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Hanb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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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에게 웹플랫폼에 관해 질문하는 이유

김진주(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세마 코랄 기획/편집): 올해(2022) 세마 코랄의 기획/편집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플랫폼’이라는 주제가 계속 저를 붙들어 맸습니다. 그래서 질문지를 만들어 놓고 기존에 미술계 안팎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러 플랫폼에 응답을 청하려고도 해 봤어요. 여기서 플랫폼은 주로 ‘웹’을 말합니다. 글, 그러니까 ‘텍스트에 기반한 지식과 관련된 웹을 활용한 플랫폼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여기저기에서 많이 나온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애써 써 내려간 그 질문들1이지만, 이것이 소용 있나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플랫폼을 만드는 건 각자 잘하면 되는 것이고, 사실 각자 매체(플랫폼) 운영하기도 바쁠 텐데, 이 질문에 답할 필요가 있을까, 설득이 될까?

이한범(미술비평가, 편집/전시기획자): 플랫폼의 의미와 기능에 관한 논의는 기관 차원에서는 의미 있는 제안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한번 얘기를 해볼 만한 토픽이에요.

김진주: 인터뷰 대상이 될지도 모르는, 그리고 지식 플랫폼에 관한 질문을 추동한 웹사이트들을 엑셀 파일에 축적하다가, 한편, 조심스러워지기도 했습니다. 목록을 만드는 데 그치거나, 미술관이 이들을 ‘인준’하는 듯한 기획으로 비치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하니까요. 또 각각 매체에 설문조사처럼 질문을 던지는 것도 맞지 않다고 판단했어요. 기획을 다른 방향으로 틀어서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고심을 거듭하며 올(2022) 7월에, 세마 코랄을 함께 만들어주셨고 또 미술계에서 여러 텍스트를 공유하는 웹사이트를 만들어 온 민구홍 선생님, 비평가이자 텍스트 생산자인 윤원화 선생님, 출판기획자이자 서점 운영자인 임경용 선생님을 모시고 지식 플랫폼이나 웹 출판에 관한 자문회의를 가졌고, 이 분들이 의욕이나 시간이 있으시다면 ‘자문해 주신 내용에 관해 같이 이야기를 나눌 웹프로젝트나 플랫폼으로 기능하는 웹사이트를 초대해 주시면 좋겠다, 얘기도 같이 해주시면 좋겠다’는 쪽으로 진행이 흐르게 되었지요.

이한범: 저의 활동을 정리하기 위한 개인 웹사이트를 만들기는 했지만, 제가 웹으로 뭔가를 해보겠다는 의도, 그러니까 이것이 일종의 작업이라는 인식은 없었어요. 그래서 이 대담을 제안받고 처음에는 조금 당황하기는 했어요. 이것이 [웹사이트를 만든 것이] 어떤 의미가 있다고는 생각해보지 않았으니까… 그러다 문득 이 웹사이트에 대해서 저 스스로도 한번 되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공간을 만들 때 했던 어떤 선택들이 분명 있었는데, 그 선택들을 하나하나 검토해 보는 것은 생산적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민구홍(웹프로그래머, 디자이너, 편집자): 2022년 7월에 열린 자문회의에서 미술 및 디자인계의 온라인 플랫폼을 중심으로 플랫폼의 양상을 비롯해 기관이나 단체가 운영하는 플랫폼, 개인이 운영하는 플랫폼 등에 관해 두루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일찍이 개인이 운영하는 플랫폼에 관심이 많았어요. 제가 운영하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작가, 큐레이터, 비평가 등 개인이 웹을 통해 자신의 능력과 욕망을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기술을 지원하곤 합니다. 처음부터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죠. 회의 자료에서 자연스럽게 개인이 운영하는 플랫폼인 한범 씨의 웹사이트가 눈에 들어왔고, 이참에 한범 씨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한범 씨의 웹사이트가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기술을 거친 것과 무관하게요.

김진주: 이번 웹플랫폼에 관한 기획을 준비하면서, 의도치 않게 저는 출판 활동을 하는 분들께 대화를 제안하기도 했는데요.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저한테 두 가지 질문이 생겼습니다. 왜 웹과 플랫폼 차원을 논하는 데, 출판 활동을 눈여겨보게 되었을까? 웹을 활용하는 플랫폼이라고 해서 출판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한범: 이 웹사이트가 일종의 퍼블리싱(출판)이라는 것에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은 책을 만드는 일과 가깝다’는 일치하는 인식이 있었던 것 같아요. 구홍 씨는 웹사이트를 만드는 의미를 항상 책에 빗대어서 설명하곤 하셨죠. 사실 저희가 처음 서로를 알게 된 것도 제가 구홍 씨의 웹 작업을 ‘출판’으로서 이해하고 《픽션-툴: 아티스트 퍼블리싱과 능동적 아카이브》(인사미술공간, 2018)라는 전시에 섭외하면서였어요. 저희는 매우 성격이 다른, 그러니까 다루는 대상도, 방법도, 활동의 장도 서로 다른 편집자이지만, 편집이라는 행위를 유연하게 생각하고 다양하게 적용하려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노는 곳과 노는 방법은 서로 다르지만, 결국 편집은 출판 없이 성립할 수 없는 일이라는 점에서, 저희는 사실 공통/공유지점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웹사이트라는 지식의 도구, 또 다른 출판

김진주: 민구홍 님께서는 웹사이트가 개인이 무언가를 발휘할 수 있고 잘 쓸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을 하시잖아요?

민구홍: 특히 오늘날은 개인이 웹사이트를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중요한 시대입니다. 아무래도 매체로서 책만큼이나 웹사이트를 사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웹사이트로 이끌고 싶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요.

김진주: 비평적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독자를 끌어당긴다는 점에서 한 비평가의 웹사이트는 플랫폼의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렇게 얘기가 흐르면, 플랫폼이나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주체에 대한 단수나 복수의 경계, 구분 자체도 무의미한 게 아닐까요? 먼저 드렸던 ‘연구, 플랫폼의 정의, 모임, 경제, 독자, 비평, 미술-계, 지식, 기관’을 중심으로 한 질문들은 비평가 이한범의 웹사이트에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한 비평가의 웹사이트로서 이 leehanbum.com에서 저는 개인과 전체를 나누는 경계를 무화시키는 하나의 가능성으로서의 플랫폼이 발현하고 있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비평적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점에서요. 아마도 제작 단계에서 이런 점을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만든 건 아니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만들어지면서 그 안에서 이런 지점이 생성되었을 것이고요. 이한범 님께서는 이 웹사이트를 자신의 것으로 위치 지으시나요? 아니면 모두의 것으로 여기시나요? 둘 다 아닐까 싶은데요.

