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Hanbum

Writing

작품과 건강

뉴스페이퍼 2호에 수록.

 

‘책 처방’이라는 말을 알게 된 건 몇 년 전 들른 도서전에서였다. 사람들이 유난히 와글와글 모여 있는 부스는 약국처럼 꾸며졌고, 약 대신 책이 진열되어 있었으며, 클리닉을 통해 책을 처방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실제로 책이 사람들의 건강을 개선하는 의학적 효과를 발휘한다면 정말이지 대단한 일일거야, 책 팔아 돈 벌기는 역시나 쉽지 않은 일이군, 생각하면서 바삐 걸음을 옮겼다. 걸으며 나의 주변에 책을 읽는 사람들의 얼굴을 한번 씩 떠올려 보았으나 딱히 건강???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책이 약이기도 하다는데 뭘 잘못 먹은 건가? 어릴 때 한약을 지어 먹고 살이 쪄버렸다는 동네 형이 생각났다.

K가 내방한 것은 반 년 정도 전의 일이다. 푸석한 피부에 눈 주위로 약간의 피곤이 쌓여 있는 것을 제외하면 외견상 크게 눈에 띄는 건강상의 징후가 없던 이였다. 어떤 면에선 꽤나 건강한 편으로 보이기도 했다. 어디가 불편해서 왔는지 물으니 역시나 특별히 아픈 곳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최근 종합건강검진 결과에서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다만 지난 몇 년 간 천천히 기력이 쇠해 감을 느꼈고 자주 피로했으며 분명 어딘가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불안이 자꾸만 커져가서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기본적인 검사 결과 혈압이 다소 높은 것은 빼면 소견상 큰 문제가 없었기에 처방은 하지 않고 대화를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K는 딱히 건강에 신경 쓰진 않았지만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술은 종종 마셨지만 과음하지 않았고, 담배는 애초에 피우지 않았으며, 청소년기부터 꾸준히 운동을 즐겼다고 한다. 유도 유단자에 농구부 활동도 했을 만큼 격한 운동에도 익숙했고, 요가 수련도 꽤나 진지하게 했으며 달리기는 1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수면습관도 개선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K는 자신이 그렇게 건강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건강이 나빠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K는 예술 작품을 보고 그것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이었으며, 곧 그 생활이 10년째로 접어들 것이라고 했다. 그 일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 일이 자신을 망치고 있다고도 생각했다.

나는 이 이야기가 꽤 흥미롭다고 생각했는데, 왜냐하면 그의 일이 예술 작품을 보는 것이라는 점에서였다. 사람들은 대개 여흥을 즐기고 행복해지기 위해, 보다 교양을 쌓고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예술 작품을 찾지 않는가. 모르긴 몰라도 보통 사람들보다는 훨씬 풍부하게 예술 작품을 경험하는 이가 스스로 건강과 멀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어딘지 아이러니했다. 최근 출간된 읽고 쓰는 사람의 건강: 장 자크 루소 주치의의 지식인을 위한 처방전(사뮈엘오귀스트 티소 지음, 성귀수 옮김, 도서출판 유유, 2021)을 보면, 머리를 쓰는 일이 자칫 초래하는 끔찍한 건강상의 수많은 문제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대중들을 위한 의학적 지식과 치료에 헌신했던 이답게, 티소는 이 책을 통해 다양한 역사적 사례를 들어 겁을 주며 건강을 해치지 않고 지적 활동을 하기를 권장한다. 하지만 책을 보다보면, 머리를 쓰는 일을 하며 안 아프기란 하늘의 별따기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들이마시는 공기부터 음식 재료까지, 너무 많은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파묻힌 위험들 하나하나에 신경 쓰며 피하다 보면 정작 하려고 했던 머리를 쓰는 일 자체를 잊어버리거나 무엇을 고민하려 했는지 잊어버릴게 분명하다. 그렇게 보면, 아픈 것은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예술 작품을 보는 일의 부작용이나 결과가 아니라, 예술 작품을 보는 일을 위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 것, 몸을 잊는(unlearning)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통증은 치료해야할 것이 아니라 함께 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분명 이건 이상한 결론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K는 자신이 점점 더 예술 작품을 보는 삶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여실히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무언가 비밀을 알아버렸다는 투였다. 그는 최근에 자신이 우연찮게 듣고 의미심장하다고 느껴 녹음해 두었다는 소리를 내게 들려주었다. 도통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겠고 듣기 좋지도 않았다. 이런 소리를 청취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지경이었다. 이러한 것들을 보고 듣는 이라면, 확실히 건강이라는 관념과는 동떨어진 존재라고 여겨질 만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모르긴 몰라도 그의 몸을 계속해서 공격하고 있을 것이다. K의 일은 능동적이면 능동적일수록 더 다양한 것들로부터 더 강하게 공격받을 것이고, 견고한 몸은 지속적으로 약화할 것이다. 약화된 몸은 외부로부터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끝내 열린다. 더 높은 복잡도와 빠른 유동성의 외부 속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는 최근 들어 신나는 음악 대신 더 케어테이커의 음반을 노동요로 듣는다고 내게 말했다.

약화한 몸은 예술적 생산 활동에 이점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인간은 나약하고 복잡한 것이고 다양한 충동을 가졌기 때문에, 분명 끔찍한 부작용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나는 이런 이들을 위해 책 처방이 아니라 서사와 함께하기를 소개하고 싶다. 변화하는 외부 조건에 대한 수용력이 큰 약화한 몸이 필요로 하는 것은 끊임없이 능동적으로 자신과 자신 주변을 재구성하는 서사능력이다. 이는 의사-환자의 구도를 요구하지 않고, 질병=치료 대상이라는 역학을 뒤집어 청취의 문제로, 구성의 문제로 논점을 전환한다. 여기서 약화한 몸은 끊임없는 관계 재구성의 조건이 되는 것이다. 통증은 사라지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그것과 함께하는 방법을 발명해야한다. 몸을 ‘건강’하게 만들 것이 아니라, 약화하는 몸의 필연성과 이점을 생각해보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치료가 아니라 보다 더 적극적이고 다양한 서사일지도 모른다. 서사의학에 대한 보다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최근 출간된 서사의학이란 무엇인가: 현대 의학이 나아가야 할 공감과 연대의 이야기(리타 샤론 외 7명, 김준혁 옮김, 동아시아, 2021)를 살펴보기를 추천한다.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 몸의 일기 또한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K의 건강 문제에 대해서 무력감을 느꼈지만,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비로소 우리가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