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Hanbum

Talking

리듬 발굴

Cotemporary Non-music vol.13(예술공간 돈키호테, 2021)

연구 발표자 류한길, 신예슬, 이승린, 이한범
일정 2021.4.16(금), 19:30 _리듬과 믿음(신예슬, 이승린, 이한범), 2021.4.17(토), 15:00 _믿음과 리듬(류한길)
장소 예술공간 돈키호테 (순천시 금곡길33, 2층)

 

script

cycle~

한 저명한 자연 연구자 B는 그의 널리 알려진 저서에서 패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 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가지 습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 소리와 경험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아차린 아기 때부터, 패턴과 규칙의 인지가 생존과 세상살이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패턴과 규칙을 찾아다닙니다. 패턴은 과학자들의 일용할 양식이기도 하지만, 누구나 그것을 인식하고 미적, 지적 만족감뿐만 아니라 기쁨과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지구상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가령 고대 이집트인들부터 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원주민들까지 그들의 유물은 규칙적인 패턴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패턴 구조는 보기 좋을 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논리와 질서의 존재를 재확인해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편 우리가 패턴을 만들 때 그것은 신중한 계획과 설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가령 개별 요소들을 잘라 모양을 내고 배치하고 가로세로로 엮습니다. 한마디로 패턴을 만드는 ‘패턴의 장인’이 필요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이 자연에서 패턴을 보면서 그것을 지적 설계의 지문, 즉 어떤 전능한 창조자의 손으로 만들어진 표시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1

K는 책의 귀퉁이에 적힌 한 문장을 소리 내어 읽었다.

모든 것이 그러한 것은 그렇게 되어 왔기 때문이다.
반복해서 읽었다
모든 것이 그러한 것은 그렇게 되어 왔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그러한 것은 그렇게 되어 왔기 때문이다.

cycle~ cycle~ random

세계가 총체적으로 작동하는 장소인 자연에서 인간은 고작해야 패턴을 인식할 뿐이라고 K는 생각했다. 왜 인간이 패턴을 잘 인식하게 되었는지는 분명히 말할 수 없지만, 그건 아마도 인간이 근본적으로 가진 욕망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힘, 권력 말이다. 패턴은 한편으로는 모종의 힘의 작용의 증거물이다. 인간은 패턴을 보며 무언가가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음을 상상한다. 위대한 힘을 발휘해 낮과 밤, 계절을 만든 창조자에게 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인간은 신을 경외하고 무서워하면서도 무시했다. 왜냐하면 인간 자신도 신이 될 수 있다고 자신했기 때문이다. 창조자에 대한 가장 원형적인 형태의 저항은 씨실과 날실을 직조하여 직물을 만들기 시작하면서이지 않을까 K는 생각했다. 비극, 그러니까 몰락할 게 뻔 한 미래로 향하는 문명은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패턴이 자연의 비밀이라고 오해한 순간. 스스로 패턴을 만들기 시작한 순간.

적어도 여기까진 평화였다. 자연과 문명이 하나로 통합되어 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들의 모습으로 신의 형상을 조형하기 시작했다.

cycle~ cycle~ cycle~

도서관을 찾은 K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고고학자 H의 책을 발견했다. 거기에는 이런 구절이 적혀 있었다.

“무덤을 방문하는 자에게 무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다만 무덤을 방문하는 자들은 무덤을 앞에 두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 말하려고 할 뿐이다. 결국 과거를 들여다보는 자의 내면에는 미래를 점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며 미래를 점치려는 내면에는 현재의 문제를 분석하려는 마음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왜, 현재인가. 그 시간, 현재라는 시간만을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 현재라는 인간의 시간만이 나와 너를 이렇게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2

K는 깊은 상념에 빠졌다. 그는 한 번도 자신이 현재를 살아간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스스로를 미래를 발굴하는 고고학자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과거와 미래, 두 시간만을 산다고 생각했던 K는 온 몸이 뻐근하게 무거워짐을 느꼈다. 정해진 구역을 벗어나지 마라는 경고 같았다.