이한범: 이 웹사이트는 전적으로 저를 위한 것이었어요. 저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지, 전혀 ‘공적인 자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전에는 웹사이트를 평생 안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한 쪽에 가까웠어요. 저는 비평 작업의 존재 형식은 흩어져 있는 상태로 있는 것이 알맞다고 생각해 왔거든요. 비평가가 스스로 자료를 정리하고 목록화하는 행위가 ‘반(反)비평적’이라고 느꼈는데, 그건 아마도 장소를 점유하고 스스로를 가시화하는 일에 대한 불편함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비평은 유령처럼 계속 이동하고 사라지고 다시 등장하고 기능했다가 또 잊히는 모습이 어울리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 웹사이트의 필요성을 느꼈어요. 앞서 말한 비평에 대한 저의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닙니다. 다만 어떤 곤경을 마주했기 때문이었어요. 글쓰기의 곤경이었죠. 현재에 반응하며 현재에만 몰두하다 보니, 이 생산이 어떤 방향을 가지고 있는지를 스스로 이해해 볼 필요를 느꼈어요.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고 글쓰기 작업을 더 밀고 나가고 싶은데, 지금 나의 위치가 분명하지 않고 내가 정확하게 나를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드드라이브에 모아놓은 이전의 작업들을 계속 돌아보면서 저를 이해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어요. 저는 자료들을 잘 정리를 하는 편이어서 이전의 행적들이 연도순으로, 활동별로 잘 쌓여 있었지만, 이 원 데이터들을 들추어보는 방식이 가진 읽기의 한계를 느꼈어요. 내가 궁금해하는 것이 드러나도록 해주는 읽기는 다른 구조와 장치가 필요하겠구나 싶었어요. 그렇게 저의 작업들을 다르게 배치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며 웹사이트를 만들 생각을 하게 됐어요.

구홍 씨에게 연락해 웹사이트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이상한 요구를 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아니, 이상한 요구라기보다는 ‘나는 어떤 웹사이트가 어떤 이유로 필요하다’는 말이었지요. 이 웹사이트는 내가 의식적으로 생산한 모든 것이 올려진 장소여야 하고, ‘어떤 나’를 객관화하며 나를 파악하기 위해 자료들이 배치되어야 하고… 자료를 어떻게 배치하면 좋을까? 그것이 어떤 ‘인터페이스’로 등장해야 할까? 이런 논의를 하며 웹사이트 제작을 이어갔어요.

이렇게 처음에는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로,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해나가야 될까?’에 관해 스스로 답을 얻기 위해, 과거를 돌아보는 일을 하려 웹사이트를 만들었던 것이죠. 대개는 웹사이트를 포트폴리오 용도로 만들잖아요. 저는 이것만은 결코 피하고 싶었고 때문에 제 웹사이트가 다른 창작자들의 웹사이트와 다른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저 자신이 저의 작업들과 거리를 만들고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어요. 계속 내 자리는 있었고, 내가 썼던 글이었지만, 어쨌든 이 작업들이 좀 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웹사이트 제작을 의뢰했습니다.

민구홍: 한범 씨가 정서영 작가님의 웹사이트를 구축하는 데 참여하신 뒤 아카이브의 힘을 느끼셨던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한범 씨가 말씀하신 것처럼 자신의 작업이 자신만 접근할 수 있는 컴퓨터 속에만 존재한다면, 그것도 물론 가치 있지만, 자신과 작업이 너무 달라붙어버리죠. 이따금 거리를 두고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소하거나 무의미한 시도일 수 있지만, 웹 브라우저를 거친다면 다른 측면에서 자신의 작업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한범: 저도 편집자로서 다른 사람의 저작물을 만드는 일을 하다 보니까, 글이나 말, 이미지나 소리, 심지어 움직임이 문서 형태로 있는 것과 출판되어 사물로 등장하는 것은 저자에게나 독자에게나 굉장히 다른 의미가 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민구홍: 이제 출판은 책을 중심으로 한 오프라인 출판과 웹사이트를 중심으로 한 온라인 출판으로 구분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웹사이트 또한 당연히 출판물이라고 생각하고요.

장소로서의 웹사이트가 비평가를 변화시켰다?
이한범: 저는 계속 비평이라는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이고, 대부분은 글을 쓰겠지만 비평이란 모든 생산 행위에 능수능란하게 스며들 수 있기에 미래에는 제가 또 어떤 다른 것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구홍 씨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웹사이트를 현재 진행형으로, 열려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물론 이미 존재하는 과거의 자료들 또한 서로가 서로에게 또 미래의 작업들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러한 열린 상태를 만드는 장소로서의 웹사이트에 대한 얘기를 구홍 씨와 많이 나눴던 걸로 기억합니다.

‘편집, 출판, 강의 등등, 여러 형태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사실 나는 비평가로서 할 수 있는 것을 한다.’라고 구홍 씨에게 말한 적이 있어요. 글쓰기와는 다른 방식이지만, 비평가로서의 생산을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이 웹사이트 전체를 떠받칠 수 있는 것은 비평가로서의 정체성일 것이다.’라고 설명드렸지요. 이에 대해 구홍 씨가 “비평가의 웹사이트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라고 답신을 주신 것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저는 평소에 그렇게 생각해 보지는 않았는데 ‘비평가의 웹사이트라는 또 다른 형식’이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김진주: 비평가는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부터 시작해서, 그렇다면 그 비평가에게 맞는 웹사이트는 무엇인지까지, 충분히 고민할 수 있는 단서네요.

민구홍: 이 대화에서 미술 및 디자인계에서 활동하는 비평가의 실천을 되돌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비평가의 실천은 여기저기 흩어진 상태로 작동합니다. 소비자로서 이를 한데 모으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하나하나 찾아내야 하니까요. 이 과정을 압축하는 게 한범 씨의 웹사이트, 나아가 비평가의 웹사이트가 지닌 소명 가운데 하나라 생각했습니다. 비평가 자신에게는 작업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 편집하는 과정이 될 수 있겠죠.

김뉘연, 전용완 씨의 웹사이트를 만들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누군가에게는 웹사이트는 웹사이트일 뿐이지만, 웹사이트는 또 다른 공간입니다. 처음에는 작품에서 시작합니다. 작품을 모으고 정리하기 위해 공간이 만들어지죠. 하지만 공간을 가꾸다 보면 언젠가부터는 공간을 채우고픈 욕망에 이끌려 작품을 만들게 될지 모릅니다. 그게 웹사이트라는 공간이 지닌 생산적 즐거움입니다.” 요컨대 웹사이트를 가꾸는 과정에서 작업이 촉발할 수 있다는 거죠. 이는 한범 씨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웹사이트가 창작으로서의 비평을 생산해 내게끔 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한범 씨의 팬으로서 그 모습을 보고 싶기도 했고요.

이한범: 웹사이트가 장소로서 저를 변화시킨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러한 점들인 것 같습니다. 가는 곳마다 저를 이해하는 방식이 달랐어요. 사람들은 저를 비평가, 큐레이터 혹은 편집자라고 다양하게 부릅니다. 이것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하고 있는 것들이 다양하니까 어떤 부분 떼어 놓고 본다면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나의 구체적인 실천들이 다루어지는 게 아니라, 어떤 직함으로 불러지는 과정 속에서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나의 활동들은 비평을 기반에 두고 있는데 점점 오해가 심해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오해를 풀어야겠다는 아니었지만, 제가 기획하고 책을 만들고 출판을 하는 일련의 작업들이 비평적인 수행으로서 이해되길 바랐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충분히 비평적이지 않았나?’ 하는 불안, 걱정, 혹은 자괴감 또한 있었어요. 그래서 웹사이트를 구축할 때 모든 작업들이 다 뒤섞여 있는 시스템으로 만들었던 것은 저에게 있어 쓰기, 편집, 기획이 비평의 방법들이라는 것을 표명하고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웹사이트를 보면서 그 정도까지 읽기를 시도하는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연결 방식을 만들어 놓으니 저 스스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전에는 무조건 글을 더 열심히 써야 한다는 존재론적인 불안이 항상 있었는데, 웹사이트를 만들고 나서는 그런 것들이 어느 정도 사라졌습니다. 이 웹사이트는 저의 실천들이 표면적으로는 특정한 범주와 특정한 매체가 도드라져 보일지라도 사실은 하나의 의지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주장을 할 수 있는 장소인 것 같습니다. 혹은 그 의지를 기억하기 위한 방식 같기도 하고요.

