤러리 폐쇄와 ‘彼是方生之展(피시방생지전)’」이라는 제목으로 편집위원회의 짧은 논설이 실려 있다. 이 글은 동아갤러리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빌어, “공간의 위기는 미술의 위기다”라는 선언과 함께 미술 문화에서 공간의 중요성과 당면한 행위자들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을 제안한다. 여기서 미술과 미술의 ‘바깥’에 대한 인식이 등장하는데, 미술 공간은 고립된 방이 아니라 교환이 이루어지며 가치가 끊임없이 갱신되는 장소다. “공간의 위기는 곧 미술의 위기이다. 그러나 동시대 미술은 공간의 위기를 작업의 주제로 택할 수 있을 만큼 이미 확장되어있다. 전시공간의 위기는 문화정책적인 대안, 대안공간의 모색뿐만 아니라, 작가가 새로운 작업을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근본적 주제이다. 그것은 ‘彼是方生之展(파시방생지전)’ 이 그랬듯이 미술관 바깥과 미술이 교환하는 문화적 ‘가치의 공간’을 작동시키는 것이다. 여기 저기서 아무렇게나 말해지는 ‘전화위복’은 기술이나 형식이라기 보다 가치와 내용을 갱신할 때만 가능하다.” 즉, 미술의 ‘장소’란, 미술을 비롯한 사회적 텍스트가 끊임없이 교차하는 곳이고, 여기서 논쟁과 경합을 통해 가치 또한 끊임없이 재조정되며, 이것을 미술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미술 공간’은 미술의 성립 조건에서 필수적인 것이 된다. 작품이 놓이는 물질적 토대로서가 아니라, 미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 ‘행위성’ 혹은 과정에 대한 상상은 역설적이게도 반드시 구체적인 물질적 토대로서의 공간을 요구하는 것이다.
여기서 책은 하나의 대안적인 공간으로서 등장한다. 이 공간은 작품을 ‘전시’하는 기능을 가지지는 못하지만, 가치 경쟁을 위해 미술의 내외부가 교차하는 행위성을 미술의 조건을 삼는다면, 건축물이 제공하는 공간보다 더 적절한 매체로 여겨질 수 있다. 이러한 상상력은 현대적인 미술의 전개에서 대단히 특별한 것은 아니다. 미술사학자 그웬 알렌은 1960-70년대 미국에서 개념미술가들이 출판을 대안적인 공간으로 실험적으로 다룬 역사를 추적한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동안, 잡지는 예술 실천의 중요한 새로운 장소가 되었으며, 개념미술의 비물질적 실천을 위한 대안적인 전시 공간으로 기능했다. 이 예술은 캔버스, 받침대, 그리고 그것들이 근대주의의 제도들 속에서 상징하던 모든 것을 버리고, 가볍고 일상적인 매체를 추구했으며, 텍스트, 사진, 그리고 다른 종류의 문서에 크게 의존했다. 개념미술은 잡지를 새로운 전시 장소로 활용했는데, 이는 일시적인 물체, 아이디어, 또는 행위를 실제로 목격한 소수의 사람들 외에도 더 넓은 대중이 경험할 수 있게 해주었다. 미술사가 데이비드 로산드는 이 시기 예술 잡지가 맡은 중추적인 새로운 역할에 대해 “당신은 그것을 읽는다. 하지만 당신이 그것을 읽는 이유는, 당시 벌어지고 있던 일들 중 많은 것이 갤러리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2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북미의 개념 미술가들이 책을 작품이 놓이는 대안적인 전시 공간으로 상정한 반면 『볼』은 미술이라고 하는 것의 정의 자체를 행위성으로 재규정하고 그 행위성이 수행되는 장소로서 혹은 새로운 미술을 모의 실험하는 장소로서 책을 다루었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책은 작품이 담기는 그릇이 아니라 미술 그 자체인 사물이 되는 것이다. 이 때, 책을 미술의 장소로서 만들기 위해 큐레토리얼은 에디토리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한 장소에서 요소들을 재배치함으로써 사건을 형성하는 행위의 집합을 큐레토리얼이라고 한다면, 에디토리얼은 역사적으로 책이라는 사물에 있어서 그에 해당하는 특권적인 기술이다. 『볼』은 미술에 대한 새로운 정의 속에서 에디토리얼이 책이라는 사물을 경유해 큐레토리얼과 합성되는 역사적인 순간이기도 한 것이다.
