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Hanbum

Talking

박민희 x 이한범

2017 인사미술공간 미술주간 프로그램 막간 작가 릴레이 토크

program

  • 2017년 10월 13일 금요일

    김양우 x 권태현

    우아름: 이미지 아카이브의 태동과 동시대 실천 분석

  • 2017년 10월 14일 토요일

    박민희 x 이한범

    변영선: 독립 큐레이터의 등장과 전시 패러다임의 변화

  • 2017년 10월 19일 목요일

    전해주 x 전영주

    유지원: 미술에 대한 (수행적) 글쓰기에 대하여

  • 2017년 10월 20일 금요일

    이사라 x 최정윤

    배헤윰 x 전효경

  • 2017년 10월 21일 토요일

    이승린: 1990년대 이후 국내 노이즈 음악의 문화적 위상 변화

    서혜영 x 김수정

    이재욱 x 김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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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 오늘은 어제에 이어서 세 번째 시간으로 박민희 씨와 이한범 씨의 토크를 준비했습니다. 박민희 씨는 전통음악을 공부하고 실험하는 공연예술가입니다. 전시와는 다른 공연의 특성상 소수의 관람객이 참여하고 많이 수용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서 아쉬워했던 분들, 기회를 놓쳤던 분들이 계실 것 같아요. 오늘 시간을 통해서 그런 아쉬움과 궁금한 점을 해소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한범 씨는 미술이론을 공부하고 예술에서 다양한 매체가 설명되는 방식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술관의 퍼포먼스 수용에 관해서도 공부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래서 오늘 미술관에서 퍼포먼스로 읽히기도 하는 박민희 씨의 작업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서 함께 모셨습니다. 박민희 씨 작업의 형식과 구조라는 큰 틀 안에서 의미를 함께 이야기해 주실 것 같아요. 박수로 모시겠습니다.

이한범 소개받은 이한범입니다. 오늘 박민희 작가님과 함께 이야기하게 되었는데요, 토크를 하기 전에 박민희 작가님께서 오늘 나눌 대화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약식 공연을 준비하셨다고 합니다. 입구에서 나눠 드린 안대를 모두 받으셨나요?

박민희 공연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고요, 아주 간단하게 제가 그동안 해왔던 작업 방식을 소개할 수 있는 샘플을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안대를 다 착용해주시면 시작할게요.


이한범 박민희 작가님이 토크 전에 공연하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이런 느낌이겠구나’ 하고 상상했었는데 직접 듣고 나니 또 다른 경험을 하게 되어서 인상적인데요. 제가 박민희 작가님의 공연을 보고 가졌던 느낌은 항상 이런 식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처음 박민희 작가님의 공연을 봤던 게 2013년 페스티벌 봄에서 가곡실격 나흘 밤이라는 공연이었고, 이후 2016년 문래예술공장에서 했던 무빙/이미지 전시에서 ‘가곡 시리즈’ 이후 ‘가사 시리즈’로 넘어와서 처음 선보였던 길군악이라는 작업을 경험했습니다.

대부분의 관객이 그러하시겠지만, 저 또한 박민희 작가님이 전통노래를 공연으로 만드는 분이라는 기본적인 정보를 알고 공연을 봤었는데요, 오늘 안대를 끼고 느꼈던 것처럼 공연에서 전통이라고 할 수 있는 무언가를 경험하거나 내용에 대한 이해를 많이 얻지 못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청각적인 경험 혹은 ‘이상하다’고 느끼는 경험이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어요. 같이 공연을 보았던 사람들도 ‘이상하다’는 말을 많이 했었고요. 그런데 그 ‘이상하다’는 경험이 저한테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관객이 이 작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이상한 감각을 유발하기 위한 정교한 구조와 장치들이 있다고 느꼈어요. 구조적으로 내가 어떤 특정한 조건 안에 들어가고, 이 구조 안에서 나에게 간섭하는 모종의 요소들이 산재해 있는데, 그 요소들이 가시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그게 나에게 어떤 감각적인 반응을 유발하는 것으로 기능한다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저는 작가님이 형식주의 작가라는 생각을 했어요. 어떤 내용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다루고 있는 매체가 가진 디테일한 요소와 형식들을 특정한 선택을 통해 조합해서 구조를 만들고, 구조 자체가 발화하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우리가 관람하면서 느끼는 것은 노래의 가사를 들어서 이게 어떤 의미라고 하는 이해가 아니라, 소리가 움직이고 시각이 어떻게 차단되는지와 같은 전반적인 경험들 자체에서 환기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제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과연 이 형식적인 선택의 조건들이 무엇이었을까, 전통노래라는 것을 가지고 간다고 했을 때 이런 형식적인 선택을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하는 점이었어요. (대담을 위해) 박민희 작가님과 만나서 대화를 나누면서 알게 된 것은, 작가님은 기본적으로 전통노래에 대한 이해를 근본적으로 다시 하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이 노래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어떤 상태에 놓여있어야 하는지, 어떤 형식으로 재조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나서 선택되어 나온 것이 공연으로 우리에게 보이는 것이죠. 오늘은 이런 전반적인 선택의 문제와 선택을 가능하게 했던 전통노래에 대한 작가님의 이해 방식, 태도, 이런 것들에 대해서 질문을 해보려고 합니다. 작업을 설명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제가 이전의 작업들에서 특징적으로 읽었던 형식적인 요소들에 대해 질문하고, 그것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서 박민희 작가님이 이야기해 주실 거예요.

첫 질문은, 다들 안대를 쓰고 노래를 들으셨잖아요. 박민희 작가님의 작업을 보면 거의 초기 작업에서부터 시각을 항상 제한해요. 이번처럼 직접적으로 눈을 가리는 것이 될 수도 있고, 프레임을 만들어서 시각이 집중되도록 하는 방식일 수도 있고, 아예 방을 만들어서 다른 곳으로 시선이 가지 못하도록 가두어 두는 것일 수도 있었죠. 이런 식으로 시각에 대한 제한을 신경 쓰는 것 같거든요. 그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어보았으면 합니다.