김진주: 두 분이 말씀해 주신 각각의 이야기가 사람들이 플랫폼을 떠올리면서 기대하게 되는 무엇이 아닐까요. 플랫폼이 생김으로써 생산 활동을 추동하거나 수행성이 발현되거나 아니면 그 안에서의 확신, 안정감을 얻을 수 있고 연결됨으로써 느끼는 무엇이 아닐까라고 추측하게 됩니다.

민구홍: 웹사이트를 만든 뒤 불안이 사라지고 위로까지 받았다는 말씀을 들으니 정신과 상담 후기를 듣는 것 같아요. 한범 씨 웹사이트에서 메뉴명을 정할 때 ‘현재 진행형’ 형식을 택한 것은 한범 씨의 실천이 진행 중이라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참고로 지금 웹사이트에서 Engineering은 처음에 Publishing과 Editing으로 나뉘어 있었어요.

김진주: 현재는 Writing, Talking, Engineering, Searching 네 개의 메뉴이지요.

민구홍: 개념적으로 Publishing이 Writing, Talking, Engineering을 포함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범 씨의 웹사이트 또한 내부적으로 세마 코랄과 동일한 시스템을 활용합니다. 웹사이트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시스템을 구축한 뒤 한범 씨에게 관리자 권한을 드렸죠.

이한범: 빗대어 보자면 집을 지어주시면 제가 방 안에 가구나 액자 배치 등을 고민할 수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민구홍: 방의 위치, 나아가 기능까지 바꿀 수 있죠.

김진주: 오히려 평소 다른 작업보다 많은 자율권을 주셨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한데 비평가의 웹사이트라서 가능했던 것인가요?

민구홍: 세마 코랄은 각 메뉴와 메뉴의 기능이 처음부터 명확하게 정해진 편이죠. 웹사이트는 유동적인 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손을 떠난 뒤부터 웹사이트는 운영자의 몫이겠죠. 당연히 시스템상에서 이를 위한 기능을 마련해 두고요.

이한범: 처음에 메뉴를 만들 때, 제 작업물의 대다수가 글이긴 했지만, 이를 ‘텍스트’라고 이름 붙이면 결과물로서의 느낌이 강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ing’를 사용해 ‘Writing’이라고 이름 붙이며 쓰는 ‘행위’를 더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뭔가를 하고 있는 사람이고 하는 중이라는 뉘앙스가 생겨서 좋았고 그건 사실은 무엇보다도 소망을 투영한 것이기도 했겠지요. ‘Writing’은 쓰기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고 ‘Talking’은 강의나 인터뷰하면서 생산된 원고들, 즉 말로서의 가치가 있었던 것이며 ‘Publishing’은 제가 출판했던 것들 모아서 정리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제가 기획에 많이 관여하고 구상 단계에서부터 제작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주의 편집을 수행했던 작업을 Publishing에 넣고 교정교열 등 텍스트만을 다루었던 작업은 ‘Editing’으로 넣었어요. 그런데 ‘Publishing’과 ‘Editing’의 관계가 모호하기도 하고 이 구분이 사실 말해주는 게 별로 없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물론 이렇게 두면 교정, 교열부터 편집까지 외주 일은 좀 더 많이 들어올 수도 있었겠지만요. 한편 ‘Publishing’ 즉, 출판은 제가 하는 일에 비해서 너무 큰 이름이라고 생각했어요. 출판은 인류의 문화에서 보편적인 수준의 일이라서 제가 하는 실천의 구체성을 오히려 숨겨버리는 것만 같았어요. 오랫동안 고민을 했어요. 아마 이때가 저에게 있어 출판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나와 출판의 관계에 관해 가장 깊이 생각해 봤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작업실을 같이 쓰는 류한길 음악가와 여느 때처럼 수다를 떨다가 엔지니어링(engineering)이라는 것에 관해 얘기를 나누게 되었고 한길 선생님이 제게 유튜브 링크를 하나 보내줬어요. 오톨리스 그룹(Otolith Group)의 멤버인 코도 에슌(Kodwo Eshun)의, 홈비디오로 찍은 듯한 오래전 인터뷰였는데,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지만, ‘비평가라는 용어는 너무 지겹고 오히려 그건 아무것도 아닌 말이 된 현실이라고 하며, 이제 콘셉트 엔지니어가 되자’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비평을 여전히 나의 근간으로 삼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구체적인 현실에서 비평은 매우 무능력하고 이미 문화적, 제도적 관습에 대단히 오염되어 대부분은 이미 있는 문화와 제도에 헌신하며 정치적 능력을 거의 상실해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지라, 코도 에슌의 이 제안은 제게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엔지니어링이라는 단어를 이리저리 찾아보게 되었는데, 공학이라고 하면 기계 장치를 다루는 일의 이미지가 곧바로 떠오르지만, 사실 이 단어의 근원적인 개념은 ‘문제를 찾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을 제안하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예술 생산에 관여하며 그것에서 어떤 문제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다루는 장소를 만드는 일로서 출판과 편집을 해왔다고 생각했고 이를 엔지니어링으로서 이해해 볼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이렇게 생각을 하니까 머릿속에서 자료들이 다시 정리가 되어서 ‘Engineering’ 항목을 만들고 ‘Publishing’과 ‘Editing’에 있었던 자료들을 다시 추려서 ‘Engineering’으로 통합해 정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기에는 출판한 것, 편집한 것, 전시 만든 것, 스크리닝 만든 것, 심포지엄 만든 것 등 무척 다양한 형식의 작업들이 어수선하게 들어차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은 제가 기존에 ‘Editing’에 포함시켰던 것과 같은 종류의 작업은 점점 더 드물게 하고 있고 그것에 의미를 적게 부여하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어떤 내적 결정이 작동을 했었겠지요. 제가 ‘엔지니어링’으로서 이해하는 작업들의 비중이 늘어난 것은 2019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는 나선프레스의 활동과도 큰 관련이 있습니다.

민구홍: 웹사이트에 특징을 부여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는 메뉴명과 내비게이션이라 생각합니다. Publishing과 Editing에 실리는 자료를 풀어헤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Engineering 항목으로 표출되는 것이 결정된 건 아닙니다. ‘현재 진행형’이라는 형식의 메뉴명이 한범 씨 웹사이트에 특징을 부여하는 요소라 생각합니다.

김진주: 비평가의 웹사이트라고 했을 때 Writing, Talking, Searching 항목은 이해하기 쉬웠지만, Engineering은 의아하기도 했습니다. 엔지니어링이 웹사이트 맨 위에 적힌 이한범과 등가인 것 같은, 이 웹사이트의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또, ‘엔지니어링’에서 비롯한 효과나 특성이 미술에 대해서 문제를 던지고 그것에 대한 해결 방안을 찾는 일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엔지니어링의 핵심은 잘못된 기능을 고치는 의미보다 ‘문제를 찾는 것’에 있겠지요. 문제로 인해서 파생될 수 있는 것을 더 증폭시키는 것에 가깝고요. 이런 것이 바로 비평가의 역할이고 제작으로서의 비평을 보여줄 수 있겠습니다.

