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Hanbum

Writing

영화의 의미를 탐구하는 더듬거림: 김민정의 작업에 대한 노트

2018 예술공간 이아 하반기 레지던시 결과보고전 貳衙室錄-下(2019) 도록에 수록.

 

‘발’을 소재로 한 김민정의 FOOTAGE(2015)와 100ft(2017)를 본 후 내게 든 의문은 다음과 같다. 언뜻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지만 먼 곳에서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이 두 작업이 이어지는 내적 논리는 무엇인가? 물론 이 질문은 주제적인 측면에서 접근해보자면 그리 어렵지 않게 설명된다. FOOTAGE는 의학 전문서적에서 발에 관한 이미지를 수집하여 편집한 작업이고, 100ft는 서로 다른 발 크기를 지닌 두 남녀가 같은 보조로 걸어가면서 점점 격차가 벌어지는 모습을 익스트림 롱숏으로 촬영한 영상이다. 작가가 발에 대한 이미지를 조사하며 남녀의 발이 재현되는 방식과 재현의 용처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이 두 작업을 연결하는 간명한 이해를 제공하는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먼 곳에서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라고 표현한 것에는 이와 같은 작품 내용의 사회적, 문화적 맥락이나 주제가 환기시키는 비판의 효과와는 큰 관련이 없다. 그보다는 각각의 작품이 놓이는 위치와 놓이는 방식에 대한 것과 관련된다. 전자가 작품을 지식화하는 인식론에 기반한 비평적 방법이라면 후자는 작품의 존재론을 위한 비평적 방법이다. 김민정의 작업에 대해 이러한 방식의 질문이 비평적으로 더 유익해 보이는 이유는 그것들이 서로 다른 픽션의 구성 원리를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대비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코드를 역사적인 이해 안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FOOTAGE가 극영화의 환영성(리얼리티)에 반하여 영화 매체의 물질성에 기반한 새로운 시공간의 질서를 구축하고자 했던 실험영화의 실천에 닿아 있다면 100ft는 화면과 관계된 요소들이 지속 안에서 상호작용을 통해 이끌어내는 심리적 상황, 즉 비디오 아트의 유산이다. 두 픽션의 공통점을 찾고자 한다면, 그것은 아마 이들 모두 오늘날 자신의 장소를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뿐일 것이다.

FOOTAGE에서 파노라마처럼 나열되는 발에 관한 77개의 발췌 이미지가 구성하는 의미는 다소 모호하다. 주제를 부연하는 이미지보다 더 가시적인 것은 화면 네 귀퉁이에서 그 위치의 규칙에 따라 자율적으로 세어지는 숫자들에서 비롯되는 강박적인 운동이다. 그것은 필름 한 롤의 물리적인 길이인 100ft라는 제한 조건과 시간의 수치화된 관계다. 화면 왼쪽 아래에는 매 초 단위의 변화가 표시되고, 그 위쪽으로 1초의 지속을 구성하는 24개의 프레임의 숫자가 빠르게 지나간다. 다른 한편 오른쪽 화면에는 이 작업에서 이미지의 보여짐과 직접 관련되는 수치가 표시된다. 화면의 오른쪽 위에는 1ft에 해당하는 필름의 길이를 구성하는 40개의 프레임의 숫자가 흐르며 반복되고, 그것이 반복될 때마다 하나의 이미지 숏이 다음 숏으로 이동한다. 즉 한 숏의 단위는 40프레임이며 이에 따라 시간이 구조화된다. 그리하여 화면의 좌-우가 필름의 추상적 시간과 물리적 길이의 관계를 새롭게 지시한다면, 화면의 상-하는 동일한 프레임의 반복이 어떻게 시간의 선형성을 구축하면서 영화적 의미를 구성하는지에 대해 지시한다. 즉 반복되는 프레임은 시간의 엔트로피와 이미지의 연쇄를 동시에 이끌어 나간다. 이것은 필름이라는 지지체에 대해서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여 영화적 의미를 위한 시공간적 질서로 재편할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처럼 보인다.