cycling~ saw~ phasor~

열역학 제 2 법칙에 따르면, 에너지는 가역적으로 흐를 수 없다. 열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르지 않는다. 에너지의 총량은 보존된다 하더라도 에너지가 흐르는 방향은 제한이 있다. 열이 방출되고 난 곳에는 에너지가 고갈되고 형태를 규정하는 질서가 흐트러진다. 나무는 불탈 수 있지만 타고 남은 재는 다시 나무가 될 수 없다. K는 완벽한 미래가 있다면 그곳은 완벽한 무질서가 아닐까 종종 생각했다. 그는 미래를 소모와 소진의 축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소모되고 소진되면, 더 이상 운동이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세계는 완전히 정지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K는 고요한 시간을 원했다. 어떠한 질서도 부여되지 않은 방향 없는 시간을 말이다. K는 자신이 살아 있을 때 그 미래가 당도하기를 바랐지만, 아무래도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수명을 생각한다면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고고학자가 되어갔다. 고갈되고 소모된 것 옆에 있기를 강렬하게 바랐고 도래할 미래의 모조품(=이미 도래한 미래의 유산)을 찾아내고자 했다.

미래는 어디에도 묻혀 있지 않지만 모든 곳에 묻혀 있다. 보통의 고고학자라면 지난 수백 세기 이전에 문명이 존재했었다는 소문이 전해지는 산과 바다와 사막을 돌아다녔겠지만 미래를 발굴하는 K는 높은 건물이 빽빽이 들어 차 있는 도심을 거닐었다. 그곳에는 온갖 것들이 무성하게 흐르고 있다. 높고 빠르게, 그리고 크게.

사람들은 그가 고고학자라고는 생각지 못했고, 그저 집 없이 하루하루 따뜻한 자리를 찾아 전전하는 홈리스로 여겼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A는 미래를 찾는 고고학자다. 미래는 땅 속에 있지 않고, 무엇보다 역동적이고 활기찬 흐름에 도사리 있었기에 도시는 그의 일터나 다름없었다.

random

K는 오랜 시간에 걸쳐 미래를 찾는 방법을 연구했다. 특수한 방법을 통해서만 미래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고고학적 정설이다. 미래는 가장 역동적인 순간 이후에 시작되고, 그 역동이란 눈으로도 무엇으로도 감각할 수 없다. 고고학자는 철저하게 신체의 지각 정보를 망각해야 한다는 것이 그 직업에 임명되며 선언해야 하는 첫 번째 조건이었다.

한 원주민 부족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이후로 K는 뒤로 걷기 시작했다. 그 원주민 부족의 언어에서 미래란 눈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등 뒤에 있는 것이었고, 인간은 미래를 등지고 과거를 보고 있는 사람으로 이해되었다. 그들은 오직 지나온 과거만을 보며 엉거주춤, 두려움 속에서 뒤로 걷는 존재였다. K가 멈춤 없이 뒤로 걷는 것을 미래를 발굴하는 고고학적 탐사의 방법으로 택한 것은 필연적인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뒤로 걸으면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지기 때문이었고, 그 때 비로소 모르는 것과 마주칠 수 있었다. K는 미래가 묻힌 장소를 찾아 하염없이 이동하는 것에 모든 시간을 쓴다. 언제부터 걷기 시작했는지 기억하는 게 무색할 만큼 K는 움직임 자체가 되어갔다.

K는 의심이 많았다. 말로 설명되는 인과의 이야기에 대해서 언제나 냉소했다. 그는 진실의 무게는 그렇게 가볍지 않음을 느끼고 있었다. 오랜 동안 걸어온 경험을 종합해 보건대, K는 미래는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이 남겨놓은 흔적이라고 정의하게 됐다. 흔적 위에는 언제나 기념비라 할 만한 인공물이 세워져 있었다. 그것을 기념비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이해되는 형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기념비 앞에서 기도와 참회를, 그리고 기원과 전망을 하는 것을 보고 미래는 믿음과 모종의 관계가 있지 않을까 K는 생각했다. 자신이 믿는 것이 미래가 되기를 요구하는 것이 K에게는 꽤나 한심하게 느껴지긴 했다. 그런데 믿음은 무엇인가.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는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cycle~ cycle~ cycle~ random