분석
이제껏 『볼』의 이념과 기획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면, 여기서는 바로 그러한 다른 미술에 대한 상상이 어떻게 전략적으로 구현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바꾸어 말하면 『볼』의 에디토리얼- 큐레토리얼 분석이다. 이 분석은 『볼』 1호부터 10호까지에 수록된 모든 콘텐츠를 형식, 성격, 범주, 생산 방식, 저자의 전문 분야라는 항목으로 분류함으로써 이루어졌다. 형식은 다시 에세이, 시, 인터뷰, 북웍스, 그림, 만화로 나뉘고, 성격은 산문, 비평, 학술 연구, 시각 작품, 문학 작품으로 구분된다. 범주는 콘텐츠가 다루는 내용에 비추어 설정된 것으로, 현대 사회, 현대 미술, 이론, 역사, 인접 예술로 구분되었다. 생산 방식에는 청탁이라고 이를 수 있는 커미션 이외에도 발췌 재수록, 번역 재수록, 작품 재구성, 에디토리얼 등이 있으며 이는 편집 차원에서 주로 사용된 기술을 확인하기 위한 구분이다. 각 콘텐츠마다 관련 있는 미술 프로젝트 또한 살펴 보았다.
각각의 통계를 살펴보면, 형식의 경우 가장 많은 것은 에세이로 총 85개에 해당한다. 외에도 대담을 포함한 인터뷰가 11개, 시가 6개, 희곡이 1개로 텍스트 콘텐츠가 총 103개다. 두 번째 많은 형식은 북웍스로 24개이며, 그림 11개, 만화 6개로 이미지 콘텐츠는 총 41개다. 여기서 북웍스는 기존 작품이 지면에 조정되어 담기는 것이 아닌, 지면화 된 예술 작업 즉 프로덕션 된 지면을 뜻한다. 이를 종합해보면 『볼』은 텍스트가 중심이 되는 출판물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성격의 범주에서 보자면, 앞서 언급한 이미지 콘텐츠는 모두 시각 작품으로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텍스트 콘텐츠는 학술 연구가 38개, 비평 32개, 산문 12개, 문학작품 7개 등으로 나뉘며 세분화된다. 콘텐츠가 무엇을 다루는지에 관한 범주적 차원에서는 현대 사회 항목이 86개로 압도적이다. 세분하자면 현대 사회 일반을 다루는 콘텐츠가 27개, 한국 현대 사회에 관한 콘텐츠가 35개로 주로 현대 사회에 관한 담론 속에서 한국 현대 사회를 탐구하는 작업들이 대다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외에는 각 호의 특집에 따라 중동, 베트남, 시베리아, 북한 등의 특정 국가의 현대 사회에 관한 콘텐츠가 소수 있다. 두 번째로 많은 논의는 현대 미술에 관한 것으로 총 23개이다. 이 역시 현대 사회에 관한 콘텐츠와 마찬가지로 한국 현대 미술에 관련한 콘텐츠가 12개로 대다수이며, 현대 미술 일반에 관한 것은 6개, 중동, 중국, 일본, 베트남 현대 미술이 각각 1~2개씩이다. 세 번째로 미술 인접 학술 분과에 관한 논의가 15개로, 세분하자면 미술 이론 4개, 철학 3개이며 정치학, 이미지, 의학, 소리, 미학, 문학, 과학, 과학, 경제학 이론 등은 각각 1개씩이다. 미술 인접 예술에 관한 콘텐츠는 총 7개이며 영화 4개, 음악 2개, 만화 1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볼』은 현대 사회와 현대 미술을 논의의 중심에 두고 인접 학문과 예술을 끌어들여 교차 시키는 시각 중심 출판물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직업적 정체성의 관점에서 보면 작가가 70명으로 가장 많다. 이중 시각 작가가 58명, 문학 작가가 10명, 작곡가와 건축가가 각각 1명씩이다. 그 다음으로 많은 것이 연구자로 총 46명이다. 이중 사회학, 인류학, 정치학, 경제학 등 사회과학을 대표하는 학문의 연구자가 각각 17명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이 외에 철학, 미학, 미술사, 문학, 문화 연구자가 각각 3명, 영화, 민속 연구자가 2명, 인문학, 의학, 역사, 여성학, 아시아, 시각 문화, 도시, 과학, 건축 연구자가 1명씩이다. 그 외 비평가가 12명(미술 9명, 문화, 문학, 국악 각각 1명), 큐레이터가 7명이다.