이한범: 책 만드는 일을 해나갈수록 깨닫는 것은, ‘예술과 관련하여 책이란 매체는 한계가 굉장히 많다.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게 더 많다’라는 것입니다. 예컨대 어떤 전시를 책으로 만든다고 할 때, 전시를 온전히 책으로 만들 수는 없기에 편집자는 이 전시의 특정한 부분을 문제 삼아 책으로 만드는 결정을 해야 하고 그때 비로소 책으로서 의미 있는 것이 만들어집니다. 때문에 책이 다뤄야 할 대상은 바로 지금 여기의 조건 속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일이고, 그것이 편집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은 사실 글을 쓰는 과정 안에서 발견하는 글을 쓰기 직전의 단계와 같습니다. 글을 쓸 때, 어떤 작품의 전체를 다룰 수 없고 작품이 어떤 문제를 우리에게 제기하고 있는지를 파악해야만 글이 써지는 것처럼 책을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지, 사진을 넣고 글을 의뢰해서 지면을 채우면 책이 완성되기는 하지만, 제가 자주 쓰는 표현으로 이런 책은 아주 희미한 사물이고 희미해지지 않기 위해서 반드시 비평적인 과정이 필요하며, 이런 관점에서 글쓰기와 편집은 형제자매와 같은 관계인 것 같습니다.

웹사이트 제작 과정의 면면들

김진주: 이 웹사이트는 처음에 아이디어나 제안이 오고 가면서 몇 주 혹은 몇 달 만에 만들어진 것인가요?

이한범: 민구홍 씨 표현에 따르면 웹사이트는 끊임없이 고칠 수 있는 책이라고 합니다. 어느 시점에 완성이 되었는지 그래서 좀 불명확한 것 같아요.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도 딱히 마감일을 정하지 않았었고 그보다는 천천히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던 것 같습니다.

민구홍: 한범 씨의 요구 사항에 따라 터를 닦고, 골조를 세운 뒤 만들어진 방을 채우며 지금의 결과물에 이르는 데 1년 정도가 걸린 같습니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습니다.

김진주: 그럼 테스트용 페이지가 꽤 많았나요?

민구홍: 아뇨. 저는 시안을 여러 개 만드는 대신 콘텐츠를 파악하고 편집해 실제로 작동하는 웹사이트를 어느 정도 구축한 상태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편입니다.

이한범: 사실 저는 목적이 분명했기에, 시각적인 표현보다는 인터페이스를 훨씬 중요하게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제게 필요한 인터페이스, 필요한 기능들에 관해 얘기를 많이 나눴고 제 요구들을 구홍 씨께서 구현해 주었는데 제 요구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이해하셨던 것 같아요.

민구홍: 시스템과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일을 포함해 기본적인 얼개를 구성하는 데 한두 달 정도 걸린 것 같아요. 디자인은 한범 씨의 요청대로 아무것도 디자인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물론 필요한 기능은 정확하게 작동해야 한다는 전제 아래에서요. 사실 지금도 건드릴 부분이 눈에 띕니다.

이한범: 첫 화면에서 콘텐츠가 드러날 때 어떻게 나왔으면 좋겠는지 물어보셨을 때, 무엇이 되었든 항상 대표 이미지로 보이면 좋겠다는 요청을 드렸습니다. 그때 했던 고민은 이런 것이었는데요, 저는 미술비평가이고 제가 다루는 대상들은 거의 언제나 시각적인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관여했던 대상들을 관통하는 시각적 유사성이 있을까? 내가 무엇에 반응했는가?’라는 질문이기도 할 것인데요. 그래서 글을 보지 않고 나열된 썸네일들만 보고도 제 작업의 어떤 면이 드러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혹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제가 주목했던 작품 그리고 문제시했던 작품들의 느슨한 영역들을 저를 비롯한 이용자들이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김진주: 또 이미지들이 지시하는 나의 비평적 행위들이 서로서로 뭔가를 만들어내고 있는 관계도 궁금했을 것 같습니다. 가끔 본인 웹사이트 들어가서 보면 이미지들이 그러한 비평적 관계들을 만들고 있는 것 같나요?

이한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동시대 미술이라는 장소는 크고 다양한데, 저는 사실 매우 협소한 미술의 대상들만을 다룹니다. 물리적 한계, 생물학적 한계가 있으니까요. 결국 개인으로서 비평가는 매우 특수한 것만을 보고 또 거기서 아주 적은 것에만 반응을 하게 되는데, 개별의 이미지가 하나의 이미지로 구성될 수 있을까 보고 싶었던 것 같고 아직은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좀 엉뚱한 말일 수도 있지만, 이 하나의 이미지를 완성하고 싶어서 또 동시에 이 이미지를 완성하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어딘가로 여행을 가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구홍: 웹사이트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한범 씨가 ‘썸네일’이라는 개념을 언급하셨어요. 썸네일은 콘텐츠를 대표하고 암시하는 엄지손톱(thumbnail) 크기의 이미지죠. 자연스럽게 애플 뮤직 같은 앨범 커버 이미지가 빼곡하게 드러나는 플랫폼을 떠올렸고, 본격적으로 한범 씨의 웹사이트를 설계하는 과정에서는 콘텐츠와 썸네일의 관계를 고려했습니다. 그다음에는 더 필요한 것은 없는지, 반대로 불필요한 것은 없는지 찾아내는 과정이 이어졌죠.

김진주: 두 분이 협업해서 만드는 웹사이트의 동력, 연료는 순전히 우정이었는지 아니면 어떻게 비용 처리를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한범: 비용을 드렸습니다.

민구홍: 일종의 ‘지인 플랜’이었습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세 가지 꼭짓점이 생깁니다. 하나는 앞으로 함께할 동료, 즉 사람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랑할 만한 경력, 즉 포트폴리오죠. 또 다른 하나는 경제적 이윤, 즉 돈입니다. 세 가지 꼭짓점이 완벽하게 정삼각형을 만들면 가장 좋겠지만, 이는 어떤 분야에서든 드문 일이죠. 이 프로젝트에서 저는 세 가지 꼭짓점 가운데 사람과 포트폴리오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대신 한범 씨에게 주위에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소개해달라 부탁하고, 또 민구홍 매뉴팩처링에 관한 글을 한 편 요청드렸습니다.

이한범: 제 개인 웹사이트이지만 애초에 당연히 민구홍 씨의 작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구홍 씨와 작업하면서, 구홍 씨께서는 제 작업들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궁금한 마음이 많았습니다. ‘비평가의 웹사이트는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을 하시는 것을 보고, 아, 이 웹사이트는 제 작업에 반응하는 작업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던 거죠. 저는 원하는 바를 충실히 말하고 민구홍 씨의 작업을 보면서 반대로 추측도 해볼 수 있는 과정이라서 즐거웠습니다. 그래서 웹사이트를 만드는 과정이 일처럼 느껴지지 않고 생산적인 시간으로 다가왔습니다.

김진주: 혹시 글을 보시다가 코멘트도 날리셨나요?

민구홍: 그러면 훨씬 좋겠지만, 한범 씨의 글에 대해서는 아직 소비자 모드로 전환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한범 씨 웹사이트에 방문하면 여전히 제대로 작동하는지, 또는 무엇이 더 필요한지 따지게 됩니다. 웹사이트의 메뉴명처럼 작업 또한 현재 진행 중인 셈이죠.

이한범: 하지만 저는 충분히 리뷰를 해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개별 글을 특정해서 이 글이 어떠했다는 식의 리뷰가 아니라 이한범 씨의 작업은 이런 이런 것이 있고 당신은 이렇게 작업을 하는 사람이니까 웹사이트를 이렇게 만들면 좋겠다는 식의 제안들이 저한테는 의미 있는 리뷰였던 것 같습니다.

김진주: 이한범이라는 비평가의 비평 행위에 대한 리뷰를 웹사이트 제작으로 받은 셈이네요.