K는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미래의 흔적들이 발견될 때마다 거기에는 리듬이라는 기묘한 운동성의 기억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리듬이라는 기묘한 운동성은 우리에게 유산과 유물이라고 할 만한 가시적이고 / 형태와 물질을 가진 사물을 남겨두는 것이었다. 그 사물은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지대하게 영향을 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기억이라는 역량은 리듬에 대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기억은 유산이 된다… 리듬이 전래된다…

K는 리듬이라는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고고학자로서 30여 년을 살았다. 어느 날 큰 성당 옆을 지나고 있었는데, 그 안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기도 소리의 잔향이 귀에 유난히 거슬렸다. 분명 의도된 효과였다. 저곳에 우뚝 서 있는 것은 사실 벽돌로 올라간 건물이 아니라 머릿속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저 소리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는 차츰차츰, 진동의 흔적들을 찾아 나가기 시작했다. 아니 소리의 편에서 다시 세계를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하는게 더 적절할 것 같다.

phasor~ phasor~ phasor~

그런데 문제는 진동과 소리가 그 자체로 기록으로 남겨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K는 이 문명의 근원에서부터 작동하는 어떤 것을 이해하고자 했기에, 아주 오래 전의 시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싶었다. K는 어느 날 문득 진동이 물질과 결합하면 구체적인 형태를 그려낸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 그래서 K는 형태 속에서 길고 짧은 누적된 진동의 흔적들을 찾아나가기로 마음먹었다. 하나의 리듬은 단지 하나의 물질 안에서만 구현되지 않는다. 하나의 리듬은 그 리듬이 운동하는 공간과 시간의 범주 안에서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물질을 통해 발현된다. 그러니까 회화, 조각, 건축, 음악, 춤, 놀이, 글 / 이 모든 “하기”와 결부된 영역에서 리듬이라는 모종의 공통 분모를 가진다.

cycle~

기원후 2세기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의사였던 갈레노스는 기원전 3세기 말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 크리시포스의 학설을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크리시포스는 인체의 아름다움은 몸을 구성하는 원소로 얻을 수 없고 신체의 부분들의 조화로운 비례로 이루어졌다는 주장을 폈다. 한 손가락과 또 다른 손가락들, 손가락 모두와 손의 다른 부분, 손의 나머지 부분과 손목, 손과 손목과 팔목, 즉 폴리클레이토스의 카논에 나와 있듯이 모든 것은 다른 것과 조화롭게 비례를 맞추어야 한다. 폴리클레이토스는 미술 작품으로 이러한 비례를 증명했던 장본인으로 그의 글에 따라 조각상을 만들었고 이 작품을 책 제목처럼 카논이라고 불렀다.”

카논의 등장은 실로 공포스러운 것이라고 K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카논의 핵심은 비례였고 이 수학적 공식은 모든 상황에 유연하게 그리고 유기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버렸기 때문이다. 폴리클레이토스는 그리스 민주제 도시국가에서 기둥으로 여겨지는 젊은 남성의 형상을 모델화했고 그것은 실제로 조각적 형상이 되었다. 심지어 이 비율은 도리아 양식 건축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는데, 한 고고미술사학자는 조각상의 장골뼈가 허리 부분을 지탱하는 건축의 엔타블레처와 같은 개념임을 지적했다. 규범화된 도리아식 건축에서 신전은 폭과 높이가 9:4 비율이며 너비와 폭은 이 비율로 반복된다.3

신화란 이와 같은 규범화된 모델이 마치 실제 있었던 역사처럼, 있을법한 이야기처럼 구성된 서사다. 그러니까 신화는 일종의 상징이고 내밀하게 구성된 이데올로기, 권력 모델이다.

