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Hanbum

Writing

 

공연이 끝난 후, 천진난만하게 뛰어가는 아이들과 달리 니나는 무척이나 상기된 얼굴로 홀로 건물을 벗어난다. 그는 세르비아인이었고, 공연 중 많은 사람들이 보는 무대 위에서 머뭇머뭇 그 사실을 고백한 것이다. 시종일관 초조하고 두려운 표정을 짓는 니나의 얼굴은 시대의 비극적인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의 형상이다.

1990년대 초 크로아티아에서는 군사적 위협을 가하던 세르비아에 대한 반감이 팽배했고 세르비아인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깊이 침투해 있었다. 그리고 알렉산드라라는 이름의 12살 소녀가 무고하게 살해된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던 이 사건은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세대가 반성하고 드러내야 할 문제가 되었다.

이 영화는 연출가 올리베 프리예츠가 소녀가 살해된 침묵의 사건을 연극으로 재현하기 위한 준비과정을 기록한다. 그런데 연극에 임하는 배우들 또한 깊은 고뇌에 빠진다. 자기 자신 역시 그 사회적 기억의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비극적인 과거를 드러내기 위해 연기하는 일은 역설적으로 자기 자신의 상흔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일이 된다. 누구에게는 정당하지만 누구에게는 씻을 수 없는 폭력의 기억을 재현하기 위해 분투하는 얼굴들은 그 짐을 짊어진 첫 주인공들이다. 그리하여 연극을 준비하는 시간은 한편으로는 시대의 트라우마를 돌파하는 사회적 과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