이한범: 네, 맞아요. ‘근본적으로 당신은 비평가고 이런 일들을 하는 사람임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요?’ 같은 질문과 제안을 해주셔서 좋았습니다.

민구홍: 의도한 건 아니지만, 메뉴를 구성하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어요. 어쨌든 뭔가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하니까요.

이한범: 방금 이메일을 찾아보니까 처음으로 제가 샘플 텍스트 보낸 것이 2018년이고 2020년쯤에 완성된 것 같네요.

민구홍: 서로 급할 게 없으니 되는 대로 느긋하게 진행한 것 같아요.

이한범: 그래서 오히려 성공적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웹사이트 만드는 동안에도 당시의 현실에 반응하면서 계속해서 작업을 해나갔는데, ‘나’와 거리를 만들어보는 작업과 병행하다 보니 스스로 명확해진 부분들이 있고 이런 부분들이 웹사이트 더 반영됐던 것 같습니다. 웹사이트가 좋기도 하면서 동시에 위험하다고 자주 생각하는데 한 곳에 모여 있으면 보기 좋고 자꾸 여기를 조금 더 빛나는 것들로 채워놓고 싶은 달콤한 욕망이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 스스로도 그런 위험으로부터 도망가려고 요즘에는 최대한 자주 안 들어가요.

웹의 특성과 남은 작업들
김진주: 웹은 자꾸 몇 명이 이 페이지에 왔는지 확인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이한범: 웹은 우상숭배의 공간이기도 하죠. 하지만 내 작업은 그곳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다른 맥락 속에 있었던 것이기에, 웹을 기능적으로만 이용하기 위해 많이 신경 쓰고 있습니다.

민구홍: 우상이라 일컫는 것은 소셜 미디어의 하트나 숫자 같은 게 아닐까요. 소셜 미디어에서는 이런 게 아주 중요해 보이도록 세심하게 설계돼 있죠.

김진주: 하지만 내가 올린 글이나 행동들, 던지는 메시지, 일으키고 싶은 문제, 함께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다른 사람한테 얼마나 접속되고 전달될지에 대해 근원적으로 궁금하기 때문에 웹사이트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한범: 제게는 그러한 욕망보다는 이 웹사이트를 만들면서 저의 작업을 배치하는 모델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연결을 시키지 않고 완전하게 흩어져 있는 상태가 너무 좋다고 생각하지만, 작업을 모아서 구성을 해야만 한다면 내 작업들은 서로가 어떻게 관계가 맺어져서 보여줘야 될까를 많이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웹사이트 대문을 보면 모든 작업들이 경중 없이 똑같은 썸네일 크기로 쭉 배치되어 있습니다. 개별 카테고리로 들어가면 작업이 연대순으로 정리되어 나오지만, 기본적으로 작업들이 보이는 방식은 뿌려져 있는 상태입니다. ‘일단 그냥 아무거나 눌러보세요.’라는 방식은 무엇이든 시작점이 될 수가 있고 그렇게 ‘작업을 경험하기’를 제안하고 싶었습니다. 자유롭게 여기저기 들락날락할 수 있는 연결이 저에겐 콘텐츠보다 더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민구홍: 웹사이트에서 특정한 대상에 무작위성을 부여하는 것은 제가 특히 좋아하는 전략입니다. 세마 코랄에서 활용한 전략이기도 하고요. 컴퓨터 용어 가운데 ‘변수’와 ‘배열’이 있는데요, ‘생활’이라는 변수는 여러 ‘우연’으로 이뤄진 배열을 편집하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생활’을 다른 말로 바꿔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하고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기술을 거친 결과물에 크고 작은 무작위성이 드러나는 까닭입니다.

이한범: 민구홍 씨한테 작업을 의뢰하는 사람들의 성향이 그런 미학을 더 추구해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김진주: 그럼 이제 한범 님은 필드 레코딩 작업, 그러니까 정말 사운드 작업도 하시나요?

민구홍: 한범 씨와 이야기만 나누고 아직 구현하지 못한 메뉴죠.

이한범: 맞아요. 작년부터 관심을 가지고 시작한 작업이 필드 레코딩인데, 이 작업 또한 저는 비평가의 일로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김진주: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한범: 저도 아직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어느 순간 저한테 중요한 방법론으로 등장을 해서 지금은 열심히 숙지하고 탐구하는 과정입니다. 장기적으로 중요한 작업으로서 계속 진행할 예정이고 지금은 제가 나누었던 카테고리 그 어디에도 들어가지 못해서 일단 ‘Engineering’에 넣어둔 상태입니다.

요즘 필드가 저에게 중요해졌다는 이야기를 민구홍 씨에게 했어요. 내가 스스로 몸을 도입해서 들어가야만 하는 필드 활동이라는 것을 왜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기존의 앎의 방식이 어떤 결핍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추측하고는 있습니다.

민구홍: 웹사이트상에서 어떻게 구현할지는 실제 데이터를 살펴보고 판단할까 합니다.

이한범: 고정되어 있는 반복적인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무얼 하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계속 웹사이트가 변화에 맞게 계속 바뀌어 나갈 수 있고 이를 구현해 주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무척 든든하고 즐거워요.

김진주: 저희가 나눴던 사전 질문지에서 민구홍 님은 비평가의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위해서 우선 필요한 것으로 ‘비평가 자신의 공’, ‘의지’를 꼽으셨어요. 클라이언트가 비평가일 때, 그 주문자의 외장하드 드라이브, 수많은 자료들을 보는 것이 수월치 않았을 것 같습니다.

민구홍: 비평가 자신이 웹사이트 운영자가 되면 모든 것을 자신이 관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콘텐츠 생산자로서, 편집자로서, 나아가 아키비스트로서요.

이한범: 그래서 사실 몇 번 포기하려고 했었습니다. 자료가 너무 많다 보니까 업로드하는 것부터 힘들어서 ‘이 프로젝트 괜히 하자고 했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웹사이트 규칙에 따라 하나하나 편집하면서 작업들을 올려야 하다 보니까 많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편집자가 되어 글을 고치고 자료를 재방문하는 과정이 의미 있었습니다. 웹사이트를 다룬다는 것은 기존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관리자가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진주: 특히 어떤 글이 계속 재방문을 요청했나요? 지금 저희가 웹사이트에서 접속해서 볼 수 있는 어떤 글 중 고생시킨 글일까요?

이한범: 고생했던 글은 일단 각주가 많은 글입니다.

김진주: 웹사이트 디자인을 보면 각주 영역이 따로 할애돼 있고 배치도 잘 돼 있어요. 가독성면에서도 웹 지면과 종이 지면 사이에 있을 어떤 인터페이스를 동시에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올라온 글들이 굉장히 다양한 내용과 형식이라 각주를 달고 정보를 찾느라 고생하셨을 것 같아요.

이한범: 비평은 항상 대상에 맞게 형식화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성공한 적은 거의 없는 것 같긴 하지만… 여하간 그래서 어렵긴 해도 매번 어떻게 글을 쓰는 게 타당한지를 고민하는데 시간을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비평가의 웹사이트, 그 호명과 존재감

김진주: 이 웹사이트를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 저는 계속 궁금하더라고요. ‘이한범 웹사이트’ 혹은 ‘이한범닷컴’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이한범: 저는 부를 일이 없기 때문에 한 번도 불러본 적이 없고… 누군가에게 알려줄 땐 ‘이한범닷컴’이라고 알려드립니다.

민구홍: 자연스럽게 변수를 고려하게 됩니다. 어딘가에서 공식적으로 언급되는 상황을 상상하면 웹사이트를 가리키는 제목은 필요하죠.