신화적 사고가 지배적인 세계에서, 상징과 이미지는 강력하게 현실을 구조화하려는 욕망의 산물이기도 했다. 또 그러한 이상적 체계를 현실화하려는 정치의 장이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전쟁을 준비하면서 그리고 전쟁 기간 중 신전을 짓고 거기에 수많은 상징적 조각과 그림을 가져다 놓았다.

cycle~ random

11세기~12세기 사이, 서유럽에서는 초기 스콜라 철학이 발생하면서 동시에 초기 고딕 양식도 함께 등장했다. 그리고 13~14세기 스콜라 철학이 퇴조하면서 전성기 고딕 양식 또한 퇴조했다. 이 관계에 의심을 품을 미술사학자 P의 강연에 K는 강하게 매료되었고 그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K가 보기에 P는 양식과 형식을 모종의 힘의 작용의 결과물이자 그 힘에 대한 공명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P 또한 K처럼, 세계의 모든 조형들은 그런 알 수 없는 이유가 원인이라고 의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인과를 명료하게 그리고 설득력 있게 논증할 수 있는 사례는 아주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대체로 이 관계, 즉 믿음을 구현하고 조장하는 형태와 / 형태를 만드는 리듬 사이의 인과율은 언어적으로 다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K는 꼼꼼히 메모해 둔 강연 내용을 다시 들춰 보았다.

9번
한편 토마스 아퀴나스에서 정점에 달했던 이성의 지고한 종합 능력에 대한 신뢰가 점차 퇴조하는 것을 감지할 수 있는데, 그런 신뢰의 퇴조는 곧 고전적 시기에 억압받았던 흐름들의 부활로 이어졌습니다. ‘숨마’라 불렸던 대전은 덜 체계적이고 덜 야심적인 서술 유형으로 다시금 대체되었습니다… 중략… 그와 마찬가지로 고전적 성당 건축 유형 역시, 덜 체계적이고 종종 소박하기까지 한 해결책에 의하여 폐기되었습니다. 그리고 조형예술에서도 우리는 추상과 선형성을 추구하는 경향의 부활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11번
유명론자들은 보편자의 어떠한 실존도 부정하고 오로지 개별자에 대해서만 실존을 인정했습니다.

12번
경험주의의 영원한 딜레마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실재란 직관적 인식에 의해 파악할 수 있는 것에 속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실재하는 모든 것, 곧 물리적 대상의 세계와 심리적 과정의 세계는 결코 이성적일 수 없으며, 이와 반대로 이성적인 모든 것, 곧 추상적 인식에 의해 이 두 세계에서 추출된 개념들은 결코 실재적일 수 없습니다.

13번
이러한 새로운 흐름의 공통분모가 주관주의라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15번
지적인 삶에서 관찰될 수 있는 주관주의에 상응하는 시각적 영역 안의 주관주의. 이 주과주의의 가장 특징적인 표현은 원근법적 공간 해석의 등장입니다 …중략… 오캄의 용어를 빌어 설명하자면, 원근법은 대상에 대한 주관의 직접적 직관을 의미하며, 따라서 근대 자연주의로 향하는 길을 닦은 것이자 무한자의 개념에 시각적 표현을 부여한 것입니다.

17번
우리가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는바, 외형적으로는 화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유명론과 신비주의의 공존이라는 경향은 14세기에 다양한 방식으로 스며들어 종국에는 플랑드르파로 융합되어 영광의 순간에 도달합니다.

36번
전성기 스콜라철학의 대전과 마찬가지로, 전성기 고딕 대성당은 무엇보다 ‘전체성’을 목표로 했으며, 그리하여 제거뿐 아니라 종합에 의해서 완벽에 가까운 최종적 해결을 지향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전성기 고딕 설계 또는 전성기 고딕 체계라는 말을, 그 어떤 다른 시기의 양식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성기 고딕 대성당은 모든 것에 제자리를 찾아주고 제자리를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것을 억누름으로써 자신의 형상 안에 그리스도교의 신학적, 도덕적, 자연적, 역사적 지식 전체를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전성기 고딕 대성당은 그 구조의 디자인에서, 서로 다른 경로로 전승된 모든 주요 모티프를 종합하고자 했으며, 마침내 바실리카와 중심 설계유형간의 균형을 위협할 수 있는 지하 납골소, 갤러리, 전면의 두 개 이외의 탑 같은 모든 요소들을 억누름으로써 양자간의 유례없는 균형을 이루어냈습니다.

