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Hanbum

Writing

낭만 결핍증, 어떤 아름다움

미술세계 2019년 7월호에 수록.

 

1998년 DV 카메라로 촬영한 인터뷰 영상에서 그레고리 마스가 고(故) 박이소 작가에게 던진 첫 질문은 근래의 ‘성공’에 대한 것이었다. 여기서 ‘성공’은 물론 보다 직업적인 경력에 대한 농담 같은 것이었지만, 곰곰이 생각하던 박이소는 “낭만(romance)”에 있어서는 성공적이었다고 대답한다. 그것은 비엔날레를 위해 방문한 대만에서 서로에 호감이 일었던 여인과의 짧은 만남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어서 그레고리 마스는 질문한다. “당신은 낭만적인가?” 박이소는 대답한다. “낭만적이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노력하지 않으면 낭만적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태생적으로 낭만적이지 않다. 나는 나 스스로를 계속해서 낭만적인 상황 속에 있도록 만든다.”1 인터뷰 가장 앞부분의 이 기묘한 대화는 유독 내게 오랫동안 꺼끌꺼끌한 것으로 남아 있는데, 성공과 낭만이라는 동문서답으로 인해 언뜻 진부해 보이는 예술과 낭만의 관계를 새삼스러운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낭만은 통속적인 드라마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맥락을 암시하고 있는 듯했다. 의식적으로라도 힘을 써서 자기 자신이 놓여 있어야 할, 혹은 성취해야 할 어떤 상태나 상황, 조건들. 그리고 나는 그 다른 맥락이란 것이 특정한 시공간적 조건 속에서 등장한 특정한 예술 실천이 추구하는 매우 한정적인 가치에 대한 문제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 가치는 서로 다른 작가들에 의해 서로 다른 형상으로 등장하지만 한시적인 우정의 근원이기도 할 것이다. 즉 그것은 당대의 사회와 문화, 경제 구조라는 외적 조건과 그에 응대하는 예술적 주체들, 그들의 마음과 미학, 스스로에 대한 배치를 모두 함축한다. 리프로스펙티브의 두 번째 전시장의 제목이 ‘낭만 결핍증’인 것도 우연은 아닐지 모른다.

성곡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의 유사-회고전 리프로스펙티브는 지난 2004년 결성 이후 제작한 수많은 작품들 중 몇몇을 선별해, 마찬가지로 그들의 지난 전시 제목을 그대로 가져 온 네 전시장(‘무아 자기도취’, ‘낭만 결핍증’, ‘시스템의 목적은 그 시스템이 하는 일’, ‘무감각의 미’)에 나누어 놓은 작업이다. 집의 미니어처와 분자 구조 모형이 나란히 놓인 부동산(2012-2019)이나, 도라에몽과 친구들 인형, 신라 시대 토기 복제본 등의 모형이 기울어진 좌대 위에서 다시 수평을 맞춰 서 있는 네가 알아내라같은 경우 작업을 구성했던 요소가 바뀌며 새로이 갱신되었다. 각각의 전시장은 양가적인 상태의 중첩과 충돌, 하위문화 양식의 변용, 체계에 대한 관심과 그에 대한 사적인 수행, 미술의 역사에 대한 당대적 코멘트 등의 주제를 가늠해볼 수 있는 작업들로 직조되어 미술이라는 것의 근본적인 기능을 강조한다. 이것은 미술제도2로부터 주변적인 사물과 언어, 문화의 요소를 재배치함으로써 사물의 다른 역학을 위한 장(場)을 구성하고 세계에 대한 개념과 인식, 행동의 방식을 조정하려는 작가의 방법론이 자기 자신의 역사를 대상으로 삼은 위트이자 자기 자신의 픽션 만들기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리프로스펙티브를 유사-회고전이라고 한 것에는, 작가의 작업 방법론에 비추어 봤을 때 지난 작업을 재사용하는 것이 회고적인 의미를 가진다기보다는 새로운 서사를 구성하는 행위로 보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3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이전 작업들을 다시 전시 공간으로 불러들여 재배치하는 것의 의도에 대해 질문 받았을 때, 만화 작가 오사무 테츠카의 방대한 작품 세계에서 개별 작품을 널뛰며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을 예로 들며 “그 인물들은 작가와 작품 전체와 동고동락하며 관객과의 유대를 만드는 독특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의 작업 전체는 작품 단위의 사건을 가로지르는 일종의 영화적 공간에 가까우며 매 번의 편집과 연출을 통해 새로운 서사를 구성한다. 끊임없이 빠른 속도로 많은 작품을 생산하는 그들의 작업 방식은 전 세계의 수많은 도시를 노마드처럼 이동하며 작업하는 삶의 양태 속에서 그때그때의 상황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이기도 하지만, 서사의 재생산을 위한 요소들의 저장소 구축에 있어서 필연적인 충동이기도 할 것이다.

