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Hanbum

Writing

영화적인 기억하기: 데릭 저먼의 블루

2019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카탈로그에 수록.

 

역사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이자 퀴어의 동시대적 재현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카라바지오(1986), 에드워드 2세(1991)등의 작품을 만든 데릭 저먼은 1990년대 ‘뉴 퀴어 시네마’의 물결을 대표하는 감독이었고, 한편으로는 소위 에이즈 위기 시대에 이 병과 싸운 수많은 현대예술가 중 하나였다. 저먼의 마지막 영화인 블루(1993)는 게이로서, 또 HIV에 감염된 환자로서의 상념을 불러들이며 자기 자신과 친구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영화적 기억을 통해 펼쳐지는 어떤 감정을, 그리고 당대의 풍경을 다시금 기억한다. 오랜 시간동안 파란색에 매료되었던 저먼은 「크로마: 색에 관한 책(Chroma: A Book of Color)」(1993)에서 다음과 같은 세잔의 말을 인용한다. “파란색은 다른 색들이 진동하도록 해준다.” 그리하여 이 영화를 본다는 것은 언제나 시차적인 기억의 장치를 작동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블루는 데릭 저먼을 신화적으로 만드는 가장 극적인 말들로 둘러싸인 영화이기도 한데, 79분 동안 이어지는 견고한 파란색의 화면 너머에는 성소수자로서의 삶과 질병, 죽음의 드라마와 이브 클라인을 경애한 예술가의 자취가 뒤얽혀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 놀랍도록 아름다운 오디오비주얼 작품이 기억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잃어버리고 있고 사라지고 있는 것들에서 시작한다. 미동 없는 파란색 화면과 함께 이어지는, 마치 라디오 연극을 듣는 것 같은 내레이션은 점점 시각을 상실해가고 있는 저먼 자신의 파편적인 경험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그것은 이미 먼저 세상을 떠난 그의 친구들의 죽음과 포개어진다. 파란색은 망막에 맺히는 상(像) 대신 그의 눈을 잠식한 불빛의 색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영혼으로 향하는 문”이며, “무한한 가능성”, 그리고 비로소 “만질 수 있게 되는” 영화적인 도구였다. 영화 안에서 ‘블루’는 삶의 일상, 고통과 고난의 이야기 곳곳에 틈입해 있으면서도, 그 모든 삶의 구체성을 초월하는 신비롭고 보다 유령적인 빛으로 드러난다. 이 모노크롬 영화에는 바로 그러한 파란색 이외에는 어떠한 이미지도 남겨져 있지 않다. 이는 비슷한 시기 저먼이 그린 회화 작품 Ataxia-Aids is Fun(1993)의 화면이 분노와 절망의 감정을, 그리고 사회에 대한 저항과 조롱을 적나라하게 품은 것과 비교되는 것이다. 블루는 기억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기억하기의 영화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과 자신이 사랑한 사람들을 위한 기억 말이다. 블루는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처음 상영되었고, 저먼은 그로부터 몇 달 뒤 세상을 떠났다.

기억 장치로서의 블루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그것이 영화관에서뿐만 아니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여러 방식으로 시청되었다는 것이다. BBC에서는 채널 4와 라디오 3를 통해 이 작품을 동시에 송출하기도 했는데, TV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IKB(International Klein Blue)가 인쇄된 엽서를 배포했다고 한다. 누구든 라디오 앞에서 울트라마린으로 만들어진 짙은 파란색의 이미지를 보며 자신만의 상념 속을 거닐 수 있었을 테다. 그것은 매우 사적이고 시차적인 시간에 바쳐진 영화적인 기억하기이며, 저먼이 수행하고자 했던 영화에 대한, 영화에 의한 질문 중 하나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