48번
인문주의 정신이 결점 없는 화법, 건축에서는 결점 없는 비례와 같은 조화의 극한을 저술에서 요구했다면, 스콜라철학의 정신은 명확성의 극한을 요구했습니다. 스콜라철학의 정신은 언어에 의한 사상의 명료화를 수용하고 고집했으며, 이와 똑같이 형식에 의한 기능의 명료화를 수용하고 고집했습니다. 4

phasor~ phasor~ phasor~ random

비잔틴 제국에서 사순절 첫째 일요일은 ‘정교의 일요일’이라고 불리며 성대하게 축하 예배를 한다. 이 날은 성상파괴론자들에 대한 우상숭배자들의 승리는 기리는 날이다.

8~9세기 사이, 비잔틴 제국에서 성상파괴논쟁이 있었다. 그리스도교 인들은 신의 전지전능함을 믿었다. 그런데 신의 한계를 설정하는 문제에 있어서 두 편이 갈린다. 한편에서는 신의 재현 불가능성을 주장했다. 한계가 설정되지 않아야 할 신은 형상화되지도 물질화되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즉 신은 이미지가 되면 안 된다. 다른 한편은 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한 인간이 될 때, 스스로의 한계를 정하도록 허가한다. 신을 표현하려면 인간 세계에 존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어로 ‘한계를 정하다’라는 동사 페리그라포는 말 그대로 원을 그리는 것을 의미했다. 초기 그리스도교 미술품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메달리온과 후광은 그러니까 신의 한계성을 논증하는 장치였으며 형식이었다. 5

K는 이미지가 가능해졌다는 역사적인 힘에 대해서 생각했다. 어둠을 인지하게 된 것은 이미지의 출현 이후였을 테다. 그리고 어둠은 리듬을 의심하게 했을 것이다.

random

의심스런 소리들을 하나둘씩 듣게 되면서, K는 이 문명이 리듬 그 자체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기 시작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문명은 모든 진동들 중에서 몇몇 진동을 선별하고 이용해 그 문명을 지탱해 왔으며 리듬의 엔트로피가 증가한 이후에 문명은 힘을 잃고 땅으로 흡수되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오래된 책에서 흥미로운 기록을 읽었다. 전장에서 돌아온 왕이 사람들을 비 오는 광장에 모아 두고 우렁찬 연설로 승리감과 애국심을 고취 시키고 난 이후, 그 왕은 종종 비가 내리는 날 국민을 모아 연설을 했고, 수십 년이 지난 후 그 나라에서는 빗소리를 빗소리라고 부르면서 환희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10년 후 그 저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고 죽었다.

“그러나 빗소리는 제국의 몰락을 예언하는 것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빗소리를 듣게 된 이후로 땅의 속삭임을 듣지 못했다.”

K는 문명의 선구자들이 간악하다고 생각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리듬의 힘을 알고 있었고 그 은밀한 도구를 잘 사용한다면 사람들을 마음대로 다루는 것쯤은 일도 아니라는 것을 일찍이 간파했기 때문이다. 통치자들은 표면적으로 도시를 건축하고 제도를 정비하였지만 그들의 궁전 깊은 곳에는 리듬을 설계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통치자가 그리는 이미지를 리듬을 일으키는 씨앗으로 배양했고 그 씨앗은 소위 전문가라 불리는 이들에게 전해져 싹을 틔웠다. 통치자가 설계자들에게 건넨 이미지가 무엇인지, 설계자들은 그 씨앗을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누구도 기록을 발견하지 못했다. K는 다만 그것이 생장하여 풍경을 이룬 장면을 바라보며 추측할 뿐이다. 그 풍경이 무엇보다 진실한 증거라고 여기면서.

세심한 관찰자로서 A가 알게 된 것은 무수히 많은 씨앗은 그 무수한 숫자만큼 다양한 폭과 주기와 강도를 가진 진동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딱 하루 동안 한명에게만 감지될 정도로 작고 짧은 리듬도 있는가 하면, 북반구 전체에 걸쳐 200년 동안 작동하는 리듬도 있었다. 인위적인 씨앗들은 세계가 발전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지만 실은 그것 말고 다른 진동을 잊게 만드는 방식으로 작동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구의 모든 에너지를 급격하게 소비하며 회복할 수 없는 미래로 나아가는 일이기도 했다.