이와 같은 정량적 분석을 종합해보면, 『볼』은 시각 예술가와 연구자가 중심이 되어 현대 한국 사회의 현대성을 탐구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며, 그 안에서 현대 미술의 의미와 기능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미술과 사회의 관계성, 사회에 관여하는 미술의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의지로 보이는데, 이러한 의지는 특정 대상을 문제화 하여 논의하는 에세이와 정교하게 구성된 시각 이미지를 교차시키는 에디토리얼을 통해 탐구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사회 문제가 만들어지는 장소를 구축하는 것이 미술의 의미이자 미술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볼』의 이념과 맞닿는 구체적인 실천 양상이다.
에디토리얼
그렇다면 이와 같은 『볼』의 에디토리얼을 전략적 차원에서 심층적으로 해석해보자. 『볼』의 에디토리얼은 모두 상호관계성에 기반하며 크게 세 가지 전략을 구현한다. 첫째, ‘감각적 지식과 학술적 지식의 교호’, 둘째, ‘장소들의 얽힘’, 셋째, ‘이웃의 실천들로부터 물듦’. 우선 첫째 전략인 감각적 지식과 학술적 지식의 교호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예시가 2호 “중동과 ‘우리’”다. 이 제호의 첫 부분 구성을 보면, 북웍스, 그림과 같은 시각 작품과 비평, 학술 연구, 시와 같은 문학 작품 등 다양한 형식과 성격의 콘텐츠가 교차하며 편집되어 있다. 이는 예술 작품의 감각적 지식과 학술적 지식이 교호하는 모습으로, 독자는 매우 역동적인 읽기 주체가 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이 에디토리얼이 정보의 전달이 아닌 일종의 미학적 경험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책으로 가능한 미적 사건의 현대적인 형식이라고 생각한다. 이 제호의 중반부에 수록된 「내가 아는 중동」은 문학 작가 허수경의 에세이와 시각 작가 노재운의 북웍스가 서로 뒤섞여 하나의 저작물을 구성한 보다 적극적으로 교호 되고 합성된 저작물이다.
둘째 전략인 장소들의 얽힘은 『볼』이 한국 현대 사회와 미술을 반추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다른 지정학적 위치, 즉 다른 국가와 스스로를 엮는 것과 관련한다. 이는 주어진 문제를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문제를 스스로 만드는 행위이며, 한 대상을 관계성 안에서 탐색하고 해석하는 교차적 관점에 기반한다. 바꾸어 말하면, 사물의 의미는 고립되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관계적 양식 안에서 형성된다는 관점이다. “베트남과 우리”라는 제목을 단 7호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이 기획 의도가 서술되어 있다. “이번 호에서는 모종의 긴장 상태를 파헤치고자 했다. 공식적 기억과 개별적 기억, 세계화와 지역 현실, 공인된 역사와 대항 기억, 종속적 지식과 문화적 실천으로 인해 진척된 대안적 주체성 사이의 긴장 상태를 풀어보고자 했다… 우리는 대립과 경계를 강조하기보다 지정학적, 비평적, 창조적 경계를 가로지르는 국제적 상호작용을 드러내고자 했다… 우리는 우리가 베트남과 맺고 있는 복잡한 관계를 살펴보면서 창조적이고 비판적인 연결 고리를 자극하고 싶었다.” 따라서 이 제호는 2호 “중동과 ‘우리’”와는 조금 다른 양상을 띈다. 2호가 중동 자체에 보다 집중한 반면, 7호는 서로 멀리 떨어진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성을 파헤치는데 주력한다. 즉 문제는 베트남 그 자체가 아니라 베트남과 한국 사이에 놓인 모종의 공간이다. 