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Hanbum

Writing

배반된 유머: 이민선의 작업에 대하여

이민선 개인전 실제 있었던 일인데(2018,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의 전시 심층비평 프로그램을 통해 작성된 글.

 

이민선은 For the Sake of Slapstick(2015)에서 고정시켜 높은 카메라를 앞에 두고 넘어지는 연습을 반복한다. 화면의 왼쪽에서 달려와 프레임의 가운데 즈음 되는 풀밭 위로 계속해서 풀썩 쓰러지는데, 처음에는 넘어지기를 작정한 것이 뻔히 보일 뿐더러 ‘잘’ 넘어지지 못한다. 이렇게도 넘어져보고 저렇게도 넘어져보고, 또 힘이 부치는지 넘어질 타이밍을 놓쳐 어정쩡하게 그대로 달려 나가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는 잘 넘어지는데 성공한다. 우스꽝스럽게, 과장되었지만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넘어져 버린 것이다. 시청자는 그 모양새와 표정에 실소가 터지고, 화면 속 작가는 비로소 성공했다는 듯이 카메라를 향해 슬쩍 멋쩍은 미소를 보인다. 이 부단한 연습은 이민선이 작업을 통해 웃음을 유발해내기 위해 자기 자신과 매체 사이의 합의의 순간을 찾아가는, 혹은 조정해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유머는 조정의 결과로서 드러난다. 한편, 전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명록에 함께 놓이는 펜의 대를 아주 길게 늘여놓음으로써 관객들이 점잖게 자신의 이름을 쓰는 것을 실패하게 만드는 a Guestbook(2013)은 특정한 상황과 사물 사이에 놓인 암묵적인 합의를 비틀어 놓는 것과 연관된다. 이처럼 이민선의 작업은 합의의 구성과 합의의 비틀기를 오가는 운동의 영역에 있으며, 그 운동성의 독특한 점은 유머를 기착지로 삼음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픽션에의 의지를 가진다는 것이다.

이민선은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예술가라고 하는 특정한 형상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드라마를 연출한다. 예술가는 때로는 대단한 능력을 지닌 존재인 척하지만 정말 그런 것은 아니고, 또 무척이나 이상하며 황당해 보이는 행동을 하지만 사실 여느 누구와 마찬가지로 일상 세계에 발 디디고 있는 존재이다. 이민선은 영상이라는 매체가 어떻게 ‘현실효과’를 발생시키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으며 자신이 직접 화면에 등장하여 연기하는 것은 이를 위장막 삼아 형상의 이중성에서 비롯하는 픽션의 효과를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예술가는 이중구속의 형상이 된다. Introduction of the Work에서 등장하는 예술가로서의 이민선은 ‘영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대단한 작업을 구상하는 척하지만 실상 핸드폰 게임으로 작업실에서의 시간을 때우고 ‘거장’이라고 부른 유명 작가들의 작품에 대해 따분해 하는 상반된 면모를 능청스레 보여줌으로써 웃음을 유발한다. 그러나 단순히 이러한 격차를 통해 예술가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그의 작업을 이해하자면 어딘지 석연찮다. 왜냐하면 보다 인상적인 순간은 그 다음 단계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인데, 작가는 언제나 마지막 순간에 이야기하기의 방식을 변형시킴으로써 형상이 이끌고 나가던 드라마와는 다른 차원의 픽션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예컨대 Superpower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시끄러운 공사장 소리에 눈살을 찌푸린 연기자가 제스처를 취하자 실제로 음향이 제거된 것이나, Nothing to Say에서 내레이션이 연기자의 형상에서 분리되는 것처럼 말이다. Introduction of the Work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카메라가 연기자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방식은 이전의 시퀀스에서 그가 넋을 놓고 재밌게 보던 코미디 드라마 오피스의 연출법을 그대로 따름으로써 모든 것이 철저히 연기된 것임을 고백한다. 이처럼 드라마의 픽션으로부터 내러티브의 픽션으로 이행, 즉 픽션을 생성하는 방식을 급격하게 전환시킴으로써 관객의 캐릭터에 대한 몰입은 와해된다. 그리하여 문제는 웃음의 대상으로부터 ‘나’를 포함하는 전반적인 체계, 즉 작업이 효과를 가지는 상황 전체로 이행된다. 이를 소급해서 이해해 보자면, 이민선의 작업은 유머의 작동을 굴절시키고자 유머를 구성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것은 매체의 심리적 효과를 위해 ‘~인 척 하는’ 것, 즉 관습적 형식을 조형하는 과정을 일컫는 것이기도 한데, ‘~인 척 하는’ 것의 예술적 효과는 언제나 그러하듯 그 형식이 유통되는 체계에 손쉽게 침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체계의 규칙을 교란시키는 것으로 비판은 수행된다.

이민선은 매체를 조작하고 조정함으로써 구성되는 픽션 만들기에 진력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특정 매체를 다루는 작가라기보다는 드문 의미에서 매체의 조건을 이용하는 작가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사루비아다방에서의 개인전 실제 있었던 일인데는 사진에서 시작한다. 먼저 하루를 36롤 필름에 나누어 담고, 24시간동안 벌어진 일에 대한 소설 세 편을 쓴 후 영상을 제작하여 하나의 묶음으로 전시한다. 그렇게 전시장에는 모두 사흘치의 픽션이 덩어리져 놓여 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매체가 재현하는 사건은 하나의 이미지, 하나의 이야기로 합쳐지고 완성되려는 욕망과 무관해 보인다. 그보다는 그 재현의 매체들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으며 거기서 산출된 이야기가 어떻게 서로를 배반하는지를 보여준다. 예컨대 우리는 사진에서는 흔적을 찾을 수 없던, 그리고 소설에서 언급된 “옆집 기타 소리”의 주인공의 모습과 그 음이 어떻게 오르내리는지를 루핑되는 영상에서 보고들을 수 있고(어떤 날(2018. 6. 3-4)), 사건과는 관계없는 제 3자가 연기자로 등장한 인터뷰 영상을 통해 번외의 이야기를 접하기도 한다(어떤 날(2018. 4. 2-3)). 그리하여 전시장은 소실점 없는 무한한 이야기들이 배치된 항로가 되고, 관객은 아득히 먼 거리의 이야기들 사이를 항해하는 선원으로 초대되는 것이다.


 

이민선, For the Sake of Slapstick(2015)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