박민희 시작은 정말 단순했어요. 전통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우리 사회에서 전통예술을 다루는 방식과 전통예술을 국한하는 고정적 이미지, 이런 것들이 행위자로서 콘텐츠를 수행하는 데 너무 큰 어려움을 주었거든요. 그래서 ‘시각에 대한 고정적 편견을 지워버린다면, 어쩌면 청각 콘텐츠를 그 생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했습니다. 작업을 이어가다 보니 저 스스로가 목소리뿐만 아니라 들리는 모든 ‘소리’를 물질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마치 사운드가 신체를 가진 것처럼 인식하면서 물성을 가진 매체로서 소리의 운동이나 배치, 특정 위치에 있을 때 중첩되는 방식 같은 것들에 집중하였고, 적극적으로 제가 원하는 시각선을 관객에게 전달하게 되었습니다.

이한범 작업을 보여 드리면서 어떻게 시각적인 제한을 구조화했는지 이야기해도 좋을 것 같아요.

박민희 이한범 씨가 2013년에 보셨던 가곡실격: 나흘 밤은 4개의 신(scene)으로 구성한 옴니버스 작업이에요. 지금 보여드리는 영상은 2014년에 아르코 미술관 Tradition (Un)Realized 전시에서 재공연한 현장의 실황입니다. 마지막 신에서 전통가곡이 갖고 있는 장단 구조를 신체화해, 영상에 보이는 하얀 옷을 입은 두 무용수의 움직임으로 시각화했어요. 그렇게 관객은 신체화, 안무화, 시각화된 장단을 관람하게 됩니다. 두 명의 무용수를 밝히는 조명 외에는 최대한 빛을 차단하고, 노래를 하는 세 명의 가수는 여러분이 방금 보신 퍼포먼스처럼 관객 사이사이를 유령처럼 유랑합니다. 가곡의 장단은 16박 장단인데요, 귀로는 이 장단이 잘 들리지 않아요. 4분의 4박 혹은 4분의 3박에 우리의 신체 리듬이 익숙하거든요. 게다가 너무 느려 듣는 감각만으로는 좀처럼 계산되지 않는 리듬 패턴을, 보는 감각을 통해 인식하게끔 한 작업이었습니다.

가곡 실격: 방5↻는 일곱 개로 구획한 공간에서 관람이 이루어지는데요,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관객 혼자 관람할 수밖에 없습니다. 관객은 방마다 객석 배치로 인해 제한된 시선을 갖게 되어요. 사운드의 경우에는, 아까 관객들 사이사이를 돌 때도 어떤 분께는 가까이 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했는데요, 방 5↻에서는 방마다 퍼포머와 관객의 거리와 위치 설정을 다르게 적용하고, 시각선의 경우엔 3번 방과 4번 방을 제외하고는 빈 벽을 바라보는 식으로 제한돼요. 이때 의도했던 것은 관객들이 보다 사적으로 관람할 수 있는 상황을 공연이라는 구조와 공공장소라는 환경에서 가능한 방법으로 만드는 것이었어요. 영상을 보면서 조금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가곡의 음악적인 구조를 공간 구조로 전환하고 그 공간 구조와 관객의 관람 동선, 그리고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통해 가곡에 대한 해석을 드러낸 작품인데요.

1번 방은 이렇게 관객의 바로 뒤에 앉아있는 퍼포머가 관객의 뒤통수에 노래를 들려주는 상황이구요, 2번 방은 이렇게 퍼포머가 관객 앞에 앉아있긴 하지만 정면은 아닌 위치에서 노래를 들려주는 상황이에요. 관객은 마음만 먹으면 쉽게 퍼포머를 바라볼 수는 있지만, 그러기엔 조금 부담스러운 거리일 거예요. 정면을 바라보고 있으면 시야 안에 퍼포머가 잡히긴 해서 초점이 맞지 않은 상태로 노래하는 모습을 관람 할 수 있습니다. 3번 방은 다른 방처럼 가까이 관람하지 않고 약간 관조하는 통념적인 관람이 이뤄지는 방이에요. 4번 방은, 제가 당시 가곡 4장에 대해 ‘고요한 절정’이라고 해석했어요. 고요함을 어떻게 물질화해 표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침묵을 배치했습니다. 아주 생각이 꽉 찬 두 명의 퍼포머가 침묵한 상태로 한 명의 관객을 바라보는 구조예요. 대부분 관객의 경험에서는 관객 수가 더 많고 퍼포머의 수가 적어야 하는데 이 경우에서는 그 숫자가 바뀌어 버린 거잖아요. 이렇게 되었을 때, 압도적 침묵이 발생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배치해 보았어요. 더군다나 퍼포머의 머릿속은 이미 구성한 대본으로 꽉 차 있기 때문에 이 많은 생각이 언어로 배출되지 않을 때 공간의 에너지가 달라지더라구요. 마지막 방에서는 퍼포머 바로 옆에 관객이 앉는데요, 이때도 관객은 비어있는 벽을 바라보고 있어요. 소리가 바로 옆에서 가까이 들려오는 배치인데요, ‘듣는다’는 인식이 작동하기도 전에 목소리가 관객의 깊은 곳에 침투하기를 바랐습니다.

