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Hanbum

Writing

어떤 책을 위한 설계도

어떤 계약(어떤출판연구회, 2022)에 수록.

 

“사람들은 동료를 찾기 위해 책을 만든다!”

자물쇠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듯 페이스북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타임라인을 거슬러 한참을 내려갔지만 앙드레 브르통이 출판에 관해 했다던 저 말을 스크랩 해 놓은 게시물을 찾지는 못했다. 2016년 즈음 출판사에 취직해 편집자로 일하기 시작하던 무렵, 책을 만드는 일이 무엇을 하는 일이고 출판이란 건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해 가는 과정에서 저 말을 봤던 것 같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동료’라는 말에는 거부감이 있다. 와글와글 모여 글 쓰고 책 만들고 실험적인 작업을 하는 초현실주의자들의 우정 가득하고 활기 넘쳤을 그 시절을 종종 그려 보지만, 함께 하기의 방식에 관해선 나는 늘 다른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럼에도 저 말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출판이 ‘공동체’가 아닌 어떤 관계를 상상하는 일이라고 아직 믿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 출판에서 벗어나

내가 다니던 출판사는 예술과 관련한 책을 만들었다. 그래서 미술관에서 일하는 사람, 시각예술 작가, 영화감독, 음악가, 디자이너 등등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일할 수 있었다. 주로 했던 일은 그들의 이런저런 작업을 책으로 만드는 일이었고 그 시절의 나는 예술을 다양하게 재생산하는 일을 꽤 즐거이 했다. 오늘날의 예술이라는 것이 기술복제의 신화 위에 구축된 풍경이라고 생각한 것은 내가 책을 만드는 자리에서 그것들을 바라보고 참여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의 재생산은 어쩌면 예술 그 자체보다 현시대에 긴밀히 접속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내심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생기게 되었는데, 바로 어린이들도 보는 책을 만드는 것이었다. 어린이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던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술의 여러 삶을 만들던 그 재생산 작업이, 어딘지 충분하지 않다는 감각이 있었다. 책이라는 것을 만들며 그 사물의 욕망을 충실히 따르다 보면 자꾸만 바깥을 바라보게 되는데, 내가 참여하던 일들이 운영되던 제도는 바깥에 대한 상상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나의 글쓰기가 변하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다. 내가 생각하는 비평은 대상의 불가해함을 찾아내어 그것을 어떻게든 설명해보려 노력하는 쓰기, 혹은 인식 불가능성에서 시작하는 추측의 쓰기이다. 하지만 나의 쓰기가 실제로는 대부분 관성적인 지식에서 비롯한다고 느낀 것은, 그것을 구성하는 언어 형식이 미술계라는 매우 한정된 사람들이 모인 장소만을 상정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글쓰기를 바꾸어 나간 것은 불가해함을 인정하고 나누는 자리가 오직 그곳에 한정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 였다. 아니 오히려, 누구를 만날지 알 수 없는 장소에서만 불가능성을 다루는 글쓰기가 가능하지 않나 생각했다. 그러면서 그런 장소가 지금 여기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했고, 자연스레 어떤 장소를 만드는 일을 그려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 어린이들을 초대하고 싶다는 강한 바람을 가지게 됐다. 그것은 비평이 미래에 대한 기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아쉽게도 당시 다니던 출판사에서는 그 일을 하지 못했다.

