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Hanbum

Writing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

한지형 개인전 아이덴티킷: 사람들의 선택(N/A, 2021) 전시장에 놓인 글.

 

‘변신’은 언제나 유동성의 역학 속에서 발생한다. 변신하는 존재들(shapeshifter)은 무엇도 고정되어 있지 않음에 관한 알레고리이자 “우리의 내적 바람과 욕망, 실현되지 못한 동경을 상징”1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남자가 늑대인간이 되거나 쥐가 모자가 되는,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 형태 바뀜 자체가 아니라 변신 가능성에 대한 믿음의 방식이다. 그 믿음이 현실에 도입되면, 알지 못했던 은밀한 규율과 인식론적 한계가 터져 나오는 파열음이 여기저기서 울려 퍼진다. 때문에 변신은 무엇보다도 강하게 서사를 요청한다. 상황과 과정을 총체적으로 재구성하는 방법 말이다. 다른 무언가 되기(becoming)의 사건을 중심으로 조직된 서사는 “대안적 재현”과 “새로운 형상들”, 그리고 그것의 “사회적 위치들”에 대한 탐색2뿐만 아니라 그것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에 대한 실험과 전이 과정의 설계, 그로 인해 왜곡되는 현실에 대한 사유를 수반한다. 그렇기에 변신 이야기는 대체로 SF적이다. 울리케 오팅거의 로드무비 프릭 올란도(1981)에는 낯선 형태, 낯선 움직임을 가진 수많은 몸들이 등장한다. 주인공인 올란도는 성별이 바뀌며 여러 장소를 오가고, 영화적 공간을 가득 채운 손상되고 또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운 그런 몸들을 만난다. 관객에게 이 영화는 정상성의 바깥에 놓인 판타지처럼 보이겠지만, 바로 그 신화적 장소가 프릭 올란도의 영화적 리얼리티이기도 하다. 낯선 몸들의 퍼레이드는 강렬한 시각적 경험이며 동시에 정동적이고 인지적인 충격을 준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 영화는 (세계와 영화 모두의) 정상성에 대한 강한 거부와 뒤이어지는 바람으로 점철되어 있다.

한지형의 작업은 ‘무엇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일 것이다. 그의 작업에는 변신에 대한 충동이 있고 그 충동을 이끄는 당대의 분위기와 인터페이스가 있다. 소비주의와 기술 말이다. 소비주의는 변신이 가능하다는 환상과 여러 상품화된 선택지를 제공하고, 기술은 그 환상에 구체적인 방향과 형태를 부여한다. 한지형이 구성하는 것은 이 충동을 둘러싼 환경이며 그 환경을 통해 이미지를 산출한다. 만약 그의 추상 이미지가 새로운 되기의 종착지라면, 우리는 그 디지털 이미지를 미학적으로 경험하기보다는 그것의 생산 조건과 존재론에 대해서 숙고해야만 한다. 이 디지털적 대상은 보임 아래에 몇몇 가정을 숨겨 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의 구성이 곧 주체성과 관계의 구성과 맞닿아있다는 가정, 디지털적 대상의 존재 조건이 회화 이미지의 생산 조건이 된다는 가정, 그리고 디지털적 대상의 사물성과 실존적 위상이 물질적 사물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가정 등이다.

디지털 대상의 존재 조건을 회화적 생산 조건으로 환원할 수 있을지 묻는다면, 디지털 대상은 설정된 환경에 의해 모양을 갖춘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대답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미지의 형성 과정을 추적하면 디지털 대상의 존재 조건에 대해 오히려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 여전히 이미지가 질문의 중요한 대상으로 남는다. 한지형의 작업을 보며 우리가 디지털 회화 이미지의 존재론에 대해서 집요하게 살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변신 가능성으로서, 주체의 구성 모델로서 제안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예컨대 러시아 구축주의처럼, 조형 원리를 세계의 모델로서 제안한 시도는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그것은 언제나 미래를 새로이 설계해보기를 시도한 계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앞에 주어진 추상적인 이미지가 촉발하는 질문들을 붙잡고 가능한 엄밀히 다루어야만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그 대상에 대해서 아는 바가 별로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3


 


  1. 존 B. 카추바 지음, 이혜경 옮김, 변신의 역사, 미래의창, 2021, 22쪽.  

  2. 로지 브라이도티 지음, 김은주 옮김, 변신: 되기의 유물론을 향해, 꿈꾼문고, 2020, 15쪽. 

  3. 이 글의 제목은 더 나은 인간 존재의 가능성을 위한 자기 수련, 즉 ‘수행’의 방대한 역사를 탐색하는 페터 슬로터다이크의 저서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 인간공학에 대하여(Du mußt dein Leben ändern: Über Anthropotechnik)(문순표 옮김, 오월의 봄, 2020)에서 가져왔다. 

사진 © 홍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