이한범 ‘시각의 제한’이라고 표현했지만, 제한하는 와중 시선의 방향과 시선의 거리를 엄격하게 설정해 놓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방 5↻를 보면 관객이 앉는 방식을 제한함으로써 각 방에서 이루어지는 소리에 대한 경험이 다른 위상에서 수행됩니다. 시각적인 것에 대한 연출이 결국은 소리나 노래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은데, 소리에 대해서도 한 번 이야기하면 좋겠어요. 박민희 작가님이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전통노래고,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공연이라기보다는 소리를 어떤 식으로 관람객에게 전달하고 들려줄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크잖아요. 방금도 영상을 보셔서 알겠지만 박민희 작가님의 공연을 보면 소리가 정말 많아요. 노랫소리만 들리는 게 아니라 너무나 많은 소리가 중첩돼서 들립니다. 노래의 박은 무척 느리고, 발음 자체가 명확하지 않아서 의미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거든요. 이런 식으로 소리를 섬세하게 설정하는 것 같아요. 여기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박민희 제가 음악을 공부한 시작점에서 음악에 대한 인식이 ‘사운드’였던 거 같아요. 평범한 대한민국의 사람인지라 어렸을 때는 당연하게 서양음악부터 알게 됐죠. 음악 교육의 시작으로 피아노를 먼저 배운다거나 혹은 밖에서 들리는 대부분의 사운드가 서양의 인식론 위에서 발생한 음악이니까요. 그게 익숙한 상황에서 전통음악을 공부했는데, 일단 처음엔 너무 멋있었고, 조금 공부하다 보니 이건 단순히 멜로디가 다르고 박자가 다른 문제가 아니라 이것을 구성하는 체계, 인식 체계가 다르고 사고방식-창작방식이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콘텐츠를 구성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은 결국 보이는 방식이 그에 맞게 달라야 하고, 그것을 향유하는 방식 또한 달라야 하는 것인데요, 예를 들면 극장의 보여주는 방식(프레임)이 잘못 설정되어있다는 인식을 하면서부터 전통음악을 사운드적 측면에서 해체하며 듣게 된 것 같아요. 아마 태생적으로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에 있어 해체하며 파악하는 사람이었을 텐데, 이게 맞는 방식이라는 생각을 한 이후로 더욱 그런 방식에 집중하게 된 것 같아요. 사운드들이 어떻게 배치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한범 전통노래에서요?

박민희 네, 저는 노래를 하면서 한국 전통음악이 음계를 구성하는 방식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서양음악에서 멜로디 라인을 그리는 방식이 아니라, 음정들이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쉽게 말씀드리자면 서양음악에서는 음계의 구성요소가 ‘C’, ’D’, ’E’ 와 같은 음정들, 즉 주파수로 결정되는 음높이(pitch)의 인식론 위에 존재하잖아요. 한국음악에는 ‘황’, ‘태’, ‘중’ 이런 음정들이 있는데, ‘화^아아∽∽앙‿태^애↗중’ 이런 식으로 음과 음 사이의 움직임을 빼놓고서는 음계를 이야기할 수 없어요. 음정이 개별적 음고(pitch)로 존재한다기보다는, 음계에 따라 설정된 각 음의 형질, 그리고 주변에 관계한 음정들 사이를 이동하는 방식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관계성과 운동성이 훨씬 중요한 요소이고, 그런 성질을 통해 음악이 구성되죠. 모든 음악이 그렇듯 ‘멜로디’가 음악을 구성한다 해도 음정들의 관계가 더 중요한 음악이라면, 어떻게 구성하고 관람하는 게 적합할까 생각하면서 소리 쌓는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이한범 박민희 작가님이 저에게 보여주셨던, 가곡실격: 나흘밤 공연을 위해서 쓴 악보가 있어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음악의 악보와는 완전히 다르게 생겼는데요, 그것을 함께 보여주시면 좋겠어요.

박민희 악보를 보여 드리기 전에 어떤 음악의 악보인지 공연 영상을 먼저 보여 드릴게요. 세 명의 가곡 가수가 톤차임이라는 악기를 연주하면서 같은 노래를 반복하고 있는데요, 단순히 돌림노래를 목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아닌, 장단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 연주를 반복하게 되는 노래예요. 제가 하는 말이 이해가 잘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보편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전통음악론과는 다른 인식론으로 이야기하고 있어서 설명이 조금 어려운 것은 이해해주세요.

한국전통음악을 기반으로 창작하는 음악가 대부분이 오선보 위에 기보하는데, 저는 기보 방식이 곧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까 영상으로 보여드렸던 음악의 사고 체계가 (악보를 보여주며) 이런 거예요. 이게 제가 음악을 써 내려가는 방식인데, 저는 악기의 사운드나 멜로디를 중심으로 음악을 만들지 못하고, 마치 표에 구성하듯 음악을 만들고 편집해요.

16세기에서 19세기까지 오면서 가곡이 축소되고 변형된 과정이 있어요. 이 음악(나흘 밤) 같은 경우는 그 변형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축소되고 변형되었는지 유추해보고, 유추한 방식을 도입해서 저도 기존에 있던 음악을 축소하고 변형해서 만든 것이에요. 그러다 보니 사운드를 상상하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듯이 음악을 써 내려가고 그것을 도표로 만든 다음에 연주자에게 나눠주고 연주해보는 거죠.

이한범 박민희 작가님의 악보를 보면 음소들이 한 칸마다 있고 이것을 어떤 식으로 발성할 것인가에 대한 지시가 쓰여 있어요. 그래서 무언가 조합이 되어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흐름을 만든다기보다는 하나의 요소가 선택되어서 전체적인 구성을 생성한다는 인상을 받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공연을 봤을 때의 이상하다는 경험이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우리가 음악을 듣거나 어딘가에서 공연을 본다고 했을 때 암묵적인 습관 혹은 음악을 인지하기 위한 준비 자세들이 있는데 박민희 작가님은 그것들을 비껴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이것이 기존에 있던 것(전통)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이상한 경험에) 설득된다고 생각했어요.