퇴사를 하고 1년 정도 프리랜서로 지내다가 출판사를 만들었다. 첫 1년은 출판사가 어떤 장소가 되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그 필요성을 스스로 설득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나선프레스라는 이름은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나선’은 내가 줄곧 매혹되어 왔던 하나의 운동성으로, 어느 순간 나는 그것을 하나의 기능이자 미학으로 받아들였다. 로제 카이와는 인간 문명 속에서 발견되는 놀이를 아곤, 알레, 미미크리, 일링크스 등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하는데, 마지막 구분 항목인 일링크스(Ilinx)는 그리스어로 소용돌이를 뜻한다. 카이와는 이에 대해 “회전이나 낙하 등의 빠른 운동을 통해 자신의 내부에 기관의 혼란과 착란의 상태를 일으키는 놀이”1라고 규정한다. 어린이들이 손을 맞잡고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격렬히 돌며 스스로 어지러움을 유발하는 그런 종류의 의미라곤 텅 빈 놀이를 떠올릴 수 있겠다. 나선프레스는 바로 이러한 일링크스의 놀이터가 되고자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다른 한편 나선 운동은 예측할 수 없는 연결들을 가능하게 하는 움직임이자 전에 없던 큰 변화를 일으키는 사건의 비밀에 대한 기호이다. 원심력은 언제나 바깥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고, 구심력은 내부를 깊이 파고 든다. 작업실에서 강문식 디자이너와 마주앉아 내가 생각하는 나선의 의미를 한참 말했던 어느 늦은 봄 저녁을 기억한다. 그리고 몇 달 뒤, 암스테르담에서 트램에 올라 확인한 메일박스에는 그가 보낸 나선프레스 로고 시안이 도착해 있었다. 나는 단번에 그 이미지에 매혹되었는데, 검은 영역은 끝없는 깊이의 구멍으로 들어가는 중인 것 같기도 했고 반대로 표면 위로 솟아 오르는 중인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가운데에 뚫린 작은 구멍은 결코 메워질 것 같지 않았고 가장자리에 작게 삐죽이 튀어나온 턱은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가능성처럼 보였다. 강문식 디자이너는 그 로고가 나선 운동을 위에서 바라보았을 때의 모습을 상상한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예술이라는 내용, 그리고 어린이라는 대상 독자 등의 범주적 구분을 넘어서서 나선프레스가 근원적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곳인지에 대해서, 장소 만들기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최근 이해하게 되었다. 현실이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 사물이 얼마나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인지를 말하는 것, 즉 ‘어려움’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은 현실과 사물에 관해서 말하기기 무척 어렵다는 것을, 그 불가능성을 계속해서 상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진실을 비타협적으로 탐색하는 시도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세상에 관해 이미 생산된 지식을 전달하기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노력에 독자들이 감화되어 스스로 모험을 나서기를 바라고 나는 그것이 교육적인 순간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예술가들의 일이 바로 그 모르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라고 여겼기에, 나는 자연스레 예술가들을 저자로 초대했다.

책을 만드는 건 참여자들 사이의 관계

그런데, 알맞은 저자를 초대만 하면 될 줄 알았더니, 수두룩한 어려움이 기기서부터 또 시작됐다. 어떤 작업이 책을 통해 바로 그 미묘한 장소, 즉 명시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암묵적이지도 않은 진동하는 영역에 머물게 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꽤 많은 결정들이 필요했다. 바라는 바 대로 책이 작동하게끔 모의실험 하는 과정이 되풀이된다. 그것은 저자 단독으로 짊어질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책을 만드는 모든 이들이 참여해야만 가능한 공동의 프로젝트였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어떤 책을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면, 자연스레 나는 나를 포함한 책을 만드는 모두가 어떻게 책 만들기에 참여하는 것이 좋을지 골똘히 생각한다. 저자-편집자-디자이너-인쇄공 등 업무에 따른 역할 분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에 의해 서서히 모양이 갖추어지는 저작물이 우리 사이를 어떻게 흘러 다녀야 할지, 우리는 그것을 사이에 두고 어떤 방식으로 대화해야 할지, 이것을 만드는 데에는 어떤 시간성이 도입되어야 할지 등등… 모든 책은 저마다의 이유로 만들어지기에 저마다의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나는 올해 들어, 먼 곳에 사는 한 어린이와 손으로 쓴 편지를 느리게 주고받고 있는데, 우리는 책을 만들기로 했고 편지는 어떤 책을 만들지를 논의하는 우리의 방식이다. 회의니, 원고니, 마감이니, 창작이니 하는 어른들의 생산 개념과 업무 과정은 그와 함께 책을 만들기에는 부적절해 보였고, 무엇보다 그는 매섭게 자라나며 끊임없이 바뀌고 있는 중일 것이기에 그의 삶의 속도를 존중하며 말을 듣는 일이 이 책을 만드는 데에 있어서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만들 디자이너는 우리가 편지를 주고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의 어머니는 편지가 잘 도착했는지 종종 문자로 소식을 알려준다. 이 책은 언제 나올지도 모르겠고 어떤 책이 될지도 아무도 모른다. 다만, 지난 시간이야 어떻든 단정히 책의 모양을 한 무언가가 등장할 것이다. 지금 나선프레스에는 준비중인 여러 책들이 있고, 그 책들은 아마 저마다 자신만의 관계 방식을 기억한 채로 태어나게 될 것이다.