매 번 특정한 상황과 조건에 반응하는 김나영과 그레고리마스에게 있어서 자기 자신의 역사가 조건이 되는 리프로스펙티브는 그리하여 그들의 작업 방법론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냈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미술과 관계되는 작가의 중요한 입장을 수면 위로 올려 보낸다. 서사의 관점에서 그들의 작업을 이해할 때 중요한 것은 가시적인 것들의 배치만을 읽음으로써 그 의미를 산출하는 것은 결국 해석적 곤궁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많은 평자들은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의 작업에 구조주의 언어학의 방법을 통해 접근하면서도 그들의 사물을 단지 계열체(paradigme)적 관계에서의 재배치로 축소시킨다. 하지만 그들의 작업은 사물을 둘러싼 조건들의 통합체(syntagma)적 관계로서 작동한다. 말하자면 그들은 사물을 총체적으로 재구성한다. 이는 한편으로 작가에게 있어서 공간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반증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작가가 작업에 기입해 놓은, 가시적인 것들을 구조화하고 질적인 변화를 추동하는 힘으로서의 부재(absence)와 결핍의 자리를 환기시킨다. 이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사물의 재배치라는 방법론은 이질적인 것들의 병치를 미학적 스타일로서만 사용하며 짐짓 미술인 척하는 쾌락주의와 구분되지 않는다. 김나영과 그레고리마스가 부재의 자리에 두는 것은 미술의 개념 그 자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미술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의 열린 집합 말이다. 그 부재는 미술이 아닌 것들 – 사물, 언어, 이미지, 물질, 문화 등등 –을 발견하고 재배치하도록 만들고, 그리하여 다시 사물의 힘을 통한 미술의 개념을 재생성한다. 때문에 그들의 미술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진동하는, 싯쩌 스틴스트라(Sytze Steenstra)의 표현을 빌자면 “대단히 불안정한 도시 풍경의 지진대를 구성”한다. 바로 여기에 방법론으로서의 재배치에 스며 있는 그들만의 고유한 실천이 자리하고 있고, 유머란 거기서 발생하는 하나의 중요한 현상학적 특성이다. 이는 외양상 언제나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실상 아주 특정한 누군가와의 소통만이 가능한 언어활동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입장은 분명 미술의 기능에 대한 굳은 믿음에 기반 한다. 낭만의 자리란 바로 여기에 놓여 있다. 김나영과 그레고리마스의 부단함은 여전하고, 변함없이 견고한 힘으로 미술을 수행한다. 이 전시는 내게 아주 엉뚱한 질문을 남겼다. 낭만은 어떻게 가능한가? 만약 공동체의 불가능성이라는 것이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당대적 조건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우회해야 하는가?


 


  1. 이 인터뷰 영상은 김나영&그레고리 마스의 홈페이지에도 게시되어 있다. 

  2.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의 미술은 언제나 미술제도와 깊이 연관되어 있으며 제도와 제도 바깥이라는 유동적인 경계에 대해 끊임없이 유연하게 반응하고 개입하는 일이다. 여기서 말하는 미술제도는 미술이라는 개념 자체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의 집합을 일컫는다. 분명한 것은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는 아주 엄격한 방식으로 미술제도를 이해한다는 것인데, 달리 말하면 그들에게 있어서 ‘일상의 모든 사물’이 미술의 재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미술사라는 역사적 지식과 당대의 제도적 배치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관찰, 그리고 사물이 문화적인 영역에서 어떻게 굴절되어 이해되고 지식화 되는지, 즉 사물의 언어게임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에서 비롯된다. 이는 미술이라는 개념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이자 조정의 방식이며, 스스로 지식 생산과 인준의 모델이 되는 포스트 모더니즘적 주체 되기이다.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의 사물의 배치는 아슬아슬하지만 명확하고 단호하게 미술을 지시한다. 바꾸어 말하면 그들의 사물의 배치는 언제나 미술의 개념을 향한 방법이자 장치이다.  

  3. 여기서의 서사는 등장인물이나 대화가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특정 공간에서 발생하는 사건의 현상학적 시간 구조를 뜻한다.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 리프로스펙티브 전시 전경
© 성곡미술관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 리프로스펙티브 전시 전경
© 성곡미술관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 리프로스펙티브 전시 전경
© 성곡미술관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 리프로스펙티브 전시 전경
© 성곡미술관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 리프로스펙티브 전시 전경
© 성곡미술관