박민희 제가 하는 작업들이 이상하게 보이는 건, 음악에 대한 이해를 공간으로 펼친다든지 음정의 운동성을 소리의 방향으로 구현해 본다든지 하기 때문인 거 같아요. 전통예술 안에서 음악, 미술, 글 등이 하나의 몸체에서 펼쳐졌던 상태를 집중해서 바라보다 현재로 오면서 분리된 것들을 취합하기 시작했어요. 기존의 콘텐츠가 하고자 했던 일이 무엇인지를 궁금해했죠. 저 또한 모든 교육을 서양의 시스템으로 배운 까만 머리 서양인이거든요. 십 대까지는 전통예술을 바라보는 제 시선 역시 전통에 대해, 오리엔탈리즘 적인 안경을 끼고서, 신비롭고 특별한 것으로, 그렇기에 이것을 하면 나도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식민주의적인 폭력적 시선을 취하고 있던 것이더라고요. 내가 전통예술을 굴절 시켜 바라보고 있다란 생각이 들자, 콘텐츠를 다시 바라보는 훈련을 해야 했어요. 그렇게 다시 본 콘텐츠를 누군가에게도 굴절된 시선 없이 전달하고 싶어졌어요. 신체를 매체로, 제가 바라본 방식을 드러낼 수 있는 공연의 프레임을 짜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이한범 박민희 작가님을 형식주의자라고 이야기한 것에는, “전통음악은 이런 거야”라고 말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근본적으로 이해하는 전통노래의 구조와 특성들을 구조화해서 경험하게 한다는 측면이었거든요. 회화를 예로 들어 생각해본다면,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작가들이 선과 색, 면이라는 회화의 기본적인 형식 요소를 이용해 어떤 식으로 감각을 생성할 수 있고, 경험과 의미를 발생시킬 수 있는가를 실험했다는 면에서 박민희 작가님과 거의 유사하다고 생각했어요. 전통음악에 대한 정체성 찾기나 의미부여가 아니라 형식 그 자체만으로 경험을 구조화한다는 측면에서 형식주의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면에서 감각이 소중했던 이유는, 매체 특유의 수용 방식, 매체가 던져놓는 고유한 관람 형식을 잘 제안 해주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기술 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벤야민이 건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건축은 본질적으로 분산적 지각을 요구하는 예술 형식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대상이 수용자에게 주어지는 방식의 내적 필연성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하는 말이죠. 이걸 공연으로 치환해서 봤을 때, 지금 일반적인 전통노래의 공연형식은 완전히 시각적인 관람만을 위한, 혹은 청취 그 자체만을 위한 제안처럼 보이는데, 박민희 작가님은 (전통음악의) 청취-관람의 요구들을 본인의 이해를 바탕으로 다시 구조화해서 인상 깊었어요.

또 다른 질문인데요, 소리가 중첩된 상태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박민희 ‘전통음악이 어떤 식으로 창작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지금 동시대의 다른 음악가들이 하고 있는 방식을 살펴보았어요. 흔히들 서구의 인식 구조 위에서 발생한 음악에 한국 전통음악의 사운드 요소를 이식하는 방식을 많이 선호하더라구요. 그런데 제 관점에서 그것은 아까 말씀드렸던 음정이 이동하는 방식과 본질적 성격을 지워버리고 가창의 발성이나 악기의 음색 등, 질감만 남긴 방식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한국 전통음악은 어떤 방식으로 창작했고, 어떤 짓을 했지?’ 라고 생각을 했을 때, 같은 조성, 그러니까 조성이라는 것이 서양음악 조성과는 개념이 다른데요, 쉽게 말하면 억양과 같은 것이에요. 예를 들면, 전라도 사람들끼리 모여서 정해진 시간 안에 전라도 억양으로 동시에 같은 내용의 말을 한다고 가정해 봐요. 그런데 특정 호흡, 특정 리듬감은 같이 가지고 가야 해요. 특정한 시간 동안 함께 호흡하며, 같은 억양으로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하고 한숨 쉬고, 또다시 같은 억양으로 이야기를 하고. 그러나 각자가 가진 목소리와 개인의 성격에 따른 말투나 언어습관, 그리고 수식어 등은 조금씩 다르게 말하고. 이런 것들이 한국음악이 구성되는 방식이라고 이해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내가 이 노래의 구성을 어떤 방식으로 새로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는데, 저는 정말 희한하게 음악을 아무리 해도 음악적인 사고방식이 안 되는 사람인 거예요. 멜로디 하나도 못 쓰겠고요, 그렇게 들리지도 않고요(웃음).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들어야겠다 생각하고서 일정 시간의 타임라인 위에 동일한 조성의 소리를 레이어드 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관객에게 그 상태를 여러 각도와 거리에서 들려주는 거죠. 이를테면 음악에서 메인 멜로디를 강조하는 방식은 관객 귀에 가장 가까이 갖다 대는 거예요. 그래서 나머지 소리는 자연스럽게 반주가 되게 하는 거죠.

저는 실은 이게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들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하나가 선명해지면 다른 것들은 덩어리지고, 또 다른 하나가 선명해지면 나머지가 덩어리지고, 이렇게 되지 않을까 상상하며 구성했는데 어떤 분들은 조금 힘들어하시더라고요. 2016년에 했던 길군악에서는 관람객이 기구에 의해서 이동하기도 해요. 이런 경우에는 관객 의지와 상관없이 객석의 움직임에 의해 가까운 소리가 선명해지고 다른 것은 덩어리로 멀어지는 것을 적극적으로 장치했어요. 이게 제가 음악을 구성할 때 ‘메인 선율’을 다루는 방식인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소리가 산만하게 있는 것 같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강조되는 소리가 있고 때로 어떤 소리가 반주가 되는 등 나름의 규칙을 갖고 있어요.

이한범 그걸 헤테로포니(heterophony)라는 용어로 제게 설명해 주셨었죠.

박민희 ‘헤테로포니’라는 방식은, 이건 이한범 씨와 사석에서 이야기했던 건데, 제 개인적인 취향이 헤테로포니를 굉장히 좋아하는 거라고 했는데요(웃음), 한국 전통음악을 소개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에요. 하나의 조성 안에서 동일한 선율을 연주하는데 조금씩 각자 다르게 연주하는 거예요. 그게 교차될 때, 교묘하게 다르게 비껴가고 맞물리고 하는 것이 우연에 의해 탄생하면서, 재미있고 예측하지 못한 지점이 발생해요. 그렇지만 특정한 시간(타임라인) 안에서는, 우리가 이 시간을 같이 공유한다는 약속을 통해서, 그 시간 동안의 이야기가 어디 멀리 가는 건 아닌 거죠. 같지만 다른 이야기를 하고, 다르지만 같은 이야기를 하고. 그런 헤테로포니적 상황을 공연 안에서 만들고 싶어요.