김진주: 이름 없는 웹사이트가 이렇게 건재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하는데요. 이름 짓기를 거부하시는 건가요? (웃음) 이건 비평가의 웹사이트가 부여받은 특권 아닌 특권 같기도 합니다.

이한범: 이름이 필요한 것은 불러야 할 필요가 있어서인데 저는 이걸 부를만한 일이 없거든요.

민구홍: 이한범닷컴이겠죠. (웃음)

김진주: 닷컴은 상업적 영역에서 주로 쓰이는 편인데 비평가의 웹사이트 이름을 닷컴이라고 지칭하니까 또 흥미롭습니다. 의도치 않게 독자들이 계속 이름을 찾고 호칭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이름 얘기는 이만 하고, 웹사이트에서 점선으로 표시된 밑줄은 하이퍼링크로 착각할만한 표기법이에요. 본문에 밑줄 표시는 인쇄 매체에서는 이탤릭(기울임체)을 표기하는 방법인데, 이걸 그대로 선택한 부분이 특이했습니다.

이한범: 영문도 있긴 하지만 국문이 기본인 웹사이트이고 처음에 민구홍 씨가 웹사이트의 문장부호 표기법을 어떻게 할지 여쭤보셨습니다. 이 문제는 제가 나선프레스를 운영하며 했던 고민과도 이어지는데요. 나선프레스의 출판물은 문장 부호를 어떻게 쓸 것인가 고민해야만 했어요. 출판의 관습이 있기는 하지만 납득이 안 되는 것들, 입장이나 견해가 다른 것들이 더러 있었는데 이게 중요했던 이유는 출판사의 정체성 혹은 지향과 이 문제가 연관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겹낫표 같은 것이 있는데요. 단행본을 표시할 때 쓰죠. 저는 이 부호의 존재감이 굉장히 세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구분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활자들 안에서 특권적인 존재감을 부여합니다. 최대한 이 위상을 해체하고 싶었죠. 그렇게 나선프레스에서는 낫표나 화살괄호 같은 부호를 쓰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웹사이트에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통상적으로 쓰는 문장 부호들을 쓰지 않겠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사용할지 고민하다가 이탤릭은 영어에서 사용하는 규칙이기에 쓰지 않았고 그냥 쭉 이어진 밑줄이 아니라 점으로 이어진 밑줄이 그나마 대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민구홍: 실선 밑줄을 사용하면 기존의 하이퍼링크와 혼동될 수 있기에 점선 밑줄을 선택했습니다. 결국 특정한 기능을 지닌 구절이나 단어를 본문과 구분하는 문제입니다. 문장부호 대신 공간, 글자체, 글자 크기, 굵기, 색 등 여러 방법이 있죠. 그 가운데 밑줄을, 그리고 하이퍼링크와 구분하기 위해 점선 밑줄을 선택한 거고요.

이한범: 문장 부호는 아무도 신경 쓰지는 않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윤리적인 문제였습니다. ‘이것을 쓰는 당위가 있나? 왜 써야 되지? 이 문장 부호가 어떤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등의 생각을 하게 되면서 센 존재감을 만들어주는 문장부호가 암묵적으로 단행본, 전시, 작품에 권력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물론 여러 맥락에서 논쟁적이기는 하겠지요. 하지만 명백해 보였던 것은 것은 문장부호가 읽기 자체에 미치는 영향이었습니다. 제가 지향하는 글쓰기가 있다면, 그중 하나는 대상(작품) 자체를 호명하여 그 존재감을 강화하기보다는 대상과 관련한 행간을 가시화하며 대상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글쓰기는 끊임없이 관계를 탐색하는 일이고 읽기 또한 그러한 방식으로 제안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명사가 아니라 서술 그 자체에 집중하기를 요구하는 읽기 말이죠. 문장부호는 분명 이 읽기에 있어서는 껄끄러운 존재였습니다. 언어적으로 힘이 부여된 작품을 비평적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 문장부호에 대해서 많이 고민을 했던 것 같습니다.

민구홍: 문장부호가 우상을 만들어내는 위험성을 지닌다는 것은 여러 레이어를 꿰뚫는 말씀 같아요.

김진주: 무엇은 ‘작품’으로 확실하게 지칭하고 무엇은 ‘전시’라고 확실하게 지칭하는 것이 미술의 권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통 학계에서 아카데믹하게 권위를 세우려고 만들기도 하고 기능적으로 사실 필요한 면도 있는 것 같긴 합니다.

이한범: 기능적으로 구분만 가능하면 될 것 같습니다.

김진주: 민구홍 님께서는 이 웹사이트 제작 과정에서 ‘미술, 비평’이라는 질문을 듣고 고민하셨던 게 있으신가요? 클라이언트의 요구 중 실현이 어려웠던 것이 있었다면…

민구홍: 한범 씨를 잘 아는 만큼 그에게 필요할 만한 기능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한범 씨가 슬며시 웃으며 요긴하게 사용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요. 한범 씨여서가 아니라 기본적인 인류애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죠.

김진주: 이전에 작업했거나 혹은 민구홍 님한테 웹사이트 제작을 요청한 사람들과 다른 결이어서 이렇게 생각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웹사이트를 더 특별하게 만드는 건 미술이라는 영역 때문일 걸까요? ‘미술 지식’에 대한 문제를 두 분과 함께 얘기해보고 싶습니다. 이한범 님은 이 웹사이트가 개인의 문제를 정리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기에, 이것이 지식 생산의 한 담론 수준에서 다뤄지는 건 부담스럽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덧붙이셨어요. “이 웹사이트는 이제 막 무언가를 시작한 청소년쯤 되는 시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한범: 어떤 바람은 있었습니다. 저에게 다른 형태의 지식들을 생산하는 문제는 중요합니다. 제가 말하는 비평의 개념은, 그리고 제가 자신을 스스로 비평가라고 규정할 때, 그 비평이라는 게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에 관해서, 저는 아감벤의 책 『행간』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 책에서 아감벤이 말하길, 비평은 앎의 한계를 탐구하는 일 즉, 우리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알지 못한다는 경계를 확인하고 탐구를 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나한테 보이는 것, 알고 있는 것을 쓰는 게 아니라 대상이 문제라고 제기하는 것을 찾는 과정으로서의 비평. 파악이 안 되지만 중요한 부분들을 등장시키는 작업을 저는 비평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런 지식이 명시적인 지식과 함께 있는, 그런 지식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 문화에 대한 상상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저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어떤 체계 속에 속한 인간이고, 비평은 계속해서 그 바깥으로 나아가는 일이라는 점에서 저는 성공 없이 시도만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이런저런 실패로 더 가득하다는 점에서 제 작업이 모인 꼴이 엉성하고 허술하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지금은 이 어수선함을 즐기고 있기는 하지만요.

김진주: 그런 점에서 보면 세마 코랄은 의도적으로 명확함을 다시 흐트러뜨리는 도구처럼 ‘연결’을 쓰고 있네요. 이한범 님의 웹사이트에 민구홍 님이 게시물 간의 링크 기능도 만들어주긴 하셨는데, 그 기능을 아직 안 쓰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이한범: 시도를 해봤는데 연결이 자명하지가 않았습니다.

김진주: 좀 더 엄밀한 어떤 연결의 기준 같은 걸 찾으시는 건가요?