이 질문에 대한 탐구는 100ft에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풍경의 전경과 중경, 후경을 명확하게 한 화면에 구성한 배경 안에서 하나의 점으로 시작한 형상은 영상이 진행됨에 따라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그 과정에서 점은 분기하여 각각의 사람의 모습을 내비친다. 추상성에서 구체성으로의 이행을 선언하는 듯이 말이다. 100ft에서 점증하는 격차를 이끌어 내는 것은 각각의 형상이 가진 물질적인 조건과 안무적인 행위의 수행이다. 1ft의 발 길이를 가진 남성과 그보다 더 작은 발 길이를 가진 여성은 걸음을 옮기며 뒷발의 뒷꿈치를 앞발의 발끝에 옮겨 놓는 방식으로 서로 발걸음을 맞추며 걷지만 발 길이의 차이로 인해 같은 시간 안에서 점유하는 공간상의 차이, 즉 다른 속도를 가지게 된다. 하나의 점에서 고유한 속도를 가진 형상으로의 변화를 점진적인 이미지의 조형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을 추동하는 것은 동일한 단위의 반복과 다른 단위와의 시차를 표명하는 지속이다. 물질적 조건을 수치화 했던 끊임없이 변하는 숫자들은 점점 서로 멀어지는 두 형상의 거리, 하나의 이미지로 가시화된다. 그리하여 최초의 강박은 상대적인 속도에 의해 성립되는 이미지의 드라마로 나아간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이미지에 대하여 어떻게 자기 자신의 속도를, 점에 대한 나의 간격을 특정하게 될 것인가? 이것은 아마 100ft의 픽션의 배면에 놓인 우리 관객을 향한 질문일 것이다.

김민정의 두 작업, 영상 이미지와 관련된 서로 다른 코드의 픽션들 사이를 교통시키는 것은 필름과 신체의 물질성에 대한 유비이다. 40개의 필름 프레임, 그리고 그와 동등한 1ft 길이의 신체는 이미지를 위한 최소단위로 규정된다. 그리고 순차의 지속 안에서 이는 서로 다른 의미 구성의 원칙으로 향한다. 즉 영화를 구성하는 특정한 물질적 조건에서 합리적으로 가정할 수 있는 임의의 변수를 설정하고, 여기서 도출되는 개념적인 규칙에 운동성을 부여하였을 때 발생하는 이미지가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필름과 신체를 연동시키는 이 공식은 매우 자의적인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혹은 그렇기 때문에) 필름을 지지체로 삼는 재현의 체계에서 이미지가 생산되는 방식과 그 생태계에 대한 숙고를 불러 일으킨다.

김민정의 작업은 우리 관객이 아니라 필름이라고 하는 물질을 주시하고 있으며 그것이 명령하는 바를 따져 물은 결과 우리에게 이미지가 주어진다고 이해할 할 수 있다. 그는 매체를 활용해 무언가를 표현한다기 보다는 매체의 물질적 조건이 요구하는 엄정한 규칙에 대해 질문함으로써 그 안에서 가능한 새로운 이미지의 구성 방식을 연구한다. 원리상 그가 필름의 물질성과 관련하여 설정할 수 있는 변수는 여전히 많이 남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변수의 설정에 따라 도래할 작품은 저마다의 이미지를 가지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필름이 신체가 아닌 자연의 풍경과의 관계에서 정의된다면? 필름이 비디오와의 관계에서 정의된다면? 혹은 무엇과도 관계되지 않거나 모든 것과 관계된다면? 수많은 질문은 결국 당대의 이미지 체계 속에서 그와 관계 맺는 영화의 존재론을 묻기 위한 일련의 등불이 될 것이다. 반대로, 필름이라는 지지체 혹은 영화라는 것은 당대의 이미지 풍경에 대한 숙고가 없을 때 기념비가 되고 노스탤지어가 될 것이다.


 

Minjung Kim, 100ft, 2017, 3min, 16mm, color, sil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