이한범 그게 박민희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전통음악의 핵심적인 것이고 아름다운 것일까요?

박민희 아름답다는 말은 조금 위험한 말인 것 같고, 제가 느끼기에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이한범 처사가 작업을 예로 이야기해주시면 어떨까요?

박민희 처사가는 가장 최근에 했던 작업인데요, 오픈형 이어폰으로 듣는 작업이었어요. 오픈형 이어폰은, 끼고 있어도 밖의 소리가 다 들리거든요. 영상에서 보시듯 공간 전체에서는 이어폰을 끼지 않으면 라이브로 노래하는 퍼포머의 목소리만 들립니다. 공연장에는 세 개의 팔각정이 존재해요. 여덟 명이 한 그룹을 이루어 세 공간을 순환하는데 어떤 시점이든 시작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심지어는 중간에 들어와도 되는 구조였어요. 물론(컨셉상으로는 중간에 들어와도 되지만) 실제 공연에서 다른 관객의 관람을 방해할 수 없어 그렇게 하진 못했어요. 여하튼 이렇게 순환하는 구조로, 시작과 끝이 없는 공연이었어요. 이 영상에서 보이는 팔각정에서는 관객들이 테이블에 놓인 오브제를 보면서 관람하고요. 앞서 보여드린 다른 두 개의 팔각정 공간과는 다르게 들려오는 소리가 멀어졌다는 걸 느낄 수 있으신가요?

이한범 (토크 처음에 보여주셨던 공연에서) 돌아다니면서 노래했던 그런 거리감들이 생기는 거죠. 한 가지 생각해볼 것은 이 (노래)소리가 명확히 들리는 게 아니라….

박민희 네, 더 가까이에는 다른 소리들이 계속 들리고 있어요.

이한범 이어폰에서는 박민희 작가님이 직접 쓴 스크립트를 성우가 내레이션 하는 것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어요. 노래와 성우의 내레이션이 계속 겹쳐서 들려오고, 그 공간이 세 개이고, 이런 헤테로포니 소리가 뒤엉켜서 들려오는 상태라고 상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박민희 음악적으로는 헤테로포니를 좋아하기도 하는데 사운드의 텍스처를 겹치는 걸 선호하는 편이에요. 처사가의 경우 오픈형 이어폰을 사용함으로써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사운드의 질감과 음향 장비 없이 듣는 현장 사운드인 퍼포머의 노래하는 목소리 질감을 동시에 재생시키고, 다른 층위의 질감이 귓속에 있는 이어폰과 현장음이라는 거리감으로 부딪히는 상황을 연출했습니다. 관객은 그 질감의 충돌 사이에서 순간순간 들어야 할 것을 선택해야 하는데, 아마도 모든 관객이 계속해서 들려오는 것과 듣고 싶은 것 사이에서 고민했을 거예요. 텍스처를 통해서 어떤 정서의 내러티브를 만든다던가 감각의 층위를 구체화하기도 하는데요, 단순히 음악적 조성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사운드를 나란히 동시에 겹치고, 의도하지 않은 현장음도 앰비언트 사운드로 활용하자는 주의라 크게 차단하지 않는 편이에요.

이한범 계속 말씀하신 단어 중에 와 닿는 것은 “계속 순환하도록 만들었다”거나 소리 자체가 “움직이는 것”이라 말하신 거예요. 관람객은 전체 구조에서 계속 이동하면서 순환하는 어떤 조건 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길군악에서는 돌아가는 놀이기구 위에서 관람하게 되고, 처사가 같은 경우에는 방을 옮겨 다니면서 듣게 되고, 가곡실격: 방 5↻에서도 방을 옮겨 다니면서 소리를 듣게 되는데요. 순환하는 구조를 만든 것에 관해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박민희 네, 여러 가지로 순환하는데요, 이 영상은 작년에 했던 길군악이라는 피스에요. 이 공연은 저 놀이기구를 돌리는 스피드를 맞추는 게 힘든 작업이었는데요(웃음), 무게가 무거운 사람과 가벼운 사람을 다양하게 앉혀보면서 손의 힘 조절을 퍼포머랑 같이 연습하고 그랬어요. 이때의 순환은 앞서 말한 방 5↻처사가와는 다른 의미이긴 한데, 제가 여러 가지 순환의 의미들을 좋아하네요. 이 작품에서의 순환은 실제로 물리적인 이동이었어요. 공연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극장이라는 공간 안에 들어가야 하는 제한적인 조건들이 있잖아요. 꼭 극장이 아니어도 미술관이든 어디든 구획된 공간 안에 들어가서 특정 시간 안에 특정 관객들을 만나서 어떤 특정 콘텐츠를 제공하는 게 공연이라는 최소 조건이잖아요. ‘최소 조건을 가지고 이것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 생각했어요. 길군악이라는 제목은 사람들이 길에서 행진하면서 부르는 노래에서 유래가 되었다고 해요. 그 길에 대한 동선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저 스스로가 수동적인 관객이어서 그런지 저는 항상 관객이 수동적이라고 예측하고 작업을 시작해요. 어떤 공연에 갔는데 이동하라고 하면 ‘뭘 또 걸으라고 하냐…’ 이런 기분이 들어요(웃음). 그래서 일단 앉혀 놓고 ‘관람자로서 충실한 상태, 굉장히 수동적인 상태에서 동선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어떻게 있을까’ 하다가 이렇게 돌아가는 구조물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돌리면, 동력이 있는 한 영원한 동선을 만들 수 있잖아요.

