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주: 헛것의 미디어와 미디엄
보이지 않지만 보는 것, 들리지 않지만 듣게 되는 것, 허상이지만 믿음 속에서 현실이 되는 것, 혹은 실체적이게 되는 것. 임영주의 작업 세계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헛것(heotgut)’이다. 그런데 ‘헛것’이란 정말로 무엇인가? 작가가 사용하는 용어와 엇비슷하며 보다 일반적인 용어가 있다면 그것은 허구(fiction)일 것이다. 허구는 보통 실제와 구분되는 것으로 여겨지고 또한 실제보다 열등한 것으로 가치 지워진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가 허구의 존재에 대해 가진 선입견이나 편견, 혹은 몰이해는 없을까? 나는 오랫동안 예술에서, 아니 이 세계에서 허구란 무엇이며 허구의 존재가 그 자체로 중요한 이유와 그것의 개념을 재정립하는 방안을 고민해왔다. 허구의 존재론을 재정의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세계를 구성하는 관계성을 총체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허구를 통해서만 비로소 열리는 공간과 드러나는 진실이 있고, 그로부터 현실에 대해 다시 숙고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허구에 대한 고찰이자 그 자체로 예술에 대한 나의 믿음이기도 하다. 임영주는 오랫동안 이 세계에서 허구의 자리를 탐색하며 허구의 존재 방식을 집요하게 관찰하고 재생산해 왔다. 그의 작업을 간명하게 정리해보자면, 그것은 허구의 허구화, 혹은 허구에 관한 허구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다시 허구라는 말 대신 작가의 용어인 헛것으로 돌아와 보자. 헛것을 중심으로 나선형으로 뻗어 나가는 그의 예술 세계에서 무엇보다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미디어와 미디엄이다. 이는 헛것을 매개하고 중재하며, 헛것의 매개와 중재에 관한 현실 전체를 재구성하고 허구에 내기를 거는 임영주의 예술 언어를 지탱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헛것의 미디어와 미디엄의 역량을 탐구하는 것은 임영주 작업의 주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언제나 방법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임영주의 작업은 언뜻 매우 공상적이고 사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리얼리즘에 기반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번 인터뷰는 헛것, 그리고 미디어와 미디엄에 관해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헛것이 매개하는 세계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까?
작가님의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는 ‘헛것’입니다. 보지 못하거나 볼 수 없는 것이지만 사람들이 보게 되는 것, 혹은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 헛것의 문제를 다루는 여러 다양한 지식들이 있는데, 당신은 당신만의 방법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헛것이란 무엇인가요?
보통 ‘헛것(heotgut)’이라고 쓰면 영어로 ‘illusion’이나 ‘hallucination’이라고 번역될 때가 많아요. 하지만 저는 이 단어들은 제가 말하는 ‘헛것’과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해요. 헛것은 실체에 가까운 거라 생각하거든요. 말 자체에도 사물을 뜻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잖아요? ‘헛’이지만 실체가 있다는 사실이 제게는 중요해요. 믿음이 충만해지면 누군가에게는 헛것이 실제가 돼요. 그래서 저는 요즘 헛것을 영어 단어로 번역하지 않고 ‘heotgut’이라고 쓰고 있어요.
제가 관심 있는 건 사람들이 이쪽에서 웅성웅성거리고 저쪽에서 웅성웅성거리는 그런 모습이에요. 그러면 저는 거기로 가서 웅성거림 안에 무엇이 있는지 보는 거죠. 가끔 제가 작업에서 하는 역할이 샤먼이나 영매 같은 것이냐 하는 질문을 받는데 그렇지는 않아요. 제가 샤먼이라면 헛것을 헛것이라고 말하지 않겠죠. 그보다는 웅성거리는 사람들 옆에서 정말? 그게 진짜야? 하면서 그들의 믿음을 같이 믿어보고 그들이 보는 걸 같이 보려고 하는 것 같아요. 헛것을 본다는 행위의 에너지가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사람들의 위치에서 그 사람들의 시점으로 보려고 하는데 그럼에도 그들과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기에 시차가 생기죠. 저 사람에게 아름답게 보이는 저것(헛것)을 나도 보고 싶은데 그렇게 안보이면 왜 그렇게 보이지 않는지도 알고 싶고. 바꿔 말하면 헛것 그 자체보다는 헛것이 헛것의 상태를 유지하게끔 하는 것들이 저의 관심이 향하는 곳인 것 같아요.
지금껏 헛것을 탐구하며 주의 깊게 살펴본 사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돌, VR, 빈 무덤 같은 것들이요. 모두 내가 지금 눈으로 보고 있는 것 너머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사물들이죠. 이들 모두 공통점이 있어요. 우리 생각의 흐름을 멈추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나의 이성적 판단, 내가 알던 이야기를 멈추게 하는 힘 말이에요. 그런 힘이 가장 큰 게 돌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처럼 스크린 미디어가 없었을 때에는 어떤 자연물을 마주쳤을 때 내가 딱 멈추게 되는 그런 경우가 더 있었을 것 같아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곧 열릴 ⟪올해의 작가상 2025⟫전시에서 중심이 되는 빈 무덤(empty grave)도 비슷한 맥락이에요. 허묘라고 하죠. 우리나라에 생각보다 허묘가 굉장히 많아요. 그 공간이 비어 있다고 생각하면 적극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돼요. 저는 허묘가 지금으로 치면 메타버스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식의 오래된 가상 세계죠. 비어 있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헛것으로 가득한 상태라고 생각해요.