한편 8호 “귀신”에서는 뜬금없이 시베리아의 샤먼에 대한 에세이(이건욱, 「시베리아 귀신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먼 저곳의 장소를 이곳과 얽는 『볼』의 주요한 에디토리얼 실천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흩어진 여러 장소들, 현실 안에서는 마주치지 않고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것들을 교차시키는 작업은 완전히 새롭고 혁신적인 에디토리얼은 아니다. 예컨대 물리적인 건축물과 원본 예술 작품을 기반으로 삼는 고전적인 박물관에서는 실현될 수 없는 연결성을 책으로 구현한 앙드레 말로의 『상상의 박물관(Le Muse′e Imaginaire)』(1947)은 기술복제 시대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발휘함으로써 장소들의 얽힘을 구축하는 에디토리얼의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셋째 전략인 ‘이웃의 실천들로부터 물듦’은 『볼』이 지속적으로 당대의 여러 예술 프로젝트와 긴밀히 조응하며 만들어져갔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예를 들어 5호 “헐벗은 삶”은 그 자체로 카셀도큐멘타 2007의 <매거진 프로젝트>로부터 추동 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매거진 프로젝트>는 미술의 의미를 재규정하고, 또 현재 우리의 조건을 검토하려는 시도로서 『볼』의 지향과 먼 곳에서 동시대적으로 공명했다.3 5호의 기획 취지를 살펴보자. “볼 5호는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초점을 맞추되 그 일들에서 전지구적 의미를 가지는 쟁점들을 비판적으로 읽어내며 한국만이 아니라 전세계로부터 독자를 구한다는 볼 편집진의 보편주의적 지향이 우연찮게 거둔 또 하나의 결실이다. 독일 카셀에서 열리는 도큐멘타가 대안적이고 공공적인 문화비평 저널들의 국제적 연대와 소통의 장을 마련하자는 취지하에 각 나라의 해당 저널 편집자들이 일군의 연관된 주제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한 호씩을 구성한 다음 한 자리에 모이면 좋겠다는 구상을 하고 한국에는 볼에 제안을 했을 때, 그것은 짧은 여정이나마 볼이 걸어온 길을 정확히 반영하는 제안이었다.” 이러한 지향 아래, 『볼』 5호는 “헐벗은 삶”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로부터 현대 한국 사회의 잘 드러나지 않은 구체적 현실을 면밀히 검토하기를 시도했다. 한편 여기서 여실히 드러나는 것은 『볼』이 가진 국제적인 연대에의 지향이다. 이는 단순히 당시 유행하던 ’전지구’를 향한 열망이라기보다는, 미술이 가능하고 성립되는 조건으로서의 상호성을 위한 타자라는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전략의 다른 예시로는 9호 “동두천”을 살펴볼 수 있다. 이는 당시 인미공의 김희진 큐레이터가 2006년부터 진행했던 〈동두천: 기억을 위한 보행, 상상을 위한 보행〉(이하 〈동두천〉)을 적극적으로 환대하여 자리를 내어 준 제호였다. 그리하여 9호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작가들의 작업이 대부분의 지면을 가지게 되는데, 사실 <동두천>은 그 자체로 국제적인 연계 속에서 지역의 문제를 다루는 기획으로부터 파생된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감각적 지식과 학술적 지식의 교호’, ‘장소들의 얽힘’, ‘이웃의 실천들로부터 물듦’이라는 『볼』의 세 가지 전략적 에디토리얼의 핵심은, 거듭 언급하자면 상호관계성이다. 그리고 이것은 언제나 타자의 존재와 관련한다. 이와 같은 역동적인 상호관계성의 생성과 그것을 통한 문제의 다룸, 또 그것을 통한 미적 경험 혹은 지식 사건의 산출이 바로 『볼』이 규정하는 미술의 요체일 것이다. 그리고 그 미술은 언제나 반드시 사회 혹은 사회적인 것을 의식하고 있다. 다음 절에서 나는 『볼』의 에디토리얼 실천이 내밀하게는 1990년대를 통과한 한국 미술의 사회에 대한 의식 구조 안에서 배태되었다는 것을 논의하고자 한다.