길군악은 새로 시작한 ‘12가사’ 시리즈의 첫 작품인데, 이 시리즈는 사회 정치적 영향이 ‘12가사’에 미친 영향에 대해 생각하면서 시작된 작업이고, 그 과정에서 ‘사라진 오락성’이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어요. 그래서 길군악에서는 유흥성을 직관적으로, 시각적으로든 감각적으로든 마련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해서 저런 뺑뺑이 장치를 만들었고요. 말할 때는 뺑뺑이라고 하지만 적을 때는 ‘Playground Roundabout’이라고 적어요(웃음).

두 명의 연주자에 의해 발생하는 사운드는 객석의 양쪽에 있는데 이 소리는 고정되어 있고, 관객이 이동하면서 소리가 계속 순환하게 되는 구조를 갖고 있어요. 이때는 물리적인 이동, 순환이었고요. 제가 계속 순환하게 하고 관객들을 시작과 끝이 없는 구조 안에 몰아넣는 것은 이것 역시 제가 전통음악을 이해하는 방식에서 시작이 된 것이에요.

방 5↻를 통해 보여드렸던 음악적 구조 안에서 순환하는 구조가 있지만, 그보다 더 선행하는 순환의 이해가 있어요. 전통음악 하는 사람들은 노래를 ‘사사(師事)’라는 방식을 통해서 배워요. 구전심수(口傳心授)를 통해서 노래를 배울 때는 선생님이 마치 음악의 엄마 같은 존재예요. “일가를 이룬다”라는 표현이 있잖아요, 저는 이 말을 어떤 식으로 이해했냐면, 무언가에 대해서 굉장한 전문가가 되면 그 전문성을 토대로 자기가 가진, 몸으로 습득한 어떤 콘텐츠에 대한 가족을 구성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의 스승은 나의 음악적 엄마이고, 스승의 엄마는 나의 음악적 할머니고, 이런 식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어떤 음악적 집안에 들어가게 되는 거죠. 이런 과정을 통해서 레슨을 받고 음악을 접하다 보니, 음악이라는 것이 이 지역 안에 굉장히 오랫동안 머무는 것이고, 사람은 이 음악의 전달자, 그것을 가지고 이동하는 전달자가 되어서 시간을 스쳐 지나는 사람들 같더라고요. 음악은 한 지역 안에 그대로 존재하는데 사람은 계속 지나가요. 저는 음악을 신체가 있는 물질적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에, 노래를 배우는 과정을 여러 사람이 한 음악을 품었다가 내뱉는 과정으로 인식했어요. 그리고 또 음악의 관점에서 보면 음악이 어떤 한 사람을 관통하여 지나가면서 그 사람의 습관과 모든 것을 품고, 또 다른 사람을 지나가고 또 다른 사람을 뚫고 지나가고, 그렇게 오랫동안 시간과 사람을 관통하면서 사람의 몸을 통해서 살아가게 되죠. 몇백 년 지나고 나면 음악이라는 물질은 다른 형태가 되지만 그게 사실은 살아있는 상태예요. 이런 식으로 매체가 순환하는 방식, 그리고 그 순환을 전달하는 전달자로서 사람이라는 매체, 이런 것들을 계속 생각을 하면서 공연을 통해서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순환의 방식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이한범 이 말에 공감이 되는데요, ‘이상하다’는 감각에는 이런 것도 있었어요. 공연을 보면 내가 노래를 들은 건지, 퍼포먼스를 본 건지 아니면 참여를 해서 나도 같이 뭘 한 건지 애매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소리가 감상의 대상만으로 남는 것이 아니고, 내가 노래를 부른 건 아니지만 같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상한 소리가 나에게 접해졌을 때에 생겨나는 이상한 운동성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박민희 작가님의 작업이 수행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본인이 퍼포먼스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설정해 놓은 전체의 구조와 그 구조에서 발생하는 소리의 경험이 매개가 되어서 나에게 어떤 작용을 하게끔 만든다는 거죠. 단순히 나에게 흡수되고 이런 문제가 아니라 다른 운동성이 무언가를 변화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이것이 전통음악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인상 깊어요. 그 형식이 유래될 수 있는 조건들에 대한 분명한 탐구가 있었겠죠. 이런 면에서 박민희 작가님의 작업 자체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리서치 작업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본인의 음악에 대한 이해를 말씀해주셨는데, 전통음악과 노래에 대한 역사적인 이해를 함께 가져가더라고요. 최근에 처사가로 만든 책자가 있어서 제가 받았는데 처사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박민희 제가 가곡실격이라는 작업을 하다가 최근에 가사로 넘어왔는데 가사는 열두 개예요. 열두 곡이 하나하나 다 달라서 지금 약간 드래곤볼을 모으는 마음으로(웃음), 작업을 모으고 있어요. 처사가도 그중 하나예요. 열두 개 모두 독립된 작품으로서, ‘유흥성’처럼 제가 각각의 가사를 이해한 방식을 어떻게 개별 작품으로서 완성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사실 제일 하고 싶은 것은 열두 개를 싹 모아서 언젠가 큰 운동장 같은 곳에 열두 개를 놓고 동선을 만드는 것이에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저는 제 작업을 관객의 동선을 만드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물리적인 동선이 아니더라도 시각과 청각의 동선이라던가요. 이 열두 개를 모아서 동선 작업을 하고 싶어요.

열두 개의 가사 작업에는 순서가 없어요. 그때그때 지원금이나 형편에 맞게(웃음) 원하는 콘셉트를 실현 할 수 있는 행정적인 조건에서 차례차례 할 예정인데요, 십이가사라는 게 사실상 열두 곡이 대단히 큰 음악적 결속력 없이 묶여 있기 때문에 이 작업만큼은 이렇게 좀 맥락을 탈락시키면서 완성하고 싶어요. 처사가는 ‘십이가사’라는 장르가 처한 현실을 풀기에 적합한 노랫말과 역사를 가진 피스여서 관객이 직접 구성된 공간을 이동하고 순환하며 내용을 파악할 수 있게 만들었어요. 보여드리고 있는 이 책은 공연의 일부예요. 공연을 본 사람만이 이 책을 봐야 이해할 수 있어요. 혹은 공연을 보고 이 책을 봐야지만 공연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공연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책이에요. 자료 조사해서 수집한 내용을 편집해서 담았는데, 책을 쭉 읽고 나면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깔때기를 댄 듯 흐르게 페이지를 배치했어요. 그러나 페이지 하나하나만 보면 마치 개괄서처럼 만든 책이에요. 쓱 한 번 돌려보시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한범 저 책도 재미있었어요. 박민희 작가님이 진짜 일관적이라고 생각했죠.