cycle~

K는 경계선을 걸었다. 그곳은 일종의 전쟁터였다. 그곳이 전쟁터라고 이해하게 된 것에는 그곳에서 통치자가 아닌 어떤 대항 세력의 존재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특정 시기가 되어 예술가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예술은 진부하고 한심하며 혐오스러울 정도로 뻔뻔하게 인간을 매혹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도처에서 리듬을 상쇄시키는 또 다른 진동을 끊임없이 설계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K는 그들에 대해 양가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하나는 괘씸한 마음이었는데, 그들은 미래에서 동떨어져 있었고 미래를 지연시켰기 때문이다. 순리대로 사라질법한 현실에 다른 현실을 출현시키며 자꾸만 심폐소생술을 시도한다. 빨리 미래가 도래하길 바라는 K로서는 꽤나 괘씸한 존재들일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이 끊임없는 쇠락의 세계에 맞서는 전투는 꽤나 의미심장하게 여겨졌다.

K는 처음으로 고고학자로서 기쁨과 보람을 느꼈다. 그리고 생각했다. 미래는 모든 것이 소모된 이후가 아닐 수도 있겠다고 가설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가 살펴본 바, 무질서는 도래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삭제된 것이다. 통치자들의 은밀한 리듬을 부숴버릴 수만 있다면… A는 살아생전 끝내주는 세계의 풍경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A는 발굴지로 다시 떠났다. 아니, 전쟁터로.

cycle~

어둠, 그림자, 검은색. 형태 없이 진동을 삼키는 질량. 그러니까 모든 진동이 합성되는 장소. K의 다음 목적지였다. 무엇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무언가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notes on lecture

• 음향적 인식을 통해 미술사를 되돌아보면 양식이라는 것은 리듬의 형태화라고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그리고 한 양식의 발현과 퇴조는 리듬이라는 운동의 발생과 소멸과 등가적일 수 있겠다 싶었다. 고고학적 증거는 아주 먼 과거이기도 하지만 그 문명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끝난 미래다. 그래서 나는 현재의 미래를 찾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고고학자가 될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땅에 묻힌 미래를 발견해 나가면, 현재의 리듬을 더 많이 인식하고 그것의 패턴과 강도를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운동을 지연시키든 가속시키든 그것은 고고학자의 선택이다.

• 이번 렉처에서는 언어와 소리의 모순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다. 소리를 모르는 사람이 소리에 대한 언어적 지식이 많아질수록 소리를 듣게 되고 동시에 언어적 지식은 미심쩍고 형편없어지며 소리에 관해서는 불필요한 것이 되어 잊히게 된다. 변신이란게 이런걸지도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리듬을 발굴하는 고고학자가 리듬의 흔적을 발견해 나갈수록, 그는 들리지 않던 소리를 들어 나가게 된다. 그럴 수록 언어는 더 불명료한 것이 되어간다.

• 그래서 렉처의 전체적인 서사를 두 트랙으로 설정했는데, 하나는 스크립트로 쓴 이야기로 리듬을 발굴해 나가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이야기는 뭔가를 발견해 나가며 풍성해지는데, 달리 말하면 정보가 많아지고 복잡해진다. 다른 하나는 소리 서사로, 이야기가 리듬을 찾아 나갈 수록 더 많은 주파수가 중첩되어 나가며 이야기를 압도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이번 렉처는 이야기에서 시작해 어느 순간 청취의 경험이 중요해지는 서사적 국면 전환을 통해 주제를 말해보고 싶었다. 나는 소리를 먼저 설계했고, 이에 따라 이야기를 적으며 말의 강도를 조절했다. 처음에는 천천히 또렷이 말하다가 나중에는 빠르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언어가 소리에 묻히거나 소리로서만 들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1. 필립 볼 지음, 조민웅 옮김, 자연의 패턴, 사이언스북스, 2019 

  2. 허수경 지음, 나는 발굴지에 있었다: 바빌론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 난다, 2018  

  3. 나이즐 스파이비 지음, 양정무 옮김, 그리스 미술, 한길아트, 2001 

  4. 에르빈 파노프스키 지음, 김율 옮김, 고딕건축과 스콜라철학, 한길사, 2016 

  5. 존 로덴 지음, 임산 옮김, 초기 그리스도교와 비잔틴 미술, 한길아트, 2003 

채집한 소리의 스펙토그램 Spectrogram 이미지(매미와 새)_ 이승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