미술과 사회
그렇다면 『볼』의 미술에 대한 이와 같은 기획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에 대해 나는 『볼』이 당대와 어긋난 동시대성을 구축하지만 동시에 당대성과 긴밀히 공명한 결과라고 주장하고자 한다. 1990년대의 한국 미술은 도시와 미술의 관계에 대해서, 또 세계와 지역의 관계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한 각축장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술 사건을 산출하는 새로운 방법론으로서의 큐레토리얼 개념과 실천이 외부로부터 천천히 이양되고 흡수되면서 실험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했다.
1990년대 미술의 큰 줄기 중 하나는 도시와 사회에 대한 미술 행위자들의 지대한 관심이었다. 《도시, 대중, 문화》(1992, 덕원미술관, 기획: 박찬경, 백지숙), 《압구정동: 유토피아/디스토피아》(1992, 갤러리아백화점미술관, 기획: 김진송, 엄혁, 조봉진), 《서울 600년 도시문화기행: 한양에서 서울까지》(1993, 세종문화회관, 기획: 성완경), 《공간의 반란》(1995, 서울시립미술관, 기획: 윤진섭), 《98 도시와 영상: 의식주》(1998, 서울시립미술관, 기획: 이영철), 그리고 플라잉시티의 《성남 프로젝트》(1998) 등, 미술과 도시, 미술과 사회와의 관계에 대해 탐색하는 기획과 예술적 개입이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사회학적 관심은 자연스럽게 한국의 근대성에 대해 예술가들이 깊이 성찰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물론 여기서 도시와 사회가 과격하게 중첩되는 나머지 사회라는 개념이 협소해진 측면 또한 있다. 다른 한편 1990년대는 ‘세계화’라는 흐름 속에서 새로운 지정학적 감수성이 팽배해지는 시기였다. 《93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1993, 국립현대미술관), 《93 대전 엑스포》(1993), 《태평양을 건너서: 오늘의 한국미술》(1993, 퀸즈미술관, 기획: 박혜정, 이영철, 제인 파버, 크리스틴 장), 제46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개관(1995, 커미셔너: 이일), 제1회 광주비엔날레 《경계를 넘어》(1995, 커미셔너: 오광수, 성완경, 유홍준 등), 제2회 광주비엔날레 《지구의 여백》(1997, 커미셔너: 하랄트 제만, 박경, 성완경, 리차드 코살렉, 베르나르 마르카데) 등, 세계라는 거대한 외부가 격렬한 파도처럼 몰려왔고 그것은 매우 강렬한 것이었다. 누군가는 앞서 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외부의 세계를 향해 열렬히 달려 나갔고, 누군가는 새로운 지리적 감각 안에서 한국이라는 것을 반추하며 식민주의, 근대성, 국가, 문화적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다.
여기서 큐레이터 백지숙이 2005년 부산비엔날레에서의 국제 심포지엄에서 발표했던 정치적 미술의 의미를 재고한 글을 의미심장하게 돌아봐야 한다. “지역과 권역을 가로지르는 국제 문화 교류가 활성화될수록 정체성의 정치학과 미술 문화의 관계 설정은 주요한 의제로 떠오른다. 일반적으로 정치적 미술이란 예술의 자율성과 사회적 실천 사이의 관계망에 기초하는 미술의 특정한 존재론이자 인식론에 해당한다. 여기에는 한편으로 미술 기관, 아카데미, 시장을 둘러싼 미술 제도의 내적 문제 의식과 다른 한편으로는 일상 및 사회 체제 비판과 대안 제시라는 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제고도 포함된다. 또한 개별 작가의 미술 언어로도, 공동체와 좀 더 직접적으로 결합하는 활동 방식으로도, 혹은 전시의 확장은 물론이고 도큐먼트의 축적이나 매체의 발견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도 구현될 수 있는 것이다. 비균질화된 문화 권력의 장 위에서 지역 간 문화 교류가 일상화되고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일 때, 이러한 정치적 미술의 전략과 실천도 더욱 다변화될 수밖에 없다. 이는 정치적 미술이 유일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정치적 미술의 선택지와 방법론이 훨씬 다양해졌다는 뜻이다.”4 ‘정치적 미술의 선택지와 방법이 다양해졌다’는 온건한 표현을 해석해보자면 당대적 상황에서 요청되는 정치적 미술, 즉 미술 제도와 사회를 비판하고 미술의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실천은 재발명되어야 하고 그 재발명의 가능성은 이미 다양하게 열려 있다는 주장이다. 의미심장한 것은 이러한 고민의 근본에는 미술과 사회의 관계성, 비판적 미술과 미술의 정치성과 같은 역사적 압력이 자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단어는 지금 너무나 희미한 것이 되어버렸다.