이한범: 반대로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돼 있을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연결을 시키면 연결만이 남게 됩니다. 저는 제가 쓴 글 중 파트타임스위트에 관한 글과 정지현 작가에 관한 글이 관련 없어 보이지만, 같이 놓고 볼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이 연결을 명시화하면 독자는 그 링크만을 따라가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아직 저에게는 그것을 책임지고 감당할 만큼의 연결에 대한 확신이 아직 없고 확신이 명확하게 들 때쯤에는 그 기능을 쓸 것 같습니다.

김진주: 이렇게 만들어놓았는데 기능을 안 쓰면 민구홍 님께서는 좀 서운하지 않으세요?

민구홍: 언젠가는 쓰시지 않을까요?

이한범: 기능이 있는데 안 쓰는 것과 애초에 기능이 없는 것은 다른 것 같습니다. 기능이 있는 걸 염두에 두면 연결에 대해서 생각을 합니다. 기능을 사용을 하지 않았지만, 기능을 썼을 때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하니까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김진주: 민구홍 님은 왜 연결 기능을 덧붙여주신 건가요?

민구홍: 한범 씨 웹사이트에 수많은 자료가 실릴 텐데, 방문하신 분들이 자료를 열람한 뒤 다시 앞 페이지로 이동하는 대신 자연스럽게 다른 자료를 열람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터치나 클릭 횟수, 즉 동선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죠. 저는 한범 씨에게 그릇 하나를 선물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릇을 물병이나 화병으로 쓸 수도 있고, 그저 책상에 올려두고 그 자체로 감상할 수도 있죠. 어쨌든 잘 만들어진 그릇이 있습니다.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한범 씨의 몫일 테고요.

김진주: 이 웹사이트를 보면서 여기 수록된 대화나 토론 글의 존재감이 웹을 매개로 더 확고해진다고 봤습니다. 보통 기관에서 토론을 하면 글이 남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소위 말하는 미술의 문제의식들은 이런 토론과 대화에서 발현됩니다. 그런데 이런 말들은 텍스트로 남기지 않으면 사라져 버리죠. ‘행사’로만 귀결되니까요. 이런 말의 자료들을 볼 수 있어서 비평가 이한범의 웹사이트를 더 찾게 되더라고요.

이한범: ‘Talking’에 들어가는 콘텐츠들은 대개 강의를 위해 미리 써 둔 텍스트들입니다. 저는 말을 잘 못하는 편이어서 강의나 특강을 준비하면서 원고를 써 두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렇다 하더라도 말로 바로 그 현장의 청중들을 설득시키는 일은 글로 독자를 설득시키는 일과는 완전히 다른 일이기에 글쓰기의 텍스트와는 확연히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김진주: 한국어는 특히 말과 문어의 편차가 크고 말로 행해질 때는 주어가 사라져도 의사소통이 가능합니다. 말을 글로 옮기는 작업들이 많아질수록 말의 생생함이 살아나고 단서들을 가지고 있는 글로서 남아 있지 않을까요. 저는 대화를 옮긴 글들을 만날 때면 반가운 감정이 듭니다.

이한범: 그 작업이 정말 어려운 일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구어를 다시 텍스트화하는 일이 제일 어려운 편집 중 하나인 것 같아요. 공도 많이 들어가고요.

비평이 만드는 장소

김진주: 이한범닷컴뿐만 아니라 웹상에서 이런 ‘비평’이라는 말들이나 글이 장소를 만들 수 있다면 그런 글과 말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저는 단지 글과 말이 많이 쌓여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이한범: 저는 비평이 힘을 가지기보다는 무기력하게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해가 있을까 봐 말하자면 무기력하게 ‘보이는’ 것이지 무기력해서는 안 되겠죠. 돌이켜 보면 어떤 비평 활동들에 대한 거부감이 저한테 분명히 있었던 것 같습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 해라. 힘이 센 비판들을 해라.’라는 요구를 많이 듣곤 했는데, 오히려 저는 말의 힘이 강해서 힘을 얻게 되기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힘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강한 것들이 넘쳐나는데 강하고 명시적인 지식이 유효한가 의문이 들면서 망각된 언어활동들을 다시 기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제 활동들을 내보이는 것에 적극적이고 싶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학생 때부터 비평가들의 블로그, 웹사이트 등을 보면서 자라고 많이 영향을 받았는데 미술을 다루는 언어가 다른 방식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비평 플랫폼이 많았던 것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제대로 된 플랫폼이 하나라도 있었나 싶습니다. 플랫폼이란 건 정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것들을 위한 장소인데, 많은 언어활동 공간은 세력을 가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었죠. 그런 것에는 경계심이 큽니다.

김진주: 민구홍 님은 미술계에 여러 웹사이트들을 만지고 만들고 계신데요.

민구홍: 아까 개인성에 관해 말씀드렸죠. 저는 개인의 역할이 중요하고, 이를 발휘하는 데는 웹사이트가 제법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Writing, Talking, Engineering이 한범 씨의 해시태그라면, 웹은 제게 부여할 수 있는 여러 해시태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미술 및 디자인계 안팎에서 웹을 이용해 개인이 개인성을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건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또 다른 소명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기관, 단체, 기업 등이 해야 할 일이 있겠지만, 개인들이 그 사이에 틈을 만들어 채워나가는 일 또한 필요하죠.

이한범: 독립 출판 혹은 지하 출판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진주: 1인 출판사가 생성하는 것과 1인 웹사이트가 생성하는 것은 무엇이 다를까요?

이한범: 저는 협업을 좋아하긴 하지만 동료나 집단에 대해서 거부감과 반감이 있습니다. 연대나 협업은 너무나도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하고 그것만이 가능한 무언가가 있지만 동료나 집단에 대해서는 의문이 듭니다. 혼자일 때만 가능한 것이 있다고도 생각해요. 혼자일 때 내 주변과 어떻게 연결이 될 수가 있고 또 내 주변을 넘어서서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누군가와 같이 협업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개인의 장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 같기도 합니다.

김진주: 협업은 중요하지만 왜 동료와 집단에 대해 거부감을 가질까는 더 생각해 볼 문제예요. 웹이 개인의 도구라는 걸 강조하지 않아도 우리가 체감적으로 개인성이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아는 시대이지만, 그럼에도 왜 우리가 공동으로 함께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그래서 웹이라는 도구가 더 절실해집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은 여럿이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두 분이 1인의 웹사이트를 만드는 것처럼 혼자 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은데, 이런 문제점이 발생하는 것은 분배의 문제 아니면 영향력의 문제일까요?

이한범: 제 웹사이트가 다른 비평가, 작가의 웹사이트에 비해서 특별히 인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니 부끄럽고 염려도 됩니다.

김진주: 이한범 님 웹사이트를 얘기하자라고 결정했을 때, 민구홍 님이 제안한 것도 있지만, 그전에 저희가 리서치한 목록에도 이 웹사이트가 들어있었고 공개된 텍스트 양과 성격으로 봤을 때 독보적인 측면이 보였습니다.

이한범: 이것이 공적으로 의미 있다기보다는 저한테는 확실히 의미가 있고 작업을 계속해 나갈 수 있게끔 등 떠밀어주는 역할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행위에 있어서는 저에게 필요했던 장소였습니다.

김진주: 이 인터뷰가, 다른 이들 또한 글쓰기의 장소로서의 각자 웹사이트 만들기를 해보게끔 떠밀어주면 좋겠습니다.

이한범: 한편으로는 진정한 의미의 독립 출판을 격려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네요. 저는 독립 출판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본인 마음대로 하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하는데 현재의 독립 출판 문화는 이와는 정반대로 소비재들을 끊임없이 생산하고 있다고 봅니다. 갑자기 독립 출판이 어떤 형식이 되어버려서 이 부분이 저에게 제일 큰 문제의식입니다.