박민희 어떤 점에서 일관적이죠? (웃음)

이한범 책에서도 콘텐츠가 세 개로 나눠지고.

박민희 아, 맞아요 (웃음)

이한범 하나의 내러티브로 글을 연결시키지 않고, 콘텐츠를 세 가지 성격으로 범주화하고 ABC로 구분하여 이를 조합해 책을 만드시더라고요.

박민희 공연의 구성 방식이 세 군데 공간을 순환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책 페이지도 꼭 ABC-ABC는 아니고 AA-BB-C-ABC 이런 식으로 왔다 갔다 해요. 텍스트들을 발췌하면서 변형시킨 것은 없는데 배치를 통해서 탈맥락화된 문장들도 있구요. 은근히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읽히도록 힘을 실었죠.

이한범 책이라는 매체를,

박민희 약간 공간적으로 이해하는 것 같아요, 책 또한.

이한범 네, 공연뿐만 아니라 책 또한 그렇게 접근해서 흥미로웠거든요. 전반적으로 무언가를 이해하는 프레임이라고 해야 할까요, 방향이 있는 것 같아서 재미있었습니다.

자신을 “관객의 동선을 짜는 사람이다”라고 이야기하셨잖아요. 작가님은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계속 공연하지만, 미술의 자리에서는 노래하는 사람의 정체성이라기보다는 연출가, 전체적인 구조를 구축하는 건축가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어떤 정체성이 더 강한지 혹은 그것을 어떻게 대하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박민희 그것에 대해서는 완전히 분리해서 생각하고 있어요. 현재 제게 노래는 밥벌이고요, 저 스스로는 공연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더 강하게 가지고 있어요. 주변에 미술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 그렇더라구요. 자기 작품을 할 때랑 주문받은 작업을 할 때랑 완전히 다른 정체성으로 일을 하는 게, 저도 비슷해요. 그런데 하필 노래라는 게 신체성이 강해서 숨을 수 없는 분야이긴 하지만요. 실은 공연을 만들 때 보면서 작업하고 싶을 때도 많아요. 출연하지 않아야 전달이 잘 될 수 있는 공연을 만들 때도 출연을 하게 되는 건 제작비를 아끼고자(웃음) 하는 거라 안타까움이 있어요. 우리나라는 신도 작고 업계도 작다 보니까, 관객도 늘 오시던 분들이 오셔서 제 얼굴을 아시는 관객분들도 많아요. 그것 때문에 작품을 읽는 과정에서 오해가 생기기도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원하는 맥락으로 읽히지 않고 때로는 단순한 자아 폭발로 읽히기도 하는 것 같고… 그런데 그런 것과는 무관하게 제대로 완성하고 싶다는 욕망이 최우선에 있지만 가끔은 제작비의 한계로 오해를 빚곤 합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 제가 제일 적합한 퍼포머인 경우도 있어 제작비와 무관하게 자신을 섭외하기도 합니다.

이한범 제 주변에서도 박민희 작가님을 ‘전통노래하는 분’으로 이야기해요. 작업을 보고 나면 노래를 하는 사람으로 판단하는 게 합당한가 이런 생각이 계속 들었거든요. 작업에서 수행을 하고자 하는 것은 노래를 하는 것과는 또 다른 것 같은데, 이런 부분이 가려지는 것 같아서 아쉬운데 워낙 또 다른 말씀은 안 하시니까(웃음). 이런 이야기도 해보고 싶었어요.

박민희 그런 면들이 실은 개인적으로 좀 속상할 때가 있기도 해요. 작자 본인이 스스로 퍼포머로 드러날 때는 맥락이 바뀌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럴 때는 굉장히 속상한데 어쨌든 퍼포먼스를 할 때는 이런 입장을 취하고자 해요. ‘나는 이것의 전달자고 지금 내 상태는 매체로서의 신체다.’ 수행 중인 콘텐츠에 집중하면서 공연 작품 창작자로서의 자아는 지우고 전달자로서 충실하려고 많이 노력을 해서, 내가 퍼포머로서 태도를 정확하게 하면 오해가 많지 않겠지, 혹은 예민한 관객들은 의도한 맥락을 잘 읽어주겠지 기대하고 있어요.

이한범 연출가 혹은 전체를 설계하는 입장에서 결국은 혼자서 할 수 없잖아요.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있고, 안무하는 분도 있고, 곡을 연주하는 분들도 있고, 뺑뺑이 돌리는 분도 있고(웃음). 이렇게 많은 사람과 작업하면서 총감독으로서 지시를 내려서 작품을 완성한다는 느낌보다는 왠지 모르게 협업이라는 느낌이 들거든요. 이 둘의 차이는 결국 통제를 하면서도 얼마만큼 통제에서 비켜 나가는 것들에 대해 용인할 것인가, 협업 관계의 대상에게 어떤 방식으로 입장을 취할 것인가가 제일 중요한 판단의 기준일 것 같아요. 어떤 식으로 여러 사람과 작업하는지 협업에 대해서 여쭤볼게요.

박민희 주로 큰 구조를 구성하고 세부 사항을 결정하기 전에 협력자를 섭외해요. 스태프와 협력 아티스트, 퍼포머 모두 그 사람이 가진 고유성에 집중해요. 그래서 처음에 큰 구조를 만들 때부터 염두에 둔 사람의 작업을 생각하면서 구조를 짜는 편이에요. 작업에 대한 구상이 어느 정도 완성되면,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 사람에게 먼저 러프하게 “이 시기에 가능하냐, 이런 것을 할 건데 흥미가 있냐, 흥미가 없다면 절대 사양해라” 이러면서 먼저 섭외를 하고, 그다음에 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굉장히 고민해요. 고민해도 모르겠을 때는 만나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제가 하고자 하는 작업의 워크숍을 몇 달 동안 길게 하면서 제가 하고 있는 생각과 재료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고 알려줘요. 같이 공부하는 시기를 가진 다음에 생각을 공유하고 공유 받은 생각을 그 구조 안에 넣어요.