이처럼 나선프레스가 지향하는 책, 그러니까 어딘가 모호하고 느슨하여 어린이도 넉넉히 품을 수있는 장소를 만들기 위해선 참여자들 간의 관계 양식이 생산 조건으로서 반드시 고려돼야만 한다. 지금으로선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지만, 다만 열린 상태 속에서 합성 작용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어떤 순간을 포함한다고는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출판업자로서 맞닥뜨린 가장 첫번째 난관 혹은 의혹은 이와 같은 생산 조건을 생산 조건으로서 표명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하면, 하나의 책이 참여자들 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된다는 사실을 재현하는 양식이 없었다. 계약서 만들기가 어려웠다는 말이다. 출판업계의 출판권설정표준계약서는 오직 출판사와 저자만이 책의 생산 주체로 상정될 뿐이고, 미술계에서는 협업에 대한 상상은 많지만 구체적인 현실의 제도로까지 구현되지는 않는다. 나는 둘 모두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둘 모두 현실의 구체적인 노동과 창작 행위의 일부를 은폐하기 때문이다. 전자는 그것을 없는 듯 취급함으로써, 후자는 기획할 뿐 그것에 구체적인 질량을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말이다. 관계 양식이 생산 조건으로서 표명되어야 하는 이유는, 실제로 그것이 창작물의 가치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즉 그것은 하나의 경제적 자원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경제란 소비자본주의와는 다른 모델의 경제일 것이다.

새로운 설계도가 필요해!

처음엔 나 또한 표준계약서를 거의 그대로 사용했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책을 만드는 현실, 내가만드는 책의 현실과는 실은 굉장히 거리가 먼 어떤 현실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점점 더 명확히 인식하게 되면서, 매 번 힘들여 계약서의 조항들을 고치고 또 새로운 문장들을 고안해 써 넣고 있다. 그것은 책을 만드는 일의 시간 전체를 상상해보는 일이기도 하고, 우리가 어떻게 나아가 볼까, 함께 하는 이들에게 제안해보는 일이기도 하다. 몇 달 전, 보스토크프레스의 편집자 김현호 선생님이 보스토크프레스에서 책을 내기로 한 작가에게 출판계약서 초안을 안내하는 자리에 함께하게 되었는데 나는 그 과정이 무척 감명 깊었다. 매우 건조한 계약의 문장들이었지만, 그것은 하나하나가 만들어질 책과 관련한 현실을 가늠해보고 있었고 내게는 그것이 책에 관한 일종의 설계도처럼 보였다. 자신만의 설계도를 만들 것, 그게 출판사의 일이구나 배우는 순간이었다.

출판을 거듭할수록, 나선프레스는 출판계든 미술계든 이미 있는 어떤 제도와 조금씩 어긋나 있다는 것을 계속 느낀다. 달리 말하면 나는 이미 있는 제도에게서 배움을 얻기 보다는 계속해서 어떤 상상력을 발휘해야만 하고 나의 생산 조건을 이해해 나가야만 한다는 것을 뜻한다. 계약서를 잘 쓰는 일은 그 과정을 진행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고 또 필요하다. 바로 거기에 나의 한계가 있고 또 앞으로 툭 튀어나올 무언가의 낌새가 있기 때문이다.


 


  1. 로제 카이와 지음, 이상률 옮김, 놀이와 인간: 가면과 현기증, 문예출판사, 2018, 3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