큐레이터 김장언의 회고는 큐레토리얼이라고 하는 새로운 예술적 방법론의 개념과 수행 방식이 어떻게 미술의 정치성과 비판적 역할을 재고하기를 열망하는 이들에게 수용되었는지를 보여준다. “1990년대는 큐레토리얼 실천이 부상한 시대이다. 한국의 경우는 90년대가 되면서 전시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더불어 큐레토리얼 실천이 본격화되었다고 한다면, 전 세계적으로는 유럽적 맥락의 큐레토리얼 실천이 전 지구적 차원으로 확장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을 역으로 설명하면, 큐레토리얼 실천의 전 지구적 확장 과정 속에서 한국 미술계 역시 그 장에 편입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나에게 큐레토리얼 실천이 매력적이었던 것은 90년대라는 공간에서 현대미술이 보여주었던 창조적 지식 생산 모델을 큐레토리얼 실천이 도전적으로 수행했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 종언과 전 지구화의 과정 속에서 현대미술의 창조적 실천은 다양한 큐레토리얼 실천과 더불어 예술과 사회에 대한 급진적이고 시적이며 윤리적인 태도를 발명하고자 했다.”5
해석을 도출해보자면, 한국에서 큐레토리얼 실천은 일군의 행위자들에게는 하나의 새로운 개념이나 기술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지정학적 차원에서 새로운 비판적 미술, 미술의 정치성을 재발명하려는 의지와 관련하여 수용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미술과 사회의 재발명에 대한 강렬한 의지와 관련 있고, 그러므로 한국적 맥락에서 큐레토리얼이라는 것은 단순히 시대적 유행이 아닌 보다 급진적 실천으로 재평가되어야만 한다. 큐레토리얼은 “분산된 형태의 존재로, 마찰을 유도하고, 대상, 사람, 장소, 아이디어 등의 관계와 의미화 과장을 통해 새로운 생각을 추진하려는 것”이며 그것은 “현상 유지(status quo)에 머무르지 않는다”.6 이제는 탈색되고 진부해졌으며 누군가는 이름만 들어도 질려 하는 큐레토리얼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굳이 다시 곱씹어 보는 것은, 여전히 그것으로부터 급진성을 추출할 수 있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미셸 푸코는 플로베르의 소설을 통해 바로 그러한 큐레토리얼 실천이 가능한 무한의 공간을 ‘도서관의 환상’이라고 일컬었다.7
“열린 장소”에 대하여
나는 이 글에서 『볼』을 역사적으로 이해해보고자 했다. 그것은 한국에서 현대성이 폭발적하고 현실을 재편하던 시기, 바로 그러한 사회를 마주하며 사회의 안쪽으로 파고들고자 했던 예술가들이 미술의 관행을 의문시하고 새로운 미술을 제안하며 미술과 사회를 다시금 연결 지어 보고자 했던 복잡한 역학 안에서 형성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볼』의 실험이 어느 정도는 실패했다고, 아니 어떤 면에서는 충분히 정치적이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싶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볼』은 미술을 “안팎이 열려 있는 하나의 ‘장소’”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볼』은 정말로 열린 장소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볼』의 에디토리얼 전략을 돌이켜 보건대, 여기에는 미술의 무수한 타자들이 초대되어 있고 이로 인해 열려 있고 교차한다라는 충분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다고도 느낀다. 『볼』은 자신과 동질적이고 친밀한 관계들과 얽혀 있고, 서로 물들고, 어깨를 맞대고 적극적으로 연합한다. 여기에는 그들의 친구가 있고 우정이 있지만, 그렇지만 적대는 찾아보기 힘들다. 열린 장소가 언제나 시끄럽고, 불안정하고, 위험하며, 예상치 못한 잠재성으로 가득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어떤 면에서 『볼』은 열려 있다기엔 너무나 견고하고 이상적이며 위생적이다. 『볼』의 에디토리얼은 적대보다는 합의에 기반한다. 그러나 샹탈 무페에 따르면 민주주의의 핵심은 합의가 아니라 적대다. 불일치와 반대, 적대적인 우정 없는 열린 공간은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모델이 될 수밖에 없다. 『볼』의 열림은 적어도 조건적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과제는 정말로 열린 장소로서의 미술이라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를 묻는 일일 것이다. 