그런 반면, 길군악에서 (뺑뺑이를) 돌리는 분은 아무것도 몰랐으면 했거든요. 그래서 아무 정보도 주지 않았어요. “와서 돌리기만 해라”(웃음) 이런 식으로 정보를 주지 않는 사람과 주는 사람을 구분해요. 그분 같은 경우에는 아예 공연예술과 아무것도 관련이 없는 분이에요. 그렇게 포지션마다 제한을 두는 편이에요. 정보를 다 알고 있어야 할 사람과 알지 못해야 할 사람, 그리고 나와 같은 시선으로 수행해야 할 사람, 비평적으로 수행해야 할 사람으로 나눠서, 수행하는 사람들까지도 어떻게 보면 그 사람 고유의 질감을 생각하며 배치하는 것 같아요. 공연 작업은 물감을 짜고 나무를 잘라서 하는 작업이 아니잖아요. 사람이 하기 때문에 누가 참여하는지가 중요하고 그 사람이 어떤 역사를 가졌는지가 중요해서 이런 것들을 잘 다루고 활용하는 게 결과물에 영향을 미치더라구요. 그래서 참여하는 사람에 대해 섬세하게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이한범 가사 시리즈가 총 열두 개이고 지금 두 개를 하셨는데 앞으로의 열 개가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박민희 저 벌써 힘들어요(웃음).

이한범 한 가사에 대해서 이해를 근본적으로 다시 시작하면서 계속 쌓아 나가는 거잖아요. 그 토대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부터 시작해서 어떤 참여자들의 개별적인 특성들을 어떻게 선별할 것인가, 계속 그 하나하나마다의 선택이 건물을 세우는 느낌이라서 열두 개의 놀이동산 같은 것을 만든다 했을 때도 그 상상이 자연스런 결말인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박민희 네, 지금으로서는 12 피스를 차근차근 완성해서 나중에 동선 작업에 들어가면 피스들이 조금씩 변형되며 자연스럽게 하나의 테마파크를 이루는 아름다운 상상을 하곤 하는데, 어쩌면 3년 뒤에는 디스토피아(dystopia)가 만들어져 있을 것도 같아요(웃음). 3년을 예상하고 있거든요. 가는 동안 분명히 지금은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공부하면서 다 틀렸다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고, 혹은 극단적으로 필요 없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그래서 지금 생각처럼 아름다운 놀이동산이 만들어질지 아닐지는 잘 모르겠어요.

이한범 저도 그 풍경을 상상했을 때 필연적으로 디스토피아가 될 것 같은 게(웃음), 기본적으로 형식을 다루는 차원이기 때문에 형식이 구축되는 모습이 아름다운 것으로 귀결될 거 같지 않아요. 그래서 자조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거 같아요. 나의 이해가 어떤 형식을 재구축한다고 했을 때 ‘이것이 어떤 식으로 소용될 것인가, 혹은 이것이 어떻게 무언가를 조금 더 좋은 것으로 바꿀 수 있을까’ 이런 것이 고전적으로 많은 사람이 했던 고민인 거 같아요. ‘선 하나 바꿔서 놓는다고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에 대한 자기의심은 끊임없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 같은데요, 그런 의심이 분명히 있지만 작업 자체가 만들어내는 상황이 분명히 다른 질감과 감각을 생성하기 때문에 계속 기대가 되는 거 같아요. 앞으로의 열 개가 전혀 상상이 안 된다는 맥락에서, 그것들이 나를 어떻게 어떤 경험으로 데려갈지가 예측이 안 되기 때문에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고 했을 때 제일 피하고 싶었던 것이 흔한 수사인 ‘전통의 현대화’ 였는데요, 신에서 현대화하는 사람으로 공공연하게 인식이 되는데 그런 말은 작품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정말 피하고 싶었거든요. 그런 차원에 있는 작업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오히려 형식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을 한다는 차원에서는 그 말이 또 맞나 하는 생각이…

박민희 아니에요(웃음). 그건 정말 아니에요. 저는 전통예술 이런 거 사라져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어떤 콘텐츠나 언어, 심지어는 개체로서의 종, 인류, 모든 게 다 생기고 사라지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저는 사라져가고 있는 언어 같은 전통예술의 아름다움을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이고, 내가 좋으니까 내 주변 사람들한테 “나 이거 되게 좋게 보이는데 같이 좀 볼래?”라고 하는 작은 개체이고, 사라지거나 보존하는 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제가 하는 일이 전통의 현대화는 더더욱 아니고요. 저는 오히려 현대화라기보다 전통사회의 창작방식에 깃들인 사유와 사고 체계가 재밌어서 ‘이런 사고방식으로 무언가를 구성해보면, 나도 재밌고 남들도 재밌지 않을까’ 생각하는 거니까, 어쩌면 ‘전통의 전통화’를 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웃음).

이한범 그 말이 더 맞는 것 같아요(웃음). 오늘의 이야기는 이렇게 정리를 해보고 싶었어요. 박민희 작가님의 작업을 경험했을 때 생겨나는 정말 이상하고 기이한 감각이 도대체 어디서 유래했는가에 대한 일차원적인 궁금증이 있었고요, 작업을 예민하게 뜯어보고 생각을 듣다 보니까 결국은 박민희 작가님이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전통음악에 대한 구조적인 이해, 그것을 어떻게 어떤 식으로 기능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성의 문제가 잘 직조가 되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 경험이 가능했던 것 같아요. 이런 측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사회자 박민희 씨의 작업에 대한 이해와 함께 오해를 푸는 자리였던 것 같아요. 오늘 참석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