김진주: 형식에 대해서 문제를 던지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답습하는 형식이 돼버렸을 때 생기는 문제점이 있지요. 미술 분야의 웹사이트를 비평가와 작가, 글과 시각적인 작품으로 나눠서 본다면, 작품에는 그것이 웹을 통과할 때 다 전달되지 못하고 소거되는 감각이 많습니다. 그래서 시각적인 작품을 보여주는 웹사이트는 결국은 포트폴리오라는, 다시 말해 작가의 자산을 축적하는 사이트로밖에 만들어질 수 없는 한계점이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반면, 텍스트는 웹에서 그 자체로 전달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아니면, 다른 한계가 있을까요?

이한범: ‘Field’ 카테고리를 만들면 일종의 블로그처럼 쓰고 싶다고 민구홍 씨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웹사이트에 올라온 글들은 거의 대부분 청탁을 받아서 쓴 것이라 이미 어떤 장소를 가지고 있는 글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많이 느낍니다. 비평이 제도와의 관계 속에서 작동할 때, 비평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많이 경험을 하다 보니 자립하여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올라온 글들은 미술제도 안에서 생산되어 어떤 관계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필드는 제가 자립한 상태의 글을 힘주어서 생산을 할 수 있는 공간이기를 바랍니다.

김진주: 왜 지금 자립적인 텍스트 생산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을까요?

이한범: 저는 리뷰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제는 리뷰가 불가능한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미술에서도 리뷰가 회자되는 장소가 사라지고 실종되었다고 봅니다. 생산되는 글들 중 압도적으로 많은 수가 아마 도록에 실릴 것입니다. 이는 당사자들 각자에게는 의미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대로라면 창작의 생태계는 아마 천천히 고사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텍스트의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텍스트가 작업과 얼마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 맺고 있는지가 중요하죠. 이는 다른 방식으로 말하자면, 텍스트가 놓이는 장소는 작업으로부터 여러 거리에서 다양하게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 장소의 다양성이 매우 부족한 것 같습니다.

김진주: 블로그 성격을 가진 메뉴를 만든다는 건, 구독, 독자를 생각하는 걸 텐데요. 제가 요즘 비평가들의 개인 SNS 게시물에 좋아요를 많이 누르고 즐겨 찾아보고 있으면 의도치 않게 1인 매체를 돈을 안 내고 구독하는 독자가 된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SNS를 잘 활용하시는 비평가들께 늘 감사합니다. 제게는 SNS 타임라인이 비평적인 지식과 생각을 얻는 장소가 된 셈인데, 이 역시 알고리즘에 함몰되어 조정당하는 것일 수 있겠지만요. 그로써 특정한 취향만 강화되고요.

이한범: 그래서 인터페이스를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댓글을 다는 기능을 마련하지 않은 것은, ‘이 사이트가 SNS와 같은 장소는 아니라서’였습니다. 인터랙션이 필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김진주: 웹에 이런 다양한 선택들이 많이 발현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글에서는 댓글을 허용하지만, 다른 글에서 허용하지 않을 수도 있고, 또 어떤 메뉴에서는 댓글을 허용하는데 다른 메뉴에서는 허용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

민구홍: 저도 고민해 보겠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기술로 가능한지가 중요하니까요.

김진주: 맞아요. 이 생각들이 기능으로 구현될 수 있는지 아닌지 또한 정말 중요합니다. 아까 이한범 님께서 이렇게 웹사이트를 만들어 놓고 나니 정신적 위안을 얻는 효과를 얻었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오늘 대화에서 그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녹취록 초고 작성: 박지연



  1. (인터뷰어 주) 여러 동료 웹 매체(플랫폼)에 건내려 2022년 7월 중순 준비했던 기획 요지와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질문을 채우고 가다듬는 과정에는 여러 자문위원께서 나눠주신 생각이 큰 도움이 되었다.
    “이번 세마 코랄의 주제 기획은 현재 웹을 매개로, 도구로, 통로로 발현하고 있는 국내의 미술 안팎의 지식 생산 활동들을 연결하고 이들에게 질문하고자 한다. 플랫폼으로 통칭되곤 하는 이러한 웹에서의 지식 텍스트 생산과 공유가 늘어난 까닭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온라인과 비대면의 보편화의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또 한편 상황적 조건 때문이 아니라 텍스트를 편집하고 공유하는 궁구의 일이 주는 (아는 자만 안다는) 즐거움 때문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쨌든 지금 접할 수 있는 플랫폼의 특성은, 아마추어, 학회, 비영리, 상업, 개인과 같이 혼재된 다양성을 증거하고 있기도 하다. 어떤 웹사이트는 꾸준히 게시물을 올리기도 하고, 활동을 멈추기도 하고, 오프라인과 인쇄 출판물로 영역을 번져나가기도 한다. 이러한 다양한 특성에 대한 면밀한 이야기가 텍스트화되어야 할 시점은 언제나 현재적이다. 당연하게도 이 지식의 장소들은 미술에서의 지금의 지적 (생산과 소유와 공유가 교차하는) 열망, 그리고 이를 넘어선 ‘비평’이든 ‘지식’이든 그 무엇의 보고 읽고 들을 것들이 생산되는 자리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그 중요성을 각인시킨다.
    (연구에 관해) 여러분의 웹은 무슨 연구를 하나요? 어떤 지식을 만드나요? 그 지식은 주로 텍스트/글의 형태인가요? 왜 그런가요?
    (플랫폼의 정의에 관해) 여러분의 웹을 혹시 플랫폼이라 부르시는지요? ‘지식 플랫폼’에 대해 생각해 보신 바가 있는지요? 지식을 생산하고 공유하는 웹 활동이라는 측면에서 여러분의 웹을 어떻게 정의하거나 명명하거나, 이것들이 마땅치 않다면 어떻게 안내할 수 있을까요?
    (모임에 관해) 여러분의 웹은 모임으로서의 성격도 가지고 있는지요? 어떤 계기로 모이게 되었나요? 어떻게 모임을 유지하고 있나요?
    (경제에 관해) 여러분의 웹을 유지하는 경제적 방편은 무엇인가요? 인쇄물이나 강연 등 오프라인 행사를 병행하시나요? 유료 또는 무료 구독 시스템을 활용하시는지요? 어떤 다른 방법을 활용하는가요?
    (독자에 대해) 여러분의 웹은 독자를 만나기 위해 어떤 방향으로 활동하거나 확장하고 있나요? 여러분의 독자는 누구라고 생각하시나요?
    (비평에 관해) 여러분이 만들고 있는 지식은 ‘비평’과 어떤 관련성을 가지나요? 비평의 권위에 도전하는 새로운 비평적 지식인가요? 아니면 비평과는 상관없는 지식을 만들고 있으신가요?
    (미술-계에 대해) 미술계는 웹에 기반한 여러분의 모종의 지식 생산 활동에 있어 어떤 거리와 관계에 있나요? 미술-계를 어떤 배경이나 지지체 등으로 활용하고 계신가요?
    (지식에 관해) 여러분의 웹에서 만들어진, 만들고자 하는 지식의 특성이나 성질, 또는 거부하거나 지향하는 방향을 설명해 주신다면? 그것은 어떤 ‘미술 지식’이 될 수 있을까요?
    (기관에 대해) 텍스트를 편집하고 공유하는 운영하는 여러분들 웹이 가진 입장과 시각에서, 기관에서 운영하는 지식을 만드는 웹 사업들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무엇이 같고, 다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