나는 그것이 이 유산 속에서 다시금 정치적인 미술이 수행해야 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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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9호의 발행일이 2008년 12월 31일이고, 10호는 발행일이 정확히 표기되어 있지 않다. 이에 10호는 실제로 2009년 발행되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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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wen Allen, Artist’s Magazines: An Alternative Space for Art(Cambridge; London: MIT Press, 2011),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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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적 주체는 세계와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가? 예술 작품은 주체성을 어떤 방식으로 드러내는가? 어떻게 하면 주체의 단순한 투영도, 객관적인 모든 것의 파괴에서 오는 쾌락도 아닌 예술을 상상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은 레오 버사니가 ‘형식의 대응’에 대한 성찰에서 제기하는 중요하고도 복잡한 문제들이다. … 그는 우리가 세계의 무수한 각인들에 의해 규정된다고 주장한다. 이 각인들은 우리를 세계 속 특정한 위치에 놓이도록 지도로 그리며, 그저 내재적으로 지속될 뿐이다. 실제로 이 각인들이 곧 세계이며, 동시에 주체이다. 즉, 이 각인들이 우리를 구성하는 것이다.” Georg Schöllhammer„ “Editorial,” Documenta Magazine. No. 1-3, 2007: reader(Köln: Taschen, 2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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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숙, 「지역 미술과 국제 미술 사이-정치적 미술의 몇 가지 의미」, 부산비엔날레〈2005 국제미술학세미나 발표문〉, 『본 것을 걸어가듯이』(서울: 미디어버스, 2018)에 재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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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언, 「애증의 단어들: curate/curating/curatorial/curation/curator」, 『 큐레이팅 9X0X』(서울: 아트선재센터, 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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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a Lind, “Situating the Curatorial,” e-flux Journal 116 (https://www.e-flux.com/journal/116/378689/situating-thecuratoria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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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는 이전 시대가 아마도 그 힘을 상상하지도 못했던 상상력의 공간을 발견하였다. 이 환상의 새로운 공간, 이것은 더 이상 밤, 이성의 잠, 욕망 앞에 열려 있는 불확실한 허공이 아니다. 그것은 그와 반대로, 깨어 있음, 끊임없는 주의, 폭넓은 지식에 대한 열정, 한눈 팔지 않는 집중이다. 인쇄된 기호들의 흑백의 표면으로부터, 먼지 앉은 채 닫혀 있다가 잊혀졌던 단어들이 날아오르며 펼쳐지는 책으로부터 몽상이 태어난다. 그것은 귀가 멍할 만큼 적요한 도서관에서 조심스럽게 펼쳐진다. … 서가는 사방으로 도서관을 닫아놓고 있으면서 동시에 한쪽으로 불가능한 세계들을 향해 틈을 열어놓는다. … 상상적인 것은 실재에 반하여 구성되어서 실재를 부정하거나 보충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호들 사이에서, 책에서 책으로, 재언과 주석들의 틈 속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그것은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에서 태어나고 형성된다. 그것은 도서관 현상이다.” 미셸 푸코, 「환상적 도서관」, 방미경 엮음, 『플로베르』(서울: 문학과지성사, 1996), 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