작가님이 예술가로서 주의 깊게 보고 만들어내는 것은 폭넓은 의미에서의 미디어/미디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에게 미디어/미디엄은 무엇인가요?
예술적인 의미에서 미디엄이라고 한다면 영상이 있고 설치물이 있고, 이게 같이 있어야만 작동을 하잖아요. 저는 장(場)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장 전체가 미디어가 될 수 있고, 그 장 안에는 여러 다양한 미디엄들이 있을 수 있겠죠. 그러면 필요한 것은 결국 장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조율이고요. 조율을 통해 장 안에서 어떤 에너지를 만드는 일이 작업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돌 자체가 하나의 미디어라고 생각한다면, 이 돌을 둘러싸서 다시 이야기를 만들어야 사람들에게 전달이 되는 거잖아요. 장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 저에게는 가장 큰 숙제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전시의 제목이 <고 故 The Late >입니다. ‘고’는 죽음과 늦음이라는 두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무엇에 대한 것인가요? 이번 작업을 준비하며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요?
전시에는 오래되고 낡고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이 있어요. 지금 여기 있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있는 것들, 제 기능을 하는 것 같지 않은 그런 물건들이요. 한때는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게 한다든지, 갈 수 없는 곳을 가게 한다든지 그런 기능을 가진 것들이었죠. 정말로 무척 오래된 것들도 있지만 고물이라고 하기에는 이르다 싶은 과학기술, 지금 우리에게는 신기술이라고 여겨지는 것들도 이 전시 안에서는 낡고 쓸모없는 것처럼 보여져요. 저는 여기서 기술들간의 위계를 없애고 싶었어요. 제가 〈인간과나〉라는 작업에서 우리가 헛것이나 외계를 보고 싶어 하는 욕망에서 수행했던 수련, 명상 이런 것들이 실패하며 만들어진 게 지금의 과학기술이라고 얘기했었거든요. 그런데 그 자체가 위계를 만드는 말이기도 한 것 같아서, 과거 현재 미래가 뒤섞여 있는 상태를 만들고 싶었어요.
저는 실패를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헛것을 보는 것만큼 실패를 본다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예요. 우리가 실패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죠. 그런데 제게 실패는 성공을 위한 반면교사 같은 건 아니에요. 실패의 아름다움, 실패한 것들이 쌓여 있을 때의 아름다움을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비슷한 맥락에서 벽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세계가 뻥 뚫려 있어서 내가 세계에 관해 다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
구상 중인 전시 구성을 보면, 관객은 전시를 보러 들어가자마자 실패를 경험하게 돼요. 그건 이야기를 조각조각 보고 나머지 이야기를 상상하고 자기가 그 너머를 더 상상할 수 있는 기술을 위한 것이에요. 내 이야기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고 다른 사람 이야기와 조합을 하고. 이게 원시 시대의 생존 기술이거든요. 관객이 모든 걸 다 보고 알게 되는 것도 좋지만 끝내 모르고 보지 못한 부분이 남은 채 떠나는 그런 장소를 한번은 구성해보고 싶었어요.
책은 가장 완벽한 매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그 말을 정말 많이 하고 다닌 것 같아요. 책은 볼 때마다 신통방통하다고 생각해요. 미래인이 만든게 아닌가 싶을 때가 많아요. 사람이 만드는 가장 단순한 사물 중 하나이지만 어느 기술적 시도도 이 사물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어요. 호흡이 있고, 장이 있고, 그리고 물체감. 책을 만드는건 감을 만드는 일인것 같아요. 제가 가장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건, 독자가 저자의 시간을 완전히 무시하고 그걸 뺏어가서 자기 스스로 완전히 자기 자신의 시간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에요. 자기가 시간을 직조할 수 있는거죠. 옛날 사람들이 TV를 보고 멍청하다고 말하곤 했는데, 저는 TV가 멍청한게 아니라 책이라는 매체가 지나치게 똑똑하다고 생각해요. 책이 똑똑한 만큼 내가 똑똑하지 않으니 이 매체를 충분히 잘 다루는 것 같지가 않아서 고민입니다. 책은 제가 다루는 매체 중 가장 완벽히 미래적인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 故 The Late’는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전시에 참여하는 임영주의 작품 제목이자, 이와 함께 만들어진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책은 무려 1,000쪽에 이를 만큼 분량이 방대하다. 하지만 이 방대함은 내용의 방대함과는 다르다. 이는 오히려 공간의 방대함이라고 할 수 있다. 헛것이 일으켜지는 공간, 즉 빈 공간을 위한 강렬함을 담은 책. 허구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그것을 지탱하는 실천은 오늘날 무엇보다 급진적이며 또한 드물다. 임영주의 작업이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헛것의 문제가 바로 우리가 당면한 세계에 필